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Curator's Comment

 

<네이키드 애자일(Naked Agile)>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애자일에 대한 책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책 어디에도 스프린트(sprint), 데일리 미팅, 회고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네이키드 애자일>은 경영의 시각에서 애자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애자일은 반드시 조직문화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최근들어 대기업도 앞다투어 애자일 조직으로 변화하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애자일은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애자일은 단순히 'how-to'가 아니라 철학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철학을 따르는 세대가 바로 밀레니얼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애자일을 일찌감치 접한 뒤 실망했던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지금이 애자일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왜 애자일 조직 경영으로 변모해야 하는지 홀라크러시(Holacracy),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스포티파이(Spotify), 슈퍼셀(Supercell), 넷플릭스(Netflix) 등의 사례를 통해 배워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단순한 프로세스 또는 방법론으로 애자일을 바라보았다면 이제 그 시각을 넓혀보시기를 권합니다.

디지털 전환: 새 술을 담는 부대, '애자일'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11월에 발간된 <네이키드 애자일(Naked Agile)>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최근 급변하는 경영환경 덕분에 뷰카(V.U.C.A)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앞 글자를 조합해 탄생한 단어다. 본래 전장 상황을 설명하는 군사용어로 쓰이다가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환경 변화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뷰카시대는 쉽게 말해 '기존 논리 체계로는 더 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늘어나는 세상'을 뜻한다. 

 

뷰카와 함께 현 시대를 규정하는 또 다른 용어가 있다. 바로 뉴 노멀(new normal)이다. 뉴 노멀은 '불확실성' 외에 '저성장'이라는 또 하나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다. 이는 미국의 벤처 투자가 로저 맥나미(Roger McNamee)가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고위험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특성을 제시한 이후,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경제 침체기를 지나며 현 시대의 글로벌 경제 환경을 대변하는 상징적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불확실성과 저성장이 표준이 되는 시대를 맞아 기업이 생존을 위해 꺼내든 대표적 혁신 전략이 바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디지털 전환이란 기업이 최신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기존의 성장 방식에 한계를 느낀 글로벌 기업들은 전통 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차세대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목표를 재수정하고 있다. 맥킨지(McKinsey)글로벌 연구소는 〈디지털 아메리카(Digital America)〉라는 보고서를 통해 '산업별로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디지털 혁신은 한때의 유행(fad)이 아닌 앞으로 모든 산업에서 끊임없이 일어날 현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기존 기업들이 하드웨어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하다가 소프트웨어 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기업들에게 잡아먹히는 현상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물리학, 기계공학 등 하드웨어 역량을 중심으로 사업을 발전시켜 왔던 20세기 유수의 기업들조차 더 이상 과거의 익숙한 사업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과거와 달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불명확해진 환경 아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기계 장치·장비로 구현되던 기능들이 전자 장치·장비와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 투자가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이 재미있는 것은 실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과 비즈니스의 이종 교배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비즈니스 환경의 불확실성을 한층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전략이 다시 불확실성을 강화하는 격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기술 간 융합은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나 범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특히 인공지능(AI), 클라우드(Cloud),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의 기술은 기존 기업들이 지금까지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아도 됐던 새로운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지금까지 같은 자동차 회사인 포드·토요타·폭스바겐 등과 경쟁했지만 이제는 구글·애플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전통 제조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산업인터넷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프레딕스(Predix)'를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에서 구동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Predix Platform ⓒGE Digital

모호해진 산업 간 경계 속에서 디지털 금융의 신(新)비즈니스 모델 혁신, 자동차 산업의 서비스 분야로의 변신, 전자·제조업 영역의 무한 확장, 기존 방식을 혁신한 유통업의 출현 등은 전통 사업자가 영위해 온 버티컬(vertical) 산업*을 뛰어넘는 혁신기업의 등장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기술기업 사이에서 동종(同種)산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들은 각 산업 분야에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적용시켜 혁신적인 고객가치를 제공하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적용해 새로운 시장과 고객니즈를 창출하며 기존 사업자를 위협하고 있다. 50년 전통의 월마트와 세계적 호텔 체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시가총액에서 아마존과 에어비앤비에 추월당하는 사례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기업은 기술과 비즈니스의 융합 전략으로 디지털 전환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분명 녹록치 않은 실험이다.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그 속성상 '매우 급진적(radical)이고 강도 높은(intense) 조직의 총체적(holistic)이고 신속한(fast)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애자일이 주목받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해 새 술을 담는 새 부대가 '애자일'인 것이다.

소비자 주도의 전환: 소비자가 변했다

디지털 전환은 시장의 메커니즘을 변화시켰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이 실시간으로 개인화되어 제공되면서 기존의 구매채널과 구매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고객들은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을 넘나들며 제품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비교해 낮은 가격에 품질은 좋은 가성비 높은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는 고객의 힘을 크게 증가시켰다. 즉 소비자 주도의 전환(consumer led transformation)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처럼 기업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팔아서는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 고객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우리 기업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고민하며 어떤 경험을 하고자 하는지 파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에 적극적인 기업들은 고객의 소비패턴에 맞춰 옴니채널(omni-channel)을 구축하고 고객이 원할 때 즉각적으로 그들의 위치나 성향 등을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디맨드(on-demand) 방식을 도입하는 등 고객의 생각과 마음을 발 빠르게 읽기 위한 총체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불러온 고객과 기업 간의 역학관계 변화는 애자일의 기본 속성과 맞닿아 있다. 애자일 역시 기본적으로 고객과의 접점에서 그들의 니즈를 발 빠르게 캐치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 속성이다. 애자일은 현장 중심적인 조직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시장 및 고객의 접점에 위치한 직원이나 팀에 의사결정 권한의 상당 부분을 위임함으로써 시장 변화에 기업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의 회사 생활을 한번 생각해보자. 많은 회사가 하나같이 고객 중심을 외치며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지배적으로 이끌고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영진이다. 경영진이 최종적으로 오케이를 해야 프로젝트는 완료되고 프로젝트에서 나온 결과물은 비로소 살아남는다.  

