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 실행력과 성실함으로 VC를 설득하다

Editor's Comment 
 

본 콘텐츠는 벤처캐피탈 DSC인베스트먼트(DSC Investment) 윤건수 대표와 퍼블리(PUBLY) 박소령 대표의 대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윤건수 대표
- 전 한국기술투자(현 SBI인베스트먼트) 벤처투자본부장

- 전 LB인베스트먼트 기업투자본부장

- 현 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DSC인베스트먼트 대표 투자 기업
- ABL바이오, 신라젠, 마켓컬리, 브랜디, 뤼이드, 팬텀 AI, 하이즈항공, 카카오, 만나CEA, 퓨리오사AI 등 다수 기업

박소령(이하 생략): 2019년 12월 13일, 배달의민족이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된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고 들었어요.

윤건수(이하 생략): 그다음 날이 주말이었을 거예요. 배달의민족이 4조 8000억 원에 매각된다는 기사를 보고 주말 내내 너무 힘들었습니다. (웃음) 상상 이상의 기업가치라 정말 충격이었어요. 배달의민족에 투자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참 후회되는 일 중 하나입니다.

 

배달의민족에 투자할 기회가 3번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의 사정과 판단이 있었을 텐데, 어떤 교훈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IR(Investor Relation) 서류나 회사 자료만 보지 말고 김봉진 대표를 직접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조금 더 성실했다면 배달의민족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당시 투자 여부를 결정한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 이하 VC)* 심사역들이 김봉진 대표를 아주 좋게 평가했거든요. 직접 김봉진 대표를 만나봤더라면 초기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제가 게을렀죠.

 

2010~2011년, 여러 차례 배달의민족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당시 VC 업계에서 굉장한 딜(deal)은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음식을 배달하는 서비스가 과연 될까? 다양한 음식점을 어떻게 서비스로 묶을 수 있을까? 시장은 클까?' 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검토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 후 기업가치 7000억 원으로 투자를 유치하던 때, 또 한 번 투자 기회가 찾아왔고요. 

 

그때는 개인적으로 김봉진 대표를 몇 번 만난 상황이었고, 그의 인성과 경영 스타일에 호감이 많을 때였어요. 실제로 배달의민족 서비스의 우수성과 시장지배력, 김봉진 대표의 마케팅과 콘텐츠 제작 능력을 칭찬하고 다녔으니까요. 하지만 투자에는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 배달의민족의 콘텐츠 기획력을 보여주는 '도시와 글자' 전시회 ⓒ배달의민족

일단 너무 비쌌어요. 이미 다수의 투자자가 주식매각에 나서기도 했고, 너무 높은 기업가치라 검토할 엄두도 못 냈어요. 일부 VC가 데이터 관리 문제를 우려해 지분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미 배달의민족에 투자했던 알토스벤처스의 한 킴 대표는 지분을 더 샀더라고요. (웃음)

 

이번에도 제가 게을렀죠.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직접 만나 이유를 들어봤다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을 텐데, 그조차 하지 않았던 거예요. 사람이 제일 중요한데 CEO를 만나보지도 않고 자료만으로 평가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운 계기였습니다.

 

올해부터는 내가 투자하지 않은 기업이라도 투자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에요. 계속 모니터링하는 과정이 있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더라고요.

 

다른 VC도 김봉진 대표를 만난 후에 투자를 결정했는데, 김봉진 대표에게 무엇을 보았던 걸까요?

한 킴 대표에게 투자 과정을 물어봤어요. 초기 투자 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기된 이슈는 '시장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파트너들을 설득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해요. 한국 배달 음식 시장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거죠. 설득에만 5개월이 걸렸으니까요.

 

하지만 그 5개월 동안 한 킴 대표는 김봉진 대표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 킴 대표가 어떤 데이터를 요청하면, 김봉진 대표는 직접 자료를 작성해 매달 꾸준히 보냈어요. 주요 지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김봉진 대표가 목표를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실행력과 성실함을 확인한 거죠.*

 

투자 결정까지 시간이 지연되는 게 미안해서, 한 킴 대표가 다른 해외 VC를 소개해준 일도 있어요. 그런데 그 해외 VC는 투자를 결정했는데, 오히려 김봉진 대표가 "내가 회사를 이끌어가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며 투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회사 운영 방향과 경영 철학에 대한 진정성이 한 킴 대표를 굉장히 감동시켰죠.

 

요즘은 무조건 투자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투자자와 방향이 맞지 않아서 장기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부침을 겪는 회사도 있어요. 어렵더라도 본인이 나아갈 방향과 잘 맞는 투자자를 찾아야 합니다. 본인의 방향성도 명확해야 하고요. 한 킴 대표는 김봉진 대표의 그런 점을 높게 봤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