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금융위기는 닮아있다

Editor's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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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경제와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할 파이낸셜 타임스 X PUBLY의 다섯 번째 큐레이션 주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10년, 우리는 교훈을 얻었는가?'입니다. 2018년은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맞이하여 10년 전 위기 촉발 상황부터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를 통해 생생히 돌아봅니다. 또한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 진단하며 다가올 위기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담았습니다.
-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 기사에서 지난달 / 지난해 / 내년 등으로 표기된 부분은 실제 일자로 수정했습니다. (ex. 지난해 →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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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어느 초여름 날, 나는 일본 중앙은행의 나카소 히로시(Nakaso Hiroshi)로부터 난데없는 이메일 하나를 받았다. 그는 "다소 염려가 됩니다."라고, 특유의 절제된 표현으로 글을 시작하였으나 곧 미국 모기지(mortgage, 주택담보대출) 시장, 나아가 신용 시장 전반의 문제로 인해 금융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카소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2007년 6월까지 2년여 동안 파이낸셜 타임스의 자본 시장 담당 편집자로 런던에서 일하며 신용 관련 글을 기고했던 나 역시 당시 경제 상황을 두고 불안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경고를 한 사람이 나카소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서브프라임 시장과 밀접한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지구 반대편 도쿄에 위치한 요새 같은 회색 건물의 일본은행(Bank of Japan)에서 근무하는 나카소가 먼저 이러한 말을 꺼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이하 연준)의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지난 10년 동안 서구 자본 시장의 승리를 자축했다. 또한 후임 의장 벤 버냉키(Ben Bernanke)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문제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큰 여파'를 몰고 오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Bernanke: Subprime Mortgage Woes Won't Seriously Hurt Economy (CNBC, 2007.05.17)

 

그렇다면 나카소는 왜 그렇게 비관적이었을까? 그는 '데자뷔*' 때문이라고 답했다. 2007년으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 나카소가 일본은행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일본은 끔찍한 금융위기에 빠졌다. 이는 1980년대 일본 부동산 시장의 거품(バブル景気, baburu keiki)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1조 달러(한화 약 1,129조 원)의 부실 대출로 인해 촉발된 상황이었다.

*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 기시감(旣視感)이라고도 한다.

©Shutterstock나카소와 나는 격동의 시기에 만났다. 당시 나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도쿄 특파원이었다. 우리는 오니기리 주먹밥과 녹차를 함께 먹으며 일본 금융위기에 대해 논의하곤 했다. 2000년, 내가 일본을 떠났을 때 금융위기는 거의 지나간 상황이었고, 서구 사람들은 이를 세계 금융 역사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본에만 국한된 사건으로 인식하였다. 연준이나 월스트리트, 그리고 런던의 금융 전문가들도 미국 금융시장이 일본이 경험한 것과 같은 굴욕을 겪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카소는 일본의 쓰디쓴 경험을 통해 금융시장의 오만함이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정부 관료들이 자기 자신들은 물론, 유권자들에게 문제를 축소 발표하고 있음을 알았고, 단기금융시장*이 투자자와 금융기관 간 신뢰를 잃게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또한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만기 1년 이내의 금융자산이 거래되는 시장 (출처: 외교통상용어사전)

지금 상황은 일본 금융위기 초기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해요. 중앙은행과 금융 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이 제대로 시험대에 오를 것입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로부터 몇 주 후인 2007년 8월, 미국 및 유럽의 금융 시스템이 모기지 위험으로 인해 붕괴하기 시작했다.하지만 2008년 가을 무렵,
서서히 타오르던 위험 요소들이 맞물려
전면적인 글로벌 위기가 터졌다

이 위기의 중심에는 리먼 브라더스의 붕괴와 AIG에 투입된 구제금융이 있었다. 나는 나카소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좌절감도 느낀다.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계산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11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47건의 금융위기가 있었는데, 이 중에는 가볍게 넘어간 위기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94년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를 오늘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편 큰 규모의 위기도 있었다. 2007~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24%만큼 증가할 정도로 심각했다. 1997년 일본 금융위기의 경우 공공부채 비율이 42%였다.

