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식주를 묶어 팔다

[콘텐츠 발행일: 2019.06.12]


5년 전, 여행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삼기 위해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에서도 특히 도쿄의 브랜드와 유통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한 옷가게에서는 의류와 함께 그릇과 식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소품 가게에서는 매장 안쪽 카페에서 건강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2층에서 옷을 파는 빵 가게도 보았습니다. 의식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세 요소가 통합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파고드는 마케팅 틈새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한 번 살아봐'라며
매력적인 생활을 제안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키워드는 화두입니다. 많은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을 마케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일본 기업을 분석한 책들도 서점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트렌드를 보면서, 일본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엿볼 수 있는 공간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도쿄에 사는 동안 조금 더 가까이에서, 조금 더 빨리 일본 기업들의 새로운 시도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건은 기본, 이제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마케팅이 일찍부터 시도되었을까요?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경제 상황입니다. 미국·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일본은 1990년부터 성장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합니다. 월급도 항상 그대로였기에 버블 경제 시대를 살아간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소비 행태를 보입니다. 자신의 부를 드러내기 위한 사치성 소비도 사라져 갑니다.

 

일본, 의식주를 묶어 팔다

[콘텐츠 발행일: 2019.06.12]


5년 전, 여행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삼기 위해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에서도 특히 도쿄의 브랜드와 유통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한 옷가게에서는 의류와 함께 그릇과 식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소품 가게에서는 매장 안쪽 카페에서 건강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2층에서 옷을 파는 빵 가게도 보았습니다. 의식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세 요소가 통합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파고드는 마케팅 틈새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한 번 살아봐'라며
매력적인 생활을 제안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키워드는 화두입니다. 많은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을 마케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일본 기업을 분석한 책들도 서점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트렌드를 보면서, 일본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엿볼 수 있는 공간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도쿄에 사는 동안 조금 더 가까이에서, 조금 더 빨리 일본 기업들의 새로운 시도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건은 기본, 이제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마케팅이 일찍부터 시도되었을까요?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경제 상황입니다. 미국·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일본은 1990년부터 성장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합니다. 월급도 항상 그대로였기에 버블 경제 시대를 살아간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소비 행태를 보입니다. 자신의 부를 드러내기 위한 사치성 소비도 사라져 갑니다.

 

두 번째, 공급자입니다. 일본의 제품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어 있습니다. 흔히 모노즈쿠리(ものつくり,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로 표현되는 장인정신의 DNA가 흐르는 일본인들은 편의점에서 파는 빵 한 조각도 훌륭한 품질로 제공합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디테일과 퀄리티에 집착하는 민족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멈추지 않고 품질을 개선합니다.

 

세계 최고의 품질에 익숙해지고, 월급이 오른 적이 없기에 소비에 인색해진 사람들은 물건이 아닌 경험을 사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가격과 품질이 차별점으로 작용하지 않는 시장에서 물건보다 연속적인 경험을 중요시하고, 경험에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세 번째, 소비자입니다.

일본 기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일본의 소비자들은 한국의 소비자들보다 개성이 강합니다. 인구수가 한국의 2배가 넘는 일본은 소비자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일찍 문호를 개방한 일본의 문화에는 외국 문화와 자국 문화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또한,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유행을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개성 넘치는 소비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일괄적인 매스 마케팅만으로 소비자를 사로잡기 힘들어졌습니다. 성별, 학력 등 일반적인 기준으로 소비자를 구분하는 것은 더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의 많은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이를 제품에 녹여냅니다.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사는 스타일은 어때?'라며 넌지시 말을 건네며, 브랜드를 통해 삶을 보여줍니다. 브랜드의 세계관을 열렬히 전파해 충성도를 올리고,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소비자를 설득합니다.

 

경험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주려는 일본 기업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인사이트를 줄 것입니다. 한국도 인구 감소·성장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대량 생산의 시대를 넘어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강해지는 사회로 변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마케팅 전략과 캠페인 중 일부는 일본에서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는 움직임입니다. 이 중에는 불과 두세 달 전에 오픈한 곳도 있고, 기간 한정으로만 선보인 곳도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성공 혹은 실패 여부를 말하기 이르고, 정량적인 기준으로 결과를 측정하기 힘든 사례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살펴볼 때는 당장의 성과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와 그 배경에 더 주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은 지금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미리보기

1. 잡지사는 왜 집을 팔기 시작했을까: 고객 세분화의 새로운 기준

린넬이 제안하는 집 내부 ⓒcasa liniere

비슷비슷한 컨셉의 여성 패션 잡지는 일본 잡지 시장에서 경쟁이 가장 심한 분야입니다. 그중 라이프스타일로 타깃을 설정함으로써 확고한 팬층을 확보한 여성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사는 의류 브랜드와 콜라보하여 제작한 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통해 여성 고객들에게 '이런 라이프 스타일은 어떠세요?'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집을 설계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2. 렉서스는 왜 카페를 운영할까: 브랜드와 삶을 연결하다

렉서스 미츠 스티어 앤 링 내부 ⓒ정희선

도쿄에서 자동차를 소유하면 서울보다 큰 비용이 듭니다.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자동차 쉐어링 서비스는 사람들의 자동차 구매 욕구를 점점 낮추고 있습니다. 니즈가 없는 소비자에게 성능으로 마케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렉서스(LEXUS)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자동차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세계 각지에서 모아온 상품, 이를 판매하는 공간, 렉서스다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이벤트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에게 브랜드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3. 까르띠에는 왜 편의점을 열었을까: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다

까르띠에 편의점 내부 전경 ⓒ스나오시 타카히사

일본에는 유독 명품 브랜드가 운영하는 카페가 많습니다. 명품 브랜드와 타업종의 콜라보도 자주 보입니다. 한때 명품 대국이었던 일본의 젊은이들이 더는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고, 사치 소비를 줄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일본 소비자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로 까르띠에(Cartier)는 2018년 9월, 도쿄의 오모테산도(表参道)에서 한시적으로 편의점을 운영했습니다. 까르띠에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또 명품 브랜드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는 무엇을 팔았는지 들여다봅니다.

