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필 더보기 P&G부터 스타트업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관련이 적어 보이는 회사를 다니며 마케터라는 업을 다각도로 분석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지금은 꽃 정기구독 스타트업 꾸까에서 CMO를 맡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과연 당연한 것이 맞는지 질문하고 변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브런치에 이 과정에서 얻은 러닝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입사원이 입사 후 겪는 악순환 고리는 다음과 같다.
처음 입사했을 땐 잘하고 싶어서 의욕이 넘친다. 취업 준비 때 고생했던 것들을 생각하며 이제 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다.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끝내고 반짝이는 눈으로 매니저를 쳐다본다.
그런데 매니저의 반응이 이상하다. 나는 잘한 것 같은데, 매니저는 내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 피드백이 무엇이 되었든 무슨 뜻인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어떻게 행동에 반영해야 할지 알 수 없고 혼란스러워진다.
피드백이 쌓이면서 점점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매니저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니저가 어려워지고 급기야 매니저를 피하게 된다. 매니저를 피하다 보니 피드백받을 기회가 줄어들어 업무에 있어 배움은 줄어들고 매니저만 보면 주눅이 들어 업무 실수까지 생기게 된다.
나 역시 악순환 고리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피앤지(Procter & Gamble) 입사 2주 차쯤, 내가 맡은 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놓고 매니저에게 자랑스럽게 보여드렸다. 내가 이렇게 맡은 업무를 잘 이해하고 시각화까지 했다는 걸 보여주면 나를 칭찬해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매니저는 다정한 말투로 이렇게 반응했다.
내가 뭘 해주면 돼요?(So what?)
예상치 못한 역질문을 받아 당황했고, 그 이후 매니저와 몇 번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나는 매니저의 "내가 뭘 해주면 돼요?"라는 질문을 굉장히 무서워하게 되었다. 매니저에게 무언가를 보고할 때 그런 질문을 되받을까봐 동기 언니의 도움을 받아 매니저와의 미팅 시뮬레이션도 돌려보았지만 결국에는 내가 매니저를 피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은 미팅에 참석하게 됐는데, 모르는 용어 투성이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열심히 필기를 하며 내가 이 미팅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그런데 미팅이 끝난 후 매니저는 나이스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다음 미팅부터는 들어올 필요 없어요.
나는 나름 필기도 열심히 하고 고개도 많이 끄덕여서 내가 의욕이 넘치고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는 그런 나의 행동을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회사는 내게 적극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나를 '다음 미팅에 들어올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평가할 뿐이었다. 이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주눅은 들어버렸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물론 모든 회사가 이런 분위기가 아닐 것이다. 어떤 곳은 주니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운 분위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분명 내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꼭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대체 '적극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일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은 일의 주도권을 회사가 아니라 내가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회사에 무조건 충성해야 한다거나 내 회사처럼 일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맡고 있는 일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일의 주도권을 회사에 넘겨주는 태도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매니저님 큰일 났어요! 이런 일이 발생했어요! 어쩌죠?"라고 반응할 것이다. 반면, 주도권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매니저님 이 문제 아셔야 해요. 제가 솔루션을 마련했으니 이거 같이 도와주세요!
이러한 마인드가 기본이 된다면, 어느 회사를 가든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 결과 내가 하는 말에 힘이 실리고, 가끔 실수하더라도 '저 친구가 오늘은 피곤했나 보다'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 이 마인드를 빠르게 세팅하지 않으면 매니저가 시키는 일만, 시키는 수준으로 하는 사람이 된다. 그럼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소극적인 사람, 일 못 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일 못 하는 친구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 못 하는 일만 더 눈에 띄게 되고 사소한 실수에도 '그럴 줄 알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주눅이 드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왕 해야 하는 일, 일 잘하는 사람 이미지를 가지면 회사 생활이 수월해진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단계적 생각법이 도움이 된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나의 업무를 잘 이해하고 시작하기
각 업무를 나만의 관점으로 풀어내기
매니저와 토론하기(본인의 의견 없이 매니저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와 토론하며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일을 잘하기 위해 내가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회사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어려운 개념이므로 단계별로 하나씩 설명하겠다.
1단계: 전체적인 관점에서 나의 업무를 이해하고 시작하기
업무를 바르게 잘 알자
업무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매니저와 업무 정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매니저에게 이것을 꼭 물어보아야 한다.