 

하지만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위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위기가 닥치기 직전 시장의 오만, 탐욕, 불투명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금융사들의 편협한 시야로 인해 리스크 평가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둘째, 위기가 닥치면 투자자, 정부, 기관들 내부적으로 또는 서로 간 신뢰가 갑자기 무너진다는 점이다.

©Shutterstock금융위기를 이해하려면 '신용(credit)'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믿다'라는 뜻의 라틴어 'credere'에서 파생되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금융은 신뢰 없이 작동할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신뢰가 지나치면 거품이 형성되고, 이 거품은 불가피하게 터질 수밖에 없다.

 

리먼 브라더스가 붕괴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답하기 어려운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왜 계속 위기를 겪게 되는가? 왜 과거의 위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그리고 이는 현재 글로벌 시스템이 나아가는 방향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일본과 미국에 이어 다음 위기에 직면할 국가는 어디일까?

신용 붐에 눈이 가려진 사람들

2005년 초 서구 자본시장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일본과 유사한 충격이 또다시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처음에는 인터넷 혁명에 상응하는 금융 혁명이 일어날 것이며, 거침없는 혁신의 바람이 불어 모든 사람의 삶이 개선되리라 기대했다.

 

이런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 세기 동안 은행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단순한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움직여 왔다. 기업, 정부, 소비자들로부터 예금을 받은 돈과 추가적인 레버리지를 가지고 대출을 제공하는 것 말이다. 이에 따라 1980년대 거품이 잔뜩 낀 일본의 은행들은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 발생한 저축대부조합 사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 관련 기사: 미국 1980~90년대 저축대부조합도 금융당국 초기대응 미흡해 부실 키워 (Chosun Biz, 2011.5.23)

 

하지만 기존 세대의 은행들이 마치 작물을 기르는 농부처럼 대출을 계속 껴안고 있었다면, 20세기 말의 금융사들은 소시지를 만드는 도축업자에 가까웠다. 이들은 출처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대출 상품을 구매하였고, 심지어 서로 대출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잘게 썰어서 새로운 상품으로 포장한 다음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이라는 복잡한 이름을 붙여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 관련 기사: [경제용어산책] CDO 부채담보부증권 (매일경제, 2011.11.18)

©Nathan Dumlao/Unsplash

새로운 혁신을 도입할 때에는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는 그럴듯한 근거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현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행들은 대출을 쪼개고 자르는 행위를 통해 금융 시스템이 더욱 안전해질 것이라 믿었다. '문제를 서로 나누면 반이 된다'는 옛 속담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행동이었다.

 

과거 은행들은 채무자가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이 한 곳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반면 상품을 쪼개고 자르면 투자자들 사이에서 고통이 분산되므로 위험을 흡수하기가 더 쉬워진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러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허점이 있었다

은행들이 대출을 쪼개고 자르기 위해 사용한 기법이 너무나도 불투명했기 때문에 누가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은행들이 대출 상품을 재포장하는 일에 혈안이 되면서 대출 열풍이 일어났고, 여기에 정부까지도 도움을 보탰다. 이러한 금융 혁신의 이면, 특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현상 뒤에는 '신용 붐'이 숨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양상을 우려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대출 상품을 이용한 투자 금융 부문은 너무 독특하고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유권자와 정치인 대부분은 혁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Micah Williams/Unsplash역사적으로 볼 때, 지속 불가능한 호황은 언제나 새로운 개척지를 발견했다는 혁신가들의 발상으로 시작하였다. 18세기 남해 거품(South Sea Bubble) 사건*의 경우 개척지는 가상의 새로운 나라였고, 1840년대 철도 열풍**과 1990년대 닷컴 버블***의 경우에는 신기술이었다. 2005년에 나타난 개척지는 금융이었다.

* 1720년 영국을 뒤흔든 경제 위기. 영국이 늘어난 국채를 상환하기 위해 남해회사를 설립하여 주식을 발행하였고, 이에 투기 열풍이 불었으나 남해회사의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대규모 거품 붕괴와 파산이 일어난 사건

** 1840년 영국에서 당시 획기적인 교통수단이었던 철도 기업에 막대한 자본이 집중되었고, 이로 인해 빚과 이자율이 함께 늘면서 철도 주식의 가격 폭락과 투자자들의 파산을 초래한 사건

*** 인터넷 관련 분야가 성장하면서 산업 국가의 주식 시장이 급속히 상승한 사건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 전 부총재 폴 터커(Paul Tuc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금융과 그림자 금융을 계속해서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역학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단기 기억력은 좋은데 장기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금융 기술의 변화에서는 더욱 그렇죠.

