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예약: 거액의 돈을 쓴 그들이 얻은 것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4월에 발간된 <클럽 아레나>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아레나의 테이블 예약은 기본적으로 비딩 시스템을 따른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손님이 원하는 테이블을 차지하는 방식이다.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인 만큼 가격도 높고, 경쟁 입찰인 탓에 날이 갈수록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돈에 대한 가치가 흔들리던 2017년 말 가상 화폐 광풍을 기점으로 유난히 비딩이 높아지기도 했다. 쉽게 벌어 쉽게 쓰는 예약자가 몰린 탓에 이전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비딩이 부풀려졌고, 이때 늘어난 액수는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일상의 경제 상황이 어떻든 유흥 내 물가는 별개의 경제 논리를 지닌다.
'비딩' 자체가 하나의 유흥거리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전광판에 돈을 쓴 자신을 알리는 메모를 남기고 먹지도 않을 술을 무한정 시키는 일들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돈을 이만큼 썼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끼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봐주는 데 만족하는 것이다.
어떤 고액 손님끼리는 자신이 돈을 더 많이 냈다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삼아, 그들만의 비딩 경쟁이 붙기도 한다. 누가 5000만 원어치 주문을 하면 이에 질세라 6000만 원, 7000만 원을 주문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경쟁은 앞서 말한 2017~2018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던 시기와 일맥상통하게 유행했다.
사실 클럽 비딩은 돈을 일순간에 탕진하는 고액 유흥인데, '쉽게 벌고 쉽게 쓰는' 기회가 이때 한국에 찾아오며 꽤 많은 고액 손님들이 클럽 아레나에 등장했던 것이다. 아레나의 기형적인 비딩은 사람들의 전반적인 부가 증대되어서가 아니라 부를 '쉽게' 획득한 사람들이 늘어나 생긴 결과다.
* 클럽 아레나에서 9900만 원에 판매하는 술 '아르망디 네부카드네자르' ©MoneyMoney
입장 정책: 누군가는 거부된다
포털 사이트에서 '클럽 아레나'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아레나 입밴'이 나온다. 입밴은 '입장'과 거부(ban)를 뜻하는 속어 '뺀찌'의 합성어로, 순화해 말하면 '입장 정책'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 해도, 업장 기준에 따른 허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테이블 예약: 거액의 돈을 쓴 그들이 얻은 것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4월에 발간된 <클럽 아레나>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아레나의 테이블 예약은 기본적으로 비딩 시스템을 따른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손님이 원하는 테이블을 차지하는 방식이다.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인 만큼 가격도 높고, 경쟁 입찰인 탓에 날이 갈수록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돈에 대한 가치가 흔들리던 2017년 말 가상 화폐 광풍을 기점으로 유난히 비딩이 높아지기도 했다. 쉽게 벌어 쉽게 쓰는 예약자가 몰린 탓에 이전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비딩이 부풀려졌고, 이때 늘어난 액수는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일상의 경제 상황이 어떻든 유흥 내 물가는 별개의 경제 논리를 지닌다.
'비딩' 자체가 하나의 유흥거리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전광판에 돈을 쓴 자신을 알리는 메모를 남기고 먹지도 않을 술을 무한정 시키는 일들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돈을 이만큼 썼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끼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봐주는 데 만족하는 것이다.
어떤 고액 손님끼리는 자신이 돈을 더 많이 냈다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삼아, 그들만의 비딩 경쟁이 붙기도 한다. 누가 5000만 원어치 주문을 하면 이에 질세라 6000만 원, 7000만 원을 주문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경쟁은 앞서 말한 2017~2018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던 시기와 일맥상통하게 유행했다.
사실 클럽 비딩은 돈을 일순간에 탕진하는 고액 유흥인데, '쉽게 벌고 쉽게 쓰는' 기회가 이때 한국에 찾아오며 꽤 많은 고액 손님들이 클럽 아레나에 등장했던 것이다. 아레나의 기형적인 비딩은 사람들의 전반적인 부가 증대되어서가 아니라 부를 '쉽게' 획득한 사람들이 늘어나 생긴 결과다.
