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미친' 도전

지난 5월, 에누마가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Global Learning XPRIZE)에서 우승을 차지했어요. 엑스프라이즈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출연해서 만든 프로젝트인데요.
우선, 엑스프라이즈는 25년 역사의 비영리 단체예요. '왜 우주에 가고 싶은 꿈은 나사(NASA)만 구현하는 거야? 기술도 다 있고, 돈도 있는데…'라는 생각에서 1994년 시작됐죠. 10년에 걸쳐 1000km 우주 상공에 사람을 올려놓는 것이 첫 미션이었고, 상금이 100억 원이었어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폴 앨런(Paul Allen) 등이 실제로 로켓 발사를 시도했어요.

 

이 회사들이 민간 로켓의 시대를 연 셈이죠. 치열한 경쟁 끝에 스페이스엑스(SpaceX), 블루 오리진(Blue Origin),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 같은 항공 산업의 민간 기업들이 생겨났으니까요. 이후 정식 비영리 단체로 출범한 스페이스엑스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꼭 풀어야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 문제'에 큰 상금을 걸고 있어요.

 

엑스프라이즈가 상금을 건 프로젝트로는 피를 한 번 뽑아 최대 몇백 개까지의 질병을 검진하는 기술, 바다를 정화하는 기술 등이 있어요.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지는 않아서 어떤 프로젝트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또 어떤 프로젝트는 중간에 취소되기도 하죠. 하지만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뛰어들어서, 인류를 위한 혁신을 촉발할 거라고 생각하는 멋진 단체예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Enuma

스타트업의 '미친' 도전

지난 5월, 에누마가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Global Learning XPRIZE)에서 우승을 차지했어요. 엑스프라이즈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출연해서 만든 프로젝트인데요.
우선, 엑스프라이즈는 25년 역사의 비영리 단체예요. '왜 우주에 가고 싶은 꿈은 나사(NASA)만 구현하는 거야? 기술도 다 있고, 돈도 있는데…'라는 생각에서 1994년 시작됐죠. 10년에 걸쳐 1000km 우주 상공에 사람을 올려놓는 것이 첫 미션이었고, 상금이 100억 원이었어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폴 앨런(Paul Allen) 등이 실제로 로켓 발사를 시도했어요.

 

이 회사들이 민간 로켓의 시대를 연 셈이죠. 치열한 경쟁 끝에 스페이스엑스(SpaceX), 블루 오리진(Blue Origin),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 같은 항공 산업의 민간 기업들이 생겨났으니까요. 이후 정식 비영리 단체로 출범한 스페이스엑스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꼭 풀어야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 문제'에 큰 상금을 걸고 있어요.

 

엑스프라이즈가 상금을 건 프로젝트로는 피를 한 번 뽑아 최대 몇백 개까지의 질병을 검진하는 기술, 바다를 정화하는 기술 등이 있어요.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지는 않아서 어떤 프로젝트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또 어떤 프로젝트는 중간에 취소되기도 하죠. 하지만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뛰어들어서, 인류를 위한 혁신을 촉발할 거라고 생각하는 멋진 단체예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Enuma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는 2014년에 처음 발표된 프로젝트예요. 전 세계 2억 5천만 명의 문맹 아동 중에 1억 9천만 명이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 안 다니는 나머지 6천만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170만 명의 교사가 필요하다고 해요. 그런데 교사라는 직업은 10~20년 동안 양성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교사 대신 테크놀로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오랫동안 있었는데, 30년간 거듭 실패하기만 했어요. 엑스프라이즈는 여기에 상금을 건 거죠.

교사 없이 아이 혼자서
학습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그렇게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가 시작됐어요. 상금 외에도 탄자니아 현지 테스트, 스태프 운영에 수백억 원이 들어서 일론 머스크뿐만 아니라 다른 독지가들도 돈을 많이 냈어요. 엑스프라이즈 파운데이션(XPRIZE Foundation)과 유네스코(UNESCO), WFP(World Food Programme, 유엔세계식량계획), 그리고 탄자니아 정부가 손을 잡고 5년간 진행한 프로젝트예요.

 

에누마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어떤 계기로 참여한 건가요?
토도수학이 막 뜨고 있던 2014년이었어요. 저희는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앱을 만들었는데, 조기 교육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거예요. '이 앱을 통해서 사회 격차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는데, 정작 늘고 있으니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를 알게 됐어요.

 

사실 스타트업이 5년짜리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스타트업은 2~3년 후에 뭘 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데, 5년이 걸리는 데다 소요 비용도 전부 저희가 감당해야 하잖아요. 상금을 받으면 실비를 충당할 수 있지만, 못 따면 끝인 경쟁이죠. 소위 '위너 테이크스 올(winner takes all)'로, 우승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대단히 미국적인 방식이에요.

