기자 출신 '뉴스덕후'가 HCI를 공부하는 이유

잘 나가는 언론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권태로움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퇴사자가 그렇듯 그만둔 이유는 수백 개지만, 그 이유가 가장 컸다. 기자 생활을 몇 년이나 했다고 이 무슨 괘씸한 소리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들어 보시라.

 

세상은 옴니아에서 갤럭시 S로,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휙휙 변하는데, 나는 매일 같은 형태의 기사만 찍어내고 있었다. 추울 때 추운 데 가서 춥다고 보도를 했다. 교육부가 자료를 냈다는 이야기를 구성만 조금 바꿔서 1분 30초짜리 영상물로 내보내느라 영상기자, 편집기자, CG 디자이너를 달달 볶아가며 반나절을 보내곤 했다. 이런 소소한 것이 나 자신을 권태롭게 했다.

 

간단한 단신쯤은 기계가 쓸 수 있도록 하고, 그즈음 유행하던 카드 뉴스도 일찌감치 컴퓨터에게 "당장 만들어!"라고 시키고 싶었다. 대신 나는 좀 더 진지하고 사려 깊은 글이나 특종, 멋진 기획기사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기계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차라리 내가 회사를 나와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퇴장이 기자의 복지에 보탬이 되기를!)

 

그 이후로 내가 속하게 된 연구실(HCC Lab)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소위 '로봇 저널리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기자의 복지 여건은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 임무가 막중하다.

'하, 컴퓨터를 맘껏 부리고 싶다'
뉴스에 몰두하려면
기계를 부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덕후'인 나는, 인간과 기계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뉴스라는 콘텐츠에 몰입했다. 뉴스는 인간사를 다루지만, 더 이상 구전 시대가 아닌 이상 그 소통 경로를 온전히 기계에 의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 하나하나를 데이터로 여겨서, 그것을 아주 큰 덩어리로 엮어보면 어떤 패턴이 나올 것 같았다. 나중을 예측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법했고, 이 시대를 관통하는 관점이나 안목을 찾을 수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구자가 세계 곳곳에 제법 있었다.

 

기자 출신 '뉴스덕후'가 HCI를 공부하는 이유

잘 나가는 언론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권태로움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퇴사자가 그렇듯 그만둔 이유는 수백 개지만, 그 이유가 가장 컸다. 기자 생활을 몇 년이나 했다고 이 무슨 괘씸한 소리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들어 보시라.

 

세상은 옴니아에서 갤럭시 S로,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휙휙 변하는데, 나는 매일 같은 형태의 기사만 찍어내고 있었다. 추울 때 추운 데 가서 춥다고 보도를 했다. 교육부가 자료를 냈다는 이야기를 구성만 조금 바꿔서 1분 30초짜리 영상물로 내보내느라 영상기자, 편집기자, CG 디자이너를 달달 볶아가며 반나절을 보내곤 했다. 이런 소소한 것이 나 자신을 권태롭게 했다.

 

간단한 단신쯤은 기계가 쓸 수 있도록 하고, 그즈음 유행하던 카드 뉴스도 일찌감치 컴퓨터에게 "당장 만들어!"라고 시키고 싶었다. 대신 나는 좀 더 진지하고 사려 깊은 글이나 특종, 멋진 기획기사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기계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차라리 내가 회사를 나와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퇴장이 기자의 복지에 보탬이 되기를!)

 

그 이후로 내가 속하게 된 연구실(HCC Lab)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소위 '로봇 저널리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기자의 복지 여건은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 임무가 막중하다.

'하, 컴퓨터를 맘껏 부리고 싶다'
뉴스에 몰두하려면
기계를 부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덕후'인 나는, 인간과 기계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뉴스라는 콘텐츠에 몰입했다. 뉴스는 인간사를 다루지만, 더 이상 구전 시대가 아닌 이상 그 소통 경로를 온전히 기계에 의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 하나하나를 데이터로 여겨서, 그것을 아주 큰 덩어리로 엮어보면 어떤 패턴이 나올 것 같았다. 나중을 예측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법했고, 이 시대를 관통하는 관점이나 안목을 찾을 수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구자가 세계 곳곳에 제법 있었다.

