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또 믿으면 못 믿을 일 없건마는

스브스뉴스는 20대 대학생들을 인턴으로 뽑아 그들에게 제작을 맡겨보자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지금이야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프로젝트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기사는 제대로 훈련받은 기자가 써야 한다는 분위기가 보도국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 언론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뭐든 해봐야 했다. 결국 우리는 20대를 믿고 과감하게 펜과 카메라를 맡겼다. 믿을 신, 맡길 뢰. 어찌 보면 스브스뉴스의 탄생 배경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신뢰(信賴)였던 셈이다.

 

이상하게 나는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다. 20대가 발굴한 소식에 그들의 관점을 담고, 논리 구성이나 이미지 처리와 같이 기술적인 부분을 기존 기자들이 보완하면 쓸만한 콘텐츠가 나올 것 같았다. 팩트체크만 제대로 하면, 가볍고 톡톡 튀는 소재로도 믿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선 밀레니얼 세대가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 초중반 인턴들에게는 사실 SBS 방송국에 들어와 자기 손으로 직접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부담을 떨치기 위해서는 본인이 신뢰받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다음 두 가지 팁은 직접 20대들과 부딪쳐가며 깨달은 것이다.

 

1. 말대답을 제도화하라

오리엔테이션 때 나는 꼭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력서 보니까 나랑 15살 정도 차이가 나네요. 내가 학생한테 내용을 바꾸라고 조언했을 때, 말대답 하면 될까요, 안 될까요?

인턴학생은 약간 기가 죽은 듯 "안 됩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아니죠. 반드시 말대답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해서 여러분을 팀원으로 뽑은 거니까요. 자기 의견을 숨기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은 저희에게 필요하지 않아요. 팀에게나 본인에게나 엄청난 손해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제안해야만 배우는 것도 많을 테니까요.

물론 이렇게 말해도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분위기'가 곧장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다. 한국사회 조직문화가 워낙 굳건해서다. 그럴수록 끊임없이 말대답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이야기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칭찬해야 한다.

 

조금씩 효과가 나타났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은 물론이고 팀장인 나를 비꼬거나 공개적으로 놀리는 일도 점점 늘어났다. 때로는 속이 부글거렸지만 어쨌거나 내가 의도한 바 아니던가.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참아야만 했다. 그만큼 20대 팀원들의 사기가 올라갔고, 콘텐츠 품질도 좋아졌으니까.

 

2. 의견이 부딪칠 때는 팀장이 먼저 양보해라

언론사의 콘텐츠 제작 과정 중에는 '데스크'라는 단계가 있다. 기자가 쓴 기사를 팀장이 최종적으로 첨삭하는 과정이다. 데스크 과정에서 더 좋은 기사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호소력이 떨어지거나 기자의 본래 취지가 왜곡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자들은 그냥 참고 넘어간다.

20대만의 감성이 최대 무기인 스브스뉴스는 그럴 수 없다. 거꾸로 '팀장이 허락받는' 데스크 시스템을 만들었다. 보도국에선 팀장이 일방적으로 후배가 쓴 기사를 고쳐 쓰지만, 스브스뉴스에선 팀원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고치면 더 좋지 않을까?" 물어보면서 조금씩 고쳐나간다.

 

이미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익숙해져서인지 "그게 더 별론데요?"라는 반응도 자주 나왔다. 그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이유가 타당하다면 팀원의 의견대로 했다.


한번은 사소한 표현 방식을 놓고 토론이 길어져서, 내가 쓴 구성안과 팀원이 쓴 구성안을 단체 채팅방에 올려놓고 투표를 했던 적도 있다. 물론 누가 뭘 썼는지는 알 수 없게 했다. 팀원이 쓴 구성안이 뽑혔을 땐 팀장으로서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20대의 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권위보다 중요한 건 팀의 경쟁력이다. 권위를 내려놓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신뢰하면 팀 경쟁력은 확실히 올라간다.

당신이 생각하는 팀원의 위치

배움의 속도는
믿음의 농도와 정비례한다

이는 스브스뉴스의 20대 팀원들에게 4년간 제작 테크닉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신뢰받고 있다는 확신은 성장 속도를 높인다.

 

청소년의 동기와 성취에 대해 연구해온 미국 행동과학의 거장 캐럴 드웩은 <마인드셋: 스탠퍼드 인간 성장 프로젝트>이라는 책에서 '마인드셋' 개념을 소개했다. 성장 마인드셋은 곧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는 이 믿음이 클수록 실제로 성장의 폭이 크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검증했다.

 

성장 마인드셋은 사람마다 다르다. 특히 아직 성공의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가운데에는 성장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당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연연한다. 자신과 다른 팀원을 비교하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내 피드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상처를 받는 것도 모자라 '팀장님 앞에서는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라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구성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으니,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그들의 마인드셋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걱정이 많을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SBS 목동 사옥 앞의 교보문고를 찾는다. 평소처럼 리더십과 조직경영, 자기계발 코너를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다양한 책 가운데 특히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린 전설의 자기계발서다.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일화를 읽으며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떠올려 보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방을 바꾸고 싶다면,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상대방이 지금 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카네기는 헨리 포드의 이 말을 명심하라고 했다.