 

아무리 열심히 기민하게 결과물을 내놓아도 흔히 말하는 '높은 분'들의 의중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결과물은 '킬(kill)' 당할 확률이 높다. 실제 지금도 많은 조직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심지어 10~20대를 타깃으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최종 평가를 50대 이상의 임원들이 둘러앉아서 하는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소비자 주도의 전환이 일어난 지금 애자일이 절실해지는 이유다.

문화의 전환: 밀레니얼 세대와 일하기

디지털화는 일에 대한 관념과 문화 역시 바꾸어 놓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대표적 변화 중 하나가 '평평화(flat)' 경향이다.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로 인해 정보와 자본의 교류 및 세계화의 주체가 국가나 기업을 넘어 개인이 되고 있다. 구성원의 사회문화적 개인화 성향도 강해져 조직의 젊은 구성원들은 용기와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호모 스마트쿠스(Homo Smartcus)가 탄생한 것이다.

 

평평화로 인해 회사의 정보 통제도 쉽지 않아졌다. 최근 대한항공 오너 일가에 대한 직원들의 폭로전이 대표적인 예다. 이제 구성원은 마음만 먹으면 정보가 사실인지, 명령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수단과 역량을 가졌다.  

 

이처럼 디지털 평평화에 따라 나타난 전통 경영 방식에 익숙한 집단과 뚜렷하게 비교되는 세대를 설명하기 위해 '밀레니얼 세대'라는 개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부터 1996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도 이 시대를 일컬어 '밀레니얼 모멘트(millennial moment)'라고 표현했다. 밀레니얼 모멘트는 금융위기 이후 밀레니얼 세대가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세대로 도래한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경제 영역에서 뉴 노멀이 도래한 시기와 겹친다. UN 인구국의 분석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다. 노동인구 역시 마찬가지다. 2020년에 세계 노동인구의 약 35%를 밀레니얼 세대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의창

파이낸셜타임스는 '밀레니얼 모멘트' 특집 심층보도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해는 이제 더 이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의 주요 고객으로서 뿐만 아니라 회사의 생산성을 좌지우지할 가장 중요한 조직의 허리층으로 자리매김한 밀레니얼 세대의 생각과 문화를 읽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 됐다.

 

이미 다양한 통계들이 현재 사회와 기업에서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014년에 실시한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19%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전후 세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40%, 1965년부터 1980년에 태어난 X세대의 31%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들은 기관에 대한 신뢰 역시 낮다. 키스 니이더마이에(Keith Niedermeier) 와튼 경영대학원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정부 및 대기업에 대해 놀라울 만큼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기존 경영 질서와 밀레니얼 세대 간의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관련 기사: Millennials on Steroids': Is Your Brand Ready for Generation Z? (Whart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2015.9.28)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아직까지도 과거 테일러식 합리주의 모델에 기반한 '당근과 채찍'식 경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체제 아래에서 인간은 인간성이 배제된 하나의 거대한 기계 속 부품과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동료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이기면 얻고 지면 잃는다.

 

밀레니얼 세대는 한때 미국의 정신으로까지 추앙받았던 테일러가 창조한 합리주의 세계와의 이별을 바란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과 그에 따른 평평화를 통해 고립과 경쟁이 아닌 연결과 협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경영 질서와 대립하는 가장 큰 지점은 '개개인성(individuality)'*이다.  

* 사람마다 고유한 개성과 독자성을 가지고 있어 남들과 구별된다고 여기는 생각

 

소셜미디어의 보편화로 이미 직업을 갖기 전부터 자신을 표현하고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에 익숙한 그들은 다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인식과 상호작용함으로써 개개인성을 지키고 발전시킨다. 이런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간의 개개인성을 묵살하는 전통 경영 문화와 질서는 '독'과 같다. 그들에게 직업의 안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애자일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과 잘 맞는다. 애자일이 전통 합리주의 경영의 대척점에 선 인간 중심 철학이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애자일은 절차와 도구보다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경쟁보다 협력을, 획일적이고 무비판적인 복종보다 개개인성을 중시한 주체적 행동을, 경직된 계획보다 유연한 적응을, 채찍을 통한 외적 동기부여보다 목적과 의미를 통한 내적 동기부여를 강조한다.  

 

이런 속성과 철학을 기반으로 애자일은 오랫동안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되고 창발적으로 확산돼 왔다. 애자일은 시대의 중축이 되는 새로운 세대가 갈구하는 일, 사람, 문화에 대한 관점을 포용하면서도 손에 잡힐 정도로 구체화된 방법론으로 자생·발전해 온 시스템이다. 이는 제대로 된 해법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기업에 의미 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