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 번역사가 말하는 좋은 로컬리제이션의 핵심

Editor's Comment

장혜림 저자가 5명의 로컬리제이션 전문가를 인터뷰했습니다. '현지에서 통할까? - 그들이 사용하는 로컬리제이션 매뉴얼' 세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그중 정수진 번역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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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Tyler Lastovich/Unsplash
어떤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로컬리제이션의 방향도 달라진다. 정답은 각자 찾아야 하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업계에서 수년간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터뷰에 응한 5명의 로컬리제이션 전문가 중 정수진 번역사는 내가 만난 번역사 중 가장 정확하게 로컬리제이션을 이해하고 계신 분이다. 구글에서 처음 만난 이후 에어비앤비까지 10년 넘게 내가 맡은 로컬리제이션의 번역과 감수를 해오고 있다. 로컬리제이션 분야의 커리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롤모델이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수진 번역사
(사진 ©정수진)


미국 미들베리 국제대학원(Middlebur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at Monterey,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 졸업 후 구글에 입사, 한국어 언어 전문가(Language Specialist)로 근무했다. 유튜브, 구글 지도와 같은 구글의 다양한 컨슈머 제품 런칭 과정에서 로컬리제이션을 담당했다. 2012년부터 프리랜서로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의 번역과 감수를 하고 있으며 틈틈이 책 번역에도 도전하여 지금까지 <지구별 오디세이>, <도마뱀을 설득하라>, <Calm: 이토록 고요한 시간>, <콘텐츠 룰> 등을 옮겼다.

장혜림(이하 생략) 번역사는 어떤 직업인가요? 번역사로서의 삶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정수진(이하 생략) 다들 아는 것처럼 번역은 한 언어로 된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에요. 번역이라면 출판(책) 번역이나 영상(영화나 드라마) 번역을 흔히 떠올리는데, 저는 로컬리제이션 번역과 감수를 주로 하고 있어요.

 

로컬리제이션 번역사들은 글로벌 IT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관련된 번역을 담당합니다. 예를 들면 구글, 에어비앤비, 애플 등 미국에서 개발된 제품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고객센터 도움말, 마케팅 텍스트 등을 한국어로 번역합니다.

 

현재 프리랜서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어요. 오전에 집이나 카페에서 집중해서 일하고, 점심을 먹고 난 후 아이를 돌보거나 운동을 합니다. 밀린 일이 있을 때는 밤에도 일하고요. 

 

번역사가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힘든가요?

어릴 때부터 그냥 책이 좋았어요. 영어가 좋고, 책이 좋아서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다른 쪽으로 취업했지만, 번역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입사 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미들베리 국제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원에서도 전공은 국제회의 통역이었지만 로컬리제이션 수업을 재미있어했고, 어느덧 로컬리제이션 번역 10년 차가 되었네요.

&#169;Jan Piatkowski/Unsplash

프리랜스 번역사는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항상 새로운 내용을 접하기 때문에 지적인 자극도 많이 받고요.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니 아이를 돌보면서 일할 수도 있고요. 조직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지요.

 

힘든 점은 업무량과 수입이 들쭉날쭉하다는 점, 그리고 오래 앉아 작업할 때가 많아 체력이 약해진다는 점, 혼자 일하다 보니 외롭거나, 회사의 든든한 복지 혜택이 그립다는 점 정도일 것 같네요. 

 

구글과 에어비앤비에서 해온 로컬리제이션 일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구글에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어 언어 전문가로 일했고, 2012년부터 업체 소속 프리랜스 리뷰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는 콘텐츠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만한 양을 납기 안에 처리할 수 있는 번역 업체들에 번역을 의뢰하고 있고요.

