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West !

* 일러두기
- '이바닥'은 '이 바닥'으로 띄어 쓰는 것이 맞지만, 저자 김홍익 님이 운영하는 '뤽의 이바닥늬우스'에서 일컫는 e바닥(IT업계)을 지칭하므로, 그 표기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 본 프로젝트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유명사들(가령 기업, 행사, 사람 이름 등)은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표기를 따르되, 처음 등장하는 외래어의 경우 한글로 독음하여 표기했습니다.- PUBLY


스타트업 세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IT/테크업계엔 다양한 컨퍼런스들이 있다. 그 수가 많은 만큼 개성들도 제각기 다르다. 전통적으로 널리 알려진 컨퍼런스라고 하면 매년 1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CES, 2월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에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도 있다.

 

규모에서나 미디어의 주목도에서나 이들의 존재감은 상당한데, 가전제조업체나 이통사처럼 구시대(?)의 권력들이 여전히 주를 이루며 아무래도 너무 거시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들어 점점 더 그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IT 공룡들의 자체 컨퍼런스도 있다. 페이스북의 f8, 애플의 WWDC, 구글의 I/O, 마이크로소프트의 Build, 아마존의 re:Invent와 같은 행사다. (그나마 그 규모를 견줄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의 SDC 정도랄까) 이 업계에 워낙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이들이 주최하는 행사라, 어지간한 외부 컨퍼런스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 곳들이기도 하다.

 

CES나 MWC는 너무 거시적인 내용, 산업 전체의 내용을 다루다 보니 구체성이 떨어지고, WWDC나 f8과 같은 곳은 특정 업체의 내용에 국한되어서 범용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아주 구체적이면서 범용적인 내용을 다루는 곳은 어디 없을까. 그리고 아직 공룡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꿈을 꾸고 있는, '스타트업'들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곳.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행사장 풍경 © 테크크런치

테크크런치 디스럽트가
딱 그런 곳이 아닐까 한다.

이바닥의 스타트업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바로 그곳.

 

이바닥 선수들이 모이는 곳, 샌프란시스코

 

테크크런치는 IT/테크 업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번 쯤은 들어봤을 만한 미디어다. 2005년 마이클 애링턴이 1인 미디어로 만들었다가 성공을 거두어 2010년 AOL(America Online, Inc.)에 인수되었고, 작년 5월 미국 제1의 이통사업자 버라이즌 산하로 들어갔다.

 

실제 그 자신도 미디어 스타트업이었던 까닭에, 테크크런치는 이바닥 업계의 현안에 대해 빠르고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디스럽트는 테크크런치가 주최하는 오프라인 행사인데, 샌프란시스코뿐 아니라 뉴욕, EU, 베이징이나 도쿄와 같은 아시아에서도 매년 열린다. 지역별 행사는 주로 해당 권역의 뜨는 스타트업들이 서로 무대에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무대(스타트업 배틀필드)에 해당한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디스럽트는, 다른 곳에서 열리는 디스럽트와는 조금 다르다.

 

수 없이 많은 스타트업들이 나고 지기를 반복하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곳. 이 곳에서의 디스럽트는 배틀필드뿐 아니라, 컨퍼런스도 진행된다. 그것도 당대 내로라하는 이들이 총출동하는 고퀄리티의 컨퍼런스가 2박 3일간 진행된다.

 

즉, 샌프란시스코의 디스럽트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 컨퍼런스
• 스타트업 배틀필드
• 스타트업 앨리 (부스 전시)

트위터와 스퀘어의 CEO 잭 도시의 2012년 키노트 © 테크크런치

빠르고 정신없는 일정이 될 것 같다. 쉬는 시간도 제대로 없이 빼곡하게 일정들이 들어차 있다. 통상 저런 규모라면 트랙을 서너 개로 나누어 진행할 법도 한데, 그런 것 없이 그냥 몽땅 트랙 하나에 때려 넣은 듯.

 

어찌 보면 과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달리 보면 그만큼 모든 참석자들에게 '누락 없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은 테크크런치의 욕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30개의 세션

 

컨퍼런스는 12일부터 사흘간 주로 오전/ 이른 오후 시간에 진행되는데, 통상의 컨퍼런스나 서밋 행사와는 다르다. 일단, 호흡이 굉장히 짧다.

 

오프닝 혹은 키노트를 포함한 모든 세션이 각 20분으로 구성된다. 그 가쁜 호흡의 세션들이 사흘간 무려 서른 개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이 세션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대담 형식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쏟아지는 통찰들을 놓쳐버릴 수도 있겠다.