 

나는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중 뉴스 데이터, 그중에서도 뉴스에서 다루는 이미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많이 모아서 연구한다. 즉, '빅데이터'를 다루고 있다. 수천, 수만 장을 다루다 보니 매번 컴퓨터가 달아오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많은 데이터에서 무엇을 찾느냐'이다.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인문학적 아이디어가 절실한 순간이다.

 

예를 들어 얼핏 보기엔 비슷비슷한 정치인의 사진을 모아서 "당선자가 낙선자보다 표정 관리를 좀 더 하는 경향이 있던 걸?"이라는 식으로 감성을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선거 보도사진의 특성과 정치인의 홍보 행태, 나아가 감정에 대한 인간과 컴퓨터의 인식 차이를 다루는 철학적 연구까지 섭렵해야 한다.
* 관련 논문: 유재연, 서봉원, 「보도사진 속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의 감정과 당선의 관계」 (Proceedings of HCI Korea, 2017) p.146-149

 

HCI는 결국 사람과 기술을 잇는 미래를 그린다. 이번 편에서는 인간에게 더 가까워지려는 기술과, 사회를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먼저 미디어 업계에 추천하고 싶은 아이디어, 그리고 이들의 향후 독자이자 미래를 살아갈 아이를 위한 과학기술 교육 시도를 살펴본다.

미래의 저널리즘

"너희 때는 다를 거야."

 

편집국에서 일하던 시절, 선배로부터 참 많이 듣던 말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10년쯤 뒤면 신문도 방송도 여러모로 크게 변할 거란 이야기다. 이 말을 점심을 먹으면서 들었고, 폭탄주를 말아 마시면서도 들었다. 기사에 빨간 펜이 잔뜩 칠해진 날에도 들었다.

 

내가 처음 언론사에 들어간 때가 10년 전이다. 그 이후부터 따져보면 취재부터 기사의 유통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은 부분이 없긴 하다. 그러니 20년 넘게 머문 선배가 느꼈을 격세지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퇴사를 하던 날에도, 선배로부터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세상이 변하니, 네가 공부하는 것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코딩을 배우고, 기술은 조금 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니 언론 지평도 제법 달라지지 않을까?

"픽미 업"
더 잘 보이기 위한
콘텐츠를 연구하다

어떻게 하면 내 상품이 더 잘 보이고, 더 잘 읽힐 수 있을까? 웹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입장이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고민하는 부분이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분야다 보니, 이 같은 정보시각화(visualization) 연구는 CHI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시각화 관련 세션은 총 다섯 개, 제목에 'visualization'이 들어간 논문은 열한 개였다. 논문 초록에 이 단어가 들어간 것은 스물다섯 편에 이른다.

 

먼저 퍼듀 대학교와 MIT 연구진은 콘텐츠와 잘 어울리는 색채를 추천하는 방법을 다뤘다. 그런데 그 매칭에 이르기까지의 방법이 상당히 흥미롭다. 잡지 표지 수천 장을 모아다가 각 이미지의 대표 색깔을 다섯 개씩 뽑은 뒤, 이를 해당 잡지에 쓰인 단어의 주제와 짝짓는 방식이다.

 

가령 표지에 쓰인 단어 주제가 '봄'인 잡지 이미지를 모아보니 대표 색상이 주로 연두색, 연분홍색, 흰색이라는 것이다. 역으로 '봄'이라는 단어를 주고 여러 조합의 색채를 뒤섞어 설문조사를 해 보면, 위에 나온 대표 색상을 쓴 경우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크게 호감을 보이더라는 식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 이 예시는 저자가 쉽게 설명하기 위해 새로 썼다. 실제 논문에 나와있는 사례는 아니다.

 

이 논문이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이미지를 분석하는 데에 언어학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인문학도의 설계와 컴퓨터 공학자의 알고리듬과 시각 디자이너의 분석이 한데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연구다.

