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신입생에서 장학생으로

모빌리티(mobility)

지난 10년간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영역은 모빌리티 분야일 것이다. 앱으로 부르는 택시와 공유 자전거에 이어 공유 전동스쿠터까지, 그야말로 변화무쌍하게 발전해왔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우버와 리프트(Lyft)는 전에 없던 방식으로 성장했고, '모빌리티 분야에서 더 필요한 서비스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이상의 혁신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우버가 제공하는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도시의 교통체증은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걸어가기엔 멀어서 우버를 탔지만 차가 막혀서 더 오래 걸리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전동자전거 공유서비스가 생겨나면서 단거리 이동이 쉬워지는 듯 했지만, 자전거를 찾고 반납하는 장소(station)를 찾아야 하니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한 번에 이동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동스쿠터 공유서비스가 등장했다. 정해진 픽업, 반납, 충전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dockless)이 큰 장점이다. 모바일 앱으로 근처의 스쿠터를 찾고 잠금장치만 해제(unlock)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사용 후에는 원하는 곳에 세워놓고 '종료하기'를 누르면 된다.

 

이렇게 아무 곳에나 두면 충전은 언제, 누가 하느냐고? 밤이 되면 수거 전용 차량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스쿠터를 수거한다. 이들은 아침이 되면 도시 곳곳에 충전된 스쿠터를 뿌려놓는다. 충전 업무는 파트 타임으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에게 맡긴다. 실리콘밸리답게 '공유 경제'로 풀어낸 것이다.

앱으로 검색하면 근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쿠터들이 표시된다. ©Lime

동네에 장보러 갈 때나 짧은 거리를 매일 출퇴근할 때 우버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한 수단이 생긴 셈이다. 스쿠터를 구매하고 유지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정해진 곳에 반납하지 않아도 되니 애매한 거리를 빨리 가야할 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금액도 실제 사용 시간에 따라 분 단위로 계산하기 때문에 단거리 이동에 효율적이다. 집에서 2~3km 정도 떨어진 곳을 우버나 리프트로 이동하면 약 8~1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공유 스쿠터를 활용하면 대략 2~3달러만 내면 된다. 실리콘밸리에서 공유 전동스쿠터는 이미 '한 번쯤 타보는 여가 수단'이 아니라 '실제 교통수단'으로 사용된다.

후발주자 라임, 발빠른 세계화로 승부수

유저들의 불편함과 아쉬움을 정확하게 짚어낸 스쿠터 공유 서비스는 최근 1~2년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공유 스쿠터를 미국에 가장 먼저 소개한 버드(Bird)는 2017년 9월 창업하고 지금까지 4억 달러(한화 약 4470억 원)가 넘는 투자를 받았다.* 2018년 9월에는 서비스 개시 1년만에 1000만 라이드(탑승 횟수)를 달성하기도 했다.

* 관련 기사: E-scooter startup Bird is raising another $300M (Techcrunch, 2019.01.09)

 

라임(Lime)은 후발주자다. 하지만 가장 먼저 미국 외 지역으로 진출하며 세계화에 있어서 한발 앞서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고 넓게 스케일업(scale up, 규모 확장)에 집중하는 그로스 전략을 펼치며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준다. 라임은 2019년 1월 기준, 미국 대표 서비스인 버드보다 9개 더 많은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관련 기사: Lime vs Bird Scooters: How Do They Work? (Zebra, 2019.01.15)

 

라임은 2017년 1월 라임 바이크(LimeBike) 라는 공유 자전거 서비스로 시작해 2018년 초 스쿠터 서비스로 확대했다. 창업 2년 내에 기업 가치 10억 달러가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시장에는 후발주자로 진입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글로벌로 진출하고 스쿠터를 넘어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 서비스를 꿈꾸는 그들의 그로스 전략을 자세히 알아보자.

