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 모르던 청년들이 시작한 크루

평범한 광고인 줄 알았다. '왕년의 테리우스' 안정환, 푸근하고 여유로운 눈빛의 그가 어딘가를 응시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슛을 날린다. 영원한 현역, 영원한 테리우스라는 서사로 이어질 줄 알았던 광고의 기상천외한 반전.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카메라 브랜드 캐논(Canon) 광고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도대체 이 '약 빤' 광고는 뭐야?" 시청자는 환호했다. 이 광고를 만든 회사가 만든 약 빤 광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 캐논 광고 <안정환의 파워무비> 풀 버전 ©Canon Korea

 

돌고래유괴단. 광고계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제작사다. 캐논, 이마트, 유니클로 등 굵직한 광고주들의 광고를 만들었고, 2018년 9월 삼성전자와 함께 만든 웹드라마 <고래먼지>도 호평을 받았다.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돌고래유괴단을 이끄는 신우석 감독을 만났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소에서 그를 알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어디선가 "리즈 시절의 안정환 선수를 닮았다"는, 신 감독에 대한 인상비평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그는 최근 "제작 의뢰가 밀려드는데 제대로 소화를 못 하고 있어 계속 거절하고 있다"며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신우석 감독, 돌고래유괴단 단장

박경은(이하 생략): 들어오는 일이 많아지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지 않나요.

신우석(이하 생략):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요. 사람 수는 정해져 있고, 저희가 해오던 작업 방식도 유지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의 총량에 한계가 있어요. 일을 더 많이 처리하려면 조직을 키우고 체계적인 시스템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 내부에서 그런 부분까지 정리하지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일반적인 회사 개념이나 구조가 아니라 일종의 팀처럼 생활하고 일해왔거든요. 직원이라기보다는 함께하는 동료, 공동체라고 생각하면서 팀이나 서로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일한 거죠. 조직을 키우려면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당장 뽑는 사람한테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새로 채용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물론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일할 수 있을까 싶긴 해요.

 

돌고래유괴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원래는 영화를 할 생각이었어요.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뜻을 모았죠. 초등학교 친구도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독립영화를 찍으러 다니다 만난 친구도 있었어요. 영화에 관심이 많은 엄마 친구 아들도 있었고요. 2008년 즈음, 무엇이 됐든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모인 친구들이 열 명 정도 됐어요. 세상 물정은 모르고 열정만 있는 20대 초반 청년들이 그렇게 모인 거죠.

 

이름은 어떻게 정했나요? 정말 기발하다고 느꼈거든요.

그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정말 민망하게도 아무 뜻이 없어요. 그냥 술 먹다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로 정한 거예요. 나중에 저희끼리 뜻을 가져다 이리저리 붙여 봤는데 그게 더 구차하더라고요. 요즘 제작사들은 이름을 정할 때 대부분 영어로 짓잖아요. 뭔가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진 몰라도, 전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이 이름이 떠올랐을 때 바로 정해 버렸죠. 멋져 보이지는 않지만 좀 이상해 보이잖아요. 전 이상해 보이는 게 좋거든요.

 

그때부터 사업체로 구상한 건가요?

돌고래유괴단은 크루 개념으로 시작했어요. 여기에 올인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함께 영화도 만들자는, 좀 나이브한 생각이 있었죠. 그때만 해도 유튜브가 절대 강자가 아니었고, 국내에도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이 있었어요. 엠군, 엠엔캐스트, 판도라TV, 싸이월드까지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였거든요.

 

그때 저희끼리 '웨비소드(webisode)*'라는 형태의 시리즈도 만들고, 미니어처를 이용해 촬영한 '스몰 어스(small earth)'라는 UCC(User Created Contents) 시리즈도 올렸어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영상을 손쉽게 만들거나 볼 수는 없었는데, 특정 플랫폼에 영상물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조회 수도 높고 반응이 꽤 좋아서 저희는 팀이 금방 잘 될 줄 알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대책 없는 행보였던 셈이죠.

* 웹(web)과 에피소드(episode)를 결합한 단어. 웹에서 유통되기에 적합한 짧은 드라마 형식의 콘텐츠

 

잘 될 거라는 확신으로 '올인'한 거네요.