 

연구진은 언어학의 의미론(semantics)을 가져왔다. 쉽게 말하면 언어학의 큰 갈래 가운데 형태를 다루는 통사론, 음운론과 달리 내용을 다루는 분야에 속한다. 말과 글이 뜻하는 바를 연구하고, 이 문장이 어떻게 그런 의미를 갖는지 탐색하는 학문이다.

 

이들은 색채를 문장이나 글로 보고, 그 색깔이 뜻하는 바를 연구했다. 그것도 시각 디자인 데이터를 잔뜩 모아 기계에게 학습시키는 방법으로 말이다.

 

잡지 표지만큼이나 그 안에 든 내용을 파악하기 쉽고, 이미지도 눈에 확 들어오는 매체가 또 있을까? 연구진은 12개 장르 잡지 71종에서 표지 이미지 2,654개를 모아다 썼다. 그리고 각 이미지에서 여러 색채를 추출한 뒤, 대표 색상 다섯 개를 뽑아 팔레트를 마련했다.

 

이후 이 색채 팔레트와 관계가 깊은 단어 꾸러미(bag of words)를 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토픽 모델링(주제 찾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중 잠재 디리클레 할당 모형(LDA-Dual Model)*을 적용했다.

* 자연어를 처리할 때, 미리 알고 있는 카테고리별 단어수 분포를 바탕으로 주어진 문서를 분석해 각각 어떤 주제가 있는지 예측하는 확률 모형을 잠재 디리클레 할당(Latent Dirichlet allocation, LDA) 모형이라고 한다. 이를 확장한 것이 이중 잠재 디리클레 할당 모형(LDA-Dual Model)이다. 각각의 문서가 두 가지 종류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전집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이 논문에서는 이 방법을 색채와 주제에 적용했다.

 

물론 색채와 의미를 짝짓는 연구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논문은 단어 주제의 카테고리를 더욱 다양하게 하며, 여러 색채 조합과 짝지을 수 있게 하여 그 규모를 확장했다. 우리의 눈은 오직 한 색깔만 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다수의 색을 인식하니 말이다.

 

비슷한 논문으로 데이터 시각화 분석 기업 타블로(Tableau) 연구원이 교신저자로 참여한, 색채 조합과 감성을 짝짓는 연구도 있었다.

연구진이 제시한 8가지 감성과 연결된 컬러 팔레트 ©Affective Color in Visualization/ACM SIGCHI

연구진은 8,600여 건의 비주얼 데이터를 활용해 8가지 감성(차분함, 흥겨움, 긍정, 부정, 심각함, 장난스러움, 불안, 신뢰)과 연결된 컬러 팔레트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색채끼리 같은 감정으로 뭉치는 것을 점(node)과 선(edge)으로 구성된 연결망(network)으로 구현해낸 셈이다.

 

예를 들어 흥겨움에서는 주황색을 중심으로 핑크색과 노란색, 붉은색과 녹색이 강하게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긍정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다. 노란색과 옅은 주황색, 초록 계열이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반면 차분함은 파스텔톤 색상, 특히 푸른 계열이 높게 나타났고, 부정에서는 검고 어두운 색상이 주를 이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우리가 느끼는 대로, 부정적이면 어둡고 차분하면 잔잔하고 또 흥겨울 땐 화려한 색상 연계를 보여준 것이다.

아예 코딩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여러 개발 도구가 나오고 있지만, 실무자가 뭔가를 당장 배워서 써먹기란 쉽지 않다. 개발자 친구들은 "파이썬(Python) 은 쉽게 배울 수 있어.", "R은 금방 할 걸?"이라고 하지만 코딩의 C자도 모르고 시간도 넉넉하지 않은 기자가 이를 배우기란 참 어렵다.

 

그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한 듯, 언론인 출신 또는 기자를 친구로 둔 연구진이 힘을 모아 툴을 만들고 있다. 개인 맞춤형 기사를 제공하도록 돕는 코딩 도구인 퍼사로그(PersaLog)이다. 시각화를 위한 도구는 이전에도 많이 나왔지만, 실제 기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툴은 이제야 연구되고 있다.