* 클럽 아레나에서 9900만 원에 판매하는 술 '아르망디 네부카드네자르' ©MoneyMoney
입장 정책: 누군가는 거부된다
포털 사이트에서 '클럽 아레나'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아레나 입밴'이 나온다. 입밴은 '입장'과 거부(ban)를 뜻하는 속어 '뺀찌'의 합성어로, 순화해 말하면 '입장 정책'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 해도, 업장 기준에 따른 허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레나는 한사코 입밴 기준을 공식화하지 않는다. 누구나 예상하듯 입장 기준은 '외모'에 근거하지만, 그것을 공식화하기에는 내용이 지나치게 반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외모 때문에 입장을 거절할 때라도 가드는 이렇게 돌려 말한다.
클럽이 가득 찼어요.
테이블 게스트만 입장 가능합니다.
저희와 스타일이 맞지 않으세요.
누군가는 거부되지만 누군가는 허락되는 입장 정책. 입밴은 단지 한 공간에 들어가는 절차를 넘어, 무언가를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로 의미를 형성한다. 인간은 타자의 인정을 욕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정이란 본질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해야 성립되니, 아레나의 입밴이 유난스러울수록 그에 입장한 사람들은 '인정' 받는 쾌락을 느낄 수 있다.
가뜩이나 '외모'라는 입장 기준은 평소 사람들이 공론화하지 못했던 주제이니만큼 '입밴'은 곧 외모의 등급을 말하는 대유법이 되곤 한다. "아레나 입장 아무나 시키던데?" 혹은 "아레나 입밴 없는 것 같아"처럼 입밴에서 자유로운 자신을 자랑하고, 동시에 입밴을 걱정하는 타인을 깎아내리는 화법도 다양하다.
말 그대로 각각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위상으로서 존재한다. 아레나에서 사람들은 일련의 남녀갈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각자 남자와 여자를 만나 놀기 바쁘다. 얼마 전까지 점잖게 업무를 보던 남자는 아레나에 들어와 여자를 인형 뽑듯 끌어올려 껴안고, 마찬가지로 여자 또한 남자 곳곳을 만지고 장난치며 술을 더 달라 요구한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문 바깥과의 온도 차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머지않아 이 안의 규범을 이해하게 된다. 아레나라는 사회의 성원 구성과 이곳에서 지켜지는 규범은 예외적인 모습이다. 아레나에서 새롭게 정의된 남녀 관계는 일상생활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이성관계는 동성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남자들의 고액 테이블에 올라가고자 여자들은 서로를 밀고 당기며, 예쁜 여자를 차지하려는 남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경쟁한다. 속내가 어떻든 동성끼리 같은 편을 맺어 매너를 지키는 일상생활과 달리, 각자의 목표와 기분을 최우선시하는 각개전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신경전으로 인해 욕설과 주먹다짐도 번번이 일어난다. 자신의 능력치를 자랑하는 데에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인 만큼, 저를 무시한 느낌이 들 때면 제 기분과 힘을 금세 표출하는 탓이다.
음악: '듣기 위한' 게 아니라 '놀기 위한' 도구
클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음악이다. 음악은 클럽의 분위기와 흥을 결정짓는 우선 조건이며, 따라서 여느 클럽들은 언제나 대외적으로 DJ 라인업을 광고한다.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에 가는 게 사실이었던 시절에는 DJ 라인업이 곧 클럽 성패를 좌우하기도 했다. 간혹 아레나의 DJ 라인업이 지적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레나는 유명 DJ를 섭외하기는커녕 모든 DJ에게 일률적인 스타일을 주문하고 있다. 색다르거나 다양한 음악이 아레나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유명 아티스트 섭외나 독특한 음악은 아레나 영업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러' 클럽을 가는 거라면 이 설명이 황당무계하게 여겨지겠지만, 아레나를 찾는 사람들의 욕구를 따져 보면 이는 당연한 설명이다.
