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8시간을 일하는데, 왜 어떤 날은 유독 지칠까?

💡 10분 안에 이런 걸 알려드려요!

  • "오후 3시만 되면 방전돼요" 시간보다 에너지 관리가 필요한 이유
  • 회의 17개로 꽉 찬 한 주, 업무일지는 텅 비어 있었다? 기록이 알려준 3가지 반전
  • 하루 5분, 숫자 2개로 나만의 에너지 패턴을 찾는 업무일지 작성법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꼭 나오는 고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오후 3시만 되면 머리가 안 돌아가요. 할 일은 아직 남았는데… 🥹"

"근무 시간은 늘 비슷한데, 컨디션은 매번 들쭉날쭉해요. 😵‍💫"

"하루 종일 바빴는데, 퇴근길엔 오늘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

저도 오랫동안 이걸 관리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정을 더 촘촘하게 짜고, 빈 시간이 보이면 뭐라도 채워 넣었어요.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욕심내면 더 많이 해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매일 같은 8시간을 일하는데, 어떤 날은 펄펄 날고 어떤 날은 오후 3시에 이미 방전돼 있는 거예요. 같은 시간을 일했는데 결과가 다르다면, 문제는 시간이 아닌 거죠.

 

저는 외국계 헬스케어 기업에서 현장 영업으로 일을 시작해, 지금은 국내 IT/서비스 대기업에서 신사업을 개발하는 14년 차 BD입니다. 그사이 이커머스 전략, 마케팅, 글로벌 파트너십까지 직무를 네 번 옮겼어요. 옮길 때마다 환경도, 요구되는 역량도, 함께 일하는 사람도 전부 달라졌지만 단 하나 바뀌지 않은 게 있습니다. 매일 업무일지를 쓰는 습관이에요.

 

답은 그 일지 안에 있었습니다. 일지에 칸을 하나 더해, 매일 오전과 오후의 에너지를 점수로 적었어요. 하루에 숫자 두 개. 그 숫자가 석 달쯤 쌓이자, 14년 동안 몰랐던 제 업무 패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드러났습니다. 그중 하나는 솔직히 좀 의외였어요. 제가 가장 열심히 일했다고 믿었던 주가, 실제로는 에너지가 가장 낮은 주였거든요.

 

이 글은 시간 관리를 아무리 해도 하루가 개운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썼습니다. 특히 10년 차 언저리를 지나며 '예전만큼 못 하는 게 실력이 떨어진 건가' 싶으셨던 분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에서 처음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줄어드는 구간에 들어선 것일 수 있거든요.

 

먼저 시간 관리와 에너지 관리가 어떻게 다른지 짚고, 14년 동안 남은 다섯 가지 습관을 소개할게요. 그다음이 이 글의 본체입니다. 제가 실제로 어떻게 기록했고, 그 기록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그래서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꿨는지 숫자와 함께 그대로 펼쳐놓겠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매일 일하며 직접 확인한 방식들이에요.

시간 관리와 에너지 관리는 다릅니다

시간과 에너지는 성질이 다릅니다. 시간은 고정되어 있어서 제가 무엇을 해도 늘어나지 않아요. 반면 에너지는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스스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시간 관리는 '몇 시에 무엇을 할지'를 정하는 일이고,
에너지 관리는 '어떤 상태로 그 일을 할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같은 보고서라도 오전 10시에 쓰는 것과 저녁 7시에 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시간 관리만 하면 이상한 날이 생깁니다. 일정표에는 빈틈이 없어요. 회의 사이 15분까지 알뜰하게 채웠고, 미룬 일도 없죠. 그런데 하루가 끝나면 손에 남은 게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일은 다들 퇴근한 저녁에야 시작했거든요.

 

일정을 안 지킨 것도 아니니 실패라고 부르기도 애매한데, 이상하게 개운하지가 않아요. 그런 날이 몇 년치 쌓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관리하던 건 시간이었고, 정작 바닥나고 있던 건 에너지였다는 걸요.

