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전쟁이 시작되다

미중 무역분쟁의 핵심은 결국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 문제라고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지적해왔다.* '키 포인트'가 수면 위로 떠 올랐음에도 무역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법제화 요구를 중국이 거부하면서 결국 합의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 관련 챕터: [뉴욕타임스] 환율로 보는 미중 무역분쟁 (PUBLY, 2019.3)

미국은 원하는 대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자
다음 플랜을 개시했다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화웨이가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구글, 인텔, 퀄컴 등을 대표로 한 미국의 주요 IT 기업이 화웨이에 각종 부품과 소프트웨어, 기술 지원 등을 중단했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정보통신 서비스 및 기술 공급망 확보'라는 이름이다. 하지만 행정명령 그 자체로 특정 기업과의 거래 또는 그 기업이 생산한 재화의 구매를 금지할 수는 없다. WTO 규정 위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 정부는 미 상무부에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거래 관계를 검토하는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제재를 가했다. 그 결과 상무부는 백악관에서 행정명령 서명이 이루어지자마자 거래 제한 기업을 발표했다. 그 명단에 화웨이가 있었다.

OS도, 칩셋도 화웨이는 안돼

이번 조치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슈는 구글이 안드로이드와 앱 공급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미 상무부의 임시 면허 발급으로 화웨이는 향후 90일 동안만 미국 기업이 생산한 소프트웨어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생산된 제품에만 한정하므로 화웨이보다는 미국 기업의 매출 충격을 막기 위한 임시 보호조치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 관련 기사: US mitigates Huawei ban by offering temporary reprieve (Tech Crunch, 2019.5.20)

 

그렇다면 이제 화웨이는 안드로이드를 쓸 수 없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다.

그런데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를
미국 마음대로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엄밀히 따지자면 화웨이를 비롯한 스마트폰에 탑재된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 안드로이드 프로젝트(AOSP)'라는 뼈대(OS)에 구글 모바일 서비스(GMS)라는 근육과 살을 붙여 만들어진 일종의 앱 서비스이다.

 

즉, 화웨이가 안드로이드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구글 모바일 생태계가 배제된 순수한 운영체제이다.

화웨이는 구글의 OS인 안드로이드를 사용해왔다. ⓒShutterstock물론 이 AOSP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OS를 개발할 수도 있다. 이런 OS를 '포크드 안드로이드(Forked Android)'라고 부르는데 아마존이 전자책 킨들 시리즈에 이 OS를 사용했다.

 

이미 구글 생태계가 널리 퍼진 스마트폰 시장에 화웨이가 포크드 안드로이드를 개발한다고 해도 과연 이전처럼 판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화웨이 제1시장인 중국이야 이미 구글이 철수해버린 터라 바이두 등이 제공하는 앱 서비스가 많지만, 수출은 이야기가 다르다.

 

하드웨어 문제도 남아 있다.

 

현재 화웨이는 휴대전화에서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AP 부문에서 그나마 퀄컴 '스냅드래곤'의 영향에서 다소 자유롭다. 자회사 하이실리콘(HISILICON)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 '기린'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린은 영국의 팹리스 반도체 설계 업체인 ARM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칩셋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ARM 역시 미국의 행정명령 이후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Huawei: ARM memo tells staff to stop working with China's tech giant (BBC, 2019.5.22)

 

ARM의 아키텍처는 미국산 기술이 다소 활용돼있다. ARM이 최초에 설립됐을 때 애플이 깊이 관여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 1990년 아콘 컴퓨터즈와 애플 컴퓨터(현재 애플), VLSI 테크놀로지의 조인트 벤처로 설립됐다. 2016년 소프트뱅크가 인수했다.

 

이제 화웨이는 OS도, 칩셋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웨이 없는 유럽시장

미 상무부가 미국 기업에 화웨이와 거래할 수 있는 90일간의 임시 면허를 연장하지 않고, 화웨이가 AOSP 이외의 구글 생태계에서 완전히 배제됐을 때를 가정해보자.

