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보다 궁금했던 사용자의 진짜 목소리

PD들은 대개 '관종(관심종자)'예요. 본인의 결과물이 주목받길 원하거든요. 그런데 TV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 않는 이상, 시청자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얻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디지털 콘텐츠는 좀 다르거든요. 바로 반응이 와요. 저는 그런 데서 희열을 느껴요. 그들의 반응에 귀 기울여 만드는 게 더 재미있어요.

레거시 미디어가 앞다퉈 혁신 실험에 나서고 있다. 방법과 형태는 각양각색이지만 그 바탕에는 '디지털', '뉴미디어'가 있다. JTBC의 독립 디지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룰루랄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들이 어떤 답을 찾아야 할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와썹맨>은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실험과 시도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현재 JTBC콘텐트허브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책임 프로듀서로 콘텐츠 제작을 지휘하는 김학준 감독은 10년간 방송사에서 PD로 일하면서 디지털 콘텐츠 작법에 있어 상당한 내공을 쌓았다. 2008년 온미디어*에 입사한 그는 온게임넷에서 PD로서 경력을 시작해 CJ E&M 온스타일, 인사이트TV, tvN, 딩고 등을 거쳤다.

* 1995년 동양그룹이 개국한 투니버스가 모태이며, 2000년 '온미디어'로 출범했다. 2009년 CJ그룹에 편입되었고 2011년 CJ E&M(현 CJ ENM)으로 합병됐다.

김학준 CP, 스튜디오 룰루랄라

박경은(이하 생략): 언제부터 디지털 콘텐츠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했나요?

김학준(이하 생략): 2011년 즈음인 것 같아요. 온미디어가 CJ에 통합된 후, 뉴미디어 플랫폼을 살펴보면서 다양한 시도와 움직임이 시작됐거든요.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뉴스 기반의 유튜브 채널 '바이스'도 그때부터 봤으니까요.

 

본격적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건 인사이트TV에서였어요. 그때 만들었던 게 <미스코리아 아임 메이>라는 콘텐츠였죠.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유튜브 버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10분짜리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사용자들 사이에서만 이슈가 된 정도였죠.

 

조회 수를 높이려고 자극적인 콘텐츠도 약간 섞어서 단기간에 구독자 50만 명을 넘겼어요. 2013년 즈음이었을 거예요. CJ 내부에서 PD들이 모인 조직이었으니, 방송사가 만드는 디지털 콘텐츠의 초기 모델이었던 셈이죠.

 

* 인사이트TV에서 제작한 <미스코리아 아임 메이> ⓒSTUDIO ONSTYLE

 

인사이트TV 작업환경은 어땠나요? 맨땅에 헤딩이었을 것 같은데요.

바이럴이 정말 어려웠어요.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사용자의 유입을 위해 일일이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링크도 뿌리고 홍보를 했어요. 그땐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전문가를 찾기도 힘들었어요. 그저 커뮤니티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링크를 거는 식의 노가다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죠.

 

조직으로 봤을 땐 선구적이고 실천적이었네요. 기존 조직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실행에 옮기거나, 직접 주목하지 않던 때였잖아요.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저희도 거창한 계획이나 포부 혹은 정밀한 스텝을 갖고 있던 건 아니에요. 막연히 뉴미디어가 미래 먹거리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연했어요. 아무도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하게 됐으니까요.

지금도 디지털, 뉴미디어 콘텐츠로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찾기는 힘들어요

그땐 더 심했죠. 누구나 '글로벌', '디지털' 두 가지를 통해 답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글로벌은 TV 콘텐츠를 수출한다는 식의 방향이라도 있었지 디지털은 미개척지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큰 비용을 들여 투자하지 않는 선에서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었네요. 그 안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으셨나요?