아레나에서 음악은 집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놀기 위한 부차적인 도구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레나 음악에서 가장 큰 특징은 기승전결 없이 '결, 결, 결, 결'을 끝없이 유지하며 클라이맥스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섰을 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그리고 쉼 없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이러한 음악 스타일에 기반한다.
음악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신없는 광질 음악 혹은 사람들과 놀기 좋은 파티 음악이 내내 재생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아레나의 분위기를 거세게 하는 동시에, 음악의 맺고 끊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무시간성에 빠뜨리게 한다. 음악의 기능 중에는 트랙이 끝나고 시작하는 것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걸 알려 주는 것도 있는데, 이렇게 같은 톤의 음악을 강한 세기로만 틀다 보면 그것을 눈치채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호흡을 고른다거나 잠시라도 쉬어 가는 시간 없이 계속해서 달리고 놀 따름이다. 무시간성이 중요한 백화점에서 쾌활한 음악을 틀듯, 아레나는 쾌활하다 못해 정신을 놓게 하는 음악을 끊임없이 틀어 댄다. 햇빛을 차단한 지하 공간이 일상과의 격리를 목표했다면 계속 자극적으로 반복되는 음악은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일말의 시간성마저 삭제시킨다.
아레나에서 음악이란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이 흥 맞춰 노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는 DJ의 역할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과거에 음악을 듣기 위해 모인 클럽에서는 DJ가 주인공의 지위를 지녔고 스테이지는 공연장과 같은 성격을 띠곤 했는데, 오늘날 아레나에서 DJ의 지위는 전혀 그렇지 않다. 관심받고자 하는 욕망은 테이블에 올라선 사람들과 같이 게스트들이 오히려 더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DJ는 그들을 보조하는 역할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 이러한 음악 감상의 변화는 카니예 웨스트의 <세인트 파블로 투어>(2016)에서 차용되기도 했다. 이 투어 공연은 객석이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무대를 설치하지 않고, 무대를 공중에 띄워 객석의 관람 양상 변화를 알린 바 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무대를 올려다보는 틈틈이 각자의 셀카를 찍으며 저들끼리 따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음악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누구보다 큰 동작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단상마다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아레나의 DJ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대상이라기보다, 관심받고 싶은 사람들의 여흥을 맞춰 주는 배경 음악 담당자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행위, 음악을 듣기 위해 어딘가를 방문한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음악성과 같은 실질적인 퀄리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은 단지 일정한 상징성이나 분위기를 좇아 그곳에 모인다. 즉 어떤 DJ가 왔기 때문에 아레나를 찾는 게 아니라, 단지 '아레나'라는 장소가 '핫하다'고 합의되었기 때문에 막연히 아레나를 찾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문화가 그런 식으로 형성되곤 한다. 맛집이든, 박물관이든, 책이든 사람들은 더 이상 구체적인 동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가기 때문에, 대세라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고 찾는다.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다 가니까 나도 가야 할 것 같은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군중을 만들고, 브랜드를 형성한다.
각별한 취향이 정립되어서가 아니라, 삼삼오오 모이다가 만들어진 분위기가 사람들의 취향이 된다. 아레나의 인기 요인 가운데에는 이러한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아레나에서 유별난 음악은 도리어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냥' 가기 위해서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항상성이 중요하다. 음악이라는 구체적인 동기가 아니라, 그냥 가더라도 변함없이 놀 수 있는 게 아레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
일탈을 향한 자신의 욕망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음악과 같은 다른 요소가 돋보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음악이란 단지 그들이 평소처럼 '광질'하고 놀기에 좋은 배경 음악으로서만 기능하면 그뿐이다.