세션은 크게 네 가지의 테마로 구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 이 업계를 이끌어가는 공룡의 한 마디

이바닥에서 일가를 이룬 공룡들은 그들 자체로도 충분히 배울만한 상대이기도 하지만, 스타트업들 입장에서는 '이용해야 하는' 플랫폼을 가진 대상이기도 하다. (공룡들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영업하러 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IT 공룡 구글, 페이스북은 물론 최근 AOL과 야후! 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미디어 서비스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버라이즌도 세션에 참여한다. 또한 CRM 솔루션을 통해 B2B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역시 세션에 등장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크게 기대되는 건 올해 디스럽트의 첫 세션인 페이스북 메신저의 수장 데이빗 마커스의 세션. 페이스북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고도화되고 있는 제품인 페이스북 메신저의 플랫폼 전략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담당하는 일(메시징 서비스)이 관련이 있다 보니 약간은 연예인이나 롤모델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는 듯싶다.

페이스북 메신저의 리더, 데이빗 마커스 © CNBC

2. 지금은 '유니콘'이라 불리는 스타트업
이바닥에서는 기업가치가 10억 불(약 1.1조 원)을 초과하는 스타트업들을 보통 '유니콘'이라 부른다. 그만큼 달성하기 힘든 성과라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유니콘'들을 모아 보여주는 별도의 웹페이지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관련 페이지: The Billion Dollar Startup Club)

 

기술과 열정 하나로 일어서서 유니콘이 된 선구자들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바를 공유해주는 것은,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물론 이바닥에 속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수밖에 없다.

 

올해 IPO에 성공한 통신서비스 트윌리오(Twilio), 재작년 아마존에 무려 1조 원에 매각된 라이브 동영상 서비스 트위치(Twitch)를 필두로, 교육 스타트업 유다시티(Udacity), 기업용 인사 솔루션 제네피츠(Zenefits), 배달인프라 서비스 인스타카트(Instacart)가 세션에 참석해서 그들의 노하우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 중 역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에 혁신이라 불리는 슬랙(Slack)일 것이다.


3. 스타트업의 친구들

스타트업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야 함은 물론, 지식이나 제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런 이들의 세션 역시 준비되어 있다.

 

당연히 이바닥 내로라하는 벤처투자자들이 온다. 그레이락 파트너스는 물론, 안드레센 호로비츠의 창립자인 마크 안드레센 역시 연사로 이름을 올렸다.

 

투자자는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역시 주목된다. 며칠 전 미국 정부는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비자 프로그램의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 창업자의 경우 최대 5년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강화) 스타트업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4. 좀 더 큰 꿈을 꾸는 이들

스타트업들은 아무래도 거대 자본이 필요한 R&D에 뛰어들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극강의 기술력을 통해 이런 기술기반의 꿈을 꾸는 이들도 있다. 로보틱스 분야의 페치(Fetch) 로보틱스와 보스턴 다이내믹스, 새로운 탈것을 연구하는 하이퍼루프, 인공지능에 대한 도전을 하는 이들의 세션 역시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슈퍼루키를 꿈꾸는 이들

 

30개의 세션만으로도 디스럽트의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디스럽트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실 각자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올라온 수십 개의 스타트업들이 무대에서 스스로를 뽐내는 세션인 '스타트업 배틀필드' 역시 펼쳐진다. 이번 디스럽트에서 1위에 오른 스타트업은 5만 불의 포상금을 받게 된다.

 

사실 십수 분에 이르는 짧은 시간 동안 스타트업이 가진 꿈의 크기나 실행력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배틀필드에서 상위에 입상한다고 하여 유니콘이 된다거나 하는 보장 역시 없다. 지난 배틀필드 수상자들의 리스트를 보면 성공한 이들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들 역시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실제로 성공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자리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뿜어내느냐가 아닐까

또한, 그들의 발표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보며, '스타트업은 어떻게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가야 하나'에 대한 힌트 역시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미지: 작년 배틀필드 우승자, 아그릴리스트(Agrilyst) © 테크크런치


해적들의 마을, 토르투가로 간다

 

앞서 말했듯, 정신없는 일정이 될 것 같다. 다녀와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아 미리부터 약간 조바심이 나기도 하다. 하지만 반면에 굉장히 두근거리고 흥분되기도 하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것은 증명되지 않은 확률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일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며, 그들이 모여있으면 더더욱 왁자지껄하고 흥분되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서로가 꾸는 꿈을 이야기하고 함께 힘을 모을 동지를 찾아, 알 수 없는 꿈을 꾸는 곳. 한편으로는 낭만적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면, 잭 스패로우가 선원을 모으기 위해 가는 '해적들의 마을'인 토르투가가 나온다. 선술집을 가득 메우는 웃음소리와 욕망들. 9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그걸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적들의 마을 토르투가 &#169; Wikia

+ 덧붙여

아무래도 디스럽트는 기존의 성공사례 및 각 스타트업들의 문제들을 모아놓은, '귀납적인 행사'의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디스럽트만으로 이바닥의 큰 흐름들을 모두 읽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 디스럽트의 내용에 대한 감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으로 이 흐름을 짚어낸 텍스트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런 자료로는 KPCB의 애널리스트 매리 미커의 자료보다 나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 김홍익 주

 

 ++ 참고: 퍼블리에서는 지난 7월, 매리 미커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 시장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해석하고 논의하는 프로젝트 '2016 메리 미커 보고서 도슨트 살롱'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 PUB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