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번역가들이 살아가는 법

Curator's Comment
번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이유인 즉슨 인터넷 덕분에 원 콘텐츠를 대조하기가 쉬워졌고, 그에 따라 번역의 완성도를 평가하거나 자발적으로 번역을 시도하는 일이 늘어난 덕분입니다. 자연스레 '번역으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습니다. 이 콘텐츠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해온 두 저자가 그러한 호기심에 응답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 번역을 시작하는 사례, 보수가 책정되는 방식 등 번역과 관계된 일상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일들이 이해하기 쉽게 담겨 있습니다.

번역에 대한 내공을 엿보는 콘텐츠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프리랜서'의 자기관리법을 보여주는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시작일이나 작업 검토일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일하는 구성원도 자기 혼자가 전부이지만, 마감일과 작업의 완성도를 위해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은 '프리랜서'를 전문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혼자 모든 것을 관리하는 전문 번역가들의 삶을 통해 '프리랜서의 자기관리법'에도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감이라는 숙명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8월에 발간된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하루 24시간, 1년 12개월. 인간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균등하다. 하지만 각자가 경험하고 느끼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같은 시간도 구분해서 불렀다. 시계에 맞춰 균일하게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은 크로노스(kronos), '지금 여기서 느끼는 특별한 순간'의 시간은 카이로스(kairos)라고 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느끼는 시간은 대략 크로노스다. 철저히 마감을 중심으로 흐른다. 하던 일이 있어도 급히 번역해야 할 책이 들어오면 그에 맞춰 일정을 조정한다.

 

전문 번역가들이 살아가는 법

Curator's Comment
번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이유인 즉슨 인터넷 덕분에 원 콘텐츠를 대조하기가 쉬워졌고, 그에 따라 번역의 완성도를 평가하거나 자발적으로 번역을 시도하는 일이 늘어난 덕분입니다. 자연스레 '번역으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습니다. 이 콘텐츠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해온 두 저자가 그러한 호기심에 응답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 번역을 시작하는 사례, 보수가 책정되는 방식 등 번역과 관계된 일상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일들이 이해하기 쉽게 담겨 있습니다.

번역에 대한 내공을 엿보는 콘텐츠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프리랜서'의 자기관리법을 보여주는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시작일이나 작업 검토일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일하는 구성원도 자기 혼자가 전부이지만, 마감일과 작업의 완성도를 위해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은 '프리랜서'를 전문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혼자 모든 것을 관리하는 전문 번역가들의 삶을 통해 '프리랜서의 자기관리법'에도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감이라는 숙명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8월에 발간된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하루 24시간, 1년 12개월. 인간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균등하다. 하지만 각자가 경험하고 느끼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같은 시간도 구분해서 불렀다. 시계에 맞춰 균일하게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은 크로노스(kronos), '지금 여기서 느끼는 특별한 순간'의 시간은 카이로스(kairos)라고 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느끼는 시간은 대략 크로노스다. 철저히 마감을 중심으로 흐른다. 하던 일이 있어도 급히 번역해야 할 책이 들어오면 그에 맞춰 일정을 조정한다.

 

번역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나는 영상 번역, 문서 번역, 출판 번역을 두루 거쳤다. 일을 할 때 겪는 마감의 리듬도 매번 다르다. 영상 번역은 마감 기한이 짧았다. 대개 이틀이나 사흘 간격으로 찾아왔다.

 

초기에는 20분짜리 시트콤이나 요리 프로를 맡았는데 번역도 처음이고 컴퓨터 다루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세 살 먹은 아이까지 돌봐야 했다. 그때는 마감에 쫓겨 시한부 수명을 되풀이하는 날파리 인생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코뿔소처럼 마감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는 이들이 부러운 만큼 힘겨운 나날이었다. 그렇게 영상 번역과 일찍 작별했다.

