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과 실리콘밸리

 

내년이면 아이폰이 출시된 지 10년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엔 스마트폰이 없었다. 지하철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거나 출퇴근 길에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고, 침대에 누워 떨어진 생필품을 주문하는 일은 지금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미래의 일로 여겨지곤 했다.

 

굳이 인류의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생활 방식을 만들어내고 그 생활 방식은 새로운 경제로 이어진다.

 

통상적으로 그런 경제를 선도하는 이들은 전통적인 경제구조를 '무너뜨리며' 등장했다. 말 없는 마차를 세상에 내놓았던 벤츠나 포드가 그러했고, 책상용(데스크탑) 컴퓨터를 선보였던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그러했다.

 

애플의 아이폰이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모바일의 혁명' 역시 그렇다.

 

스마트폰은 '기능이 많은 휴대전화'로 소개되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혁신은 휴대전화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닐 수 있고, 기존의 데스크탑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센서를 통해 대량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초소형 초경량 슈퍼컴퓨터. 아이폰에서 시작된 이 혁명은 사실상 '컴퓨팅의 혁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혁명은
기존의 경제구조를
상당 부분 '무너뜨릴' 지도
모른다.

이 기술을 통한 기성 질서의 '무너뜨림'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단연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만의 남부를 폭넓게 이르는 말이다. 예전부터 칩셋(실리콘으로 만든다)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회사들이 모여있어서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구글, 페이스북, 링크드인과 같이 상대적으로 연혁이 짧은 기업들은 물론, 애플이나 인텔, 시스코와 같은 중견 기술기업들 역시 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 HBO의 유명 TV시리즈 '실리콘밸리' 로고 © HBO

그곳이 왜 최신 기술을 선도하는 지역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서부 개척이 이루어졌다는 역사적인 이유부터 해서 스탠포드나 UC버클리와 같은 교육기관들이 있다는 점이라든지, 애플이나 인텔과 같은 기존의 성공사례가 싹트고 위험에 열려있는 벤처자본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점이나 날씨가 끝내주게 좋고 다인종이 살기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라는 점 등, 그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여러 의견들 가운데 실리콘밸리가 지금과 같은 기술혁신의 요람이 될 수 있었던 근원적인 비결로 가장 그럴싸한 것은 아마 '날씨'가 아닐까 한다.

 

실리콘밸리는 우리나라가 가을의 절정에 1~2주 정도 잠깐 보여주는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는 날씨가 거의 1년 내내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 혹은 자본이 있는 이들이 모여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더웠던 올해의 여름을 떠올려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어찌 되었든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기술 혁신을 통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새로운 스타는 등장할 것이며, 가장 많은 그리고 양질의 스타 지망생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실리콘 밸리라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실험들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자본이 향하는 투자처에 대해, 실리콘밸리에서 이야기되는 화두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빅 보이스, 테크크런치

 

이런 실리콘밸리의 담론을 주도하는 데에 있어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이 업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모두를 갖춤은 물론, 다양한 정보원을 통해 빠르고 깊이 있는 분석을 제깍제깍 내놓는 이들의 역할이 아주 지대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런 이들의 영향력은 비단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글로벌 테크업계 전반에 미치는데, 그중 대표적인 이가 바로 테크크런치(TechCrunch)다. 비슷한 권위를 가진 곳은 리코드(Recode), 더버지(The Verge), 매셔블(Mashable) 등이 있겠다.

마이클 애링턴 © 테크크런치

테크크런치는 마이클 애링턴이라는 사람이 시작했다. 마이클 애링턴은 본디 스탠포드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였다. 실리콘밸리 지역 기업들의 법률자문을 해주던 그였는데, 그 스스로가 테크업계의 열렬한 '덕후'였나 보다.

 

바깥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그는 문득 직접 이 업계에 뛰어들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뭔가 창업을 시도하기도 하는 와중에(그 사업은 결국 잘 안되긴 했다) 자신의 시각을 담아 이바닥 업계의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2005년 시작된 그 블로그의 이름이 바로 '테크크런치'였다.

 

허핑턴포스트의 사례도 그렇고, 미국은 블로그에서 시작하여 미디어로 발전하는 사례가 많다. 점차적으로 인기를 얻은 테크크런치 역시 글의 깊이를 더하고 필진을 확충하면서 어지간한 정론지 못지않은 권위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힘이 강해진 만큼, 마이클 애링턴은 이 미디어 파워를 중심으로 한 유관사업으로도 확장을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테크기업들의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인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그리고 초기기업 대상 벤처캐피털인 크런치펀드(CrunchFund)다.