TV는 안정된 조직이라 그곳에 머무른다면 평범한 조직원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잖아요. 반면, 디지털 분야에서는 나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바이스 뉴스 같은 콘텐츠를 보면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뮤직비디오를 만든 경험이 있어서 한 시간짜리 긴 콘텐츠보다는 짧은 콘텐츠가 익숙했고 더 좋았어요. 디지털 콘텐츠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이야 많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생겨났지만 그때는 아니었잖아요. 당시 환경은 어땠나요?

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해외 콘텐츠로 프랑스 시트콤 <브레프(원제: Bref)> 정도가 눈에 띄었어요. 국내에선 참고할 만한 게 거의 없었고요. <브레프>를 보면서 방향성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국내에서 '72초 TV'가 나왔어요. 그때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유튜브 위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죠?

유튜브는 물론이고 디지털 미디어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어요. 퍼스트 스크린이 TV였죠. 유튜브는 일종의 놀거리, 혹은 하류 문화로 여겨졌어요. 콘텐츠 생산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플랫폼이 아니었죠. 대도서관처럼 현재 톱스타가 된 유튜버들도 당시에는 아프리카 TV를 무대로 활동했고요. 그때만 해도 유튜브는 주로 북미 쪽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활발히 올렸어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계속 스터디하며 준비한 건가요?

디지털에서 기존의 스터디 개념은 중요하지 않아요. 비교적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선 제작하고
시장에 내보내서 피드백 받고
계속 수정하는 게 훨씬 중요해요

인사이트TV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사용자들의 반응을 살펴봤어요. 동시에 다른 콘텐츠 생산자들이 무엇을 만드는지, 관련 시장 상황이 어떤지도 지켜봤고요.

 

인사이트TV는 당시 수익을 냈었나요?

성과를 따질 상황은 아니었어요.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팀이 해체됐으니까요. 저는 tvN으로 가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했죠. 'tvN go'라는 인터넷 채널도 만들었어요. 그땐 VR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여러 기획안을 만들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기획안 채택이 난항을 겪은 것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제가 설득하지 못한 측면도 있겠지만, 무언가 순발력 있는 실행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디지털 콘텐츠 제작은 TV 프로그램 제작 과정과 달라야 하거든요. 수개월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없죠. 아직 누구도 답을 모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맞춰서 던져보고 피드백을 받아가며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설득이 쉽지 않았고, 생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결국 사표를 썼죠. 인사이트TV가 해체하고 tvN으로 옮긴 지 6개월 만에요.

 

홧김에 던지고 나온 거네요.

겁도 조금 났어요. 나름 한 회사에서 꾸준히 생활해왔으니까요. 그렇게 사표를 던진 후 딩고로 이직했죠.

플랫폼을 이해해야 사용자들이 입을 연다

딩고는 방송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겠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과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느낌이랄까요. 가보니 음식, 음악, 뷰티 등 다양한 채널이 있었어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건 비슷했지만, 큐레이션 콘텐츠는 생소하고 낯설었어요. 말하자면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명확하게 이해해서 맞춤형으로 대응해야 했는데 무척 난감하더라고요.

 

당시 속했던 팀의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장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시도는 처음이라 시스템과 기본 체계에 관한 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결국, 웹드라마를 기획하고 제작하기로 했어요. 플랫폼을 이해하려면 부딪혀가며 경험해야 하니까, 만들면서 시스템을 이해해보고 싶었죠. 그렇게 나온 기획이 봉태규 배우가 출연한 <나는 주인공이다>라는 웹드라마였어요.

네이버TV로 유통된 웹드라마 <나는 주인공이다> ⓒDingo TV결과는 어땠나요?

지금 와서 말하려니 정말 부끄럽지만, 제가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어요. 당시 페이스북에서는 10분이 넘는 콘텐츠가 성공하기 어려웠는데 그런 기본적인 감조차 없었거든요. 짜 놓은 기획안만으로도 10분이 훌쩍 넘었어요. 열심히 촬영해서 만들었는데, 다들 10분이 넘으면 안 된다고 반대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쳐내서 5~6분짜리로 줄였어요. 처음 기획했던 그림과 비교하면 완전히 망가진 거죠.