복잡성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해 말, 내가 참석했던 한 회의에서는 수백 명의 은행 담당자가 프랑스 남부에 있는 벽화로 가득 찬 콘크리트 공회당에 모여 증권화, 즉 대출 채권을 쪼개고 자르는 행위에 대해 논의했다.

 

이틀 동안 이들은 마치 신성한 비밀 언어를 말하는 종교 집단처럼 그리스 문자, 알고리즘, 전문 용어로 가득한 파워포인트를 공개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자 투자자, 규제자, 심지어는 은행 책임자들마저도 이 상품들의 작동 원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외부 세계에는 컴퓨터가 금융 혁명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이 혁명은 무모한 신뢰가 주도하고 있었다.

 

은행들은 왜 이 현상을 수락했을까?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거품이 이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JP모건(JPMorgan) 은행 부문 전 공동대표이자 현재 스탠다드차티드(Standard Chartered) CEO인 빌 윈터스(Bill Winters)의 말이다.

모든 측면에서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했습니다. 마치 정부가 테이블 가운데에 커다란 꿀단지를 던져 놓고, 꿀벌이 날아올 걱정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았죠.

더 놀라운 사실은 규제 당국에서도 개입을 꺼렸다는 점이다. 일부는 경제의 힘을 믿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졌다. 또 일부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과 서구 금융을 향한 자신감을 방패 삼아 일본의 금융위기를 경고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지극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네요.

2008년 금융위기의 기억

다시 2007년으로 돌아와 바르셀로나에서 있었던 또 다른 금융 컨퍼런스를 떠올려 본다. 당시 열풍은 대단했다. 면바지를 입은 금융사 직원들이 방마다 가득했다. 이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금융 혁신에 대해 자축하는 건배를 했다. 기세등등한 발표자료에서 보이는 그래프들은 모두 상승 곡선을 그렸다.

 

회의장 주변에는 일부 은행원들이 '다 레버리지(Da Leverage)'라는 이름의 레게 스타일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했다. "장난삼아 해 본 거죠."라고 한 은행원이 말했다. 이것은 일본의 부동산 거품 시기에 나타난 모습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 보였다. 당시 일본에서 사람들은 초밥에 금박을 뿌려 먹었고, 누구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 컨퍼런스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마침내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조짐은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나타났다. 프랑스의 BNP 파리바(BNP Paribas)와 독일의 IKB에서 각각 자사가 보유한 미국 모기지 채권의 문제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식중독 파동'과 닮아 있었다. 2007년이 저물어가면서, 상당수의 미국 채무자들이 모기지 상환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 대출 채권이 쪼개지고 잘려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하자, 금융이라는 식품공급망의 어느 지점에 독성 리스크가 존재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쪼개지고 잘린 투자 상품을 무조건 피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시장은 작동을 멈추었다.

 

금융 당국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신뢰는 한 번 깨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법이다. 특히 정부나 은행들이 기발한 회계 속임수로 문제를 숨기고자 했기 때문에 신뢰 회복은 더욱 어려웠다.

 

미국이 10년 전 일본 정부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속임수를 똑같이 사용해 시장을 안심시키려 한 모습을 본 일본 고위공무원이 다음과 같은 농담을 던졌다.

상한 고기를 냉장고에 넣으면
냄새는 안 나겠지만,
그래도 고기가 상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Namphuong Van/Unsplash이는 가망이 없는 과제였다. '자르고 쪼개는' 과정에서 미국, 유럽, 아시아 시장이 서로 긴밀하게 뒤얽혔고,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한 문제는 쉽게 다른 곳으로 전파되었다. 신뢰는 다달이 바닥났다.

 

투자자들은 모기지 채권의 가치, 신용평가기관의 판단, 은행의 재무 상태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리먼 브라더스가 붕괴한 2008년 9월, 투자자들은 100% 안전한 회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2주라는 무서운 시간 동안 미국에서 신용은 사라져 버렸다.

