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하고 빛이 나는 우리의 순간들

예고도 없이 오로라가 나타나는 것과도 같다. <1박 2일>은 나에게 그랬다. 늘 그랬던 것처럼 헉헉거리며 산모퉁이를 돌았을 뿐인데, 그곳 하늘엔 지금까지와는 다른 징조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일단 팀워크가 좋았다. 아니, 단순히 팀워크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가 촬영장에는 넘쳐났다. 갖은 고비를 함께 넘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유대감이라고 불러도 좋고, 어쩌면 동지의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 그런 걸 확인시켜주는 순간이 있다. '번쩍'하고 빛이 나는 그런 순간이.

 

연기자와 스태프가 내기를 해서 스태프가 졌다는 이유로 빗속에서 얼기설기 천막을 치던 그 순간. 80여 명의 스태프가 한자리에 누워 복수에 이를 갈고, 연기자들은 또 그걸 보며 놀려대는 순간. 카메라감독은 카메라를 내팽개친 채, 빗물이 조금이라도 덜 떨어지는 자리를 찾아 기어들어가고, 그 장면을 오히려 연기자들이 찍고 있는 순간. 그 순간 <1박 2일>은 강호동의 프로그램도, 나영석의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빗소리와 웃음소리에 섞여 거기에 있는 모든 이의 마음의 소리가 순간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갑자기 내린 비는 차갑지만 유대감이라는 따뜻한 공기가 촬영장 전체를 감싸고 있다. 그렇게 번쩍 빛이 나는 순간이, 나는 매번 눈물이 날 정도로 황홀했다. 게다가 분위기가 좋으니 시청률도 덩달아 올라갔다. 모두 마치 당연하다는 듯 프로그램에 몸을 던졌고, 시청자들은 거기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그리하여 팀워크와 시청률이라는 떡을 양손에 쥔 나는, 두리번거리며 다음 단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실을 다졌으니 이제 외연을 넓힐 차례. 즐거운 동료들을 얻었으니 이제 올바른 결과물을 내놓을 차례였다.

 

백두산행을 기획한 것이 그때쯤으로 기억된다. 이후, '집으로' 특집과 '시청자 투어'를 거쳐 '외국인 노동자 특집'까지 기획 의도는 단 하나. '과정은 즐겁고 결과물은 올바른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연극반 시절의 꿈이 15년 만에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었다. 최소한,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 꿈이 드디어 현실로, 코앞에 도착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