딱히 가진 게 없었으니 올인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기에 승부를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모인 열 명 중에 여섯 명이 사업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동의했죠. 그 여섯 명이 인천으로 갔는데, 그때가 2008년이었어요.

 

인천으로 간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뇨. 심지어 아무 연고도 없는데 그저 월세가 싸다는 이유로 갔어요. 인하대학교 후문 쪽에 PC방이 있는 상가건물 옥탑방이었어요. 월 35만 원짜리 방에서 1년 동안 여섯 명이 같이 살았어요. 제 기억에 그때 벌었던 수익이 4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겨우 월세 낼 정도였죠.

 

그럼 언제부터 형편이 나아졌나요?

정말 조금씩 나아졌어요. 캐논 광고가 터지기까지 7년이 걸렸는데, 이렇게 보면 팀원들이 무려 7년을 버텨준 셈이죠. 조금씩 일이 늘었지만 빚은 훨씬 빠른 속도로 늘더라고요. 기술보증기금에서 대출도 받고, 개인 신용으로도 빚을 냈어요. 명색이 회사인 만큼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월급은 줘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빚이 3억 5000만 원까지 쌓였죠.

 

사업화 생각이 있었다는 말은 어떤 비전을 봤다는 것 아닌가요? 그 근거가 있었을 텐데요.

구체적인 비전을 본 건 아니었어요. 사실 판단 근거도 없었고요. 그땐 그냥 돌고래유괴단을 회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무 근거도 없으면서 확신만 있었다고 할까요.

전망을 확인하고 계산해서
사업화 가능성을 본 것도,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해서
판단한 것도 아니에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당연히 거쳐야 할 고민이자 생각인데, 그런 것 자체가 없었어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한 거예요.

 

동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월급을 준다 해도 7년이나 함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거든요. 동료들의 신뢰를 얻을 만한 '신우석의 한 방'이 있었을까요?

글쎄요. 제가 그리 영리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저는 친구들이 제 재능을 보고 버틴 게 아니라 의리를 지켜왔다고 생각해요. 10년 가까이 함께 바닥을 기면서 고생했고 같은 꿈을 꿔왔으니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그런 공감대와 연대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서로의 사정이나 형편을 잘 알 테니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현실적인, 소위 '돈 문제'로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집안의 압박이나, 일 때문에 연인과 헤어지는 상황이 온다거나.

제일 무서웠던 게 팀원들의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었어요. 너무 죄송했으니까요. 지금이야 어느 정도 밥벌이도 하고 성장했지만 오랜 시간 암담했잖아요. 저희 팀처럼 성장한 케이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없거든요. 주변에서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저희와 작업하는 사람들은 물론, 영화하는 선배들 중에서도 돌고래유괴단이 잘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들이 보기에도 한심했을 거예요.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건 격려해줄 만한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비즈니스 마인드 없이 모여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이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저 역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밀고 왔지만, 그 과정에서 걱정이 왜 없었겠어요. 내 인생은 그렇다 쳐도 팀원들 인생은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이 가시지 않았죠.

클리셰를 파괴해야 '터진다'

고등학생 시절 소설가가 꿈이었던 신 감독은 3학년 때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본 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수많은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썼다. 독립영화 작업도 했다.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영화를 공부할 수 있는 관련 아카데미에도 다니지 않았다. 그저 혼자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썼다. 이런 종류의 작업은 누구에게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시나리오를 쓰다 군 복무를 했다. 완성한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작품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제대한 뒤 뜻 맞는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겠다고 돌고래유괴단을 세웠다. 그리고 2015년, 돌고래유괴단은 캐논 광고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캐논은 여러 제작사를 대상으로 광고 기획을 의뢰했다. 조건은 '진짜 바이럴 필름'을 만들고 싶다는 것.

