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매력을 현세대에게 어필하려면

사람이 붐비지 않는 한적한 시간에 여행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보통 이른 아침부터 일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후 세 시에서 네 시쯤엔 충전이 필요해집니다. 하루 일정 중간에 카페를 꼭 넣는 이유입니다. 카페에서는 잠시 쉬면서 하루 동안 보고 느꼈던 것을 정리하는데요. 한 공간에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저에게는 여행의 일부입니다.

 

더군다나 교토는 일본 내에서 커피 소비량이 제일 많을 정도로 커피를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커피를 경험하기 위해 교토를 일부러 찾기도 합니다. 카페 문화를 경험하는 것 또한 교토를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여행 전부터 가볼 만한 카페를 수소문했습니다. 블로그, 가이드북, 여행 앱 등을 뒤져 찾아본 결과 모두가 공통으로 추천하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바로 교토의 전통 금속 공예 브랜드인 카이카도(Kaikado)가 운영하는 카이카도 카페(Kaikado Cafe)입니다.과거 노면전차의 차고 겸 사무실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빈티지스러운 느낌이 묻어난다. ©생각노트2016년 5월에 문을 연 카이카도 카페는 '차즈츠(茶筒: 차를 넣는 통)'를 전문으로 만드는 전통 공예 브랜드인 카이카도가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만든 카페 겸 상점입니다. 1927년에 만들어진 시영 노면전차의 차고 겸 사무실로 쓰였던 공간을 활용해 '브랜드의 전통'과 '공간의 역사'까지 두루 갖췄습니다.

 

카이카도가 이곳에 카페를 만든 이유는 '전통의 현대화'에 있습니다. 점점 외면당하는 전통 공예를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겠다는 것이죠. 카이카도의 6대 CEO 야기 타카히로와 매니징 디렉터 코스가 타츠유키는 이 공간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관련 기사: "공예도 보통의 비즈니스" 6대째 이어온 교토 수공예 기업의 비결 (중앙일보, 2018. 04. 16)

2년 전 교토에 카이카도 카페를 만들었다. 좋은 물건을 체험해 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카페에서 400년 된 도자기 컵이나 그릇·차통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공예가 쉽게 전달되는 효과가 있다.
- 야기 타카히로

젊은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20대는 돈이 없어서 좋은 물건을 살 수 없다. 하지만 갖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수는 있다. 이들이 30대가 되면 비싸더라도 오래 쓸 수 있는 것들을 구매한다.
- 코스가 타츠유키

차통 한 개를 만들 때도 장인 서너 명이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만들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럼에도 이 브랜드가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판매로 즉시 연결되지 않더라도
금속 공예 제품에 대한 취향을
미리 쌓아두기 위해서입니다

당장 구매력이 없을지라도 카페에서의 경험이 누적되면 결국 이들이 미래의 소비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카페를 찾는 젊은 사람 중 몇몇이 카이카도 공예품의 매력을 알아줄 것이다, 이들이 구매력을 갖췄을 때 가장 먼저 제품을 구매하는 충성 고객이 될 것이다, 라는 믿음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거죠. 매장의 원목 인테리어 덕분에 환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생각노트공간 곳곳에 놓여 있는 카이카도 차통. ‘저 물건은 무엇일까?’라는 궁금함 때문에 가까이 가서 구경하게 된다. ©생각노트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수익을 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는 사업이라면 힘들겠죠. 하지만 카이카도는 전통 금속 공예를 오랫동안 지켜왔습니다. 몇 년 반짝하고 사라질 브랜드가 아니라 앞으로도 수십 년, 수백 년 교토에 남아 있을 브랜드이기에 장기적인 관점으로 사업을 운영합니다. '느린 판매'가 꽤 잘 어울리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인 셈이죠.

 

또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홍보 방식입니다. 전통이 계승되기 위해서는 전통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새로운 고객이 찾아오게끔 만들어야 하는데요. 젊은 세대가 찾아올 만한 멋지고 세련된 카페를 만들고, 이 공간을 통해 그들의 전통 공예 제품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방식을 선택한 카이카도의 홍보 방식은 그래서 더욱 돋보입니다.

