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룬 '덕업일치'

언제부터였을까. IT를 마냥 좋아하는, 이른바 '덕후'였다. 그런 내가 어쩌다 보니 최근 테크 업계에서 일어났던 그 급격한 변화들의 복판에 있을 수 있었다. 돌아보건대 운이 참 좋았다.

 

2009년 삼성전자에 입사할 때에는 2NE1이 롤리팝을, 손담비가 아몰레드 노래를 TV에서 부를 때였다. 우리는 PDA폰과 스마트폰을 구분하지 못했고, 핸드폰 업계의 황제 노키아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는 피쳐폰에서 노키아를 무너뜨렸고, 스마트폰에서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차례로 추월하며 절대적인 패자의 위치에 올랐다.

 

2013년 한국의 모바일 시장은 카카오게임 열풍으로 뜨거웠다. 이듬해에는 카카오와 다음이 세기의 합병을 단행했다.

 

본디 '공짜로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어' 인기를 끌었던 메신저 카카오톡은 어느덧 모바일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수익모델을 걱정하던 스타트업 카카오는 분기 매출이 3,700억 원을 넘는 코스닥 시총 2위의, 정부마저도 인정해주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09년부터는 삼성전자에서 콘텐츠와 플랫폼을 고민하는 미디어솔루션센터에, 2013년부터는 카카오의 전사 전략을 고민하는 전략팀에 있다가 2015년 카카오톡팀으로 옮겨왔다. 'IT덕후'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축복받은 경험을 한 셈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분에 넘치는 행운을 누렸는지, 짧게 설명할 길이 내겐 없다.

 

마냥 호기심 많은 역덕후(역사매니아)

 

언제부터였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난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아이였다.

 

되돌아보면 뭐 저런 게 다 궁금할까 싶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알아내고 자랑하는 일련의 과정을 재미있어했던 것 같다. 그 호기심이 학업으로 이어졌다면 더 좋았으련만. 오히려 학업과는 관계없는 관심사들로 호기심은 옮겨갔다. 적지 않은 책을 읽었고, 그 책에서 소개된 또 다른 책을 읽기를 반복했다.

특히 매료되었던 분야는
역사였다.

처음엔 삼국지나 초한지, 사기처럼 전란기의 역사에 빠져들었다가 (삼국지 게임을 밤새도록 한 것과의 상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냥 셀 수도 없이 많은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들에 심취했다.

 

세상을 정복하려 군사를 일으켰던 수많은 영웅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선 탐험가들, 새로운 생각과 기풍을 만들어 내었던 사상가와 예술가를 동경했다.

동서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 사진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김홍익

역사 속의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크고 작은 이야기를 읽고 보노라니 내게도 어렴풋이 생각이라는 것이 생겼다. 스스로 말하기엔 낯간지럽지만 그것은 '기술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확산되며 세상은 요동쳐왔고 그 파도가 반복되며 진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믿음.

 

그 파도에 올라타고 싶었다. 그러려면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은 소년'은 무엇을 해야 했을까.

 

기술과 진보 그리고 IT

 

내가 IT업계를 선택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그 기술을 이용해 세상의 문제, 특히 우리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도전하며 그 도전에 성공한 슈퍼스타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며 나아가는 세계.

내 눈에는
IT업계가 그렇게 보였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접했던 것 역시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통 크게 486 컴퓨터를 선물해주신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나름 첨단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통신회사를 다니셨던 아버지 덕택에 PC통신과 인터넷도 또래 친구들보다는 조금 일찍 만났고, IT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컴퓨터를 잘 다루지는 못해서 전공을 그쪽으로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이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IT 외의 업계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기술을 기반으로 일반 소비자 시장을 만들고 바꾸어 나가는 회사였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 삼성전자, 그 속에서도 콘텐츠와 플랫폼을 고민하던 미디어솔루션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삼성과 카카오

 

삼성전자의 미디어솔루션센터는 콘텐츠와 플랫폼 그리고 생태계를 고민하는 조직이었다. bada나 Tizen과 같은 모바일 OS, 그리고 삼성앱스와 같은 앱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고민했다.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플랫폼 구조를 논의하고 개발자들을 불러오기 위해 컨퍼런스를 열었다.

