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피디가 연예인 울렁증이라니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4월에 발간된 <나영석 피디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의 본문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방송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느낌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94년도에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꼈던 감정, 딱 그대로였다. 쉽게 말해 '어라, 내 생각과는 좀 다르네. 이거 큰일인걸' 뭐 이 정도의 느낌.

 

연극에서 시작해 방송국까지 흘러온 배경에는 '과정은 재미있고 결과물은 올바른' 그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국은 '과정은 최대한 효율적이고 결과물은 최대한 시청률이 높게'라는 명제로 움직이는 곳이었다(당시 내가 보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일단, 연극과는 호흡부터가 다르다. '두세 달을 동고동락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울고 웃으며 작업을 함께 완성해나간다'는 건, 방송국에서는 꿈에나 나올 법한 얘기. 두세 달은커녕 두세 시간 안에 한 시간짜리 방송을 찍어내야 한다. 밀도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밀도 있는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조직과 기능인이 필요하다. 마치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포드의 공장에 와 있는 기분. 소품팀은 소품만. 코디는 옷만. 조명은 조명만. 연기자는 연기만. 각자 맡은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모든 게 착착착. 두 시간 후 녹화 종료. 그리고 다들 다음 스케줄로 이동. 그다음 주가 되면 다시 녹화.

 

정해진 효율성을 채우지 못한 기능인은 사라지고 없다. 재미없는 연기자는 더이상 출연하지 못하고 새로운 얼굴이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손이 느린 조명팀 사람도, 불만 많은 코디도 새 얼굴로 바뀐다. 다시 녹화가 착착착. 지난주보다 나아진 시청률. 그럼 그것으로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