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된다'는 것

PUBLY's Comment
본 챕터는 '콘텐츠 기획자들 - 뜨는 콘텐츠, 어떻게 만들죠?'를 기획하며 6명의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전체 콘텐츠의 마지막 목차인 '에필로그: 운의 길목을 지키는 일상의 규칙'은 사전 구성한 215개의 질문 중 본 인터뷰에 다 수록하지 못한 질문과 답변 일부를 포함해 2019년 1월 중 발행할 예정입니다.

뭐 얘기되는 것 없어?20년 넘게 기자로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얘기되는 것'이란 해당 분야의 현안과 이슈, 사람들의 관심사 등 기자로서 대중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한다.

 

2010년부터 대중문화를 취재 분야로 삼으면서 내 관심의 촉은 대중이 즐기는 콘텐츠를 향해 있었다. TV나 라디오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 뿐 아니라 유튜브, SNS 등 뉴미디어에 이르기까지 홍수처럼 쏟아지는 콘텐츠의 바다를 헤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재미있는 걸 많이 봐서 좋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내 취향보다 대중의 취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앞세워야 한다는 게 이 일의 큰 고통이다.

*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전통'으로 구분되는 포맷의 미디어.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 등을 일컫는다.

ⓒMike Ackerman/Unsplash

일반적인 대중문화 기사는 주류 트렌드의 흐름을 살피고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대상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다룬다. 하지만 내 관심과 애정은 주로 신선하고 발랄한 시도를 향했다. 대중의 호응을 받고 인기를 끄는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선도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큰 재미이자 나름의 보람이었다.

 

내가 대중문화 분야를 취재하던 초기부터 케이블 채널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지상파에 포커스가 맞춰진 시청률 평가 관행 때문에 미디어가 케이블 프로그램을 다루는 빈도는 지상파에 비해 월등히 낮았다.

 

'얘기된다'는 것

PUBLY's Comment
본 챕터는 '콘텐츠 기획자들 - 뜨는 콘텐츠, 어떻게 만들죠?'를 기획하며 6명의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전체 콘텐츠의 마지막 목차인 '에필로그: 운의 길목을 지키는 일상의 규칙'은 사전 구성한 215개의 질문 중 본 인터뷰에 다 수록하지 못한 질문과 답변 일부를 포함해 2019년 1월 중 발행할 예정입니다.

뭐 얘기되는 것 없어?20년 넘게 기자로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얘기되는 것'이란 해당 분야의 현안과 이슈, 사람들의 관심사 등 기자로서 대중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한다.

 

2010년부터 대중문화를 취재 분야로 삼으면서 내 관심의 촉은 대중이 즐기는 콘텐츠를 향해 있었다. TV나 라디오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 뿐 아니라 유튜브, SNS 등 뉴미디어에 이르기까지 홍수처럼 쏟아지는 콘텐츠의 바다를 헤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재미있는 걸 많이 봐서 좋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내 취향보다 대중의 취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앞세워야 한다는 게 이 일의 큰 고통이다.

*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전통'으로 구분되는 포맷의 미디어.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 등을 일컫는다.

ⓒMike Ackerman/Unsplash

일반적인 대중문화 기사는 주류 트렌드의 흐름을 살피고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대상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다룬다. 하지만 내 관심과 애정은 주로 신선하고 발랄한 시도를 향했다. 대중의 호응을 받고 인기를 끄는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선도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큰 재미이자 나름의 보람이었다.

 

내가 대중문화 분야를 취재하던 초기부터 케이블 채널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지상파에 포커스가 맞춰진 시청률 평가 관행 때문에 미디어가 케이블 프로그램을 다루는 빈도는 지상파에 비해 월등히 낮았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현장도 마찬가지다. 톱스타부터 신인 배우, 혹은 아이돌 연습생도 있었고 드라마 작가와 연출자, 현장 스태프와 기획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접했다. 톱스타에게선 그만의 아우라가 있었고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도 풍겼다. 그럼에도 내 호기심을 끌었던 이들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얼굴, 주인공보다 더 존재감을 빛내는 조연들이었다.

 

오랜 내공과 실력으로 다져진 탄탄한 연기력, 경험은 길지 않더라도 그 안에 내재된 에너지와 열정은 고스란히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사연을 기사로 썼다. 그들의 숨겨진 팬들이 해당 기사에 응원과 호응을 더할 때면 정말 짜릿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내서 진솔한 인터뷰를 했던 배우가 이젠 시간에 쫓겨 라운드 인터뷰*를 할 정도의 스타가 된 것을 보면서 괜히 나 혼자 뿌듯해한 적도 많았다. 저 배우의 성장에 적어도 내가 0.1% 정도는 보탬이 됐으리라 자부하며 말이다.

