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 기술 하나 없는 프리랜서

스스로가 조직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행여 누가 볼 새라 꾹꾹 눌러 담기 바빴다.

 

강하게 버티고 무던하게 참는 것이 곧 능력인 이 사회에서 나약한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월급으로 풀칠하는 일개미에겐 징징댈 자격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런 자책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악다구니와 맞물려 묵직한 부담으로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감정의 벼랑 끝에 몰린 상태에서 문득 떠오른 '회사 체질'이라는 단어는 순식간에 마음의 수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지금껏 너무 개인적이고 사소하다며 애써 외면해 왔던, 내가 조직 안에서 불행했던 이유들이 봇물 터지듯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야근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상사의 지시를 기다리고, 윗선의 결재를 기다리고, 다른 팀의 자료를 기다리며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묶여 있는 시간은 1분 1초가 고문 같았다. 그렇게 긴 야근을 마치고도 기다리던 무언가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집에 온 날이면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게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일단 퇴근을 하면 스위치를 끄듯 회사 일을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책임이면서 남의 손에 달려 있는 그 일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직접 하고 말지'라는 부아 섞인 생각이 치밀었지만, 내게는 그 일들을 직접 처리할 권한이 없었다. 나는 조직의 일부에 불과했고, 조직의 일부에게는 업무의 일부밖에 맡겨지지 않으므로.

ⓒ서메리

남들 속도에 맞춰 후루룩 마시듯 먹은 점심은 늘 명치 언저리에 얹혀 있었고, 뻣뻣하고 갑갑한 정장은 5년 내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억울해도 웃고, 화가 나도 웃고,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웃어야 하는 그 모든 날들에 신물이 났다. 나는 점점 우울해졌고, 사람을 피했고, 급기야는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을 내 손으로 처리하느라 야근을 할 때면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이 그다지 짜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완성된 자료를 전송하고 퇴근하는 길에는 자못 보람찬 기분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