 

가장 큰 실패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TV에서 콘텐츠를 만들 땐 제 의지에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 그래서 내가 만족스러운 것을 하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치며 일했고요. 그런데 여기서 확실하게 배운 건 플랫폼에 대한 이해예요. 플랫폼에 대한 알고리즘부터 유형과 패턴을 지켜보게 된 거죠.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앞선 콘텐츠가 아니라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금 사용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으면 그들은 내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아요. 게다가 워낙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다 보니 무언가 남기기보단 짧은 시간 안에 보는 이들에게 의미나 새로움, 혹은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걸 느꼈죠.

 

플랫폼에 대한 알고리즘과 유형, 패턴 같은 것은 제작 과정에 반영하셨나요?

다행히 딩고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이잖아요. 페이스북이 결과치에 대한 그래프를 많이 제공했는데, 그걸 활용했어요. 예를 들어 타이틀, 범퍼 등 화면 전체를 채우는 CG 화면이 3초가량 지속되면 특정 시점에서 그래프가 꺾이는 게 보여요. 그 부분이 시청자들의 관심이 떠나는, 그다지 필요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럼 다음번에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시간은 몇 초로 줄일지 등의 판단을 해야 해요. 계속 그래프의 흐름을 보면서 콘텐츠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정리할지 고민하고 훈련하는 거죠. 그게 공부가 됐어요.

 

딩고는 어떤 팀이었나요?

젊고 유연한 조직이었죠.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대체로 나이가 어렸어요. 제가 만든 것, 혹은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다양한 지적을 자유롭게 하더라고요. 저도 나름 열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꾸 지적받다 보니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3~4개월 정도 지나니까 그 친구들 말이 다 맞더라고요.

 

어떤 콘텐츠에 관한 조회 수나 댓글, 공유한 횟수 등을 보면, 그들 말대로 반응 지표가 나오는 거죠. 그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10초에서 20초로, 다시 30초로 계속 쪼개서 연구하고 방법을 강구했어요.

제작하고, 가설을 세우고,
지표를 보고, 다시 반영해서 만들고
이런 식으로 유효 재생시간을
어떻게 늘릴지 고민했죠

시청자들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겠다는 건가요?

맞아요. <와썹맨>도 마찬가지예요. 이탈률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유효 재생시간이 8분이라면 이걸 15분으로 늘릴 방법은 뭘까. 초 단위로 고민하며 분석하는 거죠. 감이나 추측이 아니라 실제 그래프와 자료를 보면서요. 그 훈련을 딩고에서 많이 했어요.

ⓒPUBLY콘텐츠 제작자 중에 감독님처럼 양쪽(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을 오가며 훈련 과정을 거친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소속이 어디인지보다 경험하며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질서나 위계가 있는 조직에서는 시청자들의 세밀한 반응을 직접 챙기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댓글 반응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알기 위해선 만든 사람이 직접 사용자와 스킨십해야 하거든요.

 

큰 조직에서는 고참 PD가 콘텐츠를 책임지고 만들어도 반응은 어린 연차의 PD들이 살필 가능성이 높아요. 윗사람은 정리된 보고만 받을 수 있죠. 그러면 인사이트가 생기기 어려워요. 그걸 모르고는 아무리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도 성공하기 힘들죠. 해당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패턴을 파악하는 일은 필수예요.

 

딩고에서의 경험이 다음 스텝과 어떻게 이어졌는지 궁금하네요.

