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말: 인사이드 현대카드

[콘텐츠 발행일: 2019.11.27]

 

<인사이드 현대카드>는 아레나 옴므 플러스(Arena Homme+)의 박지호 전 편집장이 기업 '현대카드'를 관찰하고 풀어낸 책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분석한 기존의 기업 서적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작가 허먼 멜빌이 '에식스호의 비극'을 취재한 뒤 탄생시킨 소설 <백경>처럼, 한정된 기간 하나의 시선으로 현대카드를 취재하고 나름의 상념과 분위기를 담아낸 드라마에 가깝다.

 

저자는 현대카드를 관찰하면서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책의 서두에 아래와 같이 밝혔다.

큐레이터의 말: 인사이드 현대카드

[콘텐츠 발행일: 2019.11.27]

 

<인사이드 현대카드>는 아레나 옴므 플러스(Arena Homme+)의 박지호 전 편집장이 기업 '현대카드'를 관찰하고 풀어낸 책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분석한 기존의 기업 서적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작가 허먼 멜빌이 '에식스호의 비극'을 취재한 뒤 탄생시킨 소설 <백경>처럼, 한정된 기간 하나의 시선으로 현대카드를 취재하고 나름의 상념과 분위기를 담아낸 드라마에 가깝다.

 

저자는 현대카드를 관찰하면서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책의 서두에 아래와 같이 밝혔다.

내가 '현대카드'라는 현상에 주목했던 이유가 정태영 사장의 탁월한 취향과 창의성에 탄복했기 때문만은 당연히 아니다. 따져보면 고급한 취향과 폭넓은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꽤 많다. 문제의 핵심은 한 개인 또는 한 집단이 남다른 발상을 하는 능력이 시스템화되어 사회 차원의 감흥과 충격으로 전파될 수 있느냐다.

 

이를테면 애플이 미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에 큰 영감을 준 것처럼 말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어릴 적부터 창의력과 감성, 취향을 억누르는 데 익숙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그 활로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현대카드의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이 그동안 에디터로서 해왔던 사회이슈와 문화이슈 분석에 버금갈 만한 일이라고 기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거의 1만 명에 달하는 조직원을 보유한 조직이 지속적으로, 그것도 시스템적으로 창의성을 보이고 있다면 창의력 부재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가 탈출구를 찾는 데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 둘째, 막강한 자본력과 눈부신 실행력에 더해 차별화된 창의성까지 갖춘 현대카드의 다음 10년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라는 점.

 

지난 10년 동안 분야에 상관없이 어떤 집단이 이 정도로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물을 우리 사회에 선사한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즉, 현대카드를 주제로 다루는 것은 한 사기업을 상찬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찾기로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저자는 현대카드가 그토록 내재화하고 싶었던 가치가 무엇인지, 총체적 브랜딩의 관점에서 현대카드의 한 시기(2013~2015년)를 깊이 있게 담아낸다.

 

현대카드의 마케팅 및 그로스 전략, 업무 프로세스,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과 데이터 중심(data-driven) 시스템을 실현하는 방법 등 기술적인 내용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카드와 정태영 사장의 활동'을 흥미롭게 지켜봤던 독자라면, CEO의 캐릭터와 기업의 취향이 그동안 어떤 결과물로 이어져왔는지 살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구매해서 닳도록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현대카드가 내재화하려는 가치에 집중해 아래와 같이 7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했다.

 

1) 지난 10년 간의 성장을 이끈 현대카드만의 쿨함이란

2) 논리 있는 디자인, 이유 있는 디테일

3) 현대카드가 정의하는 심플리피케이션(simplification)

4) '현대카드는 다르다' 울타리가 주는 자부심

5) '빠르기 때문에' 가능한 과감함과 창발성

6) 디테일의 완성은 수집, 현대카드가 만든 공간의 저력

7) 현대카드의 아이덴티티, 정태영 사장

 

혁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현대카드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간접경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아래와 같은 독자에게 이 글을 추천한다.

  • 기업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는 창업자와 경영진
  • 문화의 내재화를 고민하는 경영진과 실무진
  • 성장 정체를 겪으며 도약을 꿈꾸는 스타트업의 임원과 구성원
  •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의 '목표'와 '지향점'을 세팅해야 하는 기업 실무 담당자

- 큐레이터 임경호 드림

원칙, 현대카드의 근본적인 토대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5년 10월에 발간된 <인사이드 현대카드>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 본문 속 현대카드 직원들의 직함은 책 출간 당시 직함입니다.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 특별 출입증을 드리겠습니다. 수익을 포함한 모든 대외비 자료까지 다 들여다보십시오. 1년 후 세상에 공개될 극비 프로젝트 관련 회의도 참관이 가능합니다. 단, 제게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발동할 수 있는 출판 거부권만 주십시오. 저희를 칭찬하든 비판하든 당신이 느낀 대로 솔직하게 서술하시면 됩니다.