 

그에 비해 문서 번역은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주로 계약서나 설명서, 논문, 소책자 같은 것을 번역했는데 마감 기한이 일주일에서 열흘꼴이었다. 일하던 중에 아이가 열이 올라도 마감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었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 뭉텅이를 집어서 버릴 여유도 생겼다. 마감 간격이 길어진 만큼 가족 행사나 친구와의 만남, 장보기와 청소 같은 일상도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출판 번역은 마감 사이의 간격으로 치자면 가장 넉넉한 일이었다. 책 한 권에 보통 짧으면 두 달, 두껍고 어려운 책이면 서너 달까지 잡고 일을 했다. 번역 도중에 큰일이 돌발하지 않는 한 안정적인 생활의 윤곽도 그려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부터는 책 한 권을 끝낸 후 또 언제 일이 들어올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됐다. 반년 정도의 일정은 미리 계획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나도 시간 부자가 됐구나!'라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속단은 언제나 금물이다.

 

사실 마감과 마감 사이를 오가는 생활 리듬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지금도 새 책을 받으면 맨 먼저 시작과 마감 날짜를 일정표에 적고, 작업 캘린더에도 진하게 표시를 해둔다. 시작 날짜는 그래도 유동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마감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그놈의 무슨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생긴다!)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을 가시처럼 수시로 찔러댄다. 캘린더에 적어놓은 일정은 독일 병정만큼이나 질서 정연하지만, 그것을 소화하는 내 일상은 무정부주의자의 혁명, 바로 그것이다.

 

가령 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소설이 어느 대목에서 덜컥 발목이 잡혀 늘어진다. 그 와중에 엄마의 수술까지 급작스레 앞당겨져 간병까지 해야 한다. 병원에서 환자 수발로 경황이 없는 중에 난데없이 원고 검토 전화가 걸려 온다. 고사해야 하지만 아는 편집자가 읍소를 한다. 하는 수 없이 검토서를 읽느라 머리를 헤집는데 예정에 없던 교정지가 날아든다. 슬럼프에 빠진 소설 번역은 도무지 진척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일정이 한번 난마처럼 꼬이면 그 뒤에 줄줄이 섰던 책들도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한다. 프리랜서 번역가의 한 해는 이렇게 엉망진창, 헐레벌떡, 대략 난감의 반복이다.

 

겨울에는 방학을 맞은 아이의 하루 세끼를 챙겨주며 1월과 2월을 업무 반, 집안일 반으로 엉거주춤하게 보낸다. 그러다 보면 발등에 떨어진 마감 때문에 지척에서 열리는 호수공원의 꽃 축제도 놓치기 일쑤다. 또 다른 마감에 머리를 쥐어뜯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 찾아와 더위에 몽롱해진다. 여름휴가를 위한 각종 예약 시기는 언제 놓쳤는지도 모른다.

번역하기 쉬운 책, 힘든 책, 어려운 책

번역하기 가장 힘든 책은 어떤 책이냐는 물음에 '지금 번역하는 책'이라고 대답하면 멋있어 보이겠지만, 고백건대 가장 힘들었던 책은 따로 있다. 지금 번역 중인 책은 쉬운 책에 가깝다. 사람들은 어려운 책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읽기 어려운 책과 번역하기 어려운 책은 다르다.

 

이를테면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의학책을 번역한다고 생각해보자. 생소한 의학 용어에 질려 번역할 엄두가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용어는 대한의사협회 의학 용어집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읽고 이해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번역하기는 의외로 쉽다.

 

낯선 동식물이 잔뜩 등장하는 생물학책도 마찬가지다. 영어 일반명에 해당하는 학명이나 한국어 일반명을 찾으려면 손품을 많이 팔아야 하지만 이것은 시간의 문제다. 아무리 찾아봐도 한국어 일반명이 없으면 번역가가 직접 이름을 만들어도 무방하다. 게다가 학회에서 발간한 생물명집이나 정부 기관 홈페이지의 용어집에 실린 번역어는 고민 없이 믿고 써도 좋다.

