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뉴스의 자기소개 시간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가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한다.

 

공감 콘텐츠는 미디어 업계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취직 준비하는 대학생, 보도자료를 쓰는 PR부서 직원, 회사 블로그를 운영하는 마케터 등 수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콘텐츠로 상대방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평소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콘텐츠 제작의 첫 단계인 글쓰기에 직면하면 머리가 굳고 맘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스브스뉴스팀에서 4년간 일하면서 10여 명씩 7~8기수에 걸쳐 인턴만 100명 넘게 교육했다. 이들을 빨리 성장시켜야만 내가 팀을 운영하는 게 편해지기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가르쳤다.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이들이 빠르게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내가 고안한 방법이 있다. 이른바 '공감콘텐츠 수업'이다.

 

인턴들의 첫 출근날, 첫 교육 시간이 되면 여느 회사가 그렇듯 우선 자기소개를 시킨다. 인턴들은 대부분 잔뜩 긴장해 있고, 나는 이 긴장감을 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 활용한다.

자, 지금부터 자기소개를 할 텐데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장점을 중심으로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누가 어떤 자기소개를 했는지, 다른 인턴 분들은 내용을 다 받아적고 기억하셔야 합니다. 잘 들었는지 나중에 테스트를 할지도 몰라요.

테스트란 말에 인턴들은 부리나케 펜을 꺼내고 노트를 펼친다. 첫 사람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발표 내용을 받아적느라 진땀을 뺀다. 말하는 학생의 얼굴을 쳐다보기는커녕, 박수쳐줄 여유도 없다. 받아적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차별점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다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기소개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더 부담스러워진다. 외국에서 살다 와서 4개 국어를 하는 사람의 자기소개를 듣고 다른 인턴들은 잔뜩 주눅이 든다. 페이스북 계정을 10만 명 구독 수준까지 키워봤다는 자기소개에는 모두가 '우와~'라고 탄성을 내지르면서도 다들 '나는 별 거 없는데…'라는 생각 때문인지 표정이 밝지 않다.

 

힘들고 불편한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자기소개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방금 여러분의 자기소개는 좋은 콘텐츠였나요? (침묵) 방금 여러분이 했던 자기 소개를 저는 '나잘난 콘텐츠'라고 정의합니다. 내가 잘났음을 입증하고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그런 이기적인 콘텐츠였죠. 이 불편한 느낌을 꼭 기억하세요. 이런 마음으로 콘텐츠를 만들면 보는 사람도 불편하기 마련입니다.

학교는 남보다 뒤처지지 말 것을 가르치고,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그런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운다. 그들이 배운 글쓰기의 목적은 누군가를 감동시키거나, 누군가와 공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좋은 점수를 받고 나의 뛰어남을 입증하기 위한 글쓰기다. 스브스뉴스가 만들려는 콘텐츠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나는 인턴들에게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라고 말한다. 인턴들은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고, 자기소개 평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닫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으로 인턴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글쓰기의 목적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였죠. 그러다 보니 두려운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무작정 '나는 글을 못 써'라며 글 쓰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어른들이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해요. 저도 글을 진짜 못 썼고 심지어 공포증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남보다 뛰어난지를 두고 인턴을 평가하지 않아요. 주변 동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평가하죠. 평소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거예요.

그리고는 한번 더 자기소개 시간을 갖자고 제안한다. 테스트 같은 것은 없으니 받아적지 말고 잘 들어볼 것을 주문한다. 앞서 했던 '나잘난 자기소개' 대신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걸 해줄 수 있는지만을 이야기하기로 한다. 예를 들어 4개 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필요할 때 영어, 중국어, 일어, 통·번역 다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A: 제가 이태원 근처에 사는데, 거기 맛집이란 맛집은 다 알거든요. 그 동네 가실 일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B: 심리학 전공인데 상담해주는 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힘든 일 있으면 밤 늦게라도 전화 주세요.

C: 막노동판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요. 궂은 일은 다 맡겨주세요. 윈드서핑도 잘 탑니다. 같이 속초 한번 가요.