퍼포먼스: 춤과 패션, 가면과 과시
퍼포먼스에 관한 저서인 <수행성의 미학(Asthetik des Performativen)>에서 에리카 피셔-리히테(Erika Fischer-Lichte)는 퍼포먼스의 성질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연극성(演劇性)'과 '제의성(祭儀性)'.
이를 아레나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에 그대로 대입해 볼 수 있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의도는 결국 관객을 의식하는 공연의 성질과 다르지 않으며, 아레나라는 특정 시공간에 들어설 때 변신하는 모습은 제의적인 성질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아레나에서 사람들의 행동거지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광질 속에서 제의성을 떠올리고, 의식적인 멋진 척과 예쁜 척 속에서 연극성을 관찰할 수 있다. 멍 때리는 사람, 도도하게 지나가는 사람, 어떻게든 말을 걸려는 사람, 미쳐 날뛰는 사람…. 태도는 모두 다르지만 본질은 비스름하다.
아레나에서 퍼포먼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 클럽에서 노는 사람들은 단지 춤을 추는 '하는 자'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관계와 영향을 주고받는 '겪는 자'로서 퍼포먼스를 벌인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와 남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계속해서 중요하다. 큰 광질부터 작은 표정 변화까지 하나의 퍼포먼스로 본다면 아레나의 율동과 연기는 정말이지 다양하다.
물론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고 스스로를 연기한다. 하지만 아레나라는 외모 지상주의와 일탈 문화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이 성질은 극대화된다. 오로지 보이는 게 전부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더욱 능동적이고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일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가면을 쓰고, 자신의 모습을 전적으로 꾸며 낸다.
어설프지 않고 클럽에서 '논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라도 옷차림을 간편하게 할 필요가 있다. 꽉 끼는 홀복과 정장 차림으로는 이곳의 음악이나 춤에 어울리기는커녕 마냥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간단한 춤을 추거나 서서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던 과거의 클럽과는 여러모로 달라졌다.
그럼에도 비싼 옷을 자랑해야 하고,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을 마냥 감출 수는 없는 법. 그리하여 쿨해 보이고 놀기 좋은 옷이되, 비싸고 좋은 옷이라는 걸 과시할 수 있는 옷이 유행한다.
아레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이 보이는 브랜드는 '오프화이트(Off White)'다. 언젠가부터 '클럽 브랜드', '논현동 브랜드' 같은 별칭까지 얻은 오프화이트의 특징은 편한 스트리트웨어이되 브랜드 로고와 심볼을 큼지막하게 내세우는 '로고 플레이'다. 이 브랜드는 스트리트 브랜드로서 아레나의 추세에 무엇보다 알맞았으며, 가격대 높은 하이엔드 브랜드인 까닭에 '비싼 걸' 보여 줘야 하는 소비 심리에도 적합했다.
오프화이트의 창립자인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는 전통 있는 럭셔리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어 오늘날 '명품'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있기도 하다. 이전처럼 화려하고 우아한 디자인이 아니라 힙스터 위주의 쿨한 디자인으로 말이다. 동네에서 편히 입을 법한 옷차림을 통해 사람들의 '쿨하고' 싶은 심리를 자극했으며 이를 위배하지 않는 과시하는 심리를 로고 플레이로서 조종했다.*
* 관련 기사: 왜 다시 로고가 등장했나? - 패션 브랜드들이 큼지막하게 로고를 내세우는 이유에 관하여 (에스콰이어, 2017.1)
가타부타 말은 많지만 럭셔리 산업의 유명 종사자로서 버질 아블로는 럭셔리의 본질, 즉 사람들이 욕망하는 바를 꿰뚫었던 것이다. 비싸고 유명한 옷이 어느 곳보다 먼저 유행하는 클럽에서 일련의 트렌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명품의 맥락을 포착한 건 여타 럭셔리 브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루이비통이 버질 아블로를 영입하기에 앞서, 발렌시아가와 구찌 같은 럭셔리 브랜드 역시 이 추세에 가세했다. 전통 있는 럭셔리 브랜드인 이들은 발 빠르게 스트리트웨어를 접목해 자신의 브랜드를 이용한 로고 플레이를 유행시켰다. 훨씬 비싼 가격대지만 결코 빼입은 느낌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 브랜드는 클럽에서 크게 유행할 수 있었다.