성공의 유일한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팀원과의 소통이 힘들었던 건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신경썼지 팀원이 원하는 것엔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그들이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만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그들이 뭘 원하는지 주목하고 있는가?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뭘까? 바로 자신의 성장이다. 나는 다시 이렇게 자문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솔직히 성장을 기대하지 않은 팀원도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일부 팀원의 성장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팀원들을 힘들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뼈저리게 반성하며 새롭게 결심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성장하게 될 거라고. 팀원이 지금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내가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해서라고.

 

그 뒤부터 나의 소통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컨대 한 팀원에게 장점 A와 단점 B가 있다면, 일단 장점 A부터 말하며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단점 B를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는 그다음에 꺼낸다.

 

"너는 B 때문에 큰일이야. 어서 고쳐야 해"가 아니라, "너는 A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B만 보완하면 대박 날 거야"라는 식으로 철저히 듣는 이의 관점에서 설득했다. 그 팀원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는데 오히려 더 밝아진 얼굴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더니 자리에 돌아갔다.

 

그때 중요한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조언받는 사람이 아니라 조언하는 사람의 마인드셋이라는 걸.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마음으로 얘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속으로 팀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듣는 사람도 팀장의 메시지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반대로 팀원이 잠재력 있다고 믿고 있으면, 듣는 사람도 팀장의 메시지를 더욱 성장하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인다. 조언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조언하는 사람의 태도이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 많았다. 팀원들을 빨리 개선하려는 욕심 탓에 그동안 팀원의 문제점이 보일 때마다 조목조목 지적하고 답답해했던 과거가 후회스러웠다. 본심이 어떻든 간에, '나는 잘났고, 너는 못났다'를 전제로 깔고 내뱉은 메시지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좋은 팀장은 질문을 많이 한다

내가 겪은 또 다른 변화는 지시보다 질문을 자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예전엔 누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면 '그건 이렇게 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되묻는 식으로 대화 패턴이 바뀌었다.

 

짧게 지시를 내리면 속전속결이 가능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음에도 또 내가 판단하고 지시해야 한다. 반면 질문식 대화는 시간이 좀 더 걸릴지언정 팀원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대화가 쌓이면 나중엔 팀원들이 먼저 '제 생각엔 이게 좋을 것 같은데, 팀장님 생각은 어떠신가요?'라고 묻는다. 자신을 믿게 된 것이다.

 

구성안에 대한 피드백을 줄 때, 내가 주로 지적했던 것이 구성 순서다. 순서만 살짝 바꿔도 글이 확 좋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엔 이런 지적에 고개를 떨구거나,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팀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마인드셋을 바꾼 후로는 똑같은 지적을 해도 팀원의 반응이 180도 달랐다. 갑자기 물개 박수를 치면서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우와, 대박! 진짜 그러네요! 그렇게 바꾸니까 훨씬 좋아졌네요! 감사합니다 ㅋㅋ

내가 마음속으로 팀원을 존중하면, 팀원도 느낀다. 팀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칭찬을 할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놀랍고도 기쁜 체험이었다.

 

내가 스브스뉴스팀에서 배운 믿음 기술을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어떤 조직이 될지는 어떤 팀장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 (자료: 하대석)조건 없는 신뢰의 열쇠는 '인정'이다. 팀원의 좋은 의도를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팀장이 팀원의 좋은 의도와 성장 가능성을 믿고 있다면, 팀원도 그만큼 더 빠르게 성장한다. 시간이 지나면 눈빛만 봐도 통한다. 서로 믿는 사람끼리는 긴 말이 필요없다.

 

스브스뉴스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책에서 피그말리온 효과* 같은 이론을 읽고도 무덤덤했다. "사람은 믿는 만큼 성장한다"라는 말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이해하는 팀장과 그렇지 못한 팀장 간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고 있다.

*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

 

믿음의 위력을 알게 된 뒤 20대와 일하는 게 너무나 편해졌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위축된 팀원을 보면 나는 오히려 기대가 된다. 언젠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은 전략이자 테크닉이다

믿음이란 테크닉은 펜치나 드라이버처럼 적재적소에 써먹어야 한다. 실제로 써먹어보니 효과는 놀라웠다. 누군가를 나를 철썩같이 믿어준다는 사실을 내가 알 때, 상상만 해도 힘이 불끈불끈 나지 않는가? 나는 그 힘이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실제 에너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철썩같이 믿은 뒤 그 사람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다. 밀레니얼 세대와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팀장이 있다면 주문을 외워보라.

이 팀원은 잘 성장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