두 번째 자기소개의 분위기는 180도 다르다. 서로 눈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자주 웃음꽃이 핀다. 중간 중간 '어,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와 같이 진심어린 리액션이 나온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다. 그리고 친해진다. 두 번째 자기소개를 마치고 나는 이렇게 첫 교육을 마무리한다.

저는 방금 여러분이 한 자기소개를 '공감콘텐츠'로 정의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스브스뉴스팀에서 만들 것은 '공감콘텐츠'예요. 두 번째 자기소개 시간에 여러분이 느낀 따뜻한 느낌을 꼭 기억하세요.

많은 학생들이 글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훨씬 좋아질 수 있다. 사실 어려서부터 많은 이들이 남보다 뛰어나보이도록 글을 쓰도록 배웠다. 점수를 잘 받아 합격하기 위해, 홍보효과를 극대화해 매출을 높이기 위해, 부장님께 인정받고 승진하기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글을 쓰는데 익숙해진 것이다.

 

공감 콘텐츠의 기본은 이타심이다. 글쓴이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콘텐츠 소비자다. 보는 사람에게 최대한 맞춰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인기가 없듯 이기적인 콘텐츠도 인기가 없다.

공감 콘텐츠와 비공감 콘텐츠의 차이 (자료: 하대석)대한민국의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나잘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공감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소비자를 중심에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번 장에서는 공감콘텐츠 제작에 도움이 될 두 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전략 1: 독자의 마음이 느껴질 때까지 묻는다

공감 콘텐츠는
상대방을 위한 선물이다

선물할 때 중요한 건 내 취향이 아니라 상대방의 취향이다. 아무리 좋은 걸 주더라도 상대방이 싫다면 실패한 선물이니까. 예컨대, 다이어트를 시작한 사람에게 고급과자세트를 선물로 준다면 그게 아무리 비싸더라도 민폐일 뿐이다.

 

글을 쓰기 전에 얼마나 많이 물어보고 쓰는가? 나는 최소한 다섯 명 이상에게는 얘기를 미리 들려주고, 피드백을 구한 뒤 쓰라고 조언한다. 스브스뉴스팀에서도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옆사람에게 스토리를 먼저 말로 얘기하고 반응을 관찰하게 했다. 반응이 매우 좋다면 글로 썼을 때 확실히 공감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상대방의 반응에서 어떤 부분을 빠뜨렸는지 알 수 있어 구성이 더욱 탄탄해진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안 된다. 답변자의 속내를 정확히 읽어내지 않으면 물어보나 마나다. 특히 가까운 사이라면 예의상 '재밌네'라고 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한 가지 노하우는 손짓, 몸짓, 표정, 숨소리 등 상대방의 비언어적 반응(Non-verbal communication)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딱 보면 티가 날 만큼 격한 반응만 'OK' 신호로 인정할 수 있다. '음… 좋은 것 같아' 정도의 미적지근한 반응은 예의상 한 말일 가능성이 크다. 대중이 이 글을 본다면 대충 보고 지나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이런 반응은 과감하게 'NO'라고 받아들여라. 10명 중 5명 이상이 'OK'라면, 그 콘텐츠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게 바로 스브스뉴스팀의 회의 방식이다. 이 아이템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반수를 넘으면 그게 무엇이든 채택한다. 반대로 과반수를 넘지 못한 아이템들은 무수히 걸러졌다. 팀장인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채택된 아이템이 영상 혹은 카드뉴스로 만들어지고, 그 중 많은 콘텐츠가 대박을 터뜨렸다.

 

탈락된 아이템들이 아쉽다고? 워런 버핏이 말했다. 최소 중전안타 이상 칠 수 있는 볼을 골라서 그것만 때려야 한다고. 그렇게 투자해야 수익률이 높다.

나쁜 공에는 배트를 멈추는 게
진짜 실력이다

전략 2: 논리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느끼게 하라

세상에는 두 가지 글이 있다. 하나는 이미 답을 내린 상태에서 독자에게 그 답을 주입하려고 논리를 펼치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글이다. 나는 전자를 설득체, 후자를 묘사체라 부른다.

