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기계가 아닌 종이로 돈을 벌다

Editor's Comment

시장을 독점하면 그걸로 끝? 거대 기업들은 새로이 시장에 진입하는 경쟁 기업에 어떻게 대처해왔을까요? '독점 기업이 돈 버는 방법: 미국 편 - 록펠러부터 아마존까지' 두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천준범 저자와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두 기업, IBM과 3M이 취한 전략을 살펴봅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0월 2일(화)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또한 '이 콘텐츠가 꼭 발행되었으면', '목표금액 100%를 넘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신 멤버십 고객을 위해 후원 서비스를 마련하였습니다. 결제가 이루어지는 즉시 후원하신 금액을 멤버십 포인트로 환급해 드립니다. [프로젝트 후원]
* 상단 이미지 ©Neonbrand/Unsplash

모바일 시대로 넘어온 요즘에는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은 데스크톱 이전 시대부터 이름 그대로 업무용 컴퓨터의 최강자였다.

 

누구든 학창시절에 OMR 카드를 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빈칸에 체크를 하면 컴퓨터가 인식해서 데이터로 입력하는 방식이다. 그보다 앞서 현대적인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컴퓨터용 사인펜 대신 구멍을 뚫어 데이터를 표시하고 입력하는 천공카드(punched card)가 널리 이용되었다. 최근까지 미국 대통령 선거의 투표용지로 이용되기도 한, 유서 깊은 방식이다.

천공카드

이런 천공카드는 기업의 업무에서 이용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 쓰였다. 이 천공카드를 읽고 입력받는 가장 좋은 기계의 특허권자가 IBM이었다. IBM은 뛰어난 기술의 대가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IBM에게 큰돈을 가져다준 것은 특허 받은 기계가 아니라 종이로 만든 천공카드였다.

 

이유가 왜일지 생각해보자. 기계는 한 번 팔면 끝이다. 하지만 천공카드는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쓰면 재활용할 수 없고 계속 새로운 카드를 사야 한다. 당시 천공카드는 80 x 40의 규격이 표준이었기 때문에, 최대 3,200개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새로운 천공카드를 써야 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거래와 일들을 모두 입력해야 하는데 고작 3,200개라니.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천공카드를 써야 했을지 상상해 보자.

 

천공카드 기계의 특허권자 IBM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의 전략은 이러했다.

 

1. 천공카드 기계를 소비자에게 판매하지 않고 임대하여 사용하게 함

2. 임대 조건 중 "반드시 IBM 순정 천공카드를 써야 한다"는 조항을 넣음

3. 규격에 맞지 않는 카드를 쓰면 기계가 고장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함

 

순정(純正) 부품. 어디서 많이 본 표현이다. 요리조리 아무리 봐도 똑같은 종이인 것 같은데, 고장 나기 쉽다고 하니 소비자들은 IBM 순정이 아닌 다른 천공카드를 쓰기가 왠지 찝찝했을 것 같다. 실제로 고장이 더 잘 나는지 확인해 주는 사람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IBM은 어렵게 특허 받은 천공카드 기계가 아니라 누구나 만들기 쉬운 종이 천공카드 시장에서 81%의 시장을 장악해서 돈을 긁어 모았다.

 

하지만, 이런 IBM의 전략은 반독점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소비자가 사고 싶은 제품이 하나 있고 사기 싫은 제품이 하나 있는데, 사고 싶은 제품을 사기 위해서는 사기 싫은 제품을 반드시 사야 하며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사기 싫은 제품을 사야 하는 것이 독점의 원인이 되었다면 불법이다.

1930년대의 일이었다.

3M의 스카치 테이프 묶어 팔기 전략

'포스트잇'을 떠올리게 하는 회사, 3M의 원래 이름은 'Minnesota Mining & Manufacturing'이다. 1902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회사이고, 문구류는 물론 안 만드는 게 거의 없는 생활용품 제조회사다. 처음에는 회사 이름 그대로 광업(mining)으로 출발했지만 실패했고, 그다음으로 사포를 만들어 팔면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그 이름, '스카치 테이프(Scotch Tape)'를 대히트시키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Kelly Sikkema/Unsplash

