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과 닮은 2020년

김프로: 레이 달리오가 어떤 사람인지 잠깐 소개하고 넘어갈까요? 그는 헤지펀드를 다루는 기업 중 큰 회사인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트(Bridgewater Associates)의 CEO로, 세계에서 굉장히 영향력 있는 투자자로 꼽힙니다. 책을 많이 쓰시는 분은 아닌데 <원칙>이라는 책이 크게 히트했죠.

 

김효진: <원칙>의 후속작 격인 <Big Debt Crisis>*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100년 동안 포퓰리즘이 얼마나 득세했는지, 소득이 얼마나 양극화됐는지, 경제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는데요. 그동안의 지표를 동시에 그려놓으니 지금이 대공황이 있었던 암울했던 시기인 1930년대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암울했던 시기는 1940년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고요.

* 공식 홈페이지에 이메일을 등록하면 무료로 본문 pdf(영문)를 다운받을 수 있다.

 

레이 달리오는 이런 상황에서 한번 '뷰티풀 디레버리징(beautiful deleveraging)'*을 해보자고 말합니다. 참고삼을 수 있는 사례가 많으니 슬기롭게 헤쳐 나가보자고요.

* 레이 달리오는 서브프라임 버블 붕괴 이후 2013년까지의 미국 시장을 '아름다운 디레버리징' 시기로 정의한다. 중앙은행이 민간의 디레버리징(차입 축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실질 금리를 낮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 가지의 부채위기 발생조건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과도한 부채이고, 두 번째는 고도로 집중된 대출 포트폴리오입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잖아요. 은행의 투자든 대출이든 한쪽으로 쏠려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세 번째가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미스매치(duration mismatch)*입니다. 예를 들어 단기로 돈을 꿨는데 장기 상품에 묶여 있는 거예요. 그러면 스텝이 꼬이잖아요. 이럴 때 위기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 자산·부채 만기 구조 불일치

 

저는 이 세 가지 조건 중 여태 몇 개가 나왔을지 검증해봤어요.

 

정프로: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나오면 위기라는 거죠? 어떻게 나왔어요?

 

김효진: 안 좋게 나왔죠. 일단 먼저 글로벌 시장 중심으로 봤어요. 보통 경제나 주식 자산 가격을 분석하거나 평가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쓰는데, 저는 여러 개의 사이클을 더해서 변화를 보는 편입니다.

 

컴퓨터에 엑셀 파일로 사이클 데이터를 저장해놨어요. 특히 경제침체가 있었던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엑셀 파일이 많이 늘어났죠. 투자 사이클, 재고 사이클, 출하 사이클 등 클래식한 데이터를 30년 넘게 쓸 수 있게 정리해놨는데, 최근 업데이트를 해봤더니 다 안 맞아요. 지금 경제나 주식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거죠.

 

예를 들어 재고가 많이 쌓이면 경제가 꺾여야 합니다. 재고량이 적으면 주문이 들어오면서 출하가 이뤄져야 한다든지 이런 공식이 있는데 더는 쓰지 못하게 됐어요.

 

이프로: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달라졌다는 뜻이네요.

 

김프로: 경제가 둔화되거나 마비됐다는 부정적 증거만 보입니까? 아니면 긍정적인 신호도 섞여 있나요?

 

김효진: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벤처 캐피털리스트였다면 달랐겠는데, 이코노미스트여서 그런지 제 눈에는 좋지 않은 것만 보였어요.

 

이 뒤에 부동산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할 텐데요. 부동산 가격은 예전에 그만 올랐어야 해요. 세계적 흐름으로 봤을 때요. 그런데 많이 올랐잖아요. 실물경제는 좋아 보이지 않고, 자산 가격은 뻥튀기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폰 대신 넷플릭스 택하는 경제

김효진: 요즘 '아이폰 교체 주기가 길어진다'고 하죠. 아이폰을 사지 않는 대신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무형의 서비스에 돈을 쓰고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장을 짓는 동시에 R&D에 투자하죠. GDP 같은 경제지표가 이런 걸 놓치고 있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또 2007년에는 경제가 심하게 꺼지다 보니 기업도 우왕좌왕하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죠.

소비자는 아이폰보다 넷플릭스에 더 소비한다. 소비와 투자의 행태가 바뀌면서 크레딧이 경제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Unsplash

정프로: 지금쯤이면 치고 나가야 하는데 머뭇머뭇한다는 말씀인가요?

 

김효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특히 더 그런 거 같아요. 앞날이 어떻게 될지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이프로: 디지털 경제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주셨어요.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많이 구입했는데, 요즘은 콘텐츠 같은 것에 더 신경 쓴다는 것을 저도 느낍니다. 그런데 그런 소비가 GDP나 성장률이라는 경제지표에 영향을 주나요? 콘텐츠 같은 디지털 상품의 소비는 경제성장률에 반영이 덜 되겠지만, 실제로는 경기가 좋은 셈이잖아요. 경제활동을 측정하는 지표로써 늘 사용하던 인덱스에 왜곡이나 굴절이 생긴다고 이해해야 하나요?

