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으로 계속 평가해야 할까

Editor's Comment

'어서와, 이런 학교는 처음이지? - 새로운 시대의 교육'의 마지막 미리보기에서는 뉴노멀 시대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다섯 가지 방향 중 한 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지금 시대에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지, 학생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하는 정두수 저자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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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정두수

학생들은 교육 수준을 평가(evaluation)받기 위해 시험을 본다. 한국 교육에서 대표적인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다. 초중등교육을 끝내고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많은 대학이 입시에 반영하는 수능 점수의 비율을 점차 낮추고 있다. 대신 자기소개서, 교과성적, 수상실적을 포함한 학교생활기록부 혹은 논술평가 등의 비율을 높이거나 수시전형을 늘리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에게 수능은 학교에 다녔던 12년의 세월을 평가받는 시험으로 여겨진다.

시험이 놓치고 있는 것

한국의 시험은 대부분 객관식 문제로 이루어졌고, 점수를 기반으로 등급을 부여한다. 아이들의 학업 성취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함이다. 대량 생산을 추구하는 산업 사회에서 객관식 시험은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그에 적절한 일자리로 배치하기에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영국의 교육학자 켄 로빈슨(Ken Robinson)은 저서 <학교 혁명(원제: Creative Schools)>에서 이렇게 이루어지는 평가가 획일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시험 때문에 학교에서 학습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일이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지식은 아무리 유용하다 해도 학교에서는 의미 있게 쓰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켄 로빈슨은 미래 역량으로 융합을 강조하면서 논의의 초점을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이라는 한정된 분야로 줄인 현상을 지적했다. 예술, 인문학, 체육 등의 과목도 STEM과 같은 비중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일부 과목만 시험을 보거나 가중치를 부여하면, 그에 해당하는 영역의 성취와 발달만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

 

* <How to escape education's death valley>(2013) ⓒTED

예술이 수학 점수를 올려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은 아이들의 행동 중 예술을 몰랐다면 지나칠 수도 있었던 아이들의 일부를 대변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 켄 로빈슨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과 역량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부 과목에만 치중하는 시험으로는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보여주기에 한계가 있다.

자기 증명이 이끄는 교육

핀란드 학교에는 시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교사가 학습의 결과물을 확인한다. 평상시에는 프레젠테이션이나 토론을 통해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고, 상담을 통해서는 발달과정을 짚어 볼 수 있다.

 

예컨대 아이들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고, 누구와 협력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보는 식이다. 특정 분야에서 갖는 사고의 폭과 깊이를 보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를 보기도 한다. 일방적인 기준을 설정한 후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이 활동한 분야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영국에서 방문했던 통합예술교육단체 아티즈(Artis)는 학생들의 발달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데이터 트래커(data tracker)를 활용한다. 당장 눈앞에 나온 점수보다 학생들의 성장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 노력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또 변화의 속도는 어떤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아티즈에서 학생들의 변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활용하는 데이터 트래커 차트 &#9426;정두수

발전할 마음이 있다면 언젠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의 교육 목표가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에 있는 이유예요.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다음은 학생들의 몫이죠.

 

- 레베카 보일 서(Rebecca Boyle Suh), 아티즈 대표

프랑스의 프로그래머 양성학교 에꼴 42(Ecole 42)에서도 시험이라는 제도는 없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증명(자기 증명, turning out)하면 된다. 학교는 문제를 주긴 하지만,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채점을 할 필요가 없다. 단,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가 이해할 때까지 풀어본다. 교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다. 자신이 만족하면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에꼴 42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문제를 풀며 자신만의 테크트리를 완성한다. &#9426;정두수

교육 과정을 총괄하는 니콜라스 사디학(Nicolas Sadirac)은 자신의 재능과 역량은 스스로가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각 학생의 재능과 역량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보여주어야 하는데, 시험이나 평가로 그것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에꼴 42에서는 게임처럼 문제를 풀어 레벨을 올리면서 자신만의 테크트리를 완성한다. 테크트리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자신이 어떤 역량들을 갖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테크트리가 나아가는 방향의 끝에 AI 전문가, UX 전문가와 같이 구체적인 진로를 보여주기도 하고,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테크트리의 연결점 크기를 달리하여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습득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evaluation?
turning out!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는 점점 다양해지고, 사회는 계속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획일화된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시험만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이제 타인의 평가에 의해 인정받기보다는 복잡성과 다양성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 교육의 역할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며 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데 있을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 교육이 가야 할 방향에 관한 나머지 네 가지 논의 사항(agenda)은 최종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어서와, 이런 학교는 처음이지? - 새로운 시대의 교육]

 

뉴노멀의 시대에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정두수 저자가 영국의 민주주의 학교 샌즈 스쿨(Sands School), 프랑스의 프로그래머 양성학교 에꼴 42(Ecole 42), 덴마크의 인생학교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영국의 교육 실험실인 스쿨21(School21), 이탈리아의 통합예술 교육장 세그니 모시(Segni Mossi)를 다녀왔습니다. 끝없이 고민하고 실험하는 시도를 통해 혁신 교육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현장에 함께 참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