 

화웨이는 유럽에서의 제품 판매가 거의 불가능하다. 유럽은 구글 모바일 서비스 활용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유럽 모바일 운영체제 시장점유율 (출처: Statcounter / 그래픽: 퍼블리)또한 화웨이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5G 통신장비 사업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2019년 1월 24일 야심 차게 내놓은 5G 통신장비용 칩셋 '텐강(Tiangang)'* 역시 ARM 아키텍처 기반이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화웨이, 5G 기지국용 핵심 칩 '텐강' 선봬 (IT조선, 2019.1.28)

 

5G 특허 출원은 중국 기반 기업이 34%로 가장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도 25%나 되고, 3G나 4G 기술 특허는 아직 미국과 유럽이 선두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화웨이의 앞날이 그리 밝지는 않다. 5G 특허만 있다고 해서 통신장비와 기지국을 자유롭게 제조하고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 유럽도 편한 상황만은 아니다. 유럽은 화웨이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다.

 

2012년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의 정보 유출 등의 문제로 미국 안보에 이들 기업이 위협된다는 미 하원 정보위원회의 보고* 이후 화웨이는 미국 땅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 관련 기사: China's Huawei and ZTE pose national security threat, says US committee (The Guardian, 2012.10.8)

 

그러나 유럽은 이야기가 다르다. 앞서 본 표에서처럼 유럽의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2019년 4월 기준 73.5%에 달하는데, 화웨이의 유럽 점유율은 2019년 4월 기준 18.5%에 이른다. 특히 이는 대부분 남유럽에 집중돼 있다.

업체별 유럽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출처: Statcounter / 그래픽: 퍼블리)하지만 유럽에서 스마트폰 문제는 의외로 빠르게 해결될지 모른다. 화웨이 못지않게 이름난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 오포(OPPO)가 2018년 유럽 진출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포는 지난 2017년부터 유럽 진출을 타진해왔으나 본격적인 사업 활동은 연기돼왔다.

* 관련 기사: 中 오포, 유럽 진출…현지 '미학'도 연구 (지디넷코리아, 2018.6.20)

 

이번 사태로 화웨이가 유럽시장에 주춤함에 따라 오포의 진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 특히 오포의 스마트폰 라인업은 중산층을 타깃하기 때문에 2018년 이후 저가 시리즈에서 차츰 플래그십으로 주력을 옮기는 화웨이의 고객층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보다는 통신장비로 보인다. 이미 유럽 각국의 통신사가 5G 런칭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화웨이는 미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42건의 5G 통신망 구축 사업권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 중 25건이 유럽, 10건이 중동, 6건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다. 한국의 경우 LG유플러스에만 장비를 공급했다.

* 관련 기사: 中 화웨이 "세계서 5G 계약 42건 수주" (매일경제, 2019.5.29)

 

ARM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면서 화웨이를 5G 통신망 구축 사업자로 채택한 유럽 통신업체는 통신장비 수급 또는 업그레이드 등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최근엔 국제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가 2019년 5월 30일 연 학술포럼에 화웨이 인력 참여를 불허한 일까지 있었다.

* 관련 기사: 세계최대 공학회도 화웨이 퇴출 (조선일보, 2019.5.31)

브뤼셀에 걸린 화웨이 5G 광고판 ⓒShutterstock

유럽시장을 손에 쥘 다음 기업은?

유럽에서 화웨이를 배제한 이동통신사는 BT(British Telecom)뿐이다. 그래서 미국의 으름장이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국은 화웨이를 배제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유럽연합은 2019년 3월 화웨이를 일괄 배제하지 않겠다고결정했다.* 향후 미·중 무역분쟁의 해결 과정을 관망하면서 화웨이를 선택한 결정을 취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화웨이를 언급하면서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해 중국이 성의 있게 협상한다면 다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음을 천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화웨이 쓰는건 자유"…EU, 대놓고 美 무시 (매일경제, 2019.3.24)

 

그러나 무역협상이 지연되고 화웨이의 통신장비 수급에 장애가 발생한다면, 유럽의 통신사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업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에릭슨, 노키아, 그리고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얻는다. 특히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부문에서도 화웨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저가형 라인업을 새로이 유럽에 선보일 수 있다.

 

또한 LTE 통신장비의 시장점유율은 6.6%에 불과했던 데 비해, 5G 통신장비의 시장점유율은 2018년 4분기와 2019년 1분기 말 매출 기준 37%로 1위로 올랐다.* 물론 이 37%라는 점유율은 5G의 초기 통신망 구축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70%가 집중돼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 관련 기사: 삼성전자, 글로벌 5G장비 점유율 37%로 1위…화웨이 앞질러 (매일경제, 2019.5.30)

 

그러나 화웨이가 계속해서 미국의 제재로 인해 곤경에 처한다면 삼성전자는 유럽 시장에서도 수혜를 입을 수 있다.

 

과연 이대로 화웨이는 유럽을 잃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