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공존을 고민할 때

너무 많이 나온 얘기 같지만 한 번만 더 이야기할게요. 2016년 3월의 그 대결말입니다. 어지간해선 사람을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하던 그 바둑 대결에서, '사람 고수'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이세돌 9단을 구글 알파고가 압도해버렸습니다. 이후 몇 차례의 버전업을 거친 알파고는 바둑계를 은퇴했습니다.

 

이 대결 이후 사람들은 '사람을 뛰어넘는 AI'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터미네이터를 위시한 수많은 SF에서 그렸던 디스토피아가 더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낀 것이죠. '인공'지능이 대체할 '사람'의 지능을, 기계에 대체될 인류의 위치를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 불안감은 인류가 지금의 문명을 만들 수 있었던 궁극의 비결, 스토리텔링 영역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알파고가 사람을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영역에서 사람을 아득히 앞서버렸듯, 스토리텔링 역시 기계의 정복 대상에서 예외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 예를 들면 로봇 작가가 베스트셀러를 휩쓸 것이라든지….*

* 관련 기사: AI시대, 로봇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될 것 (한겨레, 2017.11.15)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로빈 슬로언이라는 작가의 사례를 보면 말이죠.

 

이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AI를 활용합니다. 음, 당연히 "오케이 구글, 소설 한 편 후딱" 이런 건 아닙니다. 어두운 밀실에서 로봇에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하는 것 역시 아니에요. 작가가 한 줄을 쓰면 AI 엔진이 그다음에 올 만한 문장을 '뿅'하고 내보이는 것. 네, 꼭 스마트폰 키보드 자동완성 같아 보이는, 그게 전부입니다.

 

물론 AI의 잠재력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이지만, AI 역시 다른 기술처럼 인류가 충분히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도구라 믿습니다.

사업 주체로서 그리고 지식노동자로서
우리는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무엇을' 준비할지 고민해야겠죠

슬로언은 AI를 창작의 속도를 높이고 퀄리티를 유지하는 도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AI에게 자신이 쓴 문장의 문맥을 분석시킨 뒤 다음에 올 문장을 빠르게 제안하게 하죠. 하지만 그 문장을 바로 채택하지는 않습니다. 참고만 할 뿐이에요. 이야기의 '발상'과 '선택'은 슬로언이 직접 합니다.

 

기사 속에 소개된 슬로언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AI가 그의 스토리텔링 작업에서 창의성이나 영감을 대체하거나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의 창의성을 돕거나 증폭시키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마치 조수를 여럿 데리고 팀으로 작업하는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어떤 경우에는 창의성의 증진을 위해서 오히려 AI를 더 적극 활용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특히 '막노동'성 작업이라 불리는 리서치, 아카이빙, 분석, 인사이트 추출에서 말이죠. 사실 AI의 주특기라고 할 만한 분야가 바로 이겁니다.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는 방식으로 각종 문제를 척척 풀어내고 있거든요.*

* 관련 기사: 바둑은 서막...'알파고' 생물학판 '알파 폴드'에 과학계 쇼크 (조선비즈, 2018.12.9)

ⓒUnsplash/Franki Chamaki자, 그렇다면 이제 중요해지는 건 AI를 어디에 어떻게 쓸 지입니다. 풀어야 할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질문을 AI에게 던질지 말이죠. 슬로언이야 속도와 효율을 위해 AI를 사용한다지만,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AI를 어떻게 이용할지, AI와 어떻게 공존할지 고민할 시기가 점점 다가옵니다. 이미 왔을지도요.

 

이제는 AI와 지식노동자, 예술가 사이의 관계를 '대체재'로만 한정하는 시선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요. 스프레드시트와 SQL이 데이터 분석가를 꽃피워줬듯, 어도비의 각종 툴이 미술 작업의 엄청난 효율을 가져다주었듯 AI도 그럴 겁니다. 그게 쿨하고 멋지죠. 가령 '이 기사에 가장 적절한 큐레이터의 말을 타깃 데모그래픽스별로 세 개만 뽑아줘'라든가요….

* 2018년 12월 NYT 큐레이션 발행 일정

12.18(화) 박상현 큐레이터
- [국제관계] 대립으로 가는 길
- 큐레이터의 말: 미·중 정면 대결이 의미하는 것
12.19(수) 이진우 큐레이터
- [테크] 스마트 스피커 마케팅? 두 번 물어볼 필요가 없다
- 큐레이터의 말: 스마트 스피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12.20(목) 손하빈 큐레이터
- [비즈니스] 가이 라즈의 '창업 성공 스토리'가 성공한 이유
- 큐레이터의 말: 어디서도 듣기 힘든 평범한 창업가의 뒷 이야기
12.21(금) 김현성 큐레이터
- [경제] 회복되기도 전에 식어버린 글로벌 경제
- 큐레이터의 말: 세계 경제 흐름을 바라보는 세 가지 키워드
12.22(토) 김홍익 큐레이터
- [테크] 컴퓨터 소설: AI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큐레이터의 말: AI가 창작까지 한다고?
12.24(월) 채수빈 큐레이터
- [비즈니스] 플란넬 연대기
- 큐레이터의 말: 죽어가는 산업을 살리려는 노력
12.26(수) 황수민 큐레이터
- [비즈니스] 상장 꺼리는 소기업, 미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다
- 큐레이터의 말: 테크기업에게 기업 공개는 어떤 의미일까?
12.27(목) 박혜민 큐레이터
- [사회] 구글 워크아웃: 사내 성추행 반대 시위
- 큐레이터의 말: 이야기가 반복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12.28(금) 구현모 큐레이터
- [테크]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방어에 나서다
- 큐레이터의 말: 페이스북, 영광의 시대는 지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