딩고에서 10개월간 일했어요.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만큼 한편으로는 고민과 회의도 생겼어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의존하는 것은 일종의 셋방살이잖아요. 만약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바꾼다면, 콘텐츠 생산자들은 곤란해지겠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음 스텝은 TV처럼 독립된 플랫폼과 디지털이 결합한 '트랜스 미디어' 형태가 바람직하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수익을 창출하는 디지털 콘텐츠

딩고를 거쳐 그가 몸담은 곳은 JTBC콘텐트허브였다. JTBC는 '디지털 시장 역량 강화'를 표방하며 2017년 7월 20일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공식 발족했다. 방송국 JTBC 산하가 아닌, 독립 법인인 JTBC콘텐트허브 산하에 팀을 꾸린 것이다. 디지털 인력 수혈을 위해 공개채용도 실시했다.

 

독립적인 조직을 꾸린 이유는 기존 방송 제작의 관성이나 편견 없이 열린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이곳에서는 <와썹맨>을 비롯해 <이옵빠몰까>, <썸지랖>, <두근두근 트래블>, <두텁이의 어렵지 않은 학교 생활>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든다. 레거시와 뉴미디어를 두루 거친 김학준 CP는 현재 17명으로 이뤄진 디지털 스튜디오팀을 이끌고 있다.

 

스튜디오 룰루랄라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트랜스 미디어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어요. 디지털 스튜디오이긴 하지만 TV용 콘텐츠도 함께 제작하는 거였죠. 디지털 스튜디오 안에 두 개 팀이 있어요. 각 조직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였고, 외부에서도 사람을 뽑으면서 꽤 규모가 커졌죠. PD만 20명이 넘었으니까요.

 

인력과 비용이 많이 투자된 터라 한편으로 기쁘면서 걱정도 됐어요. 저는 책임 프로듀서로 팀장을 맡았는데, 어떻게 하면 팀을 오래 끌고 갈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전에 힘들게 키운 팀이 해체하는 일을 겪기도 했으니까요.

 

트랜스 미디어는 지금도 많지 않나요? 예능을 보더라도 TV 버전이 있고 디지털 버전이 있잖아요.

현재 트랜스 미디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TV를 중심으로 촬영한 뒤, 그 소스를 바탕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거예요. 일종의 '스핀 오프' 개념이죠. 하지만 완전히 별개의 콘텐츠로 나오려면 현장에서부터 따로 촬영해야 해요. TV용 본 촬영을 위한 카메라가 있다면 '사이드퀄'도 진행되어야 한다는 거죠.

 

같은 시간대 안에서 다른 시선으로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같은 대상을 촬영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이질적인 콘텐츠가 되도록 말이죠. 트랜스를 지향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디지털에 집중해도 되지 않나요?

'디지털 온리'만으로는 힘이 없어요

결국 그 힘이라는 건 '머니타이징(monetizing)', 즉 수익 창출이거든요.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지만 머니타이징할 수 있어야 롱런할 수 있어요. 게다가 디지털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TV용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잘못된 생각일 수 있죠. 디지털에만 신경 써도 돼요.

 

하지만 수익 모델을 만들려면 조회 수나 규모 면에서 일정한 숫자가 나와야 하거든요. 이제 막 새롭게 만들어진 팀이 생산하는 콘텐츠에서 그런 숫자가 나오긴 어려우니까 당분간은 TV용 콘텐츠도 함께 제작하는 트랜스 미디어 형태를 택한 거예요.

 

딩고에서 만들었던 콘텐츠들은 조회 수 면에서는 숫자를 만들었지만, 머니타이징이 안 됐잖아요.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었나요? TV 사용자를 기반으로 해야만 수익이 만들어지는 건가요?

영상 광고에 돈을 쓰는 브랜드 중 다수는 아직 기존 미디어, 즉 레거시 미디어에 익숙한 상태예요. 그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건 시청률과 같은 숫자들이죠.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숫자들은 머니타이징 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숫자에 가까워요. 특히 그 숫자의 대부분이 10대가 주를 이루는 상황이니까요. 머니타이징이 제한적인 상황이죠.