 

CHI 2017에서 발표된 퍼사로그는 기사를 읽는 독자의 나이나 성별, 지역에 맞게 텍스트가 설정되도록 했다. 한편 기자들이 당장 이것을 바로 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연구진은 직접 십여 명의 기자를 인터뷰해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연구진은 퍼사로그가 웹페이지 전체가 아니라 각 기사에 조건을 적용하기 때문에,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나 에코 챔버(echo-chamber)*는 덜 할 것으로 예상했다.
* 필터 버블은 알고리듬으로 인해 개인에게 맞는 콘텐츠만 접하다 보니 편견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에코챔버도 같은 카테고리 속 사람끼리 같은 메아리만 듣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화 기능이 모든 기사에 똑같이 반복된다면 또 다른 편견이 우려된다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 또한 자기에게 맞는 기사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맞춤형 기사도 볼 수 있도록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퍼사로그 시스템의 구성(architecture)은 자바스크립트 베이스로, HTML 코드에 바로 포함(embedding)할 수 있도록 했다. 코딩을 최대한 쉽게 할 수 있도록 구성했는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if {{age}} <= 18 ::: print a
if {{age}} <= 65 ::: print b
default ::: print c

나이가 18세 이하면 a, 65세 이상이면 b, 나머지는 모두 c를 보여주라는 뜻이다. 나이 대신 도시를 넣고 프린트할 변수만 바꿔 쓸 수도 있다.

 

데이터를 불러오는 것도 기존 코드보다 훨씬 쉽다. 따라서 유저를 모델링하거나 UI를 편집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도 퍼사로그 버튼을 끄면 일반적으로 나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발표 후 연구진에게 물었다.

기자 스스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데이터를 수집해 입력하는 사람(data provider)으로 생각할 것 같다. 이를 우려하지는 않는가?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마침 월 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기자들과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다. 언론인 모두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분명히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만.

내가 읽는 이 기사는
팩트일까 루머일까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것이 팩트인지, 아니면 루머인지를 확인하는 저널리스트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소개됐다. 핌(PHEME)이라는 이름의 유럽 저널리즘 프로젝트로, 국내에서도 언론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 관련 기사: '트위터 내용 진짜, 가짜 판단해 주는 시스템 유럽서 개발중' (IT조선, 2014.2.21)
 

* 영상 < Checking whether rumours on social media are true > ©SWI
 

핌은 머신러닝을 활용해 루머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거꾸로 추적해, 소문의 배경이 되는 위치와의 거리를 살펴보는 등 그것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이다. 발표를 맡은 연구원은 자신도 한때 언론사에 몸 담았다고 했다.

 

이들이 마련한 핌 대시보드는 이처럼 루머의 시작점을 살펴보는 기능을 비롯해, 팩트 확인 코너, 트위터 정보 추적 등 핌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요소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 그리고 이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해보니, 팩트 체크를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이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많은 기자들이 제한된 시간의 압박이나 기사 형식, 편집 등으로 팩트 확인이 제대로 안 되는 문제를 겪는다. 핌은 이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툴이다. 연구원은 현재 핌의 데모 버전은 프로그램 수정 때문에 비공개 상태이고, 곧 정식 버전이 출시될 예정이라고 언급하며 발표를 마쳤다.