 

같은 내용도 설득체로 쓰느냐, 묘사체로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 공감을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독자에게 논리를 주입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묘사해 느끼게 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설득(설명)적인 글쓰기는 학교에서 주야장천 들어왔기 때문에 일단 지겹다. 듣자마자 '저 말이 맞을까? 틀릴까?' 판단부터 하게 되는데, 만약 자기 생각과 다르다면 글을 외면한다. 공감을 위한 글쓰기라면, 독자를 이성적으로 만들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대형마트 시식코너를 떠올려 보자. 고객들은 먼저 맛을 본다. 맛본 뒤에 관심이 생기면 그제서야 판매원이 밝게 웃으며 이 식품의 뛰어난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논리적 사고를 하기 전에 맛을 체험하고 호감부터 갖게 된 소비자는 강렬한 구매욕을 품는다. 제품의 좋은 점을 일일이 설득할 필요도 없다. 우선 겪어보게 하는 거다.

 

묘사하는 글쓰기는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냥 한번 겪어보게 한다. 이성적인 논증보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독자가 논리적으로 따질 새도 없이 감성적으로 몰입했다면 글쓴이로서는 이미 성공이다. 분별도 판단도 필요 없다. 그냥 겪었고, 느꼈을 뿐인데 마음이 움직인다.

 

반면, 설득체 문장을 본 독자는 설득당하지 않기 위해 논리로 대응한다. 독자는 수긍하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글쓴이가 설득에 성공할 확률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설득체는 공급자가 전문가이거나 명성이 높은 사람일 때만 효과가 있다. 글쓴이가 전문가가 아니라면, 독자를 공감시키기에는 묘사체가 더 유리하다. 묘사체는 겸손한 태도로 독자를 대하므로, 판단할 권리를 독자에게 넘긴다.

공급자(글쓴이)보다는
수요자(독자)를 위한 글쓰기다

 

다음 글은 스브스뉴스에서 실제로 인턴이 썼던 초안이다.

# 연봉 0원짜리 변호사, 파산한 변호사는 누가 지켜주나요?

# 변호사 평균연봉이 1억 545만원 시대, 심지어 판사 출신 변호인은 100억 원대의 수임료를 받는 세상.

# 그런데 여기 연봉이 0원이라는 한 변호사가 있습니다. 바로 박준영 변호사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요. 어쩌다가 돈 잘 버는 변호사가 파산할 지경까지 된 걸까요?

# "엉뚱한 사람이 누명을 써서 형이 확정되고 복역을 한 상태라면 다시 재심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박준영 변호사는 엉뚱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이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재심을 진행해달라고 말하는 재심전문 변호사입니다.

#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은 2000년 8월 10일에 전북 익산에서 한 택시기사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입니다. 처음 용의자로 지목돼 징역을 살았던 한 소년을 벗기기 위한 재심청구 절차를 진행중입니다.

사실 위 초고를 작성한 인턴은 돈 안 되는 재심 사건만 도맡다가 파산 위기에 처한 박준영 변호사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앞섰다. 이 카드뉴스를 계기로 박 변호사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열 계획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 설득 의지는 그대로 글에 담겼다.

 

하지만 박 변호사가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할 경우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박준영 변호사라는 인물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독자가 공감할 확률은 낮아진다. 글쓴이의 속내를 들키는 바람에 효과가 반감된 것이다.

 

좀 더 효과적인 방식은 박 변호사를 옆에서 바라보듯 그 사건과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그때 그 시간으로 독자들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어렴풋이나마 박 변호사를 간접 체험하게 되고, 그러면 박 변호사라는 인물에 대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약자를 위해 희생해온 훌륭한 분이 망하게 내버려둘 순 없지."

바보 변호사 박준영의 이야기를 묘사체로 다룬 카드뉴스 ©스브스뉴스 (전체 콘텐츠는 주석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그래서 나와 인턴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구성을 바꿨고, 최종본은 위와 같이 나왔다.

잃어버린 그림을 찾았어요

어떤 한 콘텐츠가 깊이 소비되려면 '공감'이 필요하다. 공감이 없으면 앞부분만 보다가 이탈해버린다. 공감이 돼야 끝까지 보게 된다. 그렇다면 끝까지 본 독자가 콘텐츠에서 무엇을 느꼈을 때 그 콘텐츠를 공유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할까?