 

그래서 브랜드와 사용자 사이에서 적절한 중간값을 찾기가 무척 어려운 상황이에요. 자칫하면 콘텐츠의 톤 앤 매너를 해치기도 쉽고요. 이런 사정들이 얽혀 있다 보니 초기에는 레거시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연결해 수익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런 점은 모든 미디어가 고민해야 할 문제 아닐까요?

맞아요. 이 시장 자체가 정말 어려워요. 아직 어느 곳에서도 명확한 수익 모델을 확립한 사례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모델이 만들어질까 싶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락가락하죠.

 

생각해 본 모델이 있나요?

제가 떠올려 본 건 드라마 형태의 콘텐츠예요. 예를 들어 <건축학개론>을 보면 승민이라는 남자 주인공과 그 친구 납득이가 있잖아요. TV에서는 기존 서사대로 진행하고,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납득이가 어떻게 연애 고수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웹드라마를 만드는 거죠. TV와 디지털이 별도의 서사를 가진 콘텐츠가 되지만, 서로 창구 역할을 하면서 연결돼요.

 

디지털 콘텐츠는 TV 콘텐츠의 바이럴 마케팅 수단이 되면서 TV에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주고, TV는 디지털에 광고 수익을 나눠주는 거죠. 그러면 콘텐츠적으로나 수익적으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왜 구체화되지 않았나요?

제작비 문제였죠. 현실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예능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그렇게 처음 기획한 게 <사서고생>이에요. 방향을 틀어도 예산 문제는 여전했어요. 디지털 콘텐츠 제작 비용은 있는데 TV 콘텐츠 제작 비용이 없었거든요. 외부에서 따로 투자를 받아야 했죠.

 

운 좋게 2주 만에 투자를 받았고, 기획이 빠르게 진행돼서 벨기에를 촬영지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출연자였어요. 급하게 섭외해야 했죠. 딩고에서 웹드라마를 만들면서 싸이더스HQ와 인연이 생겼던 터라 연락했더니 박준형 씨를 추천하더라고요.

<사서고생> ⓒJTBC

<와썹맨>을 만나다

박준형 씨를 출연자로 제안받았을 때 어땠나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박준형 씨를 썼을 때 어떤 반응이 올지 감이 오질 않았죠. 하지만 저희 역시 많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한편으론 좋은 카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급하게 해외 촬영을 가면 현지에서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서로 충분한 이해도 있었고, 무엇보다 박준형 씨 성격상 맏형으로서 힘이 되겠다 싶은 믿음이 들었어요.

 

<사서고생>은 박준형 씨가 현지인들 때문에 겪은 사건*으로 초기에 화제가 됐어요.

* 첫 여행지 벨기에에서 현지인들이 인종차별적 발언과 신체 접촉을 했다.

사실 고민이 많이 됐어요. 인종차별 문제였고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런데 프로그램으로 봤을 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허락해 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죠. 그랬더니 박준형 씨가 정말 쿨하게 "이런 건 당연히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때 박준형 씨가 콘텐츠에 대해 많이 열려 있다고 느꼈죠. 그 후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가진 캐릭터의 가능성이 보였어요.

 

촬영 마치고 돌아와 디지털 콘텐츠를 기획했어요. 처음엔 박준형 씨의 캐릭터를 살린 '페이크 리얼리티'를 하기로 했는데 생각만큼 나오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대본 없이 상황을 던져 주고 그가 자신의 캐릭터대로 대응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자연스러웠어요. 특히 요즘 10대를 비롯해 어린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나오는, 약간은 어이없기까지 한 '언밸런스 케미'가 좋더라고요.

 

그게 <와썹맨>의 시작이었군요.

그렇죠. TV버전으로는 <사서고생>이, 디지털 버전으로는 <사서고생 와썹맨>이 나갔던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디지털 콘텐츠로서 <와썹맨>의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 <와썹맨> 25화 ⓒ와썹맨

 

<와썹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한 후에는 어떻게 방향성을 잡았나요?

