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만화방에서의 모니터링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4월에 발간된 <나영석 피디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의 본문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이란 무엇인가? 좋은 프로그램은 '발명'되는 것인가, '발견'되는 것인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좋은 프로그램이란 다음의 세 가지를 만족시킬 때에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

첫째, 새로울 것
둘째, 재미가 있을 것
셋째, 의미가 있을 것

그런데 문제는 이 세 요소가 똑같은 비중의 중요도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 셋 중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우선시해야 할 요소는 바로 '새로워야 한다'는 명제. 뭔가 새로운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 시청자들은 비로소 관심을 갖는다. '뭐지? 저건 뭔가 처음 보는 그림인걸?' 이렇게 길 가던 사람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새로움 속에서 창조된 재미와 의미만이 소구력을 가진다.

 

예전에 입사 초기 시절. 나는 프로그램 모니터를 단골 만화방에서 하곤 했다. 만화책 넘기는 소리만 사각사각 울려퍼지는 그곳에는 작은 텔레비전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주인 아저씨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아저씨는 보통 뉴스를 틀어놓고 계셨다) 채널을 조용히 (당시 내가 조연출이던) <출발드림팀>으로 돌려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곤 했다. 만화책에 코를 파묻고 탐닉하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포인트. 그게 어떤 때인지가 궁금했던 거다.

 

사람들은 보통 웃음소리가 커질 때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을 지켜본다. 뭔가 재밌는 걸 하나보다, 이런 눈치. 그러곤 다시 고개를 파묻고 들기를 반복. 그런데 신기했던 건 그 주에 처음으로 시도되는 뭔가가 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개를 들어 본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전문가다. 저것이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10초 정도면 결정하고 판단을 내린다. 딱 10초. 그 정도만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재미가 있으면 10초 더. 재미가 없으면 다시 만화책으로. 신기했던 건, 그 10초 정도는 대부분의 만화방 점령자들이 모두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 즉,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한 사람들은 10초 정도의 여유는 언제든지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이 새롭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만화책에서 영원히 고개를 들지조차 않는다는 것.

 

힘들게 만든 재미있는 장면들이 그저 슥슥 지나가버린다. 나는 만화책을 보는 척 가슴을 졸이며 주변 만화방 동지들을 관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