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사는 명품

The world's only
mass luxury market
(명품이 대중화된 유일한 시장)

1980~1990년대 일본의 별명입니다. 외신들은 일본 여성 10명 중 9명이 루이뷔통(LOUIS VUITTON) 가방을 들고 다니는 현상을 보도하며 이러한 별명을 붙였습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큰 럭셔리 시장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당시 명품의 주요 소비층은 1946년~1951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였습니다. 이들은 일본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주역으로 활동했고, 경제적 지위가 올라간 만큼 명품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소비 성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럭셔리 시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경기 침체로 월급이 제자리걸음을 했고, 비정규직이 늘어 스스로 부유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명품에 쓰는 돈도 줄었습니다. 이제 일본에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물건을 사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주를 이루는 밀레니얼 세대는 과시형 소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 일본의 명품 시장 규모는 2007년 3조 7000억 엔(한화 약 40조 원)에서 2012년 2조 7000억 엔(한화 약 29조 원)으로 감소했다. 최근 경제 회복과 맞물려 2013년부터 명품 소비가 회복세를 보여 2016년 3조 6000억 엔(한화 약 39조 원)을 달성했으나, 중국인 관광객에 의한 소비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McKinsey&Company, <2017 Japan Luxury Report>, 2017.)

 

그렇다고 밀레니얼 세대가 명품을 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하는 이유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제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품질이 좋아서', '스타일이 좋아서' 명품을 구매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품 브랜드들은 일본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긴자의 명품 매장

최근 눈에 띄는 트렌드 중 하나는,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에 명품 브랜드들이 카페 혹은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현상입니다. 버버리(BURBERRY)는 런던에 카페를, 구찌(GUCCI)는 상하이에 레스토랑을 열었습니다. 서울에는 에르메스(Hermès)의 레스토랑과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의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인테리어, 식기, 메뉴판 등 곳곳에 로고를 배치해 최대한 브랜드를 노출한다는 전략입니다.

* 행정구역을 초월해 광역지역에 걸쳐 형성된, 일체화된 도시. 뉴욕·런던·도쿄·서울 등과 같이 도심을 중심으로 밀접한 기능적 관련을 맺고 있는 지역 위에 형성된다. (출처: 행정학사전)

 

도쿄 긴자(銀座)에 줄지어 있는 명품 브랜드 숍들도 비슷합니다. 제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직접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뷰티 숍 등을 운영하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긴자의 에르메스 매장 2층에는 아늑한 느낌의 작은 바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명품 중에서도 고가로 유명해 평소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저도 긴자에서 시간이 남으면 에르메스의 바에 들어갑니다. 영국 남성복 브랜드 알프레드 던힐(Alfred Dunhill) 매장 3층의 작은 바에서는 긴자 거리를 바라보며 가볍게 술 한잔을 할 수 있습니다. 구찌, 불가리(Bulgari) 등 유명 브랜드가 운영하는 카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바나 카페만이 아닙니다. 루이뷔통은 도쿄의 오모테산도(表参道) 매장 7층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샤넬(CHANEL)은 레스토랑고급 스파, 그리고 클래식 콘서트나 예술 작품 전시를 진행하는 넥서스 홀(Nexus Hall)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페나 갤러리에 방문한 고객들은 명품 브랜드에 노출됩니다. 대부분 카페와 바가 매장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브랜드 제품을 둘러 보게 됩니다. 고객들은 브랜드가 제공하는 편안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콘서트를 즐기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긍정적인 경험을 합니다. 명품 브랜드를 간접 경험하게 하는 일종의 마케팅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와 편의점의 만남

많은 매장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까르띠에의 사례는 더욱 특별합니다. 2018년 9월 21일부터 9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오모테산도에 편의점을 연 것입니다. 까르띠에와 편의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걸까요?

 

까르띠에 편의점은 까르띠에의 유명 디자인 중 하나인 저스트 앵 끌루(JUSTE UN CLOU)의 캠페인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마케팅 캠페인은 2018년 9월 저스트 앵 끌루의 디자인이 리뉴얼되면서 기획됐습니다.

JUSTE UN CLOU BRACELET ⓒCartier

애초 기획 의도는 심리적 문턱이 높게 느껴지는 까르띠에라는 브랜드를 친숙하게 어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까르띠에를 고급 브랜드로 느끼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까르띠에를 편하게 경험하길 바랐습니다. 실제로 편의점 고객의 상당수는 젊은이들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까르띠에 편의점은 긴자의 번화가 대신 20대~30대가 주로 모이는 동네인 하라주쿠(原宿)와 오모테산도 사이 주택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까르띠에가 만든 편의점은 무엇을 파는 곳일까요? 우선, 가장 눈에 띈 것은 10만 원 상당의 컵라면이었습니다. 컵라면 용기 안에는 라면 대신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레스토랑 산미(サンミ)*의 디너 코스를 이용할 수 있는 2인 티켓이 들어 있습니다. 1인당 5000엔으로 고급 레스토랑의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거죠.

* 산미는 연간 회비 12만 엔(약 120만 원)을 지불해야 이용할 수 있는 식당으로, 저녁 코스 요리의 가격은 1만 2500엔(약 12만 5천 원)이다.

까르띠에 편의점에서 판매했던 10만 원 상당의 컵라면 ⓒ스나오시 타카히사(砂押貴久)

또한 까르띠에 편의점에서는 유명 셰프와의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만날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 제작 도넛, 케이크, 오니기리 등을 팝니다. 그리고 까르띠에가 엄선한 세련된 디자인의 일용품도 판매합니다. 까르띠에 편의점은 까르띠에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여전히 격식 있게, 조금 더 친밀하게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 고객들은 브랜드에 친근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일본에서 젊은 사람들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명품 브랜드들의 전략은 계속될 것입니다.

 

매력적인 공간 경험을 내세워 기업들은 언론과 SNS 노출을 노립니다. 까르띠에의 독특한 기획은 신문 기사와 방송으로도 많이 소개됐지만,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유행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합니다. 인스타그램과 '빛나다'라는 동사를 합쳐서 만든 인스타바에(インスタ映え)*라는 말이 일본판 2017년 올해의 단어(2017年のユーキャン新語・流行語)에 선정될 정도입니다.

*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

 

까르띠에 편의점 사진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명 셰프가 만든 디저트와 10만 원짜리 컵라면 사진을 단 열흘 동안만 찍을 수 있다는 점이 20대~30대 인스타그램 사용자를 편의점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까르띠에 편의점 내부 전경 ⓒ스나오시 타카히사

까르띠에 편의점이 까르띠에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캠페인을 기획한 것도 아니었을 테고요. 까르띠에는 이 편의점에 'Precious'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일상이 특별하게 바뀌는 순간을 제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편의점 이벤트가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제공하고 브랜드에 대한 친밀도를 높였다면, 그 자체로 까르띠에의 기획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