 

리뷰어들은 번역 업체 번역사들이 작업한 번역문이 구글에서 원하는 품질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고, 평가하며, 다듬어서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번역문이 맥락에 적합한지 확인하는 QA*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 Quality Assurance.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 전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테스트하고 검수하는 과정

 

2015년부터 프리랜서로 에어비앤비 번역 일도 하고 있는데요.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마케팅 콘텐츠를 직접 번역하고, 가끔 다른 번역사들의 번역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정수진 님이 생각하는 로컬리제이션은 무엇인가요?
아, 어려운 질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대학원에서 로컬리제이션을 처음 배울 때는 HP의 프린터 소프트웨어 번역을 다루었습니다. 그때는 막연히 미국 IT기업에서 개발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관련 기술 콘텐츠 번역이 로컬리제이션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또는 한국에 거주하는 사용자가 영어 대신 한국어로 쉽게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이 로컬리제이션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구글에 입사해 보니 로컬리제이션은 단순히 번역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현재 구글 어스 PC 화면 &#169;Google

구글 어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당시 한국어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면, '구글 어스'라는 이름부터 이상하다고 했어요. 내부에서 '구글 지구'로 제품명을 변경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요. 제품명의 폰트와 크기가 이상하다는 말도 들었고요. 기존 번역 스타일이 올드하다는 지적도 많았어요. 사용자 인터페이스, 제품명, 번역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로컬리제이션이 고려되어야 할 범위가 생각보다 굉장히 넓었어요.

로컬리제이션은
번역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오히려 현지 문화를 고려한
새로운 버전 출시로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로컬리제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지켜나가되, 현지 문화에 맞출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현지화하는 것이 성공적인 로컬리제이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업 또는 개발자의 핵심 가치는 어느 나라 언어로든 그대로 전달되도록 신경 써야겠지요. 현지화된 버전을 내놓으면서 원래 팬들이 소중히 여기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번역 과정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테니까요.

 

하지만 현지 문화에서 적절하게 여기는 요소들을 놓치면 현지 사용자들에게 '성의가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로컬리제이션 범위를 확실히 정하고 현지 문화의 기준에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면에서 보자면 현지인의 언어와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호감을 줄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 구글 지도에서 동해와 독도 명칭에 '동해'나 '독도'뿐 아니라 '일본해'와 '리앙쿠르암'이 병기되어 한국 사용자들의 반발이 엄청났던 적이 있었죠*. 구글 본사 결정에 따른 결과로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지인의 정서에 맞는 번역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컬리제이션을 검토 중인 스타트업에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로컬리제이션은 단순히 텍스트 번역만으로 되는 작업이 아닙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면 제품 개발과 구현 단계에서부터 확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한국어에서 외국어로 로컬리제이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는
더블바이트/싱글바이트
언어라는 면에서 다르고,
히브리어는 화면에서
읽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런 언어/비언어적인 요소들을 제품 개발 완료 후에 변경하려면 불필요한 비용과 수고가 들어갑니다.

 

로컬리제이션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목표 언어와 현지 문화, 개발 프로세스에 정통한 로컬리제이션 전문가를 참여시키거나 조언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번역을 의뢰할 때도 로컬리제이션 경험이 충분하고, 높은 품질의 번역을 제공하면서 출시 전 테스트 및 검수까지 해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겠지요.

 

로컬리제이션 또는 번역을 커리어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일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로컬리제이션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글로벌 기업과 일하는 번역사와 업체 소속 번역사의 대우에 차이가 있는데, 한국에도 전문 업체들이 나와서 번역사들의 처우가 더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로컬리제이션 번역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 업체뿐 아니라 외국 업체와도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세요. 물론 먼저 탄탄한 실력이 갖춰져야 하겠지요. 최신 기술과 트렌드에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팀으로 일하는 로컬리제이션 프로세스의 특성상 협업을 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 번역의 발달로 번역사의 일이 사라질 거라 말하지만 저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글 번역기의 번역을 보면,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이 대충 한 번역보다 기계 번역이 나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IT 기업 콘텐츠의 로컬리제이션 번역에서는 사람의 감성과 창의력을 훨씬 더 필요로 합니다. 단순히 제품 메뉴를 해외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로컬리제이션이나 번역을 커리어로 선택하겠다면 어떻게 자신의 번역을 기계 번역과 차별화할 수 있을지, 로컬리제이션 프로세스에 자신이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경험을 쌓으시길 바랍니다.

 

[현지에서 통할까? - 그들이 사용하는 로컬리제이션 매뉴얼]

 

구글에서 로컬리제이션을 담당했고, 현재는 에어비앤비의 로컬리제이션 매니저인 장혜림 저자가 '로컬리제이션도 체계적인 프로세스 구축을 통해 이루어져야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라는 명제 아래 실질적인 로컬리제이션 매뉴얼을 제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