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떠나도 될까?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9월에 발간된 <나는 대한민국 상사맨이다>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 끝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처럼, 회사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미래를 그려봤었다. 30년 후에도 내가 같은 곳에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종합상사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회사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았다. 회사를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30년 후 같은 곳에 있고 없고가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결정을 내리는 시점은 언제가 되어야 할까? 회사가 나에게 수단으로써 의미를 다하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

 

회사에 다닌 3년 동안 나를 부단히 괴롭힌 문제였다. 특히 힘든 순간에는 더욱 치열하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회사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잘 계획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기 싫어서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떠나고 싶었다. 후자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3년 차 여름부터 회사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점점 선명해지는 듯했다. 당시 회사 내 일어난 여러 징후들과 동시에 일어난 개인적 사건들이,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의 조용한 해변으로 혼자 여름휴가를 떠났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이 회사에 처음 들어온 이유들을 생각했다.

 

이유는 '배움'이었다. 어디를 가든 배울 건 있겠지만 나는 빨리, 그리고 많이 배우고 싶어 종합상사에 들어왔다. 돈은 어떻게 버는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식량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지금 나는 물론 그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러닝 커브는 급격하게 완만해지고 있었다. 러닝 커브가 완만해지는 만큼 회사 생활도 편해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