체화된, 사회화된 기술들

기계가 내 몸에 착 붙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의 말*처럼 스마트폰이 내 기억력을 담당하는 것만 같고, 원문이 읽기 싫을 때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 나의 모자란 영어실력을 대체한다. 세상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의 사진과 글에 의해 돌아가는 기분이다. 기술은 어느새 우리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졌다.
* 본 리포트 '3. 올해의 키노트: 조화, 변화, 그리고 공존' 중 니콜라스 카의 기조연설 참고

친절한 번역이
상품 구매에 미치는 영향

옥스포드대 앨런 투링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가 흥미로웠다. 과연 '친절한 번역'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연구진은 여행 상품 리뷰의 번역 여부가 상품 구매에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다. 실험은 스페인어권 사람에게 런던 자전거 여행 상품을 내걸고, 번역 버튼이 있는 사이트, 자동으로 번역되는 사이트, 그리고 리뷰가 오직 영어로만 있는 사이트 세 개를 준 뒤 상품을 구매하는지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는 아마존 미케니컬 터크(Amazon Mechanical Turk)*를 통해 모집했다.
* 크라우드소싱 실험 플랫폼. 줄여서 MTurk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과는 그리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런던 자전거 여행 상품에 대한 리뷰를 스페인어로 표기하거나, 번역 버튼을 제공한다고 해서 해당 상품의 구매량이 그리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대신 번역 버튼을 사용한 참가자는 그렇지 않은 참가자보다 확실히 구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극적인 구매층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후속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는 번역본의 원본을 볼 수 있는 옵션도 제시했다.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bilingual)은 특히 '원본 보기' 버튼을 선호했다고 한다.

 

본 연구에는 분명한 시사점이 있다. 외국 콘텐츠나 리뷰를 다루는 플랫폼을 기획 또는 운영하는 입장이라면, 일단 번역 버튼과 원본도 볼 수 있는 옵션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제공하는 편이 적극적인 구매자의 이목을 끄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아날로그에 대한
집중과 집착

이번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아주 섬세하게 조합해 눈길을 사로잡은 연구 두 편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아주 감동한 아이디어다.

 

먼저 일본의 돗판 인쇄(凸版印刷, Toppan Printing)*와 야마구치 대학교 연구진이 만든 '종이 전자책'이다. 실제 종이 책을 넘기면 눈 앞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넘어가고, 내가 만진 책 속 캐릭터의 이야기가 화면에서 쳘쳐진다. 주로 전시장에 설치하기 위한 용도인데, 책이 갖는 공간적 한정성을 디지털 화면으로 연장해 구현했다.
* 1900년 도쿄에 세워진 인쇄회사. 전통적인 인쇄산업은 물론 전자종이부터 전자간판, VR을 활용한 전시관에 이르기까지 첨단기술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돗판 인쇄와 야마구치 대학교 연구진이 만든 종이 전자책 ©유재연

연구진은 일본의 전통 종이 두 장 사이에 얇은 센서를 촘촘히 삽입하여 손으로는 그저 종이 질감만 느끼도록 섬세하게 제작했다. 실제 책장과 거의 같은 느낌이라 넘기는 데도 부담이 없고, 아날로그 감성의 까끌까끌한 촉감을 손가락 끝에서 느끼기 좋았다. 킨들이나 아이패드에서 느낄 수 없는 종이책의 느낌을 구현한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오사카에 공간을 빌려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확인했는데, 다들 아주 흥미로워했다고 한다. 전통과 아날로그에 대한 집중과 집착이 어쩌면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지점이 아닐까 싶었다.
 

* 영상 < IllumiPaper: Illuminated Interactive Paper > ©ACM SIGCHI


독일 드레스덴 공대 연구진은 아예 펜으로 클릭한 부분에 불빛이 들어오는 전자 종이를 개발했다. 설문조사를 할 때처럼 간단한 체크가 필요한 서류에 활용하기 좋아 보였다. 종잇장 사이에 얇은 센서와 LED 패널을 삽입해 디지털 펜이 닿으면 체크나 숫자와 같은 패턴이 발생하도록 설계했다.

지카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행을 갈까요, 말까요?
빅데이터를 통한 상황 분석

인간 사회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연구도 쏟아졌다. 빅데이터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이다. 구글에서 사람들이 '독감'을 얼마나 많이 검색했는지를 통해 독감 유행을 예측하는 이 연구*는 이미 고전과 다름없는 주제가 되었다.
* 현재 구글 독감 트렌드(Google Flu Trends)는 서비스가 끝났다. 2015년까지의 데이터는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 [바로 가기]

 

더 나아가 지카(Zika), 에볼라(Ebola) 바이러스와 같은 공중 보건 사태에 대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이 CHI 2017에서 발표됐다.