스스로 확산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유하며
보고 싶게 만들어진 것

이게 바로 신 감독이 생각하는 바이럴 필름이다. 신 감독은 나름의 기준 아래 최현석 셰프를 모델로 내세운 파격적인 기획안을 제출했고, 이것이 채택됐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광고는 며칠 만에 100만 회에 이르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듬해 안정환을 모델로 찍은 광고는 조회 수 약 1000만 회를 돌파하며 돌고래유괴단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캐논 광고 <최현석 셰프의 포토 킥!> 풀 버전 ©Canon Korea

 

주인공이 죽는 광고라니 놀라웠어요. 어떻게 기획된 건가요?

웹의 바이럴 필름은 기존 TV 광고에서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다를 수 있을까 고민했죠. 결론은 TV 광고의 클리셰를 다 파괴해야겠다는 것이었죠.

 

원래 뻔하거나 과장된 광고를 싫어해서 기존의 문법을 무너뜨리고 뒤집는 방식을 좋아하거든요. 기존 광고라면 곰한테 잡아먹히거나 독버섯을 먹고 죽는 식의 서사는 금기사항이었을 텐데, 그걸 부숴버린 거죠. 자막에 비속어를 해시태그로 넣고 광고 모델을 영정 사진으로 등장시켰어요. 전부 기존 광고에선 용납되지 않던 방식이에요.

 

기획안을 내면서 광고를 따낼 자신은 있었나요?

과연 채택해줄까 싶긴 했어요. 물론 채택이 돼서 온에어만 된다면 무조건 터진다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캐논 측에서도 위험 부담이 클 정도로 파격적이었어요. 다행히 캐논 측에서 제 기획안을 선택했죠. 사실 약간의 조건이 붙어 있었어요. 곰한테 잡아먹히는 에피소드는 찍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다들 '너무하다'는 반응이었나 봐요.

 

일단 채택이 됐으니까, 촬영에 들어갔죠. 촬영하러 갔을 때 곰 에피소드까지 몰래 다 찍고, 편집본에 슬쩍 끼워서 함께 넘겼어요. 당연히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광고를 자세히 보면 뼈 씹는 소리도 들리거든요. 하지만 이 부분이 들어가야 파괴력도 갖추고, 강력한 흥행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설득했어요. 결국 상대편에서도 받아들였고요. 그전에도 작은 히트작들은 있었지만, 이때부터가 돌고래유괴단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돌고래유괴단

솔직히 광고 모델도 신의 한 수였어요.

모델은 시나리오를 짜면서 결정했어요. 최현석, 안정환을 모델로 쓴 것도 기획안 그대로 받아들여진 부분이었죠. 업계 관행으로는 드문 경우예요. 저희가 처음부터 영상의 방향성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짜다 보니, 거기에 맞는 모델이 떠올라서 먼저 제안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안정환이 그 광고에 최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내용의 주요 요소가 '반전'이었기 때문이에요. 현역 선수 시절엔 굉장히 샤프하고 차가운 이미지였잖아요. 그런데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면 몸매도 많이 바뀌었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이미지로 변했어요. 그 자체로 반전의 이미지가 있다고 봤죠. 그래서 광고를 통해 과도한 반전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판단했어요.

 

캐논 광고 성공 후에는 다른 광고주를 설득하는 과정이 좀 쉬워졌나요?

그런 편이죠. 일단 저희가 특이한 기획이나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하는 팀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돌고래유괴단은 새롭고 이상한 걸 찍는다'는 각오를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간섭하지 않고 맡겨도 효과 좋은 바이럴 필름을 만들어낸다는 믿음도 심어준 것 같고요.

덕분에 오히려 저희가 하고 싶은,
저희만의 색깔을 가진
특이한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어요

그들의 각오가 저희에겐 자율성을 줬고, 그 자율성이 창작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다행히 좋은 결과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고래먼지>로 자신감을 얻다

캐논을 비롯해 유니클로 감탄팬츠, 배스킨라빈스 모나카, 이마트 수입맥주 등 돌고래유괴단이 만든 광고들은 그저 재미있는 광고 이상으로 대중의 기억에 남았다. 상복도 많았다. 유니클로 광고는 세계 3대 광고제인 뉴욕 페스티벌 필름 부문에서 동상을 받았고 안정환이 출연한 캐논 광고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언뜻 코믹하고 반전 가득한 광고로만 기억할지 모르지만 <블랙독 신드롬> 등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영상도 호평을 받았다.