 

나에게는 한 편의 콘텐츠의 파급력을 계산하는 공식이 있다.

콘텐츠의 파급력 = 공감X진정성

여기서 공감은 앞서 말했듯 상대방(독자, 시청자, 수요자)이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성은 글쓴이(화자, 제작자, 공급자)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진솔한가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만 갖추면 작가가 썼든 기자가 썼든 인턴이 썼든 그 콘텐츠는 퍼져나간다. 논리적 완결성, 글쓰기 스킬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게 내가 스브스뉴스에서 4년간 일하며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진정성은 때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2016년 3월 스브스뉴스 페이스북 계정으로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화가 임세병 씨의 그림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것. 0.3mm 펜 하나로 3년 간 정성을 쏟아 그린 가로 10미터의 초대형 역작이었다.

 

임세병 씨는 프랑스 우체국과 경찰서, 한국 대사관 등을 전전하며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받아 절망하고 있었다. 한 인턴기자가 이 내용으로 카드뉴스를 해보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말렸다.

이게 뉴스가 될까? 우리가 카드뉴스 하나 만든다고 그림을 찾을 수도 없는데….

그러나 그 인턴은 물러서지 않았다.

3년이나 정성을 들인 그림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당연히 뉴스가 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너무 안타깝잖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에디터와 인턴들도 다들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인턴의 표정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결국 나는 고집을 꺾고 임세병 씨의 사연을 카드뉴스로 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카드뉴스가 완성될 무렵, 나는 그 인턴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 정도 카드뉴스 갖고 그림 찾아줄 수 있겠냐. 불어로 만들지 그랬어?" 그 인턴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더니 "좋은 생각인데요"라며 임세병 씨에게 본문을 번역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배송 중 사라진 그림…"3년을 훔쳐간 도둑을 찾습니다" ⓒ스브스뉴스 (주석을 클릭하면 전체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내 예상이 빗나갔다. 임세병 씨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면서 이 카드뉴스는 놀라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페이스북에서만 2백만 명에게 도달했다. 외국인들도 이 카드뉴스를 공유하며 프랑스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곧바로 임 씨의 딱한 사연은 프랑스인들의 SNS에서 이슈로 떠올랐다. 배포 이틀 뒤인 2016년 3월 31일, 유력 인터넷 매체인 '매셔블(Mashable)' 프랑스판은 임 씨 사연을 비중 있게 보도했고 '버즈피드(Buzzfeed)' 프랑스판도 4월 1일 이 이슈를 다뤘다. 평소 배송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프랑스 우체국 실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드뉴스를 배포한 지 일주일이 지난 2016년 4월 4일 스브스뉴스 사무실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임세병 씨가 프랑스 우체국으로부터 그림을 찾았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한국으로 부친 그림은 보르도 지역으로 잘못 배송돼 그곳 분실물 센터에 보관돼 있었다. 임씨 사연이 이슈가 되자 프랑스 우체국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인 끝에 그림을 찾아준 것이었다.

 

우리는 <SBS 8 뉴스>를 통해 임 씨가 기적적으로 그림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후속 보도했다. 인터뷰에서 임세병 씨는 "스브스뉴스에서 기사가 나갈 때 불어 버전으로도 내주셨는데 그 불어 기사가 프랑스 커뮤니티나 인터넷 언론에서 다시 기사화되면서 이슈가 됐어요"라고 말했다. 스브스뉴스의 카드뉴스 한 편이 프랑스 사회를 움직였고, 임 씨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것이다.

<SBS 8 뉴스>에 보도된 임세병 씨의 사연 ⓒSBS다시 아이템 회의를 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이 주제를 다루지 말자고 한 내 의견에 맞서 "너무 안타깝잖아요!"라고 말했던 그 인턴. 그의 눈망울에는 무시무시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진정성이다. 내가 만약 그 인턴의 진정성을 무시하고 넘어갔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하마터면 내가 기적이 일어나는 걸 막을 뻔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