전략1: 거리를 선점하라

모빌리티 영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략은 일단 깔고 보는 것이다. '행동을 먼저하고 나중에 사과하라(act first and apologize later)'는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일단 서비스를 시작해 유저들의 사용 습관을 만들고 관련 법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에는 이미 해당 서비스를 지지하는 충성 유저들이 생겼기 때문에 규제기관을 설득하기 쉽다는 가정도 들어가 있다.

* 관련 기사: Electric-scooter companies conquer with a simple strategy: Act first, answer questions later. (The Washington Post, 2018.06.22) 

공유스쿠터를 타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종현

라임은 더 공격적이다. 후발주자임에도 미국 내에서 확장 속도뿐 아니라 세계 진출 역시 굉장히 빨랐다. 미국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 유럽 내 주요 도시로 진출했다. 우버가 서비스 시작 후 대략 3년 후에 파리로 첫 진출한 것을 생각해보면 공격적인 행보다. 다른 전동스쿠터 공유서비스들과 비교해봐도 2~3달은 빠르다.

 

라임의 빠른 세계 진출은 미국의 주요 대도시에서 진행된 공유 스쿠터 규제 분위기 때문에 느려질 수 있었던 성장 속도를 끌어올렸다. 실제로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허가를 받은 두 기업을 제외하고는 공유 스쿠터를 찾아보기 어렵다. 라임은 샌프란시스코 시 정부의 검토를 기다리는 대신 발 빠른 글로벌 진출을 택했다.

 

'깔고 보는' 전략은 확실히 스쿠터 업체에 효과적이다. 브랜드 로고로 도배된 스쿠터를 타고 달리기 때문에 주변의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각인시켜 저절로 마케팅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유저들이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계속 접하면서 한 번쯤은 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전략2: 쉽게, 더 쉽게

모빌리티 영역에서 초반 스케일업 싸움이 지나간 후에 본격적인 경쟁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서비스 본질을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이런 공유 스쿠터 경험 자체는 차별성이 크지 않아 유저들은 대개 처음 사용해보고 만족한 서비스를 계속 사용한다. 가격 경쟁은 제 살을 깎아 먹는 전략이다.

 

라임의 슬로건은 '언제든 사용하는 당신의 탈 것(your ride anytime)'이다. 버드의 미션이 '자동차 사용과 매연, 교통 체증을 줄여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to make cities more livable by reducing car usage, traffic, and carbon emissions)' 처럼 복잡하고 심오한 것과 달리 단순하고 명쾌하게 접근한다.

 

라임은 유저들이 처음 사용하는 스쿠터 서비스가 되기 위해 접근성이 쉽도록 만들었다. 슬로건뿐 아니라 사용하는 스쿠터 모델, 이용 방식과 결제 등을 모두 쉽게 만들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서비스'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이런 전략은 새로운 유저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차이점은 스쿠터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라임이 사용하는 전동스쿠터는 다른 스쿠터보다 발판이 더 넓고 핸들이 높다. 디자인 관점에서는 다소 투박하지만 사용하는 데에는 훨씬 더 안정감이 있다. 스쿠터를 처음 타보는 사람들도 조금만 익히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는 라임(왼쪽)과 간단한 정보만 보여주는 버드(오른쪽) ©Lime/Bird

앱을 사용하고 결제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앱을 열면 라임은 근처 스쿠터의 모델명과 모양, 등록 번호 등 자세한 정보를 간략히 보여준다. 배터리와 가격 정보도 한 번에 보여주기 때문에 편리하다. 반면 버드는 해당 스쿠터의 배터리 잔량 정도만 알려준다.

 

라임은 스쿠터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면 바로 잠금 해제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버드는 미국 운전면허증을 스캔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두 서비스 모두 미성년자가 사용할 수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버드를 사용하려면 추가적으로 미국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는 장벽이 있다.