박준형 씨랑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박준형 씨가 "어린 친구들과 만나니까 꼭 놀이터에서 노는 것 같다", "요즘 10대들이 어디에서 노는지 보고 싶다"라고 하더라고요. 10대들이 모여드는 맛집에 박준형 씨가 끼어서 줄 서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상황 자체로 재미있는 데다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공유하는 부분들도 흥미로운 요소가 돼요. 한강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도 뭔가 보여줄 것 같더니 넘어지는 장면이 나와서 빵 터졌죠.

 

박준형 씨 이외의 성공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예전에 온게임넷에서 아프리카 TV 사용자를 분석한 적이 있어요. 많은 사용자가 열광했던 이유는 직접적인 소통이었어요. 보통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팬심을 전한다 해도 그들에게서 피드백을 받지는 못하잖아요. 그런데 아프리카 TV의 출연자들은 적극적인 피드백을 해줬잖아요.

 

<와썹맨>은 유명 연예인이 이런 피드백을 해주는 거예요. 사용자와 소통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강조하죠. 한 번은 제주도에서 촬영한 적이 있어요. 핫한 카페를 갔는데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어요. 초심을 잃었다고요. 그래서 사과했고, 다행히 받아들여졌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TV 콘텐츠가 보여주던 재미를 살리면서도, 멀게만 보이던 연예인을 가깝게 느끼도록 한 거죠.

 

트랜스 미디어를 제작하면서 느낀 TV 콘텐츠와 디지털 콘텐츠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TV 콘텐츠는 '던지기'라는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이런 걸 만들었어', '당신들이 원하는 건 이것 맞지? 재미있지?' 기본적으로 이런 자세죠. 일방적이에요.

디지털은 '던지고 받기'예요
즉 던져 놓고 받을 준비를 하죠

사용자들이 내가 던진 것에 대해 어떤 답을 줄지 기다려요. '당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다음 걸 준비할 테니 어서 이야기해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예요. 인터랙션이 살아 있죠. TV에서 만든 콘텐츠를 유튜브나 디지털 플랫폼에 업로드한다고 해서 모두 디지털 콘텐츠가 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TV 자막은 재미있는 요소를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부연 설명이나 장치거든요. 말하자면 사용자 입장에서 전해주는 거죠. 그런데 <와썹맨>에서 사용하는 자막은 사용자들의 생각이나 기대감을 읽고 반영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박준형 씨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사용자들이 댓글로 달 법한 내용을 자막으로 달아주는 거죠. 이런 부분이 재미를 강조하는 효과를 주는 동시에 '우리가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확인시켜주는 장치도 되니까요.

 

기자 간담회에서 <와썹맨>을 중심으로 플랫폼과 세계관을 확장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TV와 유튜브 채널을 넘어 더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싶다는 계획은 언제든 열어두고 있어요. <와썹맨>이 캡틴이라면 그를 중심으로 제2의 캐릭터도 계속 만들어내고 싶어요. 아마도 2019년 초에는 와썹맨의 세계에 투입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 거예요. 사용자들에게 많이 언급된 후보들을 중점적으로 고려했는데, 이들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에요. 요즘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저 반응이나 표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PPL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귀신같이 가려내죠.

 

말 나온 김에 묻자면, PPL 요청이 쇄도하지 않나요?

고민스러운 부분이에요.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품목의 제안이 오더라고요. 감사하긴 한데,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어요. 재미있게 승화시킬 수 있는지, 새로운 요소가 있는지, 유익한지 세 가지 조건에 따라서 선별하려고 노력해요. 무엇보다 콘텐츠 속에 재미있게 녹아드는 게 중요해요.

레거시와 뉴미디어의 결합

스튜디오 룰루랄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굴하나요?