 

단편영화로 국내외 영화제에 꾸준히 참여하던 광고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이 제작할 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지난 9월 공개된 웹드라마 <고래먼지*>다. 삼성전자와 협업했던 이 작품은 60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 2053년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미세먼지 문제 때문에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SF 웹드라마

* <고래먼지> EP.1 ©삼성전자

 

<고래먼지>는 영화 <매드맥스>를 보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처음에는 제일기획에서 연락이 왔어요. 웹드라마를 만드는데 저희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요. 어차피 저희도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영상 콘텐츠 작업을 하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평범한 웹드라마는 찍고 싶지 않았거든요. 웹드라마 시장은 훨씬 큰 잠재력이 있고, 다양성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로맨스물을 다룰 예산으로 35분짜리 SF를 찍었어요. 그 정도 규모의 SF를 찍으려면 당초 배정된 예산의 5~6배는 들거든요. 그런데 원래 예산에 맞춰 찍느라 엄청나게 고생했죠.

 

기획안을 냈을 때 광고주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엔 과거, 현재, 미래, 글로벌 등 네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기획안을 냈어요. 그중 에피소드 두 개는 대중성을 고려해 코미디 장르로 갈 생각이었고, 미래 편은 SF 장르의 디스토피아를 계획했어요. 이 안을 내면서도 미래 편은 받아들여지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의외로 '미래'편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전체 기획안을 전부 미래 중심의 SF로 바꿨어요.

<고래먼지> 포스터 ⓒ돌고래유괴단

결과적으로는 호평이 많아서 힘이 났겠어요. 영화에 대한 자신감도 더 얻고.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래먼지>가 잘 되면서 좀 놀랐어요. 첫 번째 에피소드는 대중적인 반응이 극명하게 갈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한된 시청자층에만 다가갈 것으로 각오했는데 뜻밖에도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생각 못 했던 부분까지 재해석해서 댓글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부분도 있어요.

 

이렇게 오픈된 환경에 작품을 내놓고 그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특히 관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는데,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재산이 될 것 같아 자신감도 더 생겼고요.

 

영화 작업은 계속해온 데다, 이제 인지도도 높아졌으니 상업적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도 들어올 것 같은데요.

사실 외부에서 감독을 맡아 달라거나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해보자는 제안은 오고 있는데, 거절하고 있어요. 지금 한국 영화판을 보면 개성이 부족하고 뻔한 영화들만 있거든요. 관객 입맛에 맞춘 기획 영화들만 보인다는 거죠. 물론 현실을 고려했을 때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상업영화에서 뭔가를 시도했는데 실패한다면 '다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하겠다고
10년 넘게 다른 길로 왔어요
이제 와서 내 것 아닌 영화를 만드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새로운 영화, 지금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던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전 막말로 '죽어도 내가 꺼낸 패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여기서 '내 것'이란 건 외부 간섭이 없는, 오롯이 본인의 의지와 뜻이 구현된 작품이라는 거네요.

그렇죠. 내 개성이 깎여나가지 않는, 내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누가,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편집권을 외부에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잖아요. 창작자의 새로운 시도가 상업적인 규칙이나 일반적인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면 처음 의도가 깎여나갈 수 있는데, 전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거든요.


물론 '내 것'이라는 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여야 한다거나, 상업성을 배제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영화사적 의미를 남겨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요. 단지 제 기준에 맞는 새로운 시도,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만족스럽다면 흥행은 그다음 문제거든요. 한마디로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나의 것, 남과는 다른 것, 어려운 길

나의 것, 남과는 다른 것, 어려운 길. 이런 고집 때문일까. 10초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인내심 부족한 현대인들이 굳이 찾아보고 싶은 영상을 만드는 비결 말이다.

ⓒ돌고래유괴단

평소에 영화는 많이 보는 편인가요?

적당히 봐요. 왕가위나 리들리 스콧,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를 좋아해요. 핀처 감독의 <세븐>이나 <파이트 클럽> 같은 초기작은 제 감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에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처음 봤을 땐 정말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가진 감성과는 아주 다르지만 영화적 완성도에 열광했었죠. SF영화도 좋아하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은 바이블로 꼽힐만한 작품들을 내놨잖아요.