 

카페 곳곳에는 차통이 놓여 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전통 아이템을 쉽게 관찰하고 만져볼 수 있게 한 거죠. 다가가기 힘들고 고루한 공예 작품이 아니라 카이카도 카페의 '굿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층에는 별도의 쇼룸을 갖춰놓아 카페에 온 고객이 전통 브랜드에 대해 깊게 알아갈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객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카이카도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팔지 못하더라도 먼 미래를 생각하는 '슬로우 세일즈'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합석'과 '공유'의 차이는?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원목으로 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괜찮은 자리를 잡기 위해 카페 내부를 둘러봤는데, 큰 테이블 하나밖에 공석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혼자 왔는데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왠지 죄송스럽게 느껴져 선뜻 앉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제 표정을 읽으셨는지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공석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곳에 앉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 테이블은 공유 테이블(Share Table)입니다.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앉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이 설명을 듣자 미안한 마음이 살짝 누그러졌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앉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었죠.

 

실제로 20분쯤 후에 여행자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분 역시 저처럼 자리가 없어 머뭇거렸는데요. 직원은 제게 다가와서 합석을 해도 괜찮겠냐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물었고, 저는 이미 안내를 듣고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가게와 자리 없는 손님 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을 찾을 수 있었죠.

 

이렇게 모두가 만족하는 합의를 본 것은 안내의 차이 덕분입니다. 아예 다인용 테이블을 공유 테이블로 정해두고 그 테이블에 혼자 앉는 분께 미리 양해를 구했기 때문에 불쾌감 없이 합석할 수 있었으니까요.

공유 테이블에 앉아서 가게를 본 모습 ©생각노트

 

합석이 가능한 좌석에 앉는 조건으로 음료값 일부를 할인해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게 입장에서는 한 테이블에 여러 고객을 받을 수 있어서 효율적이고, 고객 입장에서는 눈치 볼 일 없이 할인까지 받으면서 카페에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걸 느끼면서, 대각선에 앉은 합석 손님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했습니다.

물잔 하나에도 디테일이 숨어 있다

카이카도 카페에서는 앉을 자리를 정하면 직원이 메뉴판과 함께 물컵을 가져다줍니다. 처음엔 '컵 중간에 볼록 나온 선이 있어 독특하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건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직원이 가장 먼저 가져다주는 컵 ©생각노트그러다 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두 손님의 물컵을 흘깃 보게 되었습니다. 제 물컵과 다를 뿐 아니라 두 손님의 물컵 디자인도 서로 달랐습니다. 이 카페의 모든 물컵은 디자인이 제각각이었던 것입니다.

 컵 디자인이 서로 다르다. 이 덕분에 일행의 컵이 헷갈리는 일이 없다. ©생각노트식당에 여러 명이 함께 가면 어느 물컵이 내 컵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이거 네 컵이야?" 물을 때도 많죠. 같은 디자인 컵에 투명한 물이 담겨 있으니 그 차이를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카이카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예 디자인이 다른 물컵을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높이가 짧고 통이 넓은 컵을, 옆자리 손님은 높이가 길고 통이 좁은 컵을 쓴 것처럼 말이죠.

 

손님이 대접받는 '첫 순간'을 카페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물잔 하나로 이 카페가 고객을 어디까지, 얼마나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배려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와 디저트를 주문했습니다.

 

저는 따뜻한 얼그레이 티를 주문했습니다. 생각보다 쌀쌀했던 날씨에 잘 어울리는 차였습니다. 여기에 카이카도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는 치즈 케이크도 함께 시켰습니다. 추워서 잠시 움츠렸던 몸은 따뜻한 차 한 모금과 치즈 케이크의 깊은 맛에 이내 풀어졌습니다.

 