매주 한 번씩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해요. 뚜렷한 형식이 있는 건 아닌데, 최근 재미있게 보거나 관심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죠. 이걸 어떤 식으로 콘텐츠화할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을 뽑아내거나 확장하면 좋을지도 나눠요.

레퍼런스에 의존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최대한 많이 보라고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나누는 거죠. 워낙 정보와 콘텐츠가 방대해서 놓치는 게 많거든요. 그 안에서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인사이트를 넓혀 가요.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구글 드라이브에 회의 내용이나 관련 영상을 올려 공유하고요.

 

감독님이 주로 접하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유튜브 콘텐츠를 많이 봐요. 인기 있는 해외 유튜버들의 채널을 비롯해 버즈피드(BuzzFeed), 리파이너리29(Refinery29), 넷플릭스(Netflix)도 즐기는 편이죠. 해외 채널은 감성의 결이 좀 다르지만, 그걸 어떻게 저희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적용할지 고민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거든요. 그리고 경쟁사인 와이낫미디어와 <연애 플레이 리스트>도 있고요. 브이로그도 많이 봐요. 대단히 색다른 건 없어요.

ⓒPUBLY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방송사에서 조직을 분리했어요. 각기 다른 배경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구성원들에게서 관성을 없애기 위해 어떤 식으로 조율하나요?

최대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피드백을 공유하는 형태로 작업하고 싶어요. 단순히 아이디어만 내는 게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왜 냈는지, 해당 타깃을 어떻게 분석했는지를 중요하게 봐요. 피드백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고 하죠.

 

얼마 전에도 브이로그와 관련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해당 타깃이 어떤 부분에 몰입할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인지, 또 어떤 상황이 더해졌을 때 그들이 반응할지에 대한 분석을 집요하게 요구했어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일해 왔지만, 현재 중요한 것은 저희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타깃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한다는 거예요.

 

기존 방송 제작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려운 부분이 있죠. 그래서 본인이 스스로 콘텐츠를 올리고 사용자들과 마주하면서 직접 무언가를 느끼고 학습할 시간을 마련해주려고 해요. 직접 반응을 살피고 느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변하지 않으니까요.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와 뉴미디어의 콘텐츠를 비교할 때 전자는 퀄리티에서, 후자는 스피드에서 우위가 있어요. 스튜디오 룰루랄라는 이 둘의 적정선을 유지해야 할 텐데요.

가장 큰 숙제죠. 디지털에서의 빠른 호흡과 시의성을 가지고 가되, 저희가 유지해온 퀄리티를 지켜야 하니까요. 단순히 디지털 화법에 맞추기만 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요.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스타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스토리는 '내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 만드는 이야기'고요. 그렇게 방향성을 만들어가는 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댓글이나 자막이 반응을 주고받는 수단이 되는 건가요?

말 그대로 수단일 뿐이에요. 사용자들의 반응을 수용해 다음 콘텐츠에 분명히 녹여내는 게 중요하죠. 그러려면 적극적인 팬덤이 만들어져야 해요. 수가 많아야 한다기보단, 저희가 만든 콘텐츠를 적극 응원해주고 잘못된 점을 따끔하게 지적해주는 팬덤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그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이야깃거리도 형성되거든요.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인터랙션을 평가한다면요.

저희도 노력 중이에요. <와썹맨>도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와썹맨>의 선전을 축하해주는 반응이 많은데 그럴수록 위기감이나 부담감이 생겨요. 디지털 플랫폼 시장에서 웹드라마는 많은 성과를 만들어왔어요. 그런데 예능 장르로 한정했을 때 사람들 기억에 남는 건 웹예능 <양세형의 숏터뷰>* 정도예요. <와썹맨>은 이어가는 거죠. 그러니 <와썹맨>이 성공한 웹예능이라는 평가를 받기보다는 본격적으로 많은 웹예능 콘텐츠가 쏟아지게 한 마중물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 SBS의 모바일 콘텐츠 제작소 모비딕이 제작한 웹예능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