 

TV나 다른 광고 영상은요?

전혀 안 봐요. 대신 저는 책을 읽어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주로 고전을 읽어요. 고전은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책들이잖아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들이고요. 베스트셀러보다는 오랜 시간을 버틴 책들을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특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좋아해서 열 번도 넘게 읽었어요.

 

아이디어를 얻는 비결이나 특별히 하는 노력이 있다면요?

"스토리라인을 어떻게 짜느냐,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그런데 정말이지 대답해 줄 말이 없어요.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특별하게 하는 건 없거든요. 어느 순간 영감이 탁 떠오른다고 할 수밖에요. 오래 고민하는 편도 아니에요. 일단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부터 이야기의 앞뒤를 만들어 가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요.

 

쉴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아무것도 안 해요. 진짜로 그냥 가만히 있어요. 멍 때리고 담배만 피우는 거예요. 일과 여가가 딱히 분리되진 않아서 틈나면 아무 생각 않고 그대로 있는 거죠. 가끔 누가 연락 와서 "뭐하냐"고 물으면 "늙고 있다"고 말해요.

 

내 작품의 인장이랄까요. 신우석이 만든 작품, 혹은 돌고래유괴단이 만든 작품만의 워터마크 같은 것이 있다면요.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새로움' 아닐까요. 기존에 없던 것. 그게 유머가 됐든, 서술 방식이나 메시지가 됐든. 전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거예요. 스톤헨지 광고 <엄마를 만나다> 편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판타지로 마무리했어요. 일반적인 광고에선 잘 볼 수 없던 방식이죠.

 

* 스톤헨지 광고 <엄마를 만나다> ©STONEHENgE Korea

 

누가 우리를 새롭게 봐주기를 바라기보단 저 스스로 기준점을 높여가면서 기준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팀에게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돌고래유괴단이 '함께' 일하는 방식

현재 돌고래유괴단은 열 명으로 구성돼 있다. 다섯 명은 창업부터 함께했던 사람들이고 다른 이들은 그동안 새로 들어왔다. 신 감독을 포함해 네 명이 연출, 두 명이 PD, 네 명이 조감독이다. 2015년 돌고래유괴단은 공개 채용을 했다. 기존 문법을 뒤집는 파격적 광고가 입소문을 탔던 터라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이 채용은 2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개채용에서 어떤 면을 보고 채용을 결정했나요?

마인드와 재능, 두 가지를 봤어요. 전 돌고래유괴단이 회사이기 전에 같은 목표와 색깔을 가지고 끝까지 가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팀에는 저희만의 색깔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데요. 나의 것을 만들어서 상대를 설득하고, 그것을 지켜내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우직한 힘이 있어야 하죠.

 

이 일을 하다 보면 외부의, 특히 광고주나 대행사 의견에 많이 휘둘릴 수 있거든요. 하지만 어떤 과정이 있더라도 우리가 만든 필름으로 우리를 증명하겠다는 생각이 중요해요. 그런 마인드로 함께할 수 있는지 보는 편이죠. 재능은 말 그대로 창의력이고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돌고래유괴단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어요. 하나는 영업을 안 한다는 거예요. 제작사라면 광고 수주를 위해 영업을 해야 하는데, 저희는 작품이 바이럴에 성공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어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간 영상들을 본 광고주가 의뢰를 해오는 식이죠.

 

다른 하나는 광고를 만들고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 남다르다는 거예요. 저희는 원래 영화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광고를 하려는 생각도 없었고, 광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모인 것도 아니죠. 전원이 다 그래요. 기존 광고 작법에 익숙한 사람도 없고, 광고 제작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어요. 오히려 광고를 만드는 입장보다는 소비하는 입장에 가까운 사람들이랄까요. 전문가가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광고를 만들기 때문에 다른 결과물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돌고래유괴단

그 부분이 쉽지 않은 지점이에요. 대부분 같은 업계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필 수밖에 없잖아요.