 

시간 관리로는 답이 안 나오는 구간이 옵니다

이 차이는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분명해집니다. 저는 단축근로를 하면서 이걸 몸으로 느꼈어요. 근무 시간이 반으로 줄자, 시간 관리로는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남은 시간을 아무리 잘게 쪼개도 총량 자체가 부족했으니까요. 그때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먼저 정하는 것.

 

그리고 이건 특수한 상황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차가 쌓이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일이 벌어져요. 실무 성과가 최고점에 이를 즈음 관리 역할이 함께 얹히고, 회사 밖에서는 육아나 부모 돌봄처럼 가정에서 필요한 에너지도 늘어납니다.

 

몸은 하나고 시간도 한정적인데, 나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는 구간. 야근으로 메우던 예전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구간. 이 시기에 필요한 건 더 촘촘한 일정표가 아니라, 에너지를 어디에 몰아줄지 정하는 기준입니다.

 

그럼 에너지는 어떻게 관리할까요? 저는 오랫동안 에너지는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에너지는 체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일터에서의 습관으로 관리되더라고요.

14년 동안 이것저것 해보고 남은 5가지 습관

정말 많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다섯 개예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루의 흐름을 따라 시작, 멈춤, 정리, 회복, 맺음입니다.

 

1️⃣ 시작: 메일함보다 노트를 먼저 엽니다

저는 회사에 15분 일찍 도착해서 10분은 로그인과 환경 셋팅에, 나머지 5분은 업무노트를 펼치는 데 씁니다. 예전엔 앉자마자 메일함부터 열었는데, 그러면 하루가 남의 요청으로 시작되더라고요. 이 5분에 제가 진짜 하는 일은 오늘 무엇을 안 할지 정하는 겁니다. 핵심 업무를 서너 개로 추리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밀려나요. 다 중요하다는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거든요.

 

2️⃣ 멈춤: 25분은 내 일만 합니다

아침에 열심히 계획을 세워도 메신저와 갑작스러운 회의로 업무 흐름이 자주 끊깁니다. 그래서 저는 타이머를 씁니다. 25분은 제가 하기로 한 일만 하고, 5분 동안 메시지와 메일을 몰아서 확인해요. 50분 몰입에 10분 휴식도 괜찮습니다.

 

회의 요청이 들어오면 한 번 되묻기도 해요. "메일로 먼저 답변드려도 될까요?" 서면으로 담기 어려운 내용이 있을 때만 짧게 회의를 하자는 뜻이죠. 그러면 대부분 알겠다는 답이 옵니다. 정말 급한 회의는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3️⃣ 정리: 잊기 위해 적습니다

정해둔 일도, 미뤄둔 일도, 문득 떠오른 생각도 머릿속에만 담아두면 에너지가 계속 새어 나갑니다. 뇌가 "잊으면 안 돼" 하고 계속 붙들고 있거든요. 그런데 노트에 적는 순간 그 부하가 풀려요. 저는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기 위해 적습니다.

 

4️⃣ 회복: 방전되기 전에 채웁니다

사람은 리듬으로 일합니다. 쉬는 걸 낭비로 여기는 순간 오후가 무너져요. 그래서 저는 점심에 무조건 움직입니다. 10분 정도 햇빛을 보며 걷고, 바쁜 날엔 5분이라도, 비 오는 날엔 계단이라도 탑니다. 방전되고 나서 채우는 것보다, 방전되기 전에 조금씩 채우는 쪽이 훨씬 낫더라고요.

 

5️⃣ 맺음: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내려놓습니다

끝맺지 못한 일이 가장 큰 백그라운드 부하예요. 퇴근 전에 노트를 훑고 끝낸 일에 완결 표시를 합니다. 미완인 일은 언제 할지만 적어두고요. 잘 안 풀린 날에도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내려놔야 내일 쓸 에너지가 남아 있거든요.

©코코저널

이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하나도 대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5분, 25분, 간단히 끄적이기. 그런데 순서가 중요해요. 습관이 에너지를 아껴주고, 아낀 에너지가 성과로 갑니다. 반대로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성과를 내려고 에너지를 먼저 끌어다 쓴 시기는 늘 번아웃으로 끝났거든요.

