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도권이 바뀔 수 있는 변화의 시작

한국이 북한과 미국을 오가면서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미국의 진보세력이 트럼프와 러시아의 커넥션과 선거 개입에 집중하는 동안 21세기를 새롭게 규정할만한 큰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중국과 미국의 정면 대결이다.

 

트럼프라는 전례 없는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단순히 무역전쟁을 벌이는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흔한 무역전쟁이 아니다.

세계의 주도권
아니, 세계가 움직이는 표준이
바뀔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이다
앞서 큐레이션한 기사는 뉴욕타임스가 미·중 관계 정상화 40년을 돌아보는 5부작 기획기사, '중국, 세상을 지배하다(China Rules)'의 마지막 편이다. 기사는 현재 갈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으며, 어느 방향으로 치닫는지 설명한다.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지난 40년 동안 중국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생생하게 담았다. 전 편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면 큐레이션하여 소개한 5부 기사 외에 1부 '망할 수 없는 나라(The Land That Failed to Fail)'만이라도 읽기를 권한다.

ⓒShutterstock기사는 중국을 고립에서 꺼내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시킨, 냉전시대 외교의 설계자 헨리 키신저와 초기 트럼프 행정부 백악관 고문이었던 스티브 배넌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기자는 두 사람의 만남을 북엔드(bookend)*라고 표현한다. 공산주의 국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키신저와 '문명의 충돌'이라는 역사관 아래 정면 대결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참모를 중국에 대한 우호 관계의 시작과 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L자 모양 책꽂이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며 핑퐁외교를 시작한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외교전문가의 전략은 이랬다. '미국은 소련과 대결 중이다. 그런데 마침 소련과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고,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에 자본주의를 소개하고, 중국이 서방세계와 서서히 친해지면 궁극적으로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에 도움이 된다.'

 

이 전략은 일부 성공했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심지어 WTO에도 가입하며 무서운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미국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실력'이었다

중국이 다시 쓰는 방법론

5부작 시리즈의 부제는 '중국은 서구의 방법론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만의 방법론을 쓰기로 했다.(They didn't like the West's playbook. So they wrote their own)'이다. 이 말이야말로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다.

 

서구의 방법론이란 무엇인가? '경제성장은 국민의 권리 요구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민주화를 불러온다'는 논리다. 이는 서구 선진국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다. WTO, EU 등 서구 국가가 만든 경제체제가 바로 이 방법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인권이나 노동 조건 등 일정한 민주주의 장치를 갖추지 않은 상대와는 경제관계를 맺지 않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는 데, 이 역시 서구의 경제, 민주주의 발전사에 그 뿌리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언론은 "중국이 경제발전을 이어나가면 민주화 요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낙관했다. 그런 낙관론이 끝나고 "어쩌면 중국은 정치 민주화 없는 경제성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을 이뤄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게 약 10년 전이다. 그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바로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시작된 경제위기는 미국의 경제체제가 얼마나 허술하고 무책임하게 관리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거기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마저도 민주주의 특유의 혼란과 이권 싸움으로 얼룩졌다. 미국이 주저하는 동안 중국은 경제 역사상 유례없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고, 흔들리는 세계 경제를 안정시켰다. 마크 랜들러 기자에 따르면, 그 시점부터 중국은 미국 경제관료를 대놓고 무시하고 미팅에 나타나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중국은 경제력만으로는 세계 패권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구가 만든 방법론을 따라 한다면, 중국은 무능해 보이는 미국과 유럽에 유리한 게임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만의 '플레이'를 하기로 했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를 무시하고 남중국해를 장악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조건으로 하지 않은 동유럽 국가에 EU 대신 원조하면서 무역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Unsplash/Aaron Greenwood평소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우호적인 뉴욕타임스도 중국의 경제성장이 미국 노동자의 실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반(反)트럼프 진영은 중국과의 경제전쟁을 무모한 행동이라며 꾸준히 경계해왔지만, 중국에 대한 문제의식과 피해의식은 진보와 보수가 공유한다. 기사에서 오바마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경제관료였던 래리 서머스에게 묻는다.

그때 도대체 얼마나 양보한 겁니까?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한 라이언 하스(Ryan Hass)는 "트럼프 행정부가 문제는 제대로 진단했지만, 처방을 잘못 들고나왔다"고 지적한다.* 뉴욕타임스 역시 트럼프의 대응이 분명한 목표도 전략도 없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 관련 기사: Trump's China strategy is the most radical in decades — and it's failing (Vox, 2018.9.19)

 

이 글을 쓰는 동안 속보가 떴다. 캐나다 경찰이 미국의 의뢰를 받아 중국 테크기업의 대명사 화웨이의 CFO이자, 설립자의 딸인 멍완저우를 체포한 것이다.* 멍완저우의 체포가 미‧중이 무역전쟁의 휴전을 선언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2019년의 미‧중 관계의 극단적 대립을 예고한 기사의 무서운 현실화다.

* 관련 기사: 캐나다, 화웨이 멍완저우 CFO 체포 파문 (중앙일보, 2018.12.15)

 

물론 극단적 대립이 반드시 파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럼프는 벼랑 끝 전술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양보를 얻어낼 것이다. 미국은 아직 그럴 힘이 있으며, NAFTA 재협상을 통해 USMCA가 만들어졌듯 트럼프에게 무역은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승리한다 해도 미국 경제가 세계 2인자로 내려서는 과정에서 잠깐이나마 누릴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일 것이다.

* 관련 기사: China reportedly plans to slash auto tariffs — a huge win for Trump — and auto stocks are moving (CNBC, 2018.12.11)

** 대가를 치르는 승리, 패배와 다름없는 승리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 에피루스 왕 피로스가 여러 전투에 이겼지만 전쟁 부담을 견디지 못해 결국 패망한 것에서 비롯한 말

* 2018년 12월 NYT 큐레이션 발행 일정

12.18(화) 박상현 큐레이터
- [국제관계] 대립으로 가는 길
- 큐레이터의 말: 미·중 정면 대결이 의미하는 것
12.19(수) 이진우 큐레이터
- [테크] 스마트 스피커 마케팅? 두 번 물어볼 필요가 없다
- 큐레이터의 말: 스마트 스피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12.20(목) 손하빈 큐레이터
- [비즈니스] 가이 라즈의 '창업 성공 스토리'가 성공한 이유
- 큐레이터의 말: 어디서도 듣기 힘든 평범한 창업가의 뒷 이야기
12.21(금) 김현성 큐레이터
- [경제] 회복되기도 전에 식어버린 글로벌 경제
- 큐레이터의 말: 세계 경제 흐름을 바라보는 세 가지 키워드
12.22(토) 김홍익 큐레이터
- [테크] 컴퓨터 소설: AI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큐레이터의 말: AI가 창작까지 한다고?
12.24(월) 채수빈 큐레이터
- [비즈니스] 플란넬 연대기
- 큐레이터의 말: 죽어가는 산업을 살리려는 노력
12.26(수) 황수민 큐레이터
- [비즈니스] 상장 꺼리는 소기업, 미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다
- 큐레이터의 말: 테크기업에게 기업 공개는 어떤 의미일까?
12.27(목) 박혜민 큐레이터
- [사회] 구글 워크아웃: 사내 성추행 반대 시위
- 큐레이터의 말: 이야기가 반복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12.28(금) 구현모 큐레이터
- [테크]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방어에 나서다
- 큐레이터의 말: 페이스북, 영광의 시대는 지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