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방법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무너뜨리는 일은 드물지만, 벌어지지 않는 일은 아니다. 

 

블록버스터를 쓰러뜨린 넷플릭스와 같은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놀랍다.* 모든 면에서 불리한 작은 기업이 어떻게 큰 기업을 이기게 되는 걸까?

* 관련 챕터: 뉴욕타임스 - 마지막 블록버스터 매장을 찾는 순례자들 (PUBLY, 2018.4)

 

볼트는 최근 다임러와 디디로부터 약 1억 7500만 달러(약 2060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유니콘'이 되었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우버보다 늦게 시작한 볼트가 폴란드와 케냐 등에서 월등한 차이로 우버를 이기고 있다는 것과 앞으로의 경쟁에서 어떤 전략을 차용할 것인지 알 수 있다. '승자독식' 시장이라 여겨졌던 차랑공유 시장에서 볼트는 우버라는 골리앗에게 맞서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건 민첩하고, 영리하고, 실력 있는 싸움꾼이지, 단순히 덩치가 크고 근력이 강한 골리앗이 아니듯,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싸움에서 이기는 건 항상 대기업은 아니다. 오히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스타트업인 경우가 많다.
- 배기홍 (스트롱 벤처스 제너럴 파트너, <스타트업 바이블> 저자)

이번 큐레이터의 말에서는 다윗 볼트가 어떻게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를 만들고 골리앗 우버가 가진 브랜드, 자본 등의 위협으로부터 버티며 성장할 수 있었는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 경쟁사로부터 회사를 보호하는 높은 진입장벽과 독점적 경쟁력을 일컫는 개념

 

1. 경쟁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방법이다

골리앗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골리앗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한 번에 많은 일을 균일한 수준으로 처리할 수 없듯이 큰 기업 역시 '지배적 플레이어(dominant player)'로서 가진 우위를 모든 시장에서 누릴 수 없다. 그 어떤 대단한 기업이라도 핵심 시장이 아닌 곳에서는 효용성이나 명중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은 이런 시장에 집중해 큰 기업과 '경쟁하지 않고' 도미넌트 포지션을 취할 수 있다.

 

차량공유 플랫폼의 예를 들어보자. 다양한 지역과 산업에 참여하는 우버는 모든 시장에서 출중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볼트와 같은 스타트업은 이런 시장을 목표로 삼고 이른바 '0'에서 '1'을 만들 수 있다.

 

작은 규모의 시장이라도 완벽하게 장악한 뒤, 인접한 이웃 시장으로 진입해 점차 전체 시장점유율을 늘려가는 전략이다.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기업가인 피터 티엘(Peter Thiel)은 저서 <제로 투 원>에서 스타트업은 먼저 작은 시장 하나를 독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시장에서 만든 장악력으로 주변 시장으로 점차 진출하는 것이 0에서 1로 갈 방법이라는 것이다. 100조 원짜리 시장에서 1%를 얻는 것보다 1조 원짜리 시장에서 100%를 얻는 것이 같은 10억 원의 가치를 만들면서도 경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낫다는 말이다.

피터 티엘은 그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작은 스타트업이 큰 기업과 경쟁하는 법을 말한다. ⓒDaria Nepriakhina/Unsplash볼트는 변두리 시장에 주목했다

우버가 700여 개 시장에서 수십억 달러를 써가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사이, 비주력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과 낮은 수수료로 볼륨을 크게 키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결제 방법을 지원하면서 우버보다 더 크게 환영받았다.

 

2. 아끼고, 집중하고, 민첩하게

대기업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가난함이다.

 

역설적이지만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은 이 가난함을 동력으로 삼아 대기업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우위를 챙긴다. 바로 검소함(frugality)과 집중력(focus) 그리고 민첩함(nimbleness)이다.

 

현금이 부족하니 무엇이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며, 선택지에 올인해야 한다. 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인다. 작은 기업은 생존을 위해 하는 행동이 때로 큰 기업이 따라 할 수 없는 전략이 되는 것이다.

 

우버는 인건비가 가장 비싼 지역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뉴욕이나 런던, 시카고, 싱가포르 등 주력 시장에는 본사 못지않은 오피스가 들어서 있고 수십에서 수백 명의 직원이 일한다. 그에 비해 볼트는 인건비가 저렴한 에스토니아와 루마니아에 본사를 둔다. 각 지사에도 많아야 다섯 명 남짓의 직원을 둔다고 한다.