 

여기까지 읽고 나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드실 거예요. 다 맞는 말인데, 그걸 어떻게 매일 하느냐고요. 저도 그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습관은 의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눈에 보여야 굴러가요. 그래서 저는 다섯 가지를 '지키자'고 다짐하는 대신, 매일 눈에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에 숫자 두 개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매일 적는 건 세 가지예요. 오전과 오후의 에너지 점수, 그날을 요약하는 한 단어, 그리고 습관 체크. 다 합쳐도 하루 5분이면 충분합니다.

 

숫자 두 개: 오전과 오후의 에너지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 나눠, 각각 에너지를 점수로 적습니다. 여기서 에너지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그 시간에 일에 얼마나 몰입해 에너지를 썼는지를 뜻해요. 5점은 중요한 일에 완전히 몰입해서 건전하게 에너지를 쓴 시간, 1점은 집중이 흐트러졌거나 지쳐서 에너지가 바닥난 시간이에요.

 

에너지 점수, 이렇게 매겨요

점수의 기준은 기분이 아니라, 그 시간에 내 에너지를 중요한 일에 얼마나 썼는지예요. 그래서 바쁘다고 점수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회의로 꽉 찬 날이 오히려 2점일 수 있어요.

©코코저널

💁🏻 헷갈릴 때는 이렇게 골라요

  • 이 시간에 중요한 일을 했나? → 4점. 거의 끊김 없이 몰입했다면 5점
  • 일은 했는데 대부분 받은 일이었나? → 3점
  • 남의 요청에 끌려다녔고, 끝나고 지쳤나? → 2점
  •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나? → 1점

 

한 단어, 그리고 동그라미 네 개

여기에 두 가지를 덧붙여요. 하나는 그날을 요약하는 한 단어입니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때 그 단어 하나만 봐도 그날이 통째로 떠오르게요.

 

다른 하나는 습관 체크예요. 시작 전 계획 세우기, 하루 2번 집중 시간 갖기, 점심에 10분 움직이기, 하루 끝 기록 다시 읽기. 이 네 개를 요일별로 두고, 지킨 것에만 동그라미 칩니다. 네 개를 다 지키라는 게 아니에요. 하루에 두 개만 있어도 성공입니다.

정리에만 체크 칸이 없는 건, 노트를 펼쳐 적는 그 순간이 이미 정리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매일 체크하는 습관은 네 개예요. ©코코저널

실제로 제 한 주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아래는 제가 처음으로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 하고 멈춰 섰던 달의 둘째 주예요.

어느 한 주의 실제 기록: 에너지 트래커와 습관 트래커 ©코코저널

처음엔 그냥 숫자였어요. 3, 2, 5, 4… 적어놓고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첫 2~3주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러니 처음 몇 주 동안 별다른 게 보이지 않더라도 멈추지 마세요. 이 기록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 건, 한 달치를 한 장에 모아 놓고 나서였습니다.

기록이 알려준 세 가지, 그리고 제가 바꾼 것

한 달치를 한 장에 모으면

월말이 되면 저는 한 달 동안 위클리에 적어둔 주평균 에너지 점수를 한 장에 옮겨 적고, 선으로 잇습니다. 흩어져 있던 숫자가 한 장에 모이면, 내가 어느 주에 강했고 어디서 새고 있었는지가 눈에 보여요.

📈 그래프는 이렇게 읽어요

 

① 점수 구간 (주 평균)

  • 4.0 이상: 잘 가고 있어요. 그 주에 무엇이 달랐는지 한 줄 적어두세요. 다시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돼요.
  • 3.0~3.9: 버티는 중이에요. 일은 굴러가지만 받은 일이 많아요. 다음 주 오전 블록 하나를 내 일에 먼저 잡아두세요.
  • 2.1~2.9: 새고 있어요. 그 주의 회의 수를 세어보세요.
  • 2.0 이하가 반복된다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예요.