그때쯤 제 왼쪽 테이블에 음료가 나왔습니다. 총 두 잔으로, 한 분은 따뜻한 커피, 한 분은 아이스 라떼를 시킨 듯했습니다. 점원은 조심스럽게 컵 받침을 손님 앞으로 세팅했는데 아이스 음료를 시킨 분의 코스터가 독특했습니다. 메탈 소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언뜻 보면 수세미처럼 보이는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코스터에는 고객을 배려하는 두 가지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스 컵 받침으로 주는 메탈 소재의 코스터. 차가운 음료를 오랫동안 유지해주고 물방울이 컵 바닥에 맺히지 않도록 해준다. ©생각노트첫째는 고객이 주문한 아이스 음료의 시원함이 더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바람입니다. 메탈 컵 받침으로 되어 있어 열 소모율이 적은 덕분에 음료가 조금이나마 더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이스 음료가 오랜 시간 동안 고객 옆에서 '아이스 음료'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둘째는 바로 컵에 맺히는 이슬이었습니다. 보통 아이스 음료의 컵 표면에는 물방울이 맺히고, 그 물방울들은 컵 바닥으로 흘러내립니다. 그래서 컵을 들고 마시다가 컵 바닥의 물방울이 입고 있는 옷 위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카이카도 카페에서 아이스 음료를 마실 때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 송송 뚫린 구멍을 통해 물방울이 테이블로 빠져나가 컵 바닥에 물방울이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컵을 들고 마셔도 물방울이 옷에 떨어지지 않죠.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컵에다 아이스 음료의 받침대라니, 대체 어디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냐고요. 하지만 제가 이 사소한 디테일을 발견한 뒤 카이카도에 대한 호감이 커졌듯이, 다른 누군가도 분명 이 작은 차이를 발견했을 테고 그 발견이 이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모두가 잘하는 시대입니다. 제품의 퀄리티는 상향 평준화되었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고객을 유인하는 곳은 너무 많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잘하는 사례'는 금세 퍼지고 이를 업에 적용하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조금 더 눈에 띄기 위해서는
결국 고객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드웨어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힘들다면, 해답은 소프트웨어에 있습니다. 고객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어떻게 배려하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집니다. 앞으로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기준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습니다.

세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느낀 점

조금만 쉬었다 가야지 했던 것이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휴대폰과 카메라를 충전하며 카페와 카페 내부에 있는 손님들을 관찰하고, 이런저런 생각의 타래를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습니다.

 

도쿄 여행 때도 '도시 지성인을 위한 도서관'이라는 컨셉의 아카데미 힐즈에서 여덟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도시를 알차게 살펴야 하는 관광객치고는 무척 여유 있는 일정이었죠.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이 시간을 도쿄에 머물렀던 시간 중 제일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도쿄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다양한 생각을 정리하고, 일본어도 모르면서 도서관에 꽂힌 책과 잡지를 마음껏 빼 와 훑어보던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시간을 버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여유를 마음껏 누린 시간이었습니다.

 

교토에서는 카이카도 카페에서의 시간이 그랬습니다. 차와 케이크를 먹으면서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의 모습, 수다를 떠는 연인들의 모습, 혼자 여행 온 여행자의 모습 등을 관찰하면서 '진짜 교토의 일상'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고 느낀 것들이야말로 진짜 고객으로서의 관점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는 것보다, 카페에 세 시간 정도 앉아있으면서 더 많은 것을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테이블에 빈자리가 아예 없을 때 들어온 고객을 어떻게 안내하는지, 치즈 케이크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차 리필은 어떻게 제공하는지 등 고객 배려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요.

 

카이카도에서는 "괜찮으시다면 문 옆 창가 쪽에 앉아 계시다가, 테이블 자리가 나면 옮겨드리겠다"고 자리를 안내합니다. 치즈 케이크는 세팅할 때 가장 나중에 꺼내서 최대한 냉장고에 보관한 상태 그대로 고객이 맛볼 수 있게 준비합니다.

 

리필을 해줄 때에는 컵과 컵 받침을 아예 새 잔으로 바꿔주고, 차 우리는 시간을 타이머로 잰 뒤 정확한 시간에 찻잎을 뺍니다. 작은 디테일이지만 큰 차이를 만드는 고객 서비스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간을 버려야' 보이는 것들입니다.

최상의 차를 위해 타이머를 세팅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했다. ©생각노트그래서 누군가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시간을 버리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물론 각자의 여행법이 있으니 제 여행법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고객 중심적인 사례를 많이 목격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버릴 생각을 하고 멍 때리면서 그저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시간을 버리면서 생각난 것, 관찰한 것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생각노트 담요마저도 교토의 전통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노트이곳의 분위기도 장시간 체류의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온 곳인데도 여러 번 와본 것처럼 편안했던 이유는 실내를 가득 채운 원목과 식물, 그리고 그 중간중간 놓여 있는 금속 공예 상품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환한 원목과 어두운 컬러의 금속 공예는 조화로웠고 금속 공예의 딱딱함은 식물의 생기로 다소 풀어지는 듯했습니다.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묘한 조화에 이끌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넋 놓고 머물렀습니다.

 

배우 이제훈과 류준열의 쿠바 여행기를 다룬 JTBC <트래블러>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긴 여행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다

긴 여행은 물론 짧은 여행에도 쉼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저라면 잠시의 쉼표도 용납하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잠깐의 쉼이 주는 육체적·정신적 재충전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쉼이 있을 때만이, 오늘 하루 동안 놓친 게 무엇이었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여행에도 반드시 '쉼표'가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