 

그래서 참가를 신청하고, 진행하는 동안 많이 걱정했어요. 잘 팔리고 있는 물건이 있음에도 엔지니어·디자이너들이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당장 어디에 팔 수도 없어요. 제품에 나오는 아이들이 모두 흑인인 것처럼 기존 고객에게는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거든요.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 수십억 원을 퍼부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스타트업으로서 도전하기가 쉽지는 않았죠.

 

* Kitkit School - Global Learning XPRIZE Finalist Team ⓒXPRIZE

 

2017년에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때, 저희가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받았는데요. 사회자가 결선에 나가는 다섯 팀에게 이 돈을 갖고 뭘 할 거냐고 물었을 때,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다른 팀들과 달리 저희는 "다 썼는데요"라고 대답했어요. 잘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임팩트 투자·민간 투자도 받고, 저희 제품들의 코드·기술·노하우에 받은 상금까지 모두 퍼부어가면서 노력했어요.

보편을 상상하다

우승한 후에 "우리도, 주최 측도 독한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15개월간 진행된 결선은 룰이 정말 지독했어요. 다섯 팀이 탄자니아의 특정 지역에서 소프트웨어로 경연을 하는데, 해당 지역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교사 출신 직원이 가서 아이들을 가르쳐버리면 소프트웨어의 효과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 상황에서 2주에 한 번씩 현지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로그 데이터만 보고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해야 했어요. 업데이트 기회도 15개월 동안 딱 두 번이었죠.

 

엑스프라이즈는 이런 경연에 프로페셔널이에요. 팀들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까지 해요. 예를 들어, 팀들이 느슨해진다 싶으면 현지 상황을 슬쩍 알려주는 거죠. 룰이 개선되지 않으면 진행이 더 힘들 것 같다고 하소연해도 칼같이 끊어요. 참가팀 입장에서는 애증의 대상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일단 끝났다는 사실이 기뻤고, 우승을 해서 더 기뻤어요.

태블릿 PC를 들고 있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지역의 탄자니아 아이들 ⓒEnuma

주최 측이 탄자니아의 170개 마을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가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측정했다고 들었어요.
마을이 다 오지에 있어서, 마을과 마을 사이 거리가 최소 15km 정도인데요. 전기나 인터넷이 없으니까 일단 태양광 패널을 하나 설치해요. 마을에 사는 7~10세 아이 중 학교에 안 다니는 아이들에게 태블릿 PC를 하나씩 나눠줘요. 한 마을당 여섯 명에서 스무 명 정도죠. 그 아이들이 태블릿 PC를 받기 전에 시험을 한 번 치르고, 15개월 후에 다시 한번 시험을 치러요. 아이들의 성적이 가장 많이 오른 팀이 이기는 방식이에요. 형식은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아이들의 기초 학력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두시험(oral test)이고요.

 

경쟁 회사들은 어떤 곳이었나요? 벤처 기업은 에누마가 유일했나요?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교육 사업을 해온 NGO도 있었고, 약 40년 동안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재를 만들어 온 미국의 교재 제작 회사도 있었어요. 카네기멜런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이라는 유명한 대학팀, 그리고 인도에 새로 생긴 비영리 NGO도 있었어요. 외부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에누마뿐이었죠.

 

다른 경쟁사와 비교해서 에누마는 어떤 것이 강점이었나요?
마을 사람들에게 '아이들에게 사용을 권하지 말고, 사용하고 있느냐고 묻지도 말라'라는 지침이 있었대요. 태블릿 PC를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마음을 느끼고 학습해야 하는 거죠. 이 태블릿 PC를 충전하려면 매일매일 충전소에 가야 하는데요. 어떤 아이들은 충전소까지 매일 40분을 걸어야 한대요. 40분 동안 걸을 정도로 사용하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무언가에 한 번 흥미를 잃으면 더는 안 하거든요. 15개월 동안 아이가 어떤 소프트웨어에 흥미를 유지한다는 건 엄청난 일인 거죠. 그래서 저희는 '사람이 15개월 동안 매일매일 하고 싶게 만드는 힘은 뭘까?'를 고민했어요. 아이들이 '어제도 재미있었는데, 오늘은 더 재밌네' 혹은 '어제는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되었네'라고 느끼며 기쁨을 발견하기를 바랐어요.