우리의 약점까지 그대로 다 공개할 테니 상찬이든 비판이든 제대로 쓰기만 해달라니, 이 도전적이면서도 쿨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작가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현대카드를 쭉 둘러보다보면 서울의 다른 건물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절묘한 균형감과 안정감이 분명히 감지된다.* 회색과 은색을 주된 톤으로 하는 묵직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사옥 전체를 감싸고 있다. 위쪽 사무공간으로 올라가면 옅은 파란색이 더해져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 관련 기사: 건축과 도시-현대카드 사옥 (서울경제, 2018.1.17)

 

사실 한국에서 이 정도로 모더니즘 건축의 기본원칙, 즉 실용성에 기반해 기능을 정확히 반영하면서도 디자인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건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 건물은 논리적으로 명확하다. 숫자를 중시하는 금융회사라는 정체성을 만방에 과시하듯 책상과 테이블, 파티션의 라인과 간격, 톤까지 완벽하게 맞췄다. 책상에는 동일한 규격의 파우치만 앞쪽에 걸려 있을 뿐 기타 지저분한 소품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각 층마다 양쪽 끝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크기로 만들어져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임원실과 회의실은 전면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환히 드러내고 있다. 고품질 원두커피와 최고급 아이폰 전용 스피커가 놓여 있는 휴게실과 편하게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프라이빗룸 등도 각 층마다 똑같은 위치에 자리한다.

 

나와 함께 현대카드 사옥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일관된 색조 덕에 차분함이 느껴지는 로비에 강력한 포인트를 주는 디자인랩 입구와 줄리언 오피의 디지털 설치작품,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복도에 운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설치된, 직원들이 실제로 이용 가능한 고가의 탁구대 등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줄리언 오피의 작품과 직원들을 위한 탁구대 ⓒ현대카드

하지만 이 공간이 주는 마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채기는 쉽지 않으리라. 나 또한 수십 번 이상 드나들고서야 왜 현대카드 여의도 사옥이 서울의 여타 건축물들과 구분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이 사옥은 튀어 보이기 위해 인테리어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모던한 디테일을 유지할지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이런 기조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뚝심에 놀랄 수밖에 없다.

 

명확한 논리와 모던함, 그리고 쿨함을 겸비한 현대카드의 현재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사옥의 경우, 완벽한 디테일을 갖춘 공간이긴 하지만 실제 업무를 보는 데 있어서는 불편함이 많다는 직원도 있다. 당연하다. 책상에 자료나 책을 마음껏 늘어놓을 수도 없고, 간단한 음식물도 일일이 바코드가 박힌 파우치에 담아서 사무실에 가져간 뒤 그대로 다시 밀봉해 버려야 한다. 카드의 경우, 논리와 컨셉만을 정면에 내세우느라 실질적인 혜택에는 소홀하다는 의견도 있다.

 

천하의 애플도 스티브 잡스가 극단까지 밀어붙였던 사이즈에 대한 원칙을 포기하고 대중의 지지와 시장을 얻기 위해 다양한 크기의 아이폰을 내놓는 요즘, '매출에 집착하느라 많은 장점들을 포기해야 하는 1등이 되고 싶진 않다'라고 당차게 외치는, 시장점유율을 늘리기보다는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거나 아니면 문화적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이 독특한 회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디테일과 완고한 자기중심성을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유지하고 있는 이 회사를 말이다.

 

하지만 난 (40대에 접어든 뒤 점점 약해지는 시력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원래 크기의 아이폰이야말로 기하학의 원칙이 이상적으로 반영된 애플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여기고,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원칙들이야말로 현대카드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환경, 최고의 시스템

현대카드만큼 인력 공급 및 관리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대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현대카드만큼 '공채 우월의식'이 약한 대기업도 찾아보기 힘들다. 2013년에 깜짝 발표된 '연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간단하지만 쉽게 떠올리긴 힘든 대표적인 역발상이다.