 

UC어바인과 퍼듀 대학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연구진은 "지카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행을 갈까요, 말까요?"를 묻는 임신부에게 집중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도 "요즘 유럽에 테러가 많이 나는데, 가도 될까요?", "필리핀은 계엄령이라는데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요?"와 같은 글이 각종 게시판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우리도 로컬에서 연구할 만한 소재다.

 

연구진은 지카 바이러스가 한참 유행하던 2016년 1월부터 8월 사이,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과 베이비센터(BabyCenter),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 올라온 글을 모아 분석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의 발표나 의사와 같은 전문가의 코멘트, 언론 뉴스에 대해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며 불완전한 정보라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지카 바이러스 위험 지역이 브라질이라는 발표에 대해 "브라질이 얼마나 큰 땅인데!"라며 너무 광범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바이러스 발생지에 다녀온 뒤 6개월 간 성관계를 자제하라는 권고는 너무 보수적으로 느꼈다.

 

연구 결과, 미디어는 과장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정보는 질병이 일어난 곳의 세부적인 지역 정보, 그 지역에서 현재 취하는 조치와 같은 이야기였다. 또 각 임신부끼리 의사로부터 받은 조언을 활발하게 공유하고, 이를 서로 비교하는 일도 많았다.

 

연구진은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위기 대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면, 현재 발병 지역에 모기가 있을만한 계절인지, 습도는 어떤지 등 날씨 상황을 토대로 실시간으로 지카 바이러스 위험도를 측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사용자가 특정 지역에 지카가 발생할 위험도를 계산해 추측했는데, 실제로 맞혔다고 한다. 해당 지역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확인해 공중 보건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연구진은 일반인이 정보를 공유하고, 큐레이션 하고, 나아가 분석도 할 수 있는 참여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지역 주민이나 예전에 그곳을 다녀간 사람이야말로 가장 세부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온라인 게시판에 후기를 올리는 사람들의 행동에 중요성을 부여한 것이다. 일반인이 공중 보건 위기 상황을 평가하고,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내 사진을 봐줘"
눈에 띄는 사진을
더 많이 보고,
올리는 사람들

소셜 미디어상 보건 관련 연구를 주로 진행하는 미국 조지아텍에서도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인스타그램 사진을 모두 모아, 그 안에서 정신 건강(이하 멘탈 헬스)과 관련한 시각적 표현을 살펴봤다.

 

연구진은 먼저 멘탈 헬스 관련 포스팅을 하는 유저의 사진 15만 장을 모았다. 그리고 색상과 같은 시각적 부분, 사진이 다루는 주제, 이미지 속 감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멘탈 헬스 관련 사진은 색의 채도(saturation)와 명도(brightness) 측면에서 일반 사진과 큰 차이를 보였다. 멘탈 헬스 관련 사진은 채도와 명도가 더 높아 전반적으로 진하고 선명한 색채를 많이 보였다. 즉 인지나 지각 면에서 눈에 더 띌 만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또한 해시태그도 일반 사진에 비해 더 많이 달렸다. 검색이 더욱 잘 되게 하기 위해서다.

 

사진의 주제를 확인한 결과도 흥미로웠다. 멘탈 헬스 관련 사진의 52%가 글자를 포함한, 이를테면 마음의 안정을 주는 글 같은 것이었다. 17%는 셀피(selfie)였는데, 우울증, 불안, 자살, 자해, 조현병, 식이장애 같은 단어가 해시태그로 함께 달렸다.

 

그 밖에도 2명 이상 함께 찍은 사진, 음식이나 신체 부위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주 낮은 비율이지만 멍이나 피 같은 그래픽 이미지 등도 올렸다.