 

테크크런치는 어느덧 이쪽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리고 관련 업무를 하는 이들이라면 거의 매일 들어가게 되는 그런 미디어가 되었다. 단순히 방문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분석의 속도와 깊이는 테크크런치에게 유의미한 권위를 주었고, 업계의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디어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던 테크크런치는, 2010년 미국 온라인 콘텐츠 업계의 거물 AOL에게 인수되었다.
* 또 여담이지만 AOL은 작년 초 미국의 제1이통사인 버라이즌에 44억 불에 인수되었다. 그래서 테크크런치도 버라이즌이 만드는 거대 미디어 제국 산하로 편입되었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버라이즌도 SKT 못지않게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욕심이 상당해서, 최근 들어 공격적인 행보를 계속 보이고 있다. 버라이즌 산하의 미디어 서비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올 7월 인수된 야후!라고 할 수 있겠다. - 김홍익 주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그리고 '무너뜨림'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꿀 꿈을 꾸는 이들이 모여있는 곳 실리콘 밸리, 그리고 그 동네의 여론을 만들어가는 빅 보이스 테크크런치. 테크크런치가 매년 주최하는 컨퍼런스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는 그 에너지가 가장 응축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인가'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사실 글로벌 IT/테크업계엔 디스럽트 보다 역사와 규모에서 앞서는 다양한 컨퍼런스들이 여럿 있다.

 

전통의 IT회사들이 주축을 이루는 CES(매년 1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다), 이통사들이 중심이 되어 열리는 MWC(2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다), 가전 회사들이 목소리를 내는 IFA(9월, 베를린)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기성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다, 거시적인 이야기에 주로 치우친다는 한계가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컨퍼런스 중에서는 페이스북의 f8, 애플의 WWDC, 구글의 I/O와 같은 행사들이 있겠다. 세계 IT를 선도하는 회사들이 각자의 최신 제품/서비스를 뽐내는 곳들이다 보니 매우 구체적이고 업계에 미치는 임팩트 역시 대단하지만, 특정 업체 중심으로만 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한계 역시 있겠다.

 

디스럽트는 이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하는 행사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보다는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을 수 있는 동시에 특정 업체의 입장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실리콘밸리의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굉장히 많은 사례들이 단기간 동안에 쏟아지기 때문에 미리 충분한 사전 학습이 없다면 소화하기 쉽지만은 않은 행사이기도 하다.

디스럽트 전경 © 테크크런치

보다 구체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여러 '무너뜨림'의 움직임들을 엿볼 수 있는 수준 높은 패널 토의가 진행(세션 아젠다 보기)되고, 기성 경제에 도전장을 내민 야심만만한 스타트업들이 무대에 오르는 곳(스타트업 배틀필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션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바깥에서는 수 백 개의 업체들이 부스를 꾸려(스타트업 앨리) 저마다의 욕망을 2박 3일의 행사 동안 마음껏 선보이게 된다.

 

사실, 이것마저도 스타트업과 실리콘밸리스럽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행사가 아주 잘 구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참가자들의 동선이나 편의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정해진 일정을 해치우려는 듯한 다소간의 산만함이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비싼 참가비(한화로 약 300만 원, 조기에 예약할 경우 200만 원으로 할인)를 고려하면 더욱 아쉬움이 있다. 아무래도 미디어회사 테크크런치로서는 디스럽트라고 하는 오프라인 행사를 수익사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그런가 싶다.

 

하지만 다른 행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날 것의 욕망'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디스럽트의 최고의 장점이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것은 증명되지 않은 확률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일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며, 그들이 모여있으면 더더욱 왁자지껄하고 흥분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기술을 바탕으로 기성 세력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이들. 그런 이들을 생각해보면 이 컨퍼런스의 이름이 'Disrupt'인 것이 이해된다.


 

 

이 리포트를 읽는 방법

 

9월 12일부터 2박 3일 동안 숨 가쁘게 지나갔던 디스럽트 행사에서 이야기되었던 것들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디스럽트는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가 없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더욱 정신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미리 양해를 구하건대,
이 리포트는 읽기에
그리 친절하지 않을 수 있다.

뭇 업계가 그렇겠지만 테크업계는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회사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주기가 짧다. 특히 실리콘밸리와 디스럽트는 그 정도가 가장 심한 곳이다. 그래서 디스럽트에서 이야기되었던 서비스나 회사, 인물을 그냥 그대로 옮기기만 하고 그친다면, 이 업계에 몸을 담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쉬이 소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리포트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에서는 올해의 디스럽트에서 나온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에 집중한다. 컨퍼런스와 스타트업 배틀필드, 그리고 스타트업 앨리의 내용을 각각 간략히 정리할 것이다.

 

리포트 후반은 올해의 디스럽트에서 얘기되었던 것들이 거시적으로 보아 어떤 카테고리로 묶이는지, 그리고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보다 상세히 풀어내게 된다.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 즉 실제 디스럽트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혹은 어떤 업체들이 주목할만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경우에는 리포트의 전반부가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디스럽트에 참가한 개별 업체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거나, 보다 거시적인 흐름에 대한 화두를 얻고자 하는 경우에는 리포트의 후반부에서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