* 연어가 어릴 적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회사를 떠난 인재를 다시 불러들여 재입사시키는 제도

 

'회사(현대카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스카우트되었다는 건 어찌되었든 자신만의 강점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 하지만 새롭게 정착한 직장에서 만족하지 못할 직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 예전 업무성과를 평가한 결과를 바탕으로 가감 없이 다시 받아들일 것이다' 등등. 암묵적으로 한번 회사를 나간 직원은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확고한 룰을 갖고 있는 몇몇 대기업들은 상상하기 힘든 역발상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커리어마켓'. 신입사원 또는 중견사원도 자신이 원하는 부서가 있으면 스스로를 마켓에 내놓을 수 있다는, 쉬워 보이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역발상 프로젝트다. 또한 부서장들도 공개적으로 마켓에 구인 광고를 낼 수 있다. 좋은 상품을 고르듯 합리적으로 인재를 뽑는 것이다. 공급과 수요를 시장에서 해결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인력 공급 및 운용에도 적용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간단한 발상이다.

 

하지만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시 퇴근조차 할 수 없는 일반 기업의 현실에 비춰볼 때 당당하게 스스로 원하는 부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침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카드만의 자부심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일 터다.

가고 싶은 부서를 직접 찾는 2015 잡 페어(Job Fair) 현장 ⓒ현대카드

잠시 시계를 앞으로 돌려 2014년 봄, 내가 참관했던 '글로벌 커리어마켓'은 기존 커리어마켓에서 한발 더 나아간 발상이었다. 현대카드·캐피탈의 해외 지사로까지 범위를 넓혀 원하는 직군 및 부서를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1층 로비의 렉처룸에서 HR실이 그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공개하는 글로벌 커리어마켓 1차 설명회가 열렸다.

 

약 50석 정도의 좌석을 갖춘 홀은 이미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뒤쪽에 서서 설명을 들어야 할 정도였다. HR을 담당하는 이석호 팀장은 단상에 서자마자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로 "우리 회사를 떠나고 싶은 직원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라는 농담을 던졌다. 순간 장내가 웃음으로 술렁인다.

 

현대카드만의 열린 인사방침에 대해 '정말 그렇게 눈치 안 보고 부서를 결정하는 게 가능해?'라는 의심 섞인 외부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이 회사를 직접 드나들기 전까지는 약간의 의심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

 

물론 여전히 제3자의 시각에서 관찰한다는 한계 때문에 내부 사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듯 직원들의 솔직한 반응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현대카드라는 회사의 조직이 합리적이고 쿨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솔직히 현대카드가 구글이나 애플처럼 창의적인 인재를 뽑고 성장시키는 회사냐고 묻는다면 아직 '노'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이 그들과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죠. 그리고 우리는 구글이나 애플처럼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에게 맞는 최고의 인재 확보와 성장이 목표입니다.

 

그중에는 긱(geek)스러운 사람도 필요하고, 실행력이 강한 사람도 필요하고, 전략적인 사람, 감각적인 사람 등이 두루두루 필요합니다. 가장 두려운 건 그냥 한국 대기업 같은 조직이 되는 것이고요. (웃음) 방금 보신 글로벌 커리어마켓과 같은 새로운 발상들이 대표적입니다. 어찌되었든 현대카드는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시스템은 분명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HR 이석호 팀장

평가는 엄격하게

우리 회사를 한 단어로 규정하자면 '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직원들을 '크리티컬'하게 생각해주는 문화예요. 그러니까 술 먹고 회식하면서 챙겨주는 게 아니라 근무환경을 최고로 만들어주고, 인사평가도 엄정하게 해서 잘하는 직원은 '칼같이' 많이 주고, 못하면 하나도 안 줍니다. (웃음)

 

교육도 억지로 시키지 않아요. 만약에 당신이 원한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배울 수 있게 해줄게. 교육 필요 없어? 그럼 받지 마. 커리어마켓 만들어줄 테니 능력이 있으면 원하는 대로 부서 옮겨도 돼. 페널티 절대 없으니 안심해도 되고. 이런 식이죠. 대신 냉정해요. 우리 회사 디자인도 차가운 색과 직선 위주잖아요? 회사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본부장들은 아무래도 팀 전체를 신경쓰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공정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면, 지난번에 누군가 진급했으면 크게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한 다음에는 다른 직원을 진급시키고 싶은…. 그런데 얄짤없어요. (웃음) 목적고과가 감사에서 지적되면 그 누구라도 벌금을 내야 해요. 저도 2000만 원 벌금을 문 적이 있어요. 그나마 위안이라면 저보다 500만 원 더 낸 본부장이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요? (웃음)"

황유노 부사장*은 이른바 '보스문화'가 없다는 것은 현대카드만의 큰 장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부서를 지속적으로 옮겨다니고 목적고과도 못 주다보니 보스문화가 생기려 해도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현대카드 특유의 '혼혈주의'가 융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2019년 11월 기준, 현재는 사장이 되었다.