② 선의 모양

  • 꺾인 주가 있다면: 그 주의 기록을 다시 펴보세요. 마감, 회의, 출장처럼 원인이 보여요. 같은 원인이 반복되면 그게 내 에너지를 가장 많이 빼앗는 일이에요.
  • 매주 5에 가깝게 붙어 있다면: 오히려 무리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어요. 4와 5 사이를 오가며 가끔 낮은 주가 섞이는 게 건강한 리듬이에요.

그리고 한 달 동안 가장 잘했던 일과 가장 아쉬웠던 일을 한 줄씩만 적습니다. 다들 회고를 제일 귀찮아하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회고를 건너뛰면 다음 달이 이번 달과 똑같아지더라고요.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두 줄이면 충분해요.

한 달을 톺아보며 남긴 기록: 먼슬리 리뷰 ©코코저널

이렇게 모은 기록에서, 저는 세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발견 1. 기록이 텅 비어 있던 주가, 제일 바빴던 주였습니다

먼저 눈에 걸린 건 2주차와 4주차였어요. 에너지 점수가 가장 낮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건, 제 기억 속에서 그 주가 '제일 열심히 일한 주'였다는 겁니다.

 

노트를 다시 펴보니 더 당황스러웠어요. 그 주는 페이지가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날짜만 덩그러니 적혀 있고 내용이 없었어요. 한가해서 안 적은 줄 알았는데, 회의 수를 세어보니 5일 동안 17개나 있었더라고요. 무척 바빴는데, 남긴 게 없는 주였던 거죠.

 

그때 저는 새로운 규칙을 하나 만들었어요. 하루에 회의가 세 개를 넘어가면, 그날은 중요한 판단이 필요한 업무를 자제하는 것으로요. 이미 그날의 판단력은 회의에서 다 쓰였다는 걸 숫자로 알게 됐거든요. 대신 그런 날엔 밀린 자료 정리나 이메일 회신처럼 에너지가 적게 드는 일을 배치합니다.

 

발견 2. 일의 순서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점수가 아니라 기록된 '시각'에서 나왔어요. 2주차와 4주차의 기록을 자세히 보니, 전부 오후에 몰려 있더라고요. 심지어 오후 늦게까지 받은 업무를 처리하고, 제 업무는 여섯 시가 넘어서야 겨우 시작했다는 걸 발견했어요. 일의 순서가 잘못되어서 에너지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회사 캘린더는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메일함은 제가 무슨 요청을 받았는지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제가 어떤 상태로 일했는지는 어디에도 남지 않아요. 에너지 패턴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업무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힘들어요.

 

그래서 에너지를 사수하기 위해 일의 순서를 바꿨습니다.

  • 중요한 보고와 기획은 최대한 오전으로 당겨요.
  • 오전 첫 두 시간은 캘린더에 미리 블록을 잡고, 메신저는 방해 금지 모드로 둬요.
  • 퇴근 전 늦은 오후에는 판단이 필요 없는 소소한 일만 남겨요.

이걸 습관으로 만들고 나니, 같은 일을 같은 시간만큼 해도 결과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발견 3. 저는 오전에 판단이 섭니다. 그리고 수요일이 복병이에요

세 번째는 석 달치를 모으고 나서야 보였습니다. 석 달을 이어보니 제 오전 평균은 3.7, 오후 평균은 3.0이었어요. 저는 스스로를 '오후형'이라 생각하며 14년을 일했는데, 숫자는 정반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발견 2에서 중요한 일을 오전으로 당긴 게, 알고 보니 제 몸에도 맞는 선택이었던 거죠.

 

요일에서도 저만의 패턴이 드러났어요. 저는 화요일에 에너지가 가장 넘치고, 수요일에 가장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주의 리듬도 여기에 맞췄어요.

🗓️ 에너지에 맞춘 한 주의 리듬

  • 월요일 오전: 회사와 팀의 주요 사항을 흡수하고, 이번 주 계획을 다듬어요.
  • 월요일 오후~화요일: 중요한 보고와 제 업무에 집중해요.
  • 수요일: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으로 비워둬요.
  • 금요일 퇴근 전: 다음 주 계획을 미리 세워둬요.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나

이렇게 에너지 흐름을 관리하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언제 방전되고, 언제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미리 아는 것만으로 감정 기복이 줄었거든요. 동료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프로페셔널함으로 비쳤고요. 에너지를 늘 비슷하게 유지하다 보니 실수도 줄었습니다.