스카치 테이프는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미국 투명 접착 테이프 시장도 석권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시장 점유율이 무려 90%가 넘었다. 여기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르파쥬(LePage)'라는 저가형 투명 접착 테이프였다. 처음 시장에 진입하는 회사가 대부분 그렇듯, 르파쥬는 대형 할인점과 문구 전문점에 스카치 테이프보다 더 싸게 투명 접착 테이프를 공급했다. 품질도 괜찮았는지, 르파쥬는 꽤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저가 정책으로 도전하는 경쟁자를 맞아, 3M은 어떤 전략을 세웠을까? 일단 압도적인 유명 브랜드 스카치 테이프를 할인하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 손상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로운 경쟁자 르파쥬와 경쟁하기 위해 3M은 이렇게 했다.

 

1. '브랜드 없는' 새로운 저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함(스카치 테이프 로고가 없음)

2. 판매 가격은 르파쥬의 테이프와 비슷하게 함

3. 스카치 테이프와 '브랜드 없는' 저가 테이프를 포함한 6개 상품을 묶어 공급하면서 판매처인 대형 할인점과 문구 전문점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세움

여섯 가지 상품을 각각 100개 이상 사면 전체 가격의 30%를 깎아 주겠음*

* 구체적인 숫자는 실제 사건과 다름

록펠러가 100년 전에 했던 것처럼,
소위 '물량 리베이트'를 제안했다

대형 할인점과 문구 전문점들 입장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카치 테이프를 100개 이상 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30% 할인을 받으려면 새로 나온 브랜드 없는 테이프도 100개 이상 사야 하는 것이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스카치 테이프를 싸게 공급 받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소매상들은 대부분 일단 3M의 새로 나온 저가 테이프도 함께 100개 공급 받기로 했다. 대신 비슷한 저가 상품인 르파쥬의 테이프 판매를 줄였다. 저가 제품이 얼마나 팔릴 지 모르는 상태에서 재고를 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고급 제품 라인인 스카치 테이프도 살리고, 저가 제품 경쟁자인 르파쥬도 죽이고. 누가 생각해냈는지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Claire Anderson/Unsplash

법원은 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놓았을까?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스카치 테이프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르파쥬의 테이프를 잘 팔리지 않도록 한 것은 불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경제적 영역에서 반독점법은 정치적 영역에서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는 선거의 가치와 같다. 민주주의가 외부 압력에 제약 받지 않는 자유로운 정치 제도 하에서만 잘 돌아갈 수 있듯, 자본주의 시장경제 또한 시장 지배력이 있는 자들을 끊임없이 감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많이 팔아 줘서 싸게 산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던 록펠러의 말이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다. '오직 가격과 품질로 경쟁하라'는 것이 반독점법의 핵심 가치인데, 이것은 가격으로 경쟁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물론 가격으로 경쟁한 것은 맞다. 하지만 브랜드 없는 새로운 저가 테이프만의 가격으로 르파쥬와 경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게 미국 법원의 결론이었다.

 

이렇듯 혁신적인 회사들이 획기적인 기술로 작은 시장을 독점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더 큰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
다시 제로에서 경쟁해야 했고
독점 시장에 들어오는
새로운 경쟁자도 막아야 했다

끼워팔기도 하고, 거래거절도 하고, 리베이트도 주고. 이렇게 독점의 힘을 지렛대 삼아 조금 쉽고 편하게 다른 시장에도 진출하며 경쟁자들을 막아내고 싶다 해도, 그럴 때마다 거대 기업들은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곤 했다.

 

법은 이렇게 계속 시장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경쟁을 채찍질했다. 그것이 우리와 같은 다수 소비자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네셔널 솔트, 코닥, 로레인 저널, 철도 사업자 등 과거 독점 기업들의 더욱 다양한 전략은 최종 리포트를 통해 공개됩니다.)

 

[독점 기업이 돈 버는 방법 - 미국 편: 록펠러부터 아마존까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구글(Google), 애플(Apple), 아마존(Amazon) 등 위대한 IT 기업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로 세상을 바꾼 많은 역사 속 회사들은 과연 혁신과 기술만으로 거대한 세계 시장에 우뚝 섰던 것일까? 시장의 공정한 룰이 무엇인지 생각해오며 독점 기업을 꾸준히 공부해 온 천준범 저자가 파헤친 거대 기업들의 경쟁 전략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