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일의 윤리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3월에 발간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 저자 제현주는 맥킨지(Mckinsey)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일했고, 현재는 벤처캐피털 옐로우독(YellowDog) 대표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전자책 출판 협동조합인 롤링다이스(Rolling Dice)를 창립해 새로운 일의 방식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냥 베짱이도 아니고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베짱이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성공한 베짱이가 되기 위한 전투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구경할 수 있다. 좀 부끄럽지만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 사회의 축소판, 그것도 매우 농축되고 일부는 과장되기까지 한 축소판이다.

 

거기에는 정해진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있고 눈에 드러나는 재능의 차이가 있다. 그 와중에 출연자들은 경쟁자와 협력하여 팀워크를 보여야 한다. 뻔히 경쟁 상대인 줄 아는 상황에서도 협력해 '함께' 좋은 무대를 펼쳐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무대를 펼쳤다고 해도 자신이 '더' 돋보이지 못한다면 기회는 남의 차지다.

 

와중에 심사위원들은 걸핏하면 "얼마나 무대를 '즐기는지' 보겠다"고 말한다. 베짱이로 뽑힐 수 있는 자릿수는 정해져 있으며, 참가자가 뭘 아무리 잘한대도 그 숫자를 바꿀 수는 없다. 무대가 끝난 후에 승리한 사람은 패배한 사람을 향해 '미안함'의 눈물을 흘려야 하고 패배한 사람은 '내 몫까지' 잘해달라며 축복을 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 경쟁의 압박 아래 극한까지 끌어올린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있다. 타고난 재능이 압박과 자극을 만나 반짝 불타오르는 무대를 목격하는 행운을 나는 즐긴다. 바우만(Zygmunt Bauman)의 말에 따르면 내 안에 주입된 이 시대의 소비주의적 욕망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