 

이들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감정을 확인해보니 분노나 슬픔, 죽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주 높게 나타났다. 불안은 여러 사람이 등장한 사진에서 가장 높았고, 분노는 음식 사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음식 사진에서는 분노뿐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도 다소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식이장애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멘탈 헬스 회복기에 있는 사람도 이런 사진을 주로 올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과학기술 교육의 새로운 시도

과학기술이 세상을 급속도로 바꾸다 보니 "어릴 때부터 코딩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CHI 2017에서도 효율적인 코딩 교육에 대한 연구가 줄곧 나오고 있다.

나는 만든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번에는 발명가 정체성(maker identity)을 키워주자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꽤 흥미로웠다. '나는 만든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make, therefore I am)'라는 위트 있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텍사스 대학교 연구진은 지역 초등학교와 함께 한 학기 동안 커리큘럼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한 내용을 다뤘다. 수업은 8~11살 학생 121명을 대상으로 6주에 걸쳐 진행했다.

 

연구진은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수업에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기' 과정을 추가했다. 커리큘럼 중 혼합물과 용액에 대한 메이킹 위크(making week)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 날은 직접 전자 회로와 전도성 물질을 이용해 전자 믹서를 만들어 보게 했고, 둘째 날은 이를 분리하기 위한 전기 체를 만들었다. 셋째 날은 다른 방법의 혼합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하나의 원리를 교육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직접 실험하게끔 한 것이다.

 

연구진은 만들기 커리큘럼 덕분에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단, 이 커리큘럼이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높이거나 과학 성적을 높이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밴두라가 제시한 개념으로, 어떤 상황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잘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나 기대감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효과가 있었다. 학생들이 전보다 발명가 정체성을 더 갖추게 되었다.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관련 직종을 미래 첫 번째 직업으로 선정하는 학생이 크게 늘었고, 그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과학 시험을 좀 더 잘 보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기술 인프라나 커리큘럼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어떻게 교육할까?

캐나다 캘거리 대학과 온타리오 대학 연구진은 인도 시골 마을의 학생에게 아두이노(Arduino)*를 주고, 이것으로 LED 조명을 밝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들에게 발명가 동력(maker movement)을 일으키기 위해 시작한 연구였다.
* LED, LCD, 모터, 스위치, 온도 센서, 거리 센서, 가속도 센서 등의 전자 부품을 제어하는 데 뛰어난 마이크로 보드

 

연구진은 직접 만들어보고 완성하는 것(DIY)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올린 코드를 그저 가져다 '복붙(copy&paste)'하더라도, 한 번쯤은 일단 완성하는 것에 무게를 뒀다.

 

실험은 인도 벵갈루루(Bangalore) 지역 시골 마을의 고등학교에서 사흘 동안 메이커톤(make-a-thon)*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학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이 많고, 전기도 오직 수업 시간대에만 들어온다고 했다. 컴퓨터실도 달랑 한 개 있는데 그마저도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 메이킹(Ma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 참가자가 팀을 이루어 정해진 시간 동안 빠르게 아이디어를 내며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경연

 

사흘 간의 교육 실험에 참여한 13~15살 학생 12명은 기술 접근성이 낮은 수준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컴퓨터를 다뤄본 적은 있지만 MS 엑셀을 배운 정도였다. 집에 휴대전화가 있는 학생은 둘 뿐인데, 그나마도 친구와 통화하거나 게임용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영어도 잘 모르기 때문에 연구진 가운데 이 지역 출신 연구원이 직접 통역을 했다.

 

연구진은 사흘 동안 전자기 원리와 아두이노 설계 등을 간단히 가르친 뒤, 아이들이 직접 LED 센서를 연결해 'HELLO'라는 글자를 완성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은 비언어적 사회학습 기술(nonverbal social learning techniques)을 통해 빠르게 학습했다. 다시 말해 친구끼리 서로 따라 하면서 배우는 것으로 기술을 익혔다.

 

인도의 경우, 여전히 수동적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는 문화권이다. 새로운 아두이노를 접한 학생은 선생님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친구를 모방해 과제를 수행했고, 결과적으로 지식도 제대로 습득했다. 연구진은 학생들이 '따라 하기'와 같은 비언어적 기술을 통해 오히려 스스로 이해하고 체득했다고 분석했다.