내 업무의 정의 및 범위(scope)
나를 왜 뽑았는지: 회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를 뽑았고, 내 업무에서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내 업무의 KPI(Key Performance Index)는 무엇인지: 매출 목표 달성과 같은 정량적인 KPI 외에도 매니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가 기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업무 시작 후 1~3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매니저의 기준 대비 내가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를 미리 물어봐야 한다. 평가를 받기 전에, 미리 그 기준을 물어봐야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듣고 조정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자신이 생각하는 일 잘하는 모습과 매니저가 생각하는 일 잘하는 모습이 다르다.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몇 개월이 지난 후 '적극적이면 좋겠다' 등의 피드백을 받으면 매니저를 대하는 것이 어려워지므로 미리 합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피앤지에서 나는 매니저와 함께 1년 동안 잘 해내길 기대하는 5개의 업무를 세팅하고 성공 기준(success criteria)을 함께 정했다. 성공기준을 정하는 것은 내게 기대하는 5개의 업무를 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 그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판단할지, 그 기준에 대해 매니저와 함께 꼭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내가 맡은 일을 목적/목표/업무로 구조화하자
업무 계획을 세울 땐 할 일 목록(to do list)이 아니라 목적과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주니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할 일 목록만 쳐내는 것이다. 일이 주어졌을 때 바로 실행하면 일을 근시안적으로 보게 되고, 마음이 급해 매니저에게 '이거 어떻게 하나요?'라는 질문부터 하게 된다.
따라서 주니어들은 첫 번째 미팅이 끝난 후, 아래 표처럼 자신의 업무를 정리해서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매니저와 확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나를 왜 뽑았으며, 내가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위 표의 핵심은 내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업무의 목표'다. 일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순차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할 일 목록 중에서도 일의 중요도 차이나 우선순위를 파악할 수 있다.
피앤지 입사 당시 매니저는 나를 뽑은 이유가 '신규 사용자 모집'이라고 했다. 이커머스 시장이 성장하던 당시에 회사는 이커머스 채널을 신규 사용자를 모집할 수 있는 채널로 정의했고, '신규 사용자 모집'이라는 과제에 집중할 사람으로 나를 선택했다.
당시 신규 사용자를 모집하기 위해, 이커머스 앱에서 푸시 메시지를 보내거나 이커머스 고객에게 샘플을 나눠주는 등의 할 일 목록들이 나왔었다. 처음에는 나 역시 앱 푸시, 샘플링 등과 같은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한 나머지, 목적은 간과하곤 했었다. 왜 앱 푸시를 보내는지를 생각하기보다 "앱 푸시 더 보내도 돼요?" 같은 질문을 매니저에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건 앱 푸시가 아니었다. 내 업무의 목표는 '푸시 보내기'가 아니라 '신규 사용자 모집'이니까. 만약 앱 푸시 결과의 효율이 더 이상 나지 않으면 앱 푸시는 중지하고서 신규 사용자 모집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다른 업무를 찾고 매니저를 설득할 수도 있어야 했다.
내 업무 구조화를 위한 체크리스트
내 업무를 목적/목표/업무라는 표로 구조화해보자. 그리고 매니저의 이해도와 같은지 확인하자. 내가 맡은 세부 업무들을 적어보고, 각각 아래의 질문에 답해보자.
각 업무의 전체 목표는 무엇인가요?
각 업무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이룰 수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요?
2단계: 각 업무를 나만의 관점으로 풀어내기
전임자가 했던 대로 그냥 따라 하지 않기
나만의 관점이 생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맞는 새로운 일을 제안하거나, 필요한 경우 이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어야 한다. 이 시점부터 비로소 '자신의 관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받게 된다.
"왜 이 일을 이런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라는 질문을 매니저가 했을 때, "전임자가 이렇게 하고 있었어요"라고 답한다면 일의 겉면만 아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전임자가 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이거 왜 이렇게 하고 있었지?"라고 묻고 목적에 맞는 솔루션을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주니어 때는 매니저가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거 해도 돼요?, 이거 제안해도 돼요?"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일 잘하는 사람은 좀 더 상위 목표에 집중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은 스스로 제안하고 리드한다.