 

저희 소프트웨어는 그냥 소프트웨어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패키지예요. 어제와 오늘이 똑같으면 재미없으니까 매일매일 변화하는 방대한 소프트웨어를 넣었어요. 열면 도서관이 있고, 그 안에 몇백 권의 책과 공부용 노래, 영상이 들어 있어요. 실로폰처럼 아이들이 매일 가지고 놀 수 있는 음악 도구, 그림 도구, 글씨를 쓸 수 있는 칠판 등이 다 있죠.

 

그리고 영유아 기초부터 초등학교 2학년 수준까지의 예쁜 그림,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전부 넣었어요. 아이들의 실력을 잘 모르니까요. 7세부터 10세까지라고 하더라도 학교에 다니지 않아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꽤 많거든요.

탄자니아 아이들이 에누마의 소프트웨어로 그린 그림 ⓒEnuma

필드에서 들려온 이야기에 의하면, 아이들이 저희 소프트웨어를 너무 사랑했대요. 그림판을 예로 들어볼게요. 이곳의 아이들은 18색 크레용을 본 적이 없고, 그걸 마음껏 갖고 놀 만한 양의 종이를 가져본 적도 없어요. 그랬던 아이들이 예쁘게 만든 디지털 그림판에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술가가 생겨나요. 직접 단어 카드를 만들고, 러브레터를 쓰는 아이도 있어요.

 

경쟁사들이 '공부'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저희는 이 공부가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의미일지 고민했어요. 일단 재밌게 배우고, 배우고 나면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할 수 있게끔 본인이 어디까지 학습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려 했고요. 그러면서도 진도가 더딘 아이가 의기소침하지 않고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도 넣었어요.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춘 거죠. 그 점이 엑스프라이즈 마지막까지 많은 아이들이 저희 소프트웨어를 사랑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씀하셨듯이 에누마는 현지 아이들을 위해 맞춤형 교육 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요. 여러 번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아요.
한 논문을 읽었는데, 탄자니아 시골 아이 중에는 사자 그림을 못 알아보는 아이들이 절반 정도 된대요. 생각해보면 그림 책이나 TV가 없으니까 사자를 보려면 직접 목격해야 하잖아요. 아프리카에서도 인간이 사는 구역에는 사자가 없어요. 그런데 문명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아프리카 아이들이라면 얼룩말, 사자랑 어울려 살겠지?'라고 쉽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저희 초기 소프트웨어에는 사진기가 들어가 있어요. 아이들이 서로 찍어주면서 좋아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손으로 들지 않은 채로 버튼을 눌러서 책상 사진이 찍혔는데, 이게 뭔지 모르는 거예요. 실로폰도 만들었는데요. 처음에는 '아프리카의 실로폰이라면 이렇게 생겼겠지'라고 생각해서 나무 모양으로 예쁘게 디자인했어요. 아이들이 계이름을 배운 적이 없어서 잘 쓰지를 못했죠. 그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아마 실로폰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넣었을 거예요. 퍼즐 역시 마찬가지죠. '빈칸에 똑같은 모양의 블록을 끼워 넣는다'는 규칙을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아요.

에누마의 소프트웨어를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있는 탄자니아 아이 ⓒEnuma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생긴 물건들을 태어나서 처음 봤을 뿐이에요. 이런 부분에서 저희는 실수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계속 실수했어요. 실수 후에는 늘 반성을 했죠. 상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라서 현지 NGO나 스태프로 참가한 탄자니아 출신 교사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덕분에 엑스프라이즈가 진행되는 지역이 아닌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 초반에 탈락한 어떤 회사는 소프트웨어의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테마로 엘리베이터를 활용했어요. '여기는 수학 층입니다'라면서 문이 열리고, 위로 가는 버튼과 아래로 가는 버튼이 있는 거죠. 엘리베이터를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인터페이스를 만든 거예요. 우리의 상식이 아이들의 세상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이런 실수를 하게 되는 거죠.

우승 그 이상의 증명

지난한 경쟁 끝에 에누마가 거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우승은 어떤 의미인가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희 방식이 검증받았다는 것이에요. 저희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교육 소프트웨어와 논리 구조가 달라요. 아이들이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에요. 특히 학습에 대한 모티베이션이 낮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효과적일 거라고 믿으면서 제품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우승은 회사의 존재 의의, 즉 저희의 사상과 그에 따른 몇 년간의 R&D를 얘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어요.

ⓒEnuma

우승 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구글 신사옥에서 시상식이 열렸는데요. 현장에서 "우승이라는 타이틀보다 중요한 건 기술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라는 멋있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희에게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것이 우승보다 중요했어요. 소프트웨어를 통해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을 뿐, 애초에 회사를 세운 목표가 엑스프라이즈 우승은 아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끊임없이 던졌던 '우리의 방법으로 교육을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우승보다 더 기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