클럽 곳곳에서 'BALENCIAGA'나 'GUCCI' 글자가 새겨진 아이템이 보인다. 별다른 디자인 없이 로고만 달렸다는 이유로 50만 원인 모자, 100만 원짜리 신발과 티셔츠, 200만 원짜리 재킷 등…. 처음 이런 아이템들이 발매됐을 때 인터넷에서는 '브랜드 빨' 아니냐며 해당 패션을 조롱하기 일쑤였지만, 역설적으로 '브랜드 빨'이 패션의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필히 사야 할 대상이었다.
비싸면 디테일이 많고 한껏 예뻐야 한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선택 조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 로고 플레이만큼 강력한 디자인이 없었고, 그만큼 쿨한 패션이 없었다. 클럽에서 유행하는 옷들은 깊이 볼 것 없이 '나 100만 원이야', '나 브랜드야'를 외친다.
취하지 않는 술도 있다. 비싼 돈 주고 산 술을 아끼고자, 시킨 술을 음료수 공병에 덜어 두고 술병에는 다른 음료를 채워 넣어 두면서 그런 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술을 시킨 테이블 게스트들은 무한정 나오는 음료를 받아, 한정된 술을 아끼고자 이렇게 술을 빼두거나 섞어둔다. 약간의 술과 어마어마한 오렌지 주스, 에너지 드링크, 사이다가 뒤섞인 이상한 음료수 제조다. 일부 고액 테이블이야 술이 남아돌지만 그 외 대부분의 테이블은 이런 방식으로 술을 섞어 사용해야 노는 시간 동안 술이 모자라지 않을 수 있다.
술 원액이 얼마나 섞였는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 왔거나 술 마신 기분 정도만 내려는 거라서, 대부분은 서로 컵을 부딪쳐 '짠'을 하는 요식 행위와 목 넘김만 있으면 알코올 농도는 크게 중요히 여기지 않는다. 온갖 음료가 뒤섞인 걸 먹고 술이 세다며 불평하고 완전히 주스뿐인 걸 마시고서 술이 맛있다며 칭찬한다. 때로 술을 마음껏 시킨 일렉존의 '아저씨' 테이블에서 술을 양껏 얻어먹은 다음, 취기가 오르고 나면 이동해 술이 적은 다른 게스트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테이블에 놓인 술로 사람들의 재산을 추측해 보기도 한다. 테이블 위치에 따른 비딩 액수를 토대로 테이블마다 계급을 나누듯, 테이블에 놓인 술을 가지고서 그들의 부를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레나에서 판매하는 술값이 보통 저렴한 게 아니니 술도 하나의 재산처럼 주문자의 부(富)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가령 4개 바틀을 시킨 테이블이면 '한 사람당 25만 원 정도를 썼겠구나', 돔페리뇽이 있는 테이블이면 '40만 원 정도를 썼겠구나' 하고 파악한다. 입은 옷 브랜드를 보고 그 사람의 재산을 추측하듯 말이다.
돈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고액 테이블에 접근하는 한편, 돈 자랑을 중요한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들 스스로가 비싼 술을 주문하기도 한다.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들에게 으스대는 용도로서 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샴페인걸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술을 가져오는 과정과 더불어, 자기 자리에 꽤 비싸고 화려한 술이 차 있어야 자존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술과 얼음, 기타 음료를 담은 버킷 안의 '바틀' 개수에 따라 자존감과 자신감이 좌우된다는 물질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