 

서로 상극인 리스크본부와 영업파트가 서로 부서를 옮겨가며 일함으로써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는 것은 아마 한국 대기업에서는 유일하게 현대카드만이 갖고 있을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체성, 업에 대해 꾸준히 정의한다

역시나 회의는 어렵고 딱딱했다. 그나마 잔뜩 애를 써서 '현대캐피탈 아메리카'에 대해 이해한 바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정도다.

 

'현대캐피탈 아메리카는 캡티브(captive)* 금융사다. 현대캐피탈은 주요 국가에 단독 또는 조인트벤처(JV, joint venture) 형태로 금융사를 설립해 진출하고 있다. 최근 해외 부문이 더 커졌을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 계열사 간 내부시장을 뜻하는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권에도 확산되고 있다. 이 내부시장은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기업이나 금융지주사가 그룹 내부에 있는 계열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카드사는 최근 캡티브 마켓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업계다. (출처: 매일경제)

 

'보통의 국내 은행들이 교포를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업무에 머물러 있다면 현대캐피탈은 해당 국가의 고객들을 상대로 현지 금융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자동차를 구매할 때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비율이 80%가 넘고 딜러의 파워가 막강하기 때문에 미국 내 1500명 이상의 딜러사를 대상으로 자동차 금융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회의자리에서 정태영 사장은 매섭기 이를 데 없었다. 교포 출신 미국 현지 CFO는 지난해의 실적과 내년의 전망을 정확히 이해·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추궁당하느라 연신 진땀을 흘려야 했고, 참석자들은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무수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을 몇 가지 꼽자면, 예상과는 달리 당장 거대한 수익을 내야 한다는 요구나 질책은 거의 없었다는 점, 그리고 회사는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과 최고의 인재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끊임없이 강조했다는 점이다. 잠시 휴식시간. 현대캐피탈 아메리카 조좌진 전무의 다음과 같은 차분한 설명이 귓가에 남았다.

내가 안전하게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왜 사장 말을 안 듣는 겁니까?

상황을 5분 전으로 돌려보자면, 단상에는 현대캐피탈 중국법인장이 당당한 목소리로 2013년에 매출 및 수익이 기록적으로 증가했다는 내용을 자랑스레 발표하고 있었다. 그 중간을 정태영 사장이 찢고 들어가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꽤 오랫동안 그를 봐왔지만 이처럼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곧이어 다소 톤다운된, 하지만 여전히 매몰찬 말투로 질책이 이어졌다.

중국만 2003년의 현대카드를 보는 듯해요. 자산 확대에 대한 욕심보다는 사람과 기능에 대한 욕심을 먼저 내야 합니다. 내가 급격하게 성장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금융은 기본적으로 안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미비할 때 급격히 성장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순간 주변엔 쥐죽은듯 정적이 감돌았고 나 또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매출 확대와 수익 증대를 존재의 조건으로 하는 금융사의 CEO가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한 책임자를 문책하는 현장이라니. 아, 누구나 다 "금융은 안전이 우선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여타 은행들의 사례를 볼 때 이처럼 사문화된 정의도 없다 싶었었다.

하드랜딩은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중국도 한국도 소프트랜딩으로 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고통스럽게 오래가는 저성장이에요. 그래도 이건 예측 가능한 거니까 2014년에도 힘차게 나아가면 됩니다.

그는 "우리는 하드워킹 하는 회사"라고 힘주어 말했다. 비록 일부 직원들이 우울해할지언정 우리 스스로에게 프라이드가 있고, 다른 회사보다 분명 더 많은 걸 이루고 있음에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은 그만큼 지향점이 높기 때문이라고, 마치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듯이 그렇게 정의했다.

 

쿨하게 덧붙이기도 했다. "회사가 잘되고 잘 굴러가는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지 말라"고. 위대함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 CEO로서 위기에 대한 인지가 늦은 점에 대한 자기반성에 이어 그날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코멘트가 흘러나왔다.

심플리피케이션(simplification)을 자꾸 이야기하게 됩니다.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죽자고 덤벼듭시다. 덧붙여 자기 업에 대한 정의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유통업인지 서비스업인지, B2B인지 B2C인지. 정의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건 소용없습니다. 자신의 롤을 시기에 맞춰 전환하지 않으면 결국 조직 내에서 자꾸 엉뚱한 일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