 

나 역시 2017년 1월,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서 과학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곳 또한 인도와 같이 교과서 읽기 중심으로 수동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문화권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도 고무동력기의 복잡한 원리를 모두 설명하는 것보다, 학생 스스로 기체를 조립하고 날리게 하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되었다. 고무줄을 프로펠러에 더 감고, 옆 친구를 따라 날개 각도를 조절해가며 원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연구진도 자체적으로 학습을 주도하려면 동료 간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복붙'을 해서라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 학생에게 큰 동력이 됐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놀면서 배우는 코딩

CHI 2017에서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연구진은 레고 조각처럼 아주 귀여운 교육 키트를 들고 나왔다. '메이커웨어(MakerWear)'라고 불리는 일명 모듈 모음집이다.
 


* 영상: < MakerWear: A Tangible Approach to Interactive Wearable Creation for Children > ©Majeed Kazemitabaar/Makeability Lab

 

연구진은 엄지 손가락보다 조금 큰 정육각형의 얇은 조각을 서른두 가지 종류로 만들었다. 실제로 보니 매우 작고 귀여운 레고 같았다. 아두이노나 라즈베리파이*같은 칩이 주는 딱딱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 쉽게 말하면 작은 CPU다. 어른 손바닥만한 기판으로, 여기에 메모리칩을 끼우고 모니터만 연결하면 컴퓨터처럼 구동된다. DIY 사물인터넷(IoT) 개발에 많이 쓰인다.

 

아이들은 알고리듬을 짜듯 얇은 조각을 그저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연구자가 이 키트를 열 살 안팎의 아이에게 줬더니 결과물이 화려했다. 미래의 운동복을 만들고, 슈퍼히어로의 암 밴드(arm band)도 발명했다. 학술적으로 풀자면, 아이들이 모듈을 가지고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든 것이다.

 

또한 알고리듬의 기본 개념인 입력(input) - 출력(output)은 물론, and 구문까지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코딩은 이렇게 놀면서 배우는 게 최고다. 이 아이들도 장래 희망으로 자연스럽게 과학자를 꿈꿀지 모른다.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처음 이 센서 키트를 접한 대여섯 살쯤 되는 아이는 주로 덜덜 떨리거나, 여러 색깔을 내거나 또는 모터가 돌아가는 동작을 시도했다. 여덟 살이 넘는 아이는 여기에 회전축까지 덧붙여 활용했다. 거리 측정 센서와 움직임 감지 센서는 물론, 각종 압력 센서와 버튼까지 쓰는 등 다양한 센서를 서로 조합해보았다. 이후 여러 차례 키트를 손으로 만지게 된 아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들어 냈다.

 

연구진은 아이의 연령대별로 아이디어, 기술 습득 시점에 차이가 있는데,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사용하는 모듈의 수와 알고리듬의 흐름(sequencing)을 활용하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실험을 성인에게 하면 어땠을까? 아마 열두 살 어린이와 비슷한 양의 모듈을 쓰고도 덜 흥미로운 물건을 만들지 않았을까? 어린이의 상상력은 적어도 나보다는 풍부할 테니 말이다.

발표자가 가슴에 붙인 것이 메이커웨어 모듈이다. ©유재연

만약 어른도 코딩을 배우고 싶다면? 경험적으로 볼 때 눈 앞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기술을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이다. IBM에서 내놓은 카드보드 키트는 이런 마음을 아주 잘 간파한 상품이다.

 

IBM은 CHI 2017에도 부스를 마련하여 카드보드로 만든 왓슨 로봇을 보여주고, 직접 개발 방법도 알려주었다. 카드보드를 활용한 로봇 키트에 대해서는 MIT 연구진도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낸 바 있다.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물론 IBM의 인공지능 왓슨 코드와 라즈베리파이를 활용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나도 이 리포트만 다 쓰면 만드려고 재료를 다 갖춰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