 

김효진: 요즘에는 '체험 소비*'라는 말도 많이 쓰는 것 같은데요. 경제는 얼마를 투입해 얼마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는지, 즉 금액으로 환산하기 쉬운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 '갖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것'에 투자하는 소비 트렌드

 

어떤 사람은 10만 원짜리 스파를 받고 100만 원의 효용을 얻겠지만 어떤 사람은 본전도 못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도보여행은 누군가에게 부가가치가 0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GDP·경제지표를 구성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는데, 항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만 그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예전에 참고한 데이터가 지금 맞지 않는다면 그중에서도 그나마 맞는 것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그 결과 크레딧(credit) 분석이 중요해졌습니다. 아마 2019년과 2020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프로: 크레딧이면 부채, 대출 말씀하시는 거죠?

 

김효진: 다 포괄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빚이 줄 때를 의심하라

김효진: 부채위기 발생조건 세 가지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채가 너무 많을 때,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담았을 때,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의 미스매치. 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과도한 부채 이야기를 해볼게요. 전 세계적으로 부채가 135조 달러(약 16경 3215조 원)에 달합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35%인 상황입니다. 부채 데이터를 그려놓으면 그냥 늘기만 해요. 이 데이터를 여러 방법으로 가공해봤는데 그냥 리스크만 높다고 나오지, '이 정도가 위기다'라고 선을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써봤는데요. 국가별·기업별로 채권을 발행하잖아요. 채권 발행이 적은 해도 있고 많은 해도 있을 텐데, 이걸 정리해봤어요. 일반적으로 빚은 많으면 안 된다, 빚이 늘어날 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부채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빚이 줄어들 때입니다
채권 발행이 늘면 빚도 늘어나지만 상환이 잘 되는 상황으로도 볼 수 있는데, 오히려 부채가 줄 때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롤오버(rollover)*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 금융시장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계약 만기 시점에서 계약을 연장하는 일련의 활동

 

정프로: 선후가 바뀐 거 아닌가요? 위험하니까 대출조차 못 받은 거 아닙니까? 경기가 나빠지니까 부채가 줄어든 거지, 부채가 줄어들어서 경기가 나빠진 거는 아니라는 거죠.

 

김효진: 닭과 달걀의 관계이기는 합니다. 은행이 상환을 요구할 만한, 아니면 채권자가 더는 채권을 찍어주지 않고 원금을 가져오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겠죠.

 

그런데 저같이 증권회사 다니는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는 경색이에요. 돈줄 막힐 때. 어제까지 100원에 잘 거래되던 게 다음 날 1원이 되기도 하거든요. 이런 일은 보통 순식간에 벌어집니다.

 

이프로: 그럼 과거 2008년이든 1997년이든 한국에 빚이 줄면서 위기가 왔습니까?

 

김효진: 거의 동시였죠.

 

이프로: 그럼 빚이 준 걸 깨달은 순간은 이미 늦은 거 아니에요?

 

김효진: 그러니까 빚이 어떤 환경에서 줄어드는지 분석해야죠. 그럼 요즘은 빚이 줄고 있을까요? 늘고 있을까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분기별로 전 세계 부채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꽤 세분화한 데이터인데요.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 비율이 높습니다.*

* 관련 기사: GDP 턱밑까지 불어난 가계 빚…상환 부담 커졌다 (매일경제, 2019.6.8)

 

재정 위기가 있던 유럽은 기업과 정부의 가계부채가 비등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기업 빚이 압도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고요. 2008년 이후 유독 기업부채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애매하게 줄기 시작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기업 부채예요. 앞으로 기업 부채를 트래킹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금이 줄어드는지,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채권이 잘 돌지 않는지 하는 것이요.

 

이프로: 위기가 터지면 기업에서 터질 거다, 이 말씀이네요. 가계가 아닌 이유는 있습니까?

 

김효진: 전 세계 흐름을 볼 때 그렇습니다. 기업부채가 압도적이에요. 한국은 대형 그룹사가 전체 기업을 좌우하는데, 다들 돈이 많습니다. 한국은 기업부채만큼 가계부채도 많은 특이한 구조예요. 다른 나라 가계에 비교했을 때도 많은 편입니다.

 

김프로: 한국은 특히 대기업, 소위 재벌이라 부르는 기업이 진 빚과 중소기업이 진 빚의 차이가 크죠. 이것도 한국 경제의 위험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프로: 확실하진 않지만, 세계 기업부채 양이 약간 애매한 시점이라는 거죠?

 

김효진: 네. 다음 단계로 부채 양이 더 줄어들어 '경색'이란 단어를 신문에서 보게 될지, 아니며 그러다 말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