나 역시 주니어 때 연 중간에 브랜드가 바뀌게 되어 월별 마케팅 비용을 전임자가 짜놓은 대로 우선 집행했던 적이 있는데, 매니저로부터 왜 이렇게 월별 마케팅 비용을 쓰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당시엔 마케팅비를 쓸 생각만 했지, 비용 집행 계획부터 고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업무를 맡는다는 건 전임자가 했던 일이 최선인지 묻는 데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는 일의 주도권을 가지고, 대표님께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회사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요? 대표님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이젠 회사가 나를 '광고 집행하는 사람'으로 채용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키우는 사람'으로 채용했다는 걸 안다. '꾸까 브랜드를 키우는 사람'으로 채용되었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전임자가 쓰던 광고비 효율을 분석해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광고를 모두 중단하고, 그 비용을 광고비 외에 사은품 개발에 활용하는 등의 제안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주어진 일을 그대로 받아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거에 해오던 것이 최선인지를 물을 수 있고, 새롭게 판을 짤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마인드가 없었다면, 전임자가 인수인계한 대로 효율 낮은 광고를 집행하고, 리포트 숫자 채우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일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최종 목표(ex. 브랜드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여 잘못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잡고, 하지 않고 있던 것은 하도록 만드는 것이 일의 주도권을 갖는 것의 시작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전임자가 해왔기 때문에, 혹은 관성적으로 그냥 하고 있는 일은 없나요?
그 일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정리한 이유가 내가 채용된 이유, 즉 일의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발상의 전환으로 주어진 제약 사항도 바꾸자
주어진 제약 사항을 바꾸는 것 또한 나만의 관점으로 일하는 방법 중 하나다.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때론 주어진 제약사항을 벗어날 수도 있어야 한다.
꾸까는 '꽃의 일상화'라는 비전을 가지고, 꽃다발을 메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꽃은 기념일을 축하하는 선물용으로 사는 경우가 많아 '꽃을 받는 날짜', 즉 수령일이 중요한 요소이고, 꾸까 역시 '수령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꽃은 유통기한이 짧다 보니 재고화해서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므로 수령일별로 팔릴 수량을 미리 계산하고 그 수량만큼만 판매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꽃을 사려는 사람이 더 있어도 준비된 꽃 수량이 부족해 더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특히 '카카오 선물하기' 채널에서 해당 이슈가 컸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일자별 판매 예측 수량을 늘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쉬운데, 수량을 조정하는 정도로는 상황을 극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 또한 꽃이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는 날에는 남는 재고만큼 꽃을 버려야 하는 문제도 있다.
'카카오 선물하기의 특성상 친구가 선물을 보냈다는 메시지를 받는 순간 이미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기에, 카카오 채널에서는 꽃 수령일 개념이 꾸까 홈페이지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목적에 기반한 가설을 갖고 카카오 채널에서는 수령일 옵션을 제거했다.
수령일 옵션을 제거하면서 '선물 받은 직후 1~3일 내 발송'으로 배송 정책을 변경하고, 미리 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팔린 수만큼 3일 내에 꽃을 만들어서 발송하도록 했다. 그 결과 고객의 컴플레인은 추가로 발생하지 않으면서 매출액은 5배 성장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발상의 전환을 위한 체크리스트
상위 목표와 고객 특성에 집중하는 순간, 스트라이크 핀이 보이게 된다.
나에게 요술봉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업무 환경 또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바꾸면 도움이 될까요? 왜 그런가요?
그것을 실제로 바꿔볼 방법이 있을까요?
3단계: 매니저와 토론하기
매니저를 바라보는 뷰를 바꾸자
주니어 때는 매니저를 '나를 평가하는 사람, 내게 가이드를 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매니저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마인드셋 전환이 필요하다. 매니저를 평가자로 여기면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중간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오히려 일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매니저는 내 일을 돕는 동료이자, 내 일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다. 매니저는 내가 힘든 상황일 때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실수한 게 있거나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는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매니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무언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맡게 되었을 때 꾹 쥐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공유하면 해결이 더 어렵다. 최악은 매니저가 물어봤을 때 비로소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 예전의 내 매니저는 '아침·점심·저녁'이라는 자신만의 팁을 알려줬다. 아침에 1번, 점심에 1번, 저녁에 1번 매니저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매니저님, 이거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는데 매니저님은 어떠세요?