 

또한 볼트는 자율주행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 대목이 참 재미있다.

 

우버의 기업가치 1조 달러(약 1179조 원)는 자율주행을 상용화하고, 현재 시장의 모든 드라이버를 AI로 대체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산정된 액수다.

 

볼트는 이런 기술에 투자할 여력도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다고 못 박은 셈이다. 그럼에도 다임러와 디디에게 10억 달러(약 1조 1780억 원)의 가치를 평가받았다. 그만큼 볼트가 누구보다도(심지어 우버보다도) 차랑공유 플랫폼의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볼트의 R&D 역량은 지도와 경로 개발과 같은 기술 연구에 있다. 그에 반해 우버는 최소 20억 달러(약 2조 3600억 원)를 자율주행 연구에 쏟는다. 빌리그는 테크 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은 생각을 밝혔다.

자율주행은 완전히 과열되었습니다. 최소한 5년은 더 있어야 실질적인 무언가가 나올 겁니다. 앞으로 자율주행 기술에만 집중하는 회사가 더 많아지겠죠. 우리의 계획은 그들과 동업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이미 자율주행 기술에만 집중하는 기술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 나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는데, 거리에서는 수많은 회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율주행 기술을 검증한다.

* 여기서 다시 작은 기업은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테슬라도 얼마 전 장기적으로 자율주행을 활용한 공유 경제에 들어설 계획을 밝혔다.* 테슬라의 역량은 자동차와 자율주행에 집중되어 있으니, 우버를 상대하기 위한 사례(use case)를 찾을 것이다. 반면 볼트는 자율주행을 관련 기술 기업이 하게 두고 차량공유 시장에만 올인한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머스크 "테슬라 무인 자율택시 운행, 내년이면 가능" (매일경제, 2019.4.23)

 

월마트에서 근무하며 큰 기업이 변화와 속도 그리고 혁신을 아무리 외쳐도 작은 기업이나 스타트업의 민첩함과 혁신을 따라갈 수 없음을 느꼈다. 큰 기업은 하나에 집중할 수도 없고, 모든 분야에서 일정한 규모의 경제를 갖고 운영해야 한다. 주주의 이익 실현을 위해 당장 결과를 내야 한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이런 점에서 작은 기업은 작은 기업만이 가질 수 있는 우위를 이용해야 한다.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해 올인하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비용을 아끼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3. 핸디캡이라는 특별 카드

우버는 이전에 없던 서비스인 차랑공유 플랫폼을 만들고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드라이버와 고객 교육이 필요했고, 각 지역의 규제를 만드는 당국과도 부딪쳐야 했다. 선도자로서의 어려움과 운영적 한계를 직접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우버는 마켓플레이스를 열며 시작이라는 어려움과 운영적인 한계를 몸으로 부딪치며 해결해 나가야만 했다. ⓒMarkus Spiske/Unsplash하지만 볼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드라이버와 고객에게 차랑공유 서비스는 익숙한 방식이다. 우버의 방식을 각본 삼아 처음부터 효율적인 운영을 실현할 수 있었고,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서비스가 거부당한 사례를 통해 배울 점을 찾았다.

라스트 무버는 누가 될 것인가

첫 번째, 최초, 개척자와 같은 키워드는 결과만 놓고 봤을 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남는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피터 티엘은 스탠퍼드 대학 강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퍼스트 무버'가 아니라 '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지막 OS가 될 것입니다. 최소한 향후 몇십 년까지는요. 구글도 마지막 검색 엔진입니다. 페이스북 역시 마지막 소셜네트워킹 사이트가 된다면 가치를 보존할 수 있을 겁니다.
-  '어떻게 스타트업을 시작할 것인가(How to Start a Startup)' 강연 중에서

퍼스트 무버는 우버였지만, 누가 라스트 무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는 타이틀은 사업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게임을 할 때 나중에 참가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핸디캡'이라고 부른다. 작은 스타트업은 이 핸디캡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에스토니아라는 국가도, 볼트라는 기업도 낯설 것이다. 나 또한 이번 기사를 통해 볼트를 처음 접했다. 하지만 마커스 빌리그의 여러 인터뷰를 읽으며, 어쩌면 볼트도 머지않아 우버만큼이나 큰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볼트의 이야기는 한국 스타트업이 가는 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스타트업 중에는 이미 메이저 시장인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공한 모델을 가져와 현지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많다. 이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 시장에서 아끼고, 올인하고, 빠르게 움직여 라스트 무버가 되도록 고민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