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커뮤니케이션을 직업으로 삼아 3만 시간 이상 일해왔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세 번이나 넘기며, 누군가를 리드하는 시니어가 되었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여전히 버거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습니다.
새로운 AI 플랫폼이 나오는 것이 무서운 시대도 지났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AI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에 다다랐죠. ChatGPT 등장 이후 불과 몇 년 사이에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더 빠르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만들어야 한다고 세상에 요구당하는 중입니다. 그 속도와 양에 압도되면서 가까스로 적응하고, 다시 흔들리는 삶을 반복하고 있어요.
한때는 '숙련'이 안정감을 보장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편한 시점'이 오리라는 기대도 있었죠. 때문에 우리는 보통 성장을 위해서는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더 많은 정보를 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배우고 결과를 만들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거나, 오히려 머릿속만 더 복잡해지는 순간을 마주하곤 합니다.
AI가 휘몰아치는 지금은 '정보 과잉의 시대'입니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다시 AI가 학습하여 또 다른 정보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있는 지금, 역설적이게도 '정보의 누적'은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됩니다.
이 변화 속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나의 배움은 더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워야 하는 것일까?왜 지금 시대에는 '더 배우는 것'보다 '잘 잊는 것'이 더 중요한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더 많이 쌓는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과거의 성공 방식과 업무 루틴이 있습니다. 3만 시간의 업력이 가져다주는 스탠다드의 힘이 존재하죠.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오래된 기준이 시대를 지배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AI가 활성화되면서 도제식 성장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을 오래 따라 배우는 방식보다 여러 도구와 기준을 빠르게 연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지식을 많이 쌓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를 막는 구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지식을 쌓는 것이 곧 성장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인지과학 연구에 따르면 전혀 다른 결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작업기억의 한계: 뇌의 작업기억 용량은 제한적입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자리가 없어요.
간섭 효과(Interference): 기존 정보가 머릿속에 너무 많이 남아있으면 새로운 학습을 방해하게 됩니다.
망각과 창의성: 일부 기억을 의도적으로 억제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에요. '코닥(Kodak)'은 패션회사가 아닙니다. 과거 필름 카메라 시장을 호령하던 기업이었죠.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로 전환하는 시점에 필름 카메라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사양의 길을 걸었습니다. 개인의 인지과학 영역과 기업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우리가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많이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어제의 기준은 빠르게 낡아지고, AI가 등장한 이후 정보의 생성 속도는 인간의 학습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으니까요.
망각은 결함이 아니라 '성장'의 조건이다
저는 태생이 기억력이 좋지 못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이렇게 말하곤 하죠. "그 단어 뭐였지?" 왜 우리는 이렇게 금방 잊어버릴까요? 우리는 기억을 많이 하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배웠고, 정보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을 보면 은연중에 열등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 잊는다는 것에 대해,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