* 둥근 테이블에 인터뷰이와 여러 명의 기자가 둘러앉아 진행하는 형태의 인터뷰. 보통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면 기자와 인터뷰이가 일대일로 만나 진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바쁜 대중문화계 스타들은 많은 매체와 일대일로 인터뷰를 할 시간이 없다. 이 때문에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비워 온종일 시간대별로 여러 명과 인터뷰하는 라운드 인터뷰가 정착돼 있다.

밥상 차리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

대중을 매료시키는 스타들과 매력적인 결과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무대 뒤의 사람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늘 아쉬웠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많은 콘텐츠가 있었지만, 대중의 사랑은 대체로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을 향한다.

하지만 그 무대 뒤에는
이를 빛나게 하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숨겨져 있다

취재하면서 이들에게 애착을 느꼈고 그들의 삶을 전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스태프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놨다." 2005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배우 황정민이 했던 말처럼,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좀 더 엄밀히 말해 '밥상 메뉴를 정하고 레시피를 만드는 사람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면이나 시간의 제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충분하게 다루지는 못했던 것 같다.

 

PUBLY의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하기로 한 것은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해보자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선택하고 마음을 여는 콘텐츠를 만들어 온 그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매시간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지, 동료들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고 싶었다.

 

TV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태될 것이라 예상했던 '올드미디어' 라디오임에도 지금 가장 뜨거운 뉴스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의 김현정 앵커,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광고 영상을 차단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대에 굳이 찾아보는 광고를 만들어 낸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감독, 새로운 세대와 형식에 맞는 신선한 서사를 우직하게 빚어내는 '스튜디오 드래곤' 박준화 PD, 올드미디어·뉴미디어를 통틀어 레드 오션이 된 먹방계에서 생생한 카메라 워킹과 정보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장르를 연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박희연 PD, 영상 시대에 걸맞은 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준 <와썹맨> 김학준 CP, 드라마제작사의 브랜드화를 꿈꾸며 끊임없이 관성을 깨뜨리는 시도를 하는 '히든 시퀀스' 이재문 대표.

왼쪽부터 김현정 앵커, 신우석 감독, 박준화 PD, 박희연 PD, 김학준 CP, 이재문 대표 ⓒPUBLY

한 달 가까이 신중한 논의 끝에 선정한 6명의 인터뷰이들이다. 이들은 짧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씩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때로는 '영업 비밀'을 빼내 보자는 염탐꾼이 된 심정으로 이것저것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물었다. 그때마다 내 인터뷰이들은 의미와 깊이, 재미를 포함한 답변을 들려줬다.

 

그들에게도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는 놓여있다. 그래서 고민하고 시도하고 해법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쌓아간다.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빌어 말해 보자면, 뜨는 콘텐츠를 만들어 온 그들에겐 비슷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들죠?

프로젝트 제목을 정하면서 '콘텐츠 기획자들', '뜨는 콘텐츠', '어떻게 만들죠' 중 어디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미생>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을 위한 기사나 인터뷰는 많지만, <미생> 같은 드라마를 누가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와썹맨>이 석 달 만에 100만 구독자를 모았다는 기사는 많지만, 그 성취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관한 이야기 역시 없었다. <김현정의 뉴스쇼>는 어떻게 10년간 매일 방송을 유지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는지,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회의를 거쳐 만들었기에 그토록 독특한 먹방이 되었는지 말해주는 콘텐츠는 없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 자체에 대한 설명서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1단계에서 무엇을 하고(가령 아이템을 잡는다거나), 2단계에서는 또 무엇을 하면(가령 섭외를 한다거나) 대강 어떤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지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콘텐츠 기획과 제작은
늘 설명서 너머의 일이 관건이다
왜 박준형이었는지, 편집은 누가 했는지, 촬영은 어떤 장비를 사용한 것인지. 우리는 6명의 크리에이터에게 이 1단계와 2단계 사이를 채우는, 일의 일상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묻기로 했다. 그 결과, '6명의 크리에이터에게 13시간 50분에 걸쳐 215개의 질문'을 했다. 215개의 질문들을 뽑아내기 위해 6명의 크리에이터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찾아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리고, 선택받고, 사랑받는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재생산하려면, 이미 공개된 내용 외에 숨겨져 있는 일상적인 일의 면면을 물어야 했다. 그 너머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들의 일상과 일, 양쪽 모두의 패턴을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과 삶,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질문지를 추렸다. 일과 삶이 분리돼 있으면 분리된 대로, 일치하면 일치하는 대로 영감을 주는 부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고르고 고른 질문이었음에도 그들의 답변은 몇 번이나 질문을 넘어서 펼쳐졌다.

 

6명 모두 각기 다른 방식과 과정으로 다른 형태의 결과물을 냈다. 그럼에도 215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니 공통된 무언가가 있었다. 이 '무언가'를 담은 본 리포트가 '좋은' 콘텐츠가 무엇인지, 또한 팔리고, 선택받고, 사랑받는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