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를 덕질하다

Editor's Comment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고, 실제로 눈부신 성공담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사실 스타트업 성공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당신의 성공적인 스타트업 첫걸음을 위해 이지선 저자가 자신의 값진 실패 경험을 공유합니다. '스타트업, 실패를 배우다 - 미친물고기 실패담'의 첫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사업 아이템으로 구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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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Patrick Bellot/Unsplash

노량진 수산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국내 최대의 수산시장답게 새벽부터 저녁까지 활기를 가득 안고 있다. 1층에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저울 위에서 파닥이는 생선들,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에서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 전경 ⓒ이지선

제철 생선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수산시장의 매력 중 하나다. 나도 일주일 정도는 매일 저녁 회를 먹어도 불평하지 않을 정도로 회를 좋아하지만, 진정한 '회 덕후' 자격을 얻으려면 적어도 제철 생선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민어, 가을은 전어, 겨울은 방어'로 대표되는 제철 생선을 알고 있다면 덕후의 자질이 충분하다.

 

여기서 덕질의 깊이를 더하려면 광어와 우럭을 구분하는 것은 물론, 회를 떠서 접시에 담았을 때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얀 살은 광어요, 붉은 살은 참치, 주황색은 연어 정도로 구분한다면 덕후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진다.

 

광어와 우럭 모두 흰 살 생선이지만 광어가 좀 더 하얀빛(하얀색이 아니라 '하얀 빛깔'이라 표현하고 싶다.)을 띄고, 우럭은 껍질을 벗겨도 살코기에 흰색이 띄엄띄엄 남아 있다. 물론 덕력이 높으면 살코기만 보고도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그리고 얼마나 싱싱한지 구분할 수 있지만 말이다.

모든 덕질이 그렇지만
회 덕후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꾸준함이 필요하다

서른 살 이후로 회를 좋아하게 됐는데, 마침 2007년에 여의도로 이사를 하면서 노량진 수산시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회 덕질이 심화된 것은 노량진 수산시장 덕분이었다. 나의 먹성으로 일식집을 다녔다면 진작 살림이 거덜 났을 것이다. 일식집보다 저렴한 것이 수산시장의 장점이지만, 어느새 난 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좋아졌고 철마다 바뀌는 해산물을 보는 일만으로도 즐거웠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한 달에 서너 번은 드나들었지만 단골 가게를 만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손님 입장에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한 가게를 찾는 일이 흔치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는 손님을 만나는 상인들 입장에서야 특정 손님을 기억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와 일행들은 몇 달 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흥정하기도 귀찮아져 한 곳만 정해놓고 다니기로 했는데, 그 가게가 'YK수산'이었다. YK수산의 사장이 우리를 공식적인 '단골'로 선언하기까지, 다시 말해 "지난번에도 왔었는데 잘 해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힐끔 쳐다보며 우리를 알아보는 데 한 달 정도가 걸렸다.

 

YK수산은 자연산, 즉 좋은 생선을 주로 취급한다. 민어, 방어, 생참치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면 그중에서도 큰 생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긴, 회는 큰 생선이 맛도 있다. YK수산 덕분에 제철 민어의 참맛을 알았고, 양식과 자연산 우럭은 천지 차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믿음 가는 단골 가게가 있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수산시장 내 다른 가게들과 달리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데도 손님이 많은 것을 보면 단골 관리를 잘하는 곳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가족끼리 찾았을 때는 비싸지 않은 생선을 골라주었고, 접대해야 할 사람들과 함께일 때는 값이 나가는 생선으로 매상을 올리는 기본적인 장사 감각도 갖추고 있었다. 

 

단골의 좋은 점은 언제든 회가 생각날 때 찾아가서 "요즘 뭐가 좋아요?"라고 묻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생선을 골라봐도 가게 주인만큼 잘 알지는 못할뿐더러, 좋은 가격을 받기도 어렵다. 수조에 담긴 많은 생선 중에서 싱싱한 것을 척척 골라낼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단순히 '싸게 준다'는 호객 행위에 혹해서는 안 되는 곳이 노량진 수산시장이다.