 

 

4. 화장품 회사는 왜 독서 모임을 열었을까: 온라인이 줄 수 없는 경험

뷰티 관련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세이도의 에스 파크 뮤지엄 ⓒ정희선

카오(KAO), 시세이도(SHISEIDO) 같은 일본의 대기업이 만드는 화장품에 젊은이들이 식상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SNS로 인해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존재감을 높이는 화장품 회사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대규모 화장품 회사들에게는 브랜드 충성도 강화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시세이도는 브랜드가 전달하는 가치관을 전달하기 위해 시세이도만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 모인 여성들은 독서 모임을 열고, 불교 음식에서 모티브를 딴 건강에 좋은 점심을 먹습니다. 이처럼 시세이도는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을 아름답게 만드는 곳을 제공함으로써 여성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이노베이션 센터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5. 호텔들은 왜 컨셉에 집착할까: 색다른 경험이 제공하는 가치

호텔1899도쿄 내부 ⓒホテル1899東京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민박 산업을 허용하면서 호텔 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 호텔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독특한 컨셉을 구현한 호텔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열차 객실을 재현한 호텔, 차 문화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호텔들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만화에 둘러싸인 호텔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팬심' 가득한 내국인들까지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6. 의류 브랜드들은 왜 호텔을 오픈할까: 고객과의 관계를 넓히다

긴자의 무인양품 호텔 ⓒ정희선

일본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의류 소비액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젊은 소비자들은 필요와 유행에 따라 의류를 사서 입고 버리는 소비 패턴을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지갑을 열 수 있을까요?

 

일본의 의류 브랜드들은 업종과 업태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다른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합니다. 기간 한정 상품도 자주 기획합니다. 다양한 브랜드의 큐레이션을 통해 스타일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고객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호텔을 만들고 주택까지 제안하는 브랜드가 눈에 띕니다.

 

 

7. 편의점은 왜 피트니스 센터를 열었을까: '더 자주'보다 '더 오래'

훼미리마트의 피트니스 센터 피트 앤 고 ⓒ정희선

다른 유통 채널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일본 편의점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습니다. 편의점 업계는 자신들의 점포를 '들르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는 한 명이라도 더 방문하고, 1분이라도 더 머물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매장 2층에 피트니스 센터를 만들고, 코인 세탁기도 설치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스탠딩 바를 설치한 편의점도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하게 활로를 모색하는 일본 편의점 업계의 현재를 살펴봅니다.

 

 

8. 백화점 1층의 반이 음식점인 이유는?: 섬세하거나 벗어나거나

다카시마야 백화점 신관 1층의 죽 전문 레스토랑 ⓒ정희선

일본의 백화점 업계는 20년간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 아울렛, 대형마트 등 다양화된 유통 업계에서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백화점의 변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최근 새롭게 변신한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의 백화점들은 지역 주민들의 특성과 니즈를 파악해 층별 구성을 파격적으로 바꿨습니다. 직장인들을 위해 1층의 반을 음식점으로 채우고, 개점 시간을 오전 7시 30분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른 유통 채널보다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 백화점들의 생존 전략을 살펴봅니다.

 

 

9. 책꽂이를 사야만 살 수 있는 책: 맥락이 있는 큐레이션

4권 혹은 5권으로 구성된 허밍버드 북쉘프의 책꽂이 ⓒ정희선

오프라인 서점은 전 세계적으로 위기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서점은 책을 파는 것을 넘어 다른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졌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서점의 변신이 일본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서점별로 타업종과 콜라보하거나 큐레이션에 힘을 쓰기도 합니다. 그중 책과 책을 꽂는 가구를 묶어서 함께 파는 서점은 큐레이션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10. 일본의 이발소는 왜 술을 팔까: 새로운 서비스가 된 커뮤니티

티럭 매장 내부 ⓒ정희선

일본의 미용업계는 경쟁이 심화하면서 결국 가격으로 승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으로 승부하는 전략은 미용실이나 이발소의 중요한 과제인 고정 고객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취미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거나 편안하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미용실, 이발소가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특히, 주류 면허를 취득하고 술까지 제공하면서 고객들이 편안하게 오래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케이스가 눈에 띕니다.

 

 

11. 잡지 부록으로 고급 소고기를 주는 이유: 스토리텔링이 만드는 부가가치

무인양품 유락초점의 야채 판매 코너 위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생산자의 스토리 ⓒ정희선

농촌과 지역 경제의 침체는 일본의 오래된 문제입니다. 일본은 그동안 1차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한 잡지가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굳건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거죠. 잡지의 부록은 농부 혹은 어부가 직접 생산한 소고기, 조개 등입니다. 구독자들은 스토리가 담긴 농산물을 먹으면서 생산자의 팬이 됩니다. 이는 구독자와 생산자의 연결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집니다.

 

 

12. 매일 캠핑하는 집에서 무엇을 얻을까: 집으로 원하는 삶을 팔다

베스의 로그 하우스 전경 ⓒ정희선

일본인 중에는 집을 구매하지 않고 평생 렌트해 사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이렇듯 내 집 마련에 대한 의지가 한국처럼 강하지 않은 일본의 주택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통나무집, 즉 로그 하우스라는 틈새시장(niche market)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 중입니다.

 

로그 하우스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싶은 가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는 거주자들은 직접 나서서 로그 하우스를 알립니다. 거주자들이 열렬한 팬이 되어 홍보에 앞장서는 집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