돌고래유괴단이 처음부터 광고 회사로 출발했다면 이 업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이나 트렌드를 따르거나 참고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저희가 제작하는 영상이 광고가 될 거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저희는 웹에 영상물을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바로 성패가 결정되는 야생에서 줄곧 작업해 왔어요.

뭔가를 만들어 올렸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없으면
그건 실패인 거예요
이런 식으로 작업을 오래 해오다 보니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감각이 생긴 것 같아요. 무엇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어디서 반응하는지, 뭘 원하는지를 알게 된 거죠.

 

일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던 과거에도 자기 색깔을 강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광고는 기본적으로 광고주의 취향을 따르게 돼서 내 색깔을 앞세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엔 저희에게 어이없다고 말한 사람도 많았어요. 대개 광고주의 요구를 따르기 마련인데, 저희는 저희가 강조하고 싶은 방향, 표현하고 싶은 방식을 고수하면서 광고주를 설득하려고 했으니까요. 운신의 폭이 넓은 건 아니었지만 계속 설득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영역을 넓힐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돌고래유괴단을 믿어주는 곳들도 생겨나고 조금씩 선순환이 일어났죠.

 

돌고래유괴단이 일하는 방식이 궁금해요.

내부적으로는 경쟁 시스템을 활용해요. 의뢰가 들어오면 다 같이 모여서 광고주의 의뢰를 공유한 뒤 2시간 정도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요. 그 시간 안에 각자 자기만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짜 와야 하죠. 돌아가면서 본인의 시나리오를 발표한 후, 그중에서 광고주가 채택한 시나리오로 진행해요. 아이디어가 채택된 사람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책임지고 프로젝트를 풀어가요. 다른 사람들은 서포트해주고요. 네 명의 연출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에요.

저희에게 유일한 영업 수단은
포트폴리오예요

광고주들이 의뢰할 때 포트폴리오들을 보고 연락해오니까요. 그게 유일한 살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작업해 왔던 게 저희 팀의 비결이라면 비결이에요.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작품밖에 없다'는 절박함 같은 거죠.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공유하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팀 구성원 모두가 비슷한 부담감을 느끼게 됐어요. 부담일 수도, 동기부여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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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유괴단만의 특징적인 시스템이나 체계가 있나요?

격식이나 체계가 없는 게 특징이에요. 당연히 결재도, 보고서도 없어요.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전화, SNS 등으로 소통하는 게 전부예요. 제가 대표이긴 하지만, 각자가 하는 일을 소모적으로 만드는 상당 부분이 '보고'에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조직이 클수록 보고와 결재 속에서 애초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사라진다고 봐요.

 

격식이나 체계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프로'로 일하고 있다는 책임감 아닐까요. 그렇다고 저희가 처음부터 어떤 철학을 가지고 보고 체계를 만들지 않은 건 아니에요. 단지 처음부터 해온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아직 저희에게는 이 방식이 유효하고요.

 

채용공고에 레퍼런스를 보는 것이 금지라고 나와 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레퍼런스가 없는 상태에서 팀원들 간 의사소통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나요?

각자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어요. 아무리 잘 설명하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완벽한 그림을 공유할 수가 없죠. 상대가 설명하는 시안을 이해했다고 해도 실제로 구현했을 때 모습은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팀은 그동안 이런 식으로 꽤 많은 작업을 해왔어요. 그래서 서로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이 있다고 하면 되도록 믿어주고 밀어주는 편이에요.

아이디어는 결과물로
증명하면 되니까요
실제로 그렇게 믿고, 또 증명해 왔고요

일이 많아진 요즘도 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나요?

지금은 팀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후배들도 성장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서는 좀 더 적합한 사람에게 맡기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어요. 물론 사안에 따라 여전히 경쟁 PT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나의 작품, 결과물로 남을 설득하는 일은 정말 중요해요. 그건 내부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누군가 기획안을 발표했는데 다른 팀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때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른 팀원들을 설득하는 감독에게는 믿고 맡기는 편이에요.

 

저는 돌고래유괴단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요인을 꼽자면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작업할 때마다 그 결과물이 대중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에 대한 불확실함과 불안함은 항상 있어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용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혹자는 맹목적이고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로를 믿고 용기를 내는 것이 우리를 지탱해 온 힘이라고 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