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이를 위하여

이 글은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커리어 패스에 고민이 많은 마케터
  • 이직으로 내게 꼭 맞는 자리를 찾아간 이의 경험담이 궁금한 사람
  • '마케팅을 하고 싶은데 뭘 마케팅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 예비, 현직 마케터

저자 고현숙

(현) 꾸까 CMO

P&G부터 스타트업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관련이 적어 보이는 회사를 다니며 마케터라는 업을 다각도로 분석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지금은 꽃 정기구독 스타트업 꾸까에서 CMO를 맡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과연 당연한 것이 맞는지 질문하고 변화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꾸까에서는 '왜 꽃은 남을 위해서만 사야 하지? 왜 꽃은 특별한 날에만 사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이 꽃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러닝을 브런치에 기록하기를 좋아합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마케터로 일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 때문에 모든 마케터 공고에 지원을 하면서, 내 시작이 과연 맞는 것인지 장기적으로 어떤 그림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몇 개월 뒤 일이 손에 익고 나자 내가 마케터가 된 것은 맞는지, 잘하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등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같은 마케터라고는 하지만 주변 선배들이나 친구들도 다니는 회사에 따라 하는 일이 제각각이어서 커리어 방향성에 대해 조언을 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아티클은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내가 원하는 직무 안에서 내게 맞는 인더스트리와 방향성을 모색한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법률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외국계 대기업 P&G를 거친 후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오는 3번의 이직을 통해 나에게 맞는 방향을 찾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찾아 나갈 예정이다.

지금 이직해야 하나? 이직의 시점 체크리스트

사람들은 보통 힘들거나 결핍을 느낄 때 이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직이 필요한 시점을 본능적으로 캐치하게 되는 경우 외에, 무조건 알아차려야 하는 이직 시점은 '이력서에 새롭게 추가할 것이 없을 때'다.

 

이런 회사생활은 편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커리어 측면에서는 더 이상 성장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신호다. 

이직 시점을 알아보는 체크리스트 

□ 일이 너무 평온하다.

□ 요즘 일이 재미가 없다.

□ 일이 손에 익어 업무 소요 시간이 줄어든 지 꽤 오래되었다.

□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려고 보니 3개월 전(혹은 몇 달 전)과 하는 일에 큰 차이가 없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성장했는가?

이때를 잘 알아차리기 위해, 나는 주기적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 하루 단위로는 다이어리에 그 날 있었던 일, 기억에 남는 일을 복기했고, 분기 단위로는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있는지 아니면 더는 새롭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없어 답답한지 등을 확인했다. 이력서에 업데이트하려는 내용이 3개월 전과 비슷할 때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케터는 이 일을 '왜'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떻게' 잘 해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고민 없이 반복적으로 일을 하면 마케터가 아니라 오퍼레이터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일이 손에 익어 편해진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서 넓게 성장하는지, 아니면 하던 일을 더 깊이 있게 파볼 기회가 있는지 고민했다. 비슷한 깊이로 비슷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고 느꼈을 때 이직을 결심했다.

3번의 이직을 통해 나만의 기준을 세운 과정

경험을 할수록 내게 필요한 '요소'는 추가된다.

첫 취업을 할 때만 해도 내게 기준은 없었다. 마케터라는 직무는 명확했지만 어느 인더스트리에서 시작하고 싶은지 기준이 없었고, 기업의 라이프 사이클 단계*가 커리어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왕 다니는 회사에 네임밸류가 있으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만 있었다.

* 기업이 거치는 4단계 생애주기. 확고한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생존기, 전략적으로 사업이 확장되는 성장기, 조직력이 강해지는 도약기, 성장세가 최고조에 달하는 성숙기의 순서로 나뉜다.

 

최종 목표를 가지고 하나씩 채워나가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명확한 이직의 기준을 세워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경험을 해보며 하나씩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기준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내게 맞지 않는 곳들을 소거해나가자 방향성은 명확해졌다. 내가 원하는 직무라는 기준에 인더스트리, 기업 라이프 사이클이라는 직업 선택의 기준이 추가되며 내게 잘 맞는 걸 점점 더 찾아가게 되었고, 그 안에서 내게 맞는 목표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경험이 쌓일수록 커리어 필터가 추가되었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후보지는 좁혀지고 방향성은 명확해졌다. 출처: 고현숙 / 제작: 퍼블리

나의 이직 기준은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각 회사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정리하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법률 스타트업, P&G, 꾸까라는 3개 회사의 경험담을 통해 이직 기준이 확립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커리어 패스를 경험하며 하나씩 추가된 기준에 따라서 내가 마케터로 일하고 싶은 분야가 명확해졌다. 이를 4분면 표에 표시하자면 아래의 빨간 칸과 같다. 나는 사업을 일궈나가는 생존기에 있는 기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품을 마케팅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다루는 상품과 기업 라이프 사이클이라는 주요 축에 따라서 다양한 회사를 경험하면서 내게 맞는 4분면을 찾을 수 있었다.

출처: 고현숙 / 제작: 퍼블리

1) 1년 차 신입 마케터가 되다 - 법률 스타트업

커리어의 시작은 의뢰인과 변호사를 연결하는 법률 IT 스타트업이었다. 인더스트리에 대한 이해나 기업 라이프 사이클 단계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 있던 법과 마케팅을 접목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곳을 선택했고, 의뢰인을 모집하는 역할을 하면서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떻게 마케팅 타깃을 특정해야 하지?

누구나 살면서 법률 문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우리 서비스의 고객이 될 수 있으면서도, 법률 문제를 겪기 전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우리 고객이 될 수 없었다. 법률 문제를 겪지 않는 고객에게는 '우리 브랜드에서 변호사를 찾으세요!'라는 메시지는 잊히기 쉬운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