이렇게 해놓아야 나중에 일이 되지 않았을 때 본인의 잘못이나 부족에서 일이 안 된 것이 아니고 매니저님도 함께 고민했지만 비즈니스 상황상 되지 않은 과제처럼 만들 수 있다.
매니저의 포지션을 동료로 전환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내가 가진 고민과 관련해서 매니저와 접점을 최대화하는 것이 매니저를 잘 활용하는 방법이다.
매니저와 1:1 미팅을 얼마나 자주 하나요? (업무 현황을 상세하게 공유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1:1 미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 회사 분위기 또는 조직에 따라 적절한 횟수나 주기가 다를 수 있으니 판단 후 상황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내가 맡고 있는 일의 현황이나 나의 상황에 대해서 매니저가 얼마나 잘 알고 있나요?
매니저와 토론하세요
매니저는 어떤 사람을 적극적이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할까? 매니저마다 일 잘하는 주니어의 기준은 다를 것이다. 정량적인 수치 달성일 수도 있고, 주관적인 신뢰도일 수도 있다. 내 첫 매니저의 경우, 주니어에 대한 신뢰가 쌓여 주니어가 주도하는 미팅에 자신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이 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견해가 명확한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매니저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매니저가 된 지금, 내게 일 잘하는 주니어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질문을 던져주는 주니어'다.
공통적으로 매니저가 '일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주니어의 기준은 '매니저가 지시한 내용이 합리적인가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최종 목표를 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주니어 때 매니저와 토론이 어려웠지만, 매니저가 내가 계산한 수치에 대해서 잘못 계산한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계산하는 거 맞습니다!'라고 내 계산 로직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자 매니저님은 이제 얘가 잘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고 했다.
매니저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의 의견을 명확하게 갖고 매니저와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때 '이 친구는 일을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잠깐! 1:1은커녕, 혹시 자꾸만 매니저를 피하게 된다면?
만약 이미 매니저를 피하고 있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면 꼭 매니저에게 구조요청을 해야 한다. 내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나왔던 방법은 매니저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매니저에게 구조요청을 한 것이다.
"종종 매니저님이 저에게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돼요?'라고 말씀하시면 머리가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최선을 다해서 현 상황을 파악했고, 그 상황에서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질문을 드린 것인데, 여기서 매니저님이 뭘 해주셔야 할지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매니저님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후 나도 일을 주도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매니저 또한 "내가 뭘 해주면 돼요?"라는 문장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뭘 해주면 돼요?"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문장을 구사하시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런 뜻을 가진 질문을 하기 전에 매니저님이 내 눈치를 보면서 웃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와 매니저님은 의도적으로 상황을 직시함으로써 '서로 불편한 상황'을 없앨 수 있었다.
나 역시 매니저가 되어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주니어를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나도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주니어도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만 악순환의 고리를 깰 수 있다. 매니저가 된 모든 사람들 역시도 주니어 때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다들 공감하고 있는 어려움이다. 망설이지 말고 꼭 구조 요청을 하길 제안한다.
매니저와 토론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매니저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매니저와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매니저와의 1:1 시간을 활용해 다음과 같은 것을 파악해보세요.
매니저가 생각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과 다른가요? 만약 다르다면,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이미 잘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피앤지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미팅을 돌아보자면, 그때 내가 비즈니스 오너 마인드를 처음부터 갖추었다면, 그냥 미팅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젠다(내가 맡은 일에 있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서)를 가지고서 미팅에 참석했을 것이다.
이 미팅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논의될 것인지를 미리 알고,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는 태도로 참석했을 것이고, 미팅을 이해해보자는 태도가 아니라 미팅에서 얻어낼 것을 얻어내자는 마음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이 아티클을 읽고 너무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매니저도 그렇고 모두들 알고 있다.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부터 이 글을 참고해 한 발씩 나아가면 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이왕 하는 일, 잘한다고 인정받으면서 첫 커리어를 시작해보자! 이미 잘하고 있다!
다음 아티클은 주니어의 질문법에 관한 이야기다. 주니어가 알면 도움이 될, 제대로 된 질문 방법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회사에서의 질문법은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얻어내야 할 것을 얻는 과정이다. 어떻게 질문을 통해서 얻어내야 할 것을 얻어내는지 다음 아티클에서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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