 

특히 Tizen 프로젝트를 하며 인텔이라는 다른 글로벌 대기업, 리눅스 재단이라는 비영리 오픈소스 단체와 협업할 수 있음은 큰 복이었다. 삼성은 그 시기 크게 진화하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 노키아 타도를 외치며 연아의 햅틱을 판매하던 회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글로벌 1위 스마트폰 업체가 되었다.

 

그러던 중에 업계의 중심축이 옮겨가는 느낌이 들었다.

온 국민의
생활을 바꾸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2013년 카카오의 전략팀에 합류했다. 급성장하는 모바일 업계, 그중에서도 카카오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다. 카카오는 모바일에서의 플랫폼 사업을 개척해가는 곳이었다. 애니팡으로 대표되는 카카오게임의 잭팟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와 연계되며 카카오톡은 온 국민의 생활을 바꾸어나가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합병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과 사내 합병 행사의 사회를 보는 것과의 상관관계 역시 아직 모르겠다. © 김홍익

회사의 굵직한 의사결정에 함께 할 수 있음은 특히 행운이었다. 대한민국 IT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딜에 속하는 카카오-다음 합병 프로젝트를 함께함은 물론, 굵직한 투자/제휴 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모바일이 불러온 기분 좋은 격랑을 경험했다.

 

그 격랑 중에서도 가장 거센 곳에 가보고 싶어서 작년부터는 카카오톡의 여러 플랫폼 실험을 고민하는 곳에 몸을 담고 있다.

 

지적 오지랖, 'IT 덕질'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공부하는 일을 즐긴다. 그래서 시장 돌아가는 동향을 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재미있다. 거의 매일 IT업계의 뉴스를 확인하고 굵직한 뉴스를 정리하곤 한다. 경쟁 업계의 뉴스는 물론 이 업계의 거시적인 동향을 살피며 이런저런 생각과 코멘트를 더해보는 것도, 즐기면서 하는 편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으로는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생각의 조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왔다. 그리고 사내에 IT 트렌드를 공유하는 게시판에는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틈틈이 올려왔는데, 이것도 어느덧 3년 반이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련의 활동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 기꺼이(?) 이를 공유하겠노라 생각해서 재작년부터는 조금 더 축약된 형태로 카카오톡을 통해 IT 뉴스를 전달하는 '뤽의 이바닥늬우스'(카카오톡 옐로아이디 @이바닥늬우스)를 홀로 운영해오고 있다.

세상은 넓고 덕후는 많다

 

역사에서 그러했듯, 기술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간다 믿는다. 그런 움직임이 더욱 도드라지는 곳이 IT 업계라고 역시 믿는다. 그런 곳을 쫓아다니며 '덕질'을 하는 것이 그런 움직임 안에 속하는 일이라 믿는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실리콘밸리에서 매년 열리는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는 그런 덕후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이 선보이기도 하고, 그런 기술들을 이용하여 기존 산업을 뒤흔들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공개되는 한편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이들이 당신들의 노하우를 거리낌 없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물론 그런 덕후들을 지원해주는 투자자들, 그런 덕후들을 궁금해하는 저널리스트 역시 모여든다.

행사를 여는
테크크런치야말로
아주 중증 덕후라
할 수 있다

무언가 재미나고 신나는 일이, 그리고 앞으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으로 꽃필 수 있는 일이 잉태되고 깨어나는 공간 중 하나가 테크크런치 디스럽트가 아닐까. IT업계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사랑하는 한 명으로서 이런 공간에 들어가 부대끼며 소통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곳에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기꺼이 소개해볼 참이다. 조선통신사 혹은 신사유람단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