라임의 결제 화면(왼쪽), 버드의 결제 화면(오른쪽) ©Lime/Bird

결제 방식도 라임이 편리하다.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이용 시간만큼 계산해 자동으로 결제가 된다. 하지만 버드는 계정에 최소 10달러 이상을 충전해두고 사용하는 방식이다. 충전하면 이후에도 버드를 사용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충성 유저를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초보 이용자에게는 10달러라는 선결제 금액은 꽤 높은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전략3: 종합 모빌리티 서비스로 진화하다

우리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사용한다. 라임은 이에 발맞춰 남들보다 빠르게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공유자전거 서비스로 창업한 라임은 유저들의 이러한 수요에 응답해왔다. 자전거 서비스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스쿠터 서비스를 시작했고, 서비스 이름도 '라임바이크' 에서 모든 서비스를 아우르는 '라임'으로 변경했다.

 

라임은 최근 시애틀에서 공유 자동차 서비스인 라임 파드(LimePod)를 시작했다.* 라임 파드는 1달러만 내면 공유 자동차의 잠금을 해지해 사용하고 분 단위로 비용을 지불하는 등 공유 스쿠터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한다. 라임은 이 서비스를 캘리포니아 등 주요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 관련 기사: Lime to expand from scooters to shared cars in Seattle. (The Verge, 2018.11.13)

 

라임은 최근 우버와 전략적 파트너십도 발표했다. 우버 앱에서 라임 앱으로 바로 연결하고 라임 스쿠터에 우버 로고를 부착해 각자의 서비스를 알리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우버는 앞서 공유 자전거 업체인 점프바이크(Jump bikes)와 비슷한 방식의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2018년 4월에는 해당 업체를 인수했다.

* 관련 기사: Uber Will Rent Scooters Through Its App in Partnership With Lime. (Bloomberg, 2018.07.10)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진화하는 배경에는 단순히 유저들의 다양한 요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명의 유저에게 스쿠터, 자전거, 택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게 한다면 유저 확보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미 앱을 다운로드한 유저들이 다른 이동 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새로운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므로 훨씬 수월하다.

기존 리프트 앱에서 바로 스쿠터를 검색하고 사용할 수 있다. ©Lyft

실제로 리프트는 최근 미국 내 몇몇 도시에서 직접 스쿠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출장 중에 몇차례 리프트의 스쿠터를 이용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리프트 앱에서 바로 스쿠터 사용이 가능해 진입장벽이 굉장히 낮았다. 리프트에 결제 정보까지 등록되어 있어 두 번 등록하지 않아도 됐다.

 

라임은 이미 스쿠터와 자전거 서비스를 운영하며, 우버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온디맨드 택시 서비스로도 확장을 추진 중이다. 적어도 스케일업 관점에서는 버드 뿐만 아니라 타 모빌리티 서비스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초반 스케일업과 지속성에 승부를 걸어라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얼마나 빠르게 스케일(scale, 규모)을 확보하는가'에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스케일업 전략이 수익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과연 지속할 수 있고 건강한 성장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때도 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다수의 스타트업이 초기 단계에서 수익성이 보장되는 그로스, 즉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고 많이 결제할 유저들을 유인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나 서비스가 잘 알려지지 않고 규모가 작은 상황에서 이러한 진성 유저들만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초기 모멘텀을 잃은 스타트업들이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스케일업은 지속성만 있다면 여전히 매우 효과적인 그로스 전략 가운데 하나다. 라임은 지금까지 성공적인 투자 유치로 스케일을 키우고 있는 성공 사례이다. 우버와 리프트는 적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온디맨드(on-demand)* 택시 서비스의 선도 업체로 자리 잡았다. 주변의 우려와 다르게 리프트는 모든 스타트업들의 꿈인 상장에 성공했고 우버도 곧 뒤를 이을 예정이다.

* 모바일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통해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즉각적으로 맞춤형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제 활동

 

공격적인 초반 스케일업을 달성하고 이를 유지할 자본을 지속해서 유치할 수 있는지에 따라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