 

'힘들다'에는 (당연히)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다. 일정이 빠듯한 책은 육체적으로 힘들다. 지속 가능한 번역을 위한 일일 작업량을 초과하면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손목, 어깨, 허리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눈의 건강을 급행료와 맞바꾸는 셈이다(급행료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나는 작업 막바지가 되면 하루라도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서 속도를 바짝 끌어올리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마감을 며칠 앞두고는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도 하고 퇴고할 때는 아예 밤을 새우다시피 하기도 한다. 마감 날짜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괜히 조급해진 탓이다.

 

분량이 많은 책도 번역가를 지치게 한다. 이제까지 번역한 책 중에서 스터즈 터클의 <일>, 조지 마시의 <인간과 자연>,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 등이 200자 원고지 3000매가 넘는 이른바 '벽돌책'이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책을 붙잡고 있다 보면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몇 달간 책 하나에 갇혔다가 드디어 벗어나면 이 책과 함께 인생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진짜 골칫거리는 정신적으로 힘든 책이다. 첫 번째는 '너무' 잘 쓴 책. 영어 문법의 잠재력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책은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들다. 노엄 촘스키의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가 그런 책이었다.

 

두 번째는 사유가 깊은 책이다.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4년 4월 10일, 명동의 '동방홍'이라는 중국집에서 동아시아 출판사 한성봉 대표와 연태고량주를 마시다 취기가 얼굴까지 올라왔을 즈음 편집자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계약서를 꺼냈다.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그대로 받아주겠다는 말에 살짝 고민했지만 결국 평소에 받던 금액을 적고 사인했다.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해 7월에 번역을 시작하면서였다. 대니얼 데닛은 이렇게 말할 정도로 번역하기 힘든 저자다.

우리가 해야 하는 생각 중에는 형식에 구애받음 없이 은유를 구사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모든 수법을 동원하여) 닫힌 마음의 벽을 공략해야만 가능한 것이 있다. 행여나 쉽게 번역되지 않는 문장이 있다면, 번역의 대가가 등장하거나 전 세계 과학자들의 영어 실력이 나아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으리라.

- 대니얼 데닛,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한국에 번역된 데닛의 예전 책들도 어렵기로 악명 높은데 내가 보기에 이것은 번역 탓이 아니다. 저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유의 향연을 한국어로 풀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도 이번 책은 자신의 생각 기법을 일반 독자에게 전수하기 위해 작정하고 쉽게 쓴 책이어서(물론 데닛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번역을 마쳤다.

 

세 번째는 덜 다듬은 책이다. 글솜씨는 부족하지만 독특한 분야를 연구했거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호평받아 책을 출간한 저자는 조심해야 한다. 글쓰기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 절반이고 이 생각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는 것이 절반인데, 이런 저자는 앞의 절반만 마치고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나머지 절반은 고스란히 번역가의 몫이다.

 

유능한 저자는 독자가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문장에(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심어두는데, 이런 장치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저자의 글은 읽거나 번역하기 힘들다. 중역(重譯)이 힘든 데는 이런 까닭도 있다.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은 이런 점에서 번역하기 까다로웠다. 중역은 아니지만(원전은 영어판이다) 일리치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기에 그의 문장에서 영어 원어민의 무의식적 장치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지독한 부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는 자들이다. 번역을 잘하려면 저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저자의 눈으로 보고 저자의 귀로 들어야 하지만, 오감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들어갈 방법이 없다.

 

이에 반해 저자가 잘 쓰고 편집자가 잘 다듬은 이른바 '웰메이드' 책은 번역하기 수월하다. 크레이그 벤터의 <게놈의 기적>이 그런 책이었는데, 인간 유전체 연구의 최전선을 다루는지라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글 자체만 놓고 보자면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만 해도 읽을 만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그건 그렇고 쉬운 책을 만나는 것이 번역가에게 반드시 좋은 일일까? 힘든 책과 씨름할 때는 저자와 출판사를 원망하면서 '다시는 이런 책 하나 봐라'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번역을 끝내고 나면 평소보다 더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니 힘든 책은 어떤 면에서는 고마운 책이다. 물론 그런 책을 의뢰한 출판사가 새로운 일을 부탁하면 일단 경계심을 품게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