한 달을 여는 기록, 그리고 반년을 내다보기

하루 단위 기록이 손에 익으면 그다음이 있습니다. 한 달을 여는 기록과 반년을 내다보는 기록이에요. 주기를 이렇게 나눈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만 보면 너무 작아서 패턴이 안 보이고, 1년은 너무 커서 와닿지가 않아요. 한 주는 실제로 손이 움직이는 단위, 한 달은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단위, 반년은 흐름이 보이는 최소 단위입니다.

 

월초에 정하는 건 일정이 아니라 딱 두 가지

달이 바뀌면 저는 일정부터 적지 않습니다. 맨 위에 두 가지를 먼저 정해요. 이번 달 에너지를 몰아줄 핵심 업무 하나, 그리고 줄여야 할 소모적 업무 하나.

 

핵심 업무를 하나로 좁히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저도 처음엔 다섯 개씩 적었어요. 그런데 다섯 개를 적어두면 결국 그달에 제일 급한 일에 끌려다니게 되더라고요.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합니다. 하나로 좁혀두면 애매한 일이 들어왔을 때 판단이 빨라져요. 이번 달 그 하나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아닌가.

 

사실 줄일 일을 적는 칸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여기엔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요. '회의 줄이기'가 아니라 'OO팀에서 월 2회 요청하는 자료 정리'처럼요. 그리고 그 옆에 어떻게 줄일지도 한 줄 붙입니다. '월초에 양식 미리 만들어서 한꺼번에 정리'. 줄이겠다는 다짐만 적어두면 한 달 뒤에도 그대로 있더라고요.

✍🏻 월초, 이렇게 적어요

  • 이번 달 핵심 업무 하나: 에너지를 몰아줄 일
  • 줄일 업무 하나: OO팀에서 월 2회 요청하는 자료 정리
  • 어떻게 줄일지: 월초에 양식을 미리 만들어 한꺼번에 정리
  • 실근무일: 영업일 21일 − 휴가 1일 = 20일
한 달을 열며 적은 기록: 먼슬리 플랜 ©코코저널

실근무일을 세어보는 이유

그 옆에는 이번 달 실제 근무일을 적는 칸을 뒀습니다. 영업일 21일에서 휴가 하루를 빼면 20일.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 숫자를 한 번 적어두면 한 달의 밀도가 달라져요.

 

쉴 땐 확실히 쉬고, 일할 땐 집중하자는 뜻입니다. 20일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시작하는 것과, 막연히 '한 달 남았네' 하고 시작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휴가를 미리 적어두면 그 주에 중요한 일을 안 밀어 넣게 돼요. 쉬기로 한 날을 지키는 것도 에너지 관리입니다.

 

평가 시즌에 쓸 말이 없는 건, 실력 문제가 아닙니다

반기 평가나 경력기술서 앞에서 쓸 말이 없는 건 한 게 없어서가 아니에요. 재료를 안 모아둬서 그렇습니다. 분명히 바쁘게 일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지난 반년이 통째로 흐릿한 거죠.

 

그래서 저는 반년을 한 장에 미리 적어둡니다. 6개월치 월별 핵심 업무를 한 줄씩. 반기 목표를 언제 세우는지, 정기 보고가 언제 있는지, 우리 팀 성수기가 몇 월인지. 이걸 적어두면 언제 힘을 써야 하고 언제 아껴도 되는지가 미리 보여요. 바쁜 시즌이 오기 전에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습니다.

반년을 내다보며 적은 기록: 6개월 플랜 ©코코저널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 이 한 장은 앞을 내다보려고 쓰는 건데, 반년이 지나 다시 보면 그대로 경력기술서의 초안이 되어 있어요. 월별로 내가 무엇에 에너지를 몰아줬는지가 한 줄씩 남아 있으니까요.