 

결국 정부가 개입해서야 위기가 멈추었다. 정부는 은행들이 자사의 손실을 인식하도록 하여 자본을 재조정하고, 취약한 대출기관을 정리하고, 이상한 약어로 가득한 다수의 신용 상품 판매를 중단시키고,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위한 새로운 신뢰 기반을 제공해 준 것과 다름없었다.

 

이 조치는 많은 유권자와 투자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일본은 지난 1990년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와 비슷한 조치를 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IMF에서 발표한 147개 위기 경험 국가의 정부들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위기에서 유일하게 놀라운 점은 미국 고위관리자들과 투자자들이 금융위기가 미국에 닥친 사실에 대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브리지워터(Bridgewater) 헤지펀드를 창설한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위기는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원한다면 위기의 역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위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금융 위기 10년 후, 이대로 괜찮을까?

몇 주 전, 나는 나카소와 다시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20년 전 처음 도쿄에서 만난 이후로 금융시장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미국 특파원이 되었고, 나카소는 일본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후 최근 은퇴하여 도쿄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금융 시스템이 현재 더 튼튼해졌다고 생각하나요?

나카소는 언제나처럼 조심스럽게 균형 잡힌 답을 주었다.

금융의 일부 부문이 강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2008년 위기 이후 미국 정부는 은행들의 자본을 재조정하였고, 신용 붐의 비정상적인 관행을 중단시켰습니다. 미국 당국은 일본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본으로부터 교훈을 얻었고 일본보다 재빠르게 대응했지요.

미국은 유럽 당국보다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전 미국 재무장관 헨리 폴슨(Henry Paulson)은 이렇게 말한다.

유럽 정부들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려는 행동이 미국보다 늦었습니다.

하지만 금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비은행 투자기관들이 큰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극도로 느슨한 통화 정책으로 인해 대출 비용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바르셀로나에서 '다 레버리지' 밴드를 결성한 은행원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문제가 있다.

바로 부채이다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년간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GDP 대비 전 세계 부채 비율이 179%에서 217%까지 급증했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대출은 서브프라임 대출 등 지난 위기의 원인이었던 금융 부문이 아닌, 위험한 기업 및 정부 사이에서 발생했다. 이는 이미 금융 경색에 직면한 터키에서부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 아래 대출이 증가한 미국에까지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Raw pixel/Unsplash한편 중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총 공공부채와 민간부채가 두 배 증가하여 GDP의 약 300%에 이르렀다. 이는 무분별했던 1980년대 일본의 부채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다음 금융위기는 중국에서 일어날까? 나는 자만심, 불투명함, 엘리트 계층의 탐욕, 숨 가쁠 정도로 빠른 경제적 변화 등 중국의 현재 모습이 1980년대 일본과 많이 닮았다는 점을 나카소에게 이야기했다.

그렇진 않을 겁니다.

나카소가 말했다. 그는 부채의 증가가 우려할 만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중국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은 외환보유고가 많으며, 중국 정부는 유권자에 의한 흔들림 없이 재빠르고 결단력 있게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덧붙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활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죠.

중국에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정부 관리들이 역사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을 타인의 재앙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재앙을 피하는 방법을 강구한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 시절 미 재무장관을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Timothy Geithner)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매우 신중한 태도입니다.

레이 달리오 역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중국인들은 역사에 강합니다. 중국 정부는 위기의 역학을 이해하고 있고,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기가 미국보다 훨씬 쉽습니다.

전화 너머로 나카소가 전한 말이다.

중국 관리들은 일본까지 여러 번 찾아와 일본의 금융위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일본 관리들은 어떠한 조언을 해 주었을까? 핵심 메시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방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위기가 닥치면
매우 과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중국은 1997년 일본이 직면한, 또는 10년 전 미국이 직면한 운명을 피하기 위한 교훈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까? 이 값비싼 질문에 대한 답은 수년 동안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분명한 사실은 중국 정부에 금융위기가 찾아온다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여파도 어마어마하리라는 점이다. 윈터스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세계가 중국에 의존하는 정도는 1990년대 일본에 의존했던 것보다 훨씬 큽니다.

금융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일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 원 기사 제목: Have we learnt the lessons of the financial crisis?
  • 기사 게재일: 2018년 8월 31일
  • 기사 작성: 질리안 테트(Gillian Tett)
  • 번역: 심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