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의 공통점

저는 최근 어머니를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로 개종시키려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 댁 TV에 인터넷을 연결해 넷플릭스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틀어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제 옆에 서서 아무 말 없이 영상을 감상했습니다. 1화가 끝날 무렵 이런 말씀을 툭 던지시더군요.

저렇게 가지고 있는 물건 다 버리고 깨끗하게 비워 놓으면 저게 집이야? 호텔이지. 집은 집 같아야 집이지!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는 물건은 버려야 한다는 게 곤도 마리에의 철학이라면, 일단 집에 들여놓은 모든 물건에는 각각의 사연이 있다는 게 제 어머니의 철학 같습니다.

 

* 곤도 마리에의 유튜브 채널 소개 영상 ⓒMarie Kondo

 

사실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는 완전히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물건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는 게 공통점입니다. 애초에 물욕이 없고 취향도 없고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미니멀리즘도, 맥시멀리즘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물건이나 쓰고 아무 옷이나 입으며 살죠.

 

매일 같은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나, 8년 동안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다는 필리핀 전 대통령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Romuáldez Marcos)나, 모두 각자의 취향과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멜다 마르코스처럼 자신의 쇼핑을 위해 남의 돈을 갖다 쓰면 안 되겠지만요.*

* 관련 기사: 구두 1220켤레의 '사치 여왕' 필리핀 이멜다, 또 구설 왜? (중앙일보, 2018.11.22)

서로의 취향에 딴지를 걸다

집안에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갖춰놓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지난 2015년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에서 재미있는 기획을 했습니다. 자사 최고의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를 불러다가 서로의 집을 방문하게 한 다음, 그 느낌을 편지로 주고받게 했지요.

 

미니멀리스트 진영을 대표해 전투에 나선 사람은 루시 켈러웨이(Lucy Kellaway)입니다. 1959년생이며, 위트 넘치는 글솜씨로 많은 팬을 확보한 파이낸셜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입니다. 그는 매주 월요일 '디어 루시(Dear Lucy)'라는 코너를 통해 오피스 생활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과 고민 상담에 답을 해주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잘 도와줘서 인기 많은 학급 반장 같은 이미지입니다.

 

반대편, 맥시멀리스트 진영의 대변자는 데이비드 탕(Sir David Tang)입니다. 그는 홍콩계 영국인이자 '상하이 탕(Shanghai Tang)'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기업가이지만, 무엇보다도 런던 사교계의 대마왕으로 유명했습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Diana, Princess of Wales), 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 배우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등이 그의 서클에 속했습니다. 북경에서 김정은도 만났었다고 합니다. 2010년부터 파이낸셜타임스 주말판에 에티켓에 대한 독자 질문 코너를 연재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 관련 기사: HOW SIR DAVID TANG BECAME THE KING OF LONDON'S PARTY SCENE (출처: MR PORTER)

 

이 두 명의 칼럼니스트들은 성별, 인종, 살아온 방식이 다릅니다. 루시 켈러웨이의 부모는 모두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이며 루시 본인도 그곳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언니 케이트 켈러웨이(Kate Kellaway)도 기자입니다. 공부 잘하는 가족이죠. 그의 첫 직장은 글로벌 금융회사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의 외환 딜링룸(dealing room)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금융권에 별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1985년 파이낸셜타임스에 들어와 기자가 됐습니다. 여기서 다른 기자를 만나 결혼했고, 일하면서 네 명의 아이를 낳고 키웠습니다.

 

데이비드 탕은 수다스러운 중국 노인입니다. 백과사전급 상식을 뽐냈던 그는 물건에 대한 취향이 확고했는데, 비싼 물건이나 럭셔리 브랜드를 선호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때와 장소에 맞는 물건과 옷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었죠. 예를 들어 탕은 턱시도에 보타이 혹은 중국 전통 비단 두루마기를 즐겨 입었습니다. 턱시도에 커머번드(Cummerbund)를 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독자가 플립플랍(flip-flop, 일명 '쪼리')을 공공장소에서 신어도 되는지 의견을 묻자 탕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발가락이 남에게 드러나는 신발을 신어도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미니멀리즘을 좋아하는 '중년의 위기' 힙스터 칼럼니스트와, 맥시멀리즘을 추구하는 원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사업가의 대결. 과연 파이낸셜타임스 독자들은 누구의 편을 들었을까요? 신문에 실린 지 꽤 지난 기사지만, 너무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퍼블리에 소개합니다. 그리고 아래 이어지는 다음 단락은 기사 본문을 읽고 난 다음에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삶에 미친 영향