기록이 결국 만드는 건 '주도권'입니다

지금까지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 같은 8시간인데 결과가 다르다면,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라는 것
  • 그 에너지는 시작·멈춤·정리·회복·맺음이라는 다섯 가지 습관으로 관리된다는 것
  • 그 습관은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
  • 하루의 기록이 한 달과 반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꺼내 쓸 수 있는 자산이 된다는 것

그런데 이 기록이 저에게 결국 만들어준 건 '정리'가 아니었습니다. 주도권이었어요.

 

정리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진짜 달라진 건 제 일의 순서를 제가 정하게 됐다는 거예요. 언제 힘을 쓰고 언제 아낄지, 어떤 일을 먼저 받고 어떤 일은 되물어볼지. 그 판단의 근거가 남의 요청이 아니라 제 기록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쌓이면 선택권이 됩니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일을, 더 오래 하는 것. 저는 사내 공모와 이직으로 직무를 네 번 옮기는 동안, 매번 제가 원하는 때에 직접 손을 들었어요. 기록이 없었다면 그 순간 제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설명하지 못했을 겁니다. 운이 와도 그걸 기회로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AI가 업무에 들어온 지금은 더 그렇습니다. 초안을 AI가 써주면 제가 한 일은 그중 무엇을 택할지 정한 판단뿐인데, 그 판단이야말로 적어두지 않으면 어디에도 남지 않아요. 주도권이 가장 빠르게 새는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일한 건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저를 따라다니던 말은 "꼼꼼하지 못하다"였어요. 꽤 오래 콤플렉스였는데, 어느 순간 그 꼬리표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갑자기 꼼꼼한 사람이 된 게 아니라, 기록이 저 대신 꼼꼼해진 거였어요. 그리고 '빠뜨리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이 사라지니 머릿속이 가벼워졌고, 그만큼 일에 쓸 에너지가 남더라고요.

 

스콧 애덤스는 〈더 시스템〉에서 복잡한 계획을 끝까지 따를 의지를 지닌 사람은 극소수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시스템을 훨씬 잘 따른다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저도 노션, 슬랙, 팀즈를 다 씁니다. 다만 앱을 열고, 어느 페이지에 적었는지 찾는 그 몇 초가 쌓이면 결국 안 적게 되더라고요. 노트는 그 단계가 없습니다. 펼치고 적으면 끝이에요. 지금 제게 남은 방법이 5분, 숫자 두 개, 한 단어, 두 줄뿐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단순했던 게 아니에요. 14년 동안 훨씬 정교한 방법들을 다 거쳐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게 이것들입니다. 남기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데 14년이 걸렸습니다.

 

내일 아침, 딱 한 가지만

그러니 내일 아침, 딱 한 가지만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메일함 대신 노트를 먼저 여는 것. 꼭 특별한 노트가 아니어도 됩니다. 지금 쓰시는 다이어리 맨 뒷장이어도 되고, 이면지 한 장이어도 돼요. 딱 5분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할지를 정하는 5분이요.

 

그렇게 하루를 남의 요청이 아니라 내 순서로 시작하는 겁니다. 거기서부터 오후 3시가 달라지기 시작해요. 오랫동안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관리합니다. 그리고 그 관리는 대단한 의지가 아니라, 내일 아침 노트를 먼저 펴는 아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14년 동안 업무일지를 쓴 사람은 어떤 노트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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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다면 이거라도!

  • 유독 지치는 날이 많다면, 시간보다 에너지를 먼저 살펴보세요.
  • 출근하면 메일함보다 노트를 먼저 열고, '안 할 일'부터 정하세요.
  • 25분은 내 일에 집중하고, 메시지는 5분 동안 몰아서 확인하세요.
  • 매일 오전·오후 에너지를 1~5점으로 적고, 지킨 습관에 동그라미를 치세요.
  • 월말엔 주평균을 선으로 잇고, 2 이하가 반복되면 일하는 방식을 바꾸세요.
  • 회의가 세 개를 넘는 날엔 큰 판단을 미루고, 중요한 일은 오전으로 당기세요.
  • 월초엔 핵심 업무 하나, 줄일 업무 하나만 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