회 덕후들의 수다가 사업으로 이어지다

회를 열심히 먹고 다닌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는데, 이를 사업으로 발전시킨 계기는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

 

'미친물고기'는 설악산 등반에서 시작됐다. 2014년 10월, 설악산 대청봉 등반을 하게 되었는데, 그 멤버가 마침 회 덕후 5등급 이상쯤 되는 사람들이었다. 한 달에 적어도 열 번 이상은 회 메뉴가 SNS 담벼락에 올라오는 자타 공인 회 마니아 A,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먹고 싶은 회는 산지에서 직송받아서라도 먹고야 마는 B, 나의 룸메이트이자 부산 출신으로 어떤 횟집 사장님과의 흥정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전투력을 가진 C가 함께였다.

미친물고기의 시작점이 된 설악산 등반. 회 덕후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백담사에서부터 시작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오르고 또 올라 중청대피소에서 일박을 했다. 여기에 삼겹살 대신 회를 가져올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로 시작해서 회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침 당시에는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온라인 앱과 연결해주는 O2O(offline to online) 사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오프라인에서만 운영하던 사업이 온라인으로 사용자 폭을 넓히면서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등 O2O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대표적으로 우아한형제들이 중국집, 족발집, 분식집 등의 전단지를 앱으로 구현한 '배달의민족'을 만들고, 이를 TV CF까지 선보이며 O2O 시대의 시작을 선언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차량 공유 개념을 O2O 서비스로 구현한 '우버'가 급부상하며 주목받던 때였다. 뒤를 이어 대리운전, 세탁물 수거, 청소, 세차 등을 앱으로 예약하고 주문하는 등 인터넷과 거리가 멀었던 생활 각 분야에서 O2O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연히도 그때 설악산 등반 멤버는 모두 IT·뉴미디어 업계 관계자들이었으니, 회 이야기가 자연스레 사업 구상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청봉을 올랐다가 또다시 내려오는 길의 험난함은 생략하기로 하고, 속초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서울로 올라가기 전 회 한 접시를 빠뜨릴 수가 없었다. 중앙시장에 들러 자연산 괴도라치, 가숭어 등을 먹으며 자연스레 O2O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울 사람들은 회를 먹을 때 아무래도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가락동 수산시장을 자주 찾는데, 어떤 생선이 제철인지도 잘 모르겠고, 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령을 몰라서 선택이 어려워.

라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해서,

사람들이 수산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회를 먹을 수 있도록 중간에서 중개해주는 O2O 서비스 모델을 만들고, 이걸 직접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도 함께 만들면 어떨까? 게다가 배달까지 해주면 사용자 폭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사업의 얼개까지 갖추었다.

 

A는 앱 개발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B는 개발도 이해하며 회 마니아라는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거기에 홍보 마케팅을 업으로 하는 내 힘이 더해진다면 뭔가 나올 것도 같았다.

 

그리하여 기분 좋게 설악산 등반은 회 한 접시로 마무리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저녁 자리에서 사업 아이디어로 한두 시간 만에 만리장성을 쌓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개 그 만리장성은 실현되지 않은 꿈이자 허상으로 잠시 남아 있다가 잊히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그날의 노량진 수산시장 O2O 프로젝트가 환상이 아닌 사업 계획으로 차곡차곡 내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미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저만큼 나아가고 있었다.

희미하게 느껴진 고난의 예감

설악산 등반 이후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을 때마다 소비자로서 느꼈던 불편함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노량진 수산시장의 활기찬 분위기, 싱싱한 해산물 등 특별한 강점들이 전반적인 서비스 부족으로 빛을 보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가장 아쉬운 점은
시장 전체에 '신뢰'가
희미해졌다는 것이었다

수산시장 내 상인 대다수가 손님을 속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단골손님을 속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나는 단골이 된 YK수산의 추천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었지만, 가끔씩 회를 떠서 집에 와 열어보면 눈에 띄게 양이 적거나 수조에 오래 있어 군내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믿고 산 생선이 사실은 빨리 팔아버려야 하는 물건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YK수산 사장과의 밀당은 끝이 없었다. 손님이었을 때야 그렇다고 해도 업무 협약을 맺어 미친물고기 사업을 함께할 때도 얼굴을 붉힌 일이 왕왕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신뢰 얘기가 나왔으니 말하자면, 개인 고객이었을 때나 미친물고기 사업을 하면서 업무 파트너로 일할 때나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큰 장벽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최종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스타트업, 실패를 배우다 - 미친물고기 실패담]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쯤은 품고 있을 창업 아이템,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력을 다해 실패의 길을 밟고 온 이지선 저자의 경험담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