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저의 또 다른 직업은 디자이너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웹, 앱, 온라인 프로모션 디자인을 해왔습니다. 내 일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평범한 디자이너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평범하지 않습니다.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병에 걸렸으니까요.
디자이너는 동료 디자이너뿐 아니라 클라이언트, 개발자, 기획자 등 여러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리더급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너무나 중요한 능력이죠. 어려서부터 꿈꿔 온 제 미래의 모습은 일 잘하는 디자이너였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는 디자이너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큰 병원도 가보고, 한의원도 가보고, 보컬리스트를 위한 발성 학원과 아나운서를 위한 스피치 학원도 가봤습니다. 목에 좋다는 음식들도 이것저것 먹어보고 정말 안 해본 것이 없었지만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5년 차로 넘어가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하는 시점이 됐을 때, 핸디캡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목소리는 더 안 좋아져서 아예 소리 자체를 낼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가족들과도 대화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방에 가뒀습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일을 쉬면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 내가 지금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원래부터 잘해 온 내 강점은 무엇인가?
- 나는 정말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
진지하게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내 일과 상황에 대해 너무나 막연하고 모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나의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