위 기사가 나가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아쉽게도 루시 켈러웨이와 데이비드 탕은 파이낸셜타임스를 떠났습니다. 신문사로서는 스타 칼럼니스트 두 명을 잃어버린 셈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파이낸셜타임스가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루시 켈러웨이: 인생의 방향을 바꾼 미니멀리스트

루시 켈러웨이는 2016년 초 신문사를 그만두고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됐습니다. 그는 은퇴한 전문직 종사자들을 교사로 재교육시켜서 가난한 동네의 학교에 취업시키는 나우 티치(Now Teach)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자신도 그 프로그램의 1기로 참여했습니다. 신문사 시절보다 월급은 몇 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50대 중반의 나이로 커리어의 클라이맥스에 있었고 파이낸셜타임스의 핵인싸였기 때문에, 팬들은 켈러웨이의 진로 전환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쉬워하는 레터를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내왔습니다.

 

이제 3년 차 교사가 된 켈러웨이는 망아지 같은 중학생 수십 명을 길들이는 일을 하며 정신없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적응한 것 같다면서, 바뀐 삶이 만족스럽답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는 가끔 교사로 사는 생활을 담은 글을 보내옵니다. 저는 그가 수도사가 되어 도를 닦는 길을 택한 것 같습니다. 높은 명예와 (약간의) 부를 누릴 수 있는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자리를 일부러 버리고서요.

 

데이비드 탕: 화려한 삶 속에서 스러진 맥시멀리스트

데이비드 탕은? 죽었습니다. 2017년 4월 간암이었습니다. 그는 남프랑스 해변에서 쓰러져 친구의 전용기 편으로 런던 인근의 공립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이미 몇 달 전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탕은 '가장 가까운 친구' 500명을 고급 호텔에 초대하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까지 불러서 마지막 파티를 열겠다고 공언하고 초청장도 보내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행사 한 달 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초청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류사에 길이 남을 흥겨운 파티가 됐을 텐데 무산되어 너무나 아쉽습니다.

* 관련 기사: Sir David Tang to hold 'farewell party' in London after doctors give him months to live (COCONUTS HONGKONG, 2017.8.21)

 

2018년 1월, 탕의 부인 루시(Lucy Tang)는 유품 74점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총 판매액 15만 파운드(약 2억 4000만 원)를 예상했는데, 경매 결과 그 열 배 이상의 금액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경매에 나온 물건 중에는 찰스 황태자의 선물이었던 카르티에 은제 약 상자도 있어서 사람들은 의아해했습니다. 돈 받고 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루시는 왜 그런 물건까지 팔아치웠을까요. 자신과 이름이 같은 루시 켈러웨이처럼 루시 탕 역시 미니멀리스트였기 때문일까요?

* 관련 기사: David and Lucy Tang collection auction at Christie's (Financial Times, 2018.1.21)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보도에 따르면, 말년의 데이비드 탕은 보이는 것만큼 부자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가 사용하는 저택들은 세를 낸 것이었고 타고 다니는 전용기도 친구들이 빌려준 것이었습니다. 일생 돈을 많이 벌긴 했지만 또 그만큼 펑펑 쓰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 관련 기사: He's the 'tycoon' who lived a life of lavish generosity. But six months after his death, Sir David Tang's society pals are asking... did the party king die a pauper? (Mail Online, 2018.2.3)

 

그러고 보면 탕은 연재 칼럼에서 돈이나 사업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재미있는 친구들 이야기, 독특한 파티 이야기, 지혜로운 책 이야기, 은근히 야한 농담을 즐겼습니다. 이런 걸 보면 그는 부자가 아니라 즐거운 이야기꾼이 되고자 했던 것 같고, 실제로도 동서양을 넘나드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많은 물건은 대화의 소재를 풍성하게 해주었습니다.

ⓒShutterstock루시 켈러웨이는 미니멀리스트로 살았기 때문에 인생의 정점에서 단호하게 삶의 궤적을 바꾸었고 그로 인한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졌습니다. 반대로 데이비드 탕은 맥시멀리스트답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성한 삶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살았습니다.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
어느 쪽 길을 택하든,
인생 마지막에 남는 건
사람들 그리고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번 큐레이션을 하면서 저는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물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보게 됐습니다. 버릴 수는 있겠지만 인연이 없는 물건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는 어머니에게 '물건 정리 좀 하세요'라는 얘기는 하지 않게 됐습니다. 가족 중에 멋진 맥시멀리스트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어차피 따로 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