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미국 방송계에서 일어나는 일

연초가 되면 미국 방송계는 파일럿(pilot)* 시즌을 맞아 분주합니다. 각 방송사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대본을 검토해 파일럿으로 만들 작품을 선정하고, 프로덕션에 제작을 주문(order)합니다. 주문을 받은 프로덕션은 파일럿 제작을 위해 바삐 움직이지요.

* 방송 편성 전 만드는 견본 프로그램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주요 공중파 방송사 ABC, CBS, FOX, NBC, The CW에서 프로덕션에 주문한 파일럿은 총 73편이었다고 합니다. 매년 치열해지는 이 파일럿 경쟁에서 살아남아, 방송사로부터 '제작 확정' 소식을 듣는 작품은 5월에 열리는 업프런트(Upfronts)를 준비합니다. 업프런트는 방송사가 그해 가을 시즌에 내놓을 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로 예고편이나 일부 클립을 공개하고, 노래와 춤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방송사가 업프런트를 통해 작품을 홍보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광고를 위해서입니다. 광고주는 업프런트에 참여해 각 방송사의 라인업을 보고 어떤 방송, 어떤 프로그램에 광고할지 결정해 선금(up front)을 냅니다. 이로 인해 방송사는 제작 운영을 위한 예산을 미리 확보할 수 있죠.

 

2017년 9월, ABC에서 <굿 닥터(The Good Doctor)>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습니다. 앞서 말한 2017년 파일럿 중 한 편으로 제작되어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후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며 시즌2 제작까지 확정한 작품입니다.

 

<굿 닥터>는 2013년 KBS에서 방영한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소아과 병동에서 일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드라마인데요. <굿 닥터>가 미국에서 새로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역할을 하고, 현재 이 작품의 총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일하는 이동훈 프로듀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굿 닥터> 파일럿 촬영을 위해 밴쿠버로 떠나기 전인 2017년 3월이었습니다.

연초 미국 방송계에서 일어나는 일

연초가 되면 미국 방송계는 파일럿(pilot)* 시즌을 맞아 분주합니다. 각 방송사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대본을 검토해 파일럿으로 만들 작품을 선정하고, 프로덕션에 제작을 주문(order)합니다. 주문을 받은 프로덕션은 파일럿 제작을 위해 바삐 움직이지요.

* 방송 편성 전 만드는 견본 프로그램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주요 공중파 방송사 ABC, CBS, FOX, NBC, The CW에서 프로덕션에 주문한 파일럿은 총 73편이었다고 합니다. 매년 치열해지는 이 파일럿 경쟁에서 살아남아, 방송사로부터 '제작 확정' 소식을 듣는 작품은 5월에 열리는 업프런트(Upfronts)를 준비합니다. 업프런트는 방송사가 그해 가을 시즌에 내놓을 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로 예고편이나 일부 클립을 공개하고, 노래와 춤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방송사가 업프런트를 통해 작품을 홍보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광고를 위해서입니다. 광고주는 업프런트에 참여해 각 방송사의 라인업을 보고 어떤 방송, 어떤 프로그램에 광고할지 결정해 선금(up front)을 냅니다. 이로 인해 방송사는 제작 운영을 위한 예산을 미리 확보할 수 있죠.

 

2017년 9월, ABC에서 <굿 닥터(The Good Doctor)>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습니다. 앞서 말한 2017년 파일럿 중 한 편으로 제작되어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후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며 시즌2 제작까지 확정한 작품입니다.

 

<굿 닥터>는 2013년 KBS에서 방영한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소아과 병동에서 일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드라마인데요. <굿 닥터>가 미국에서 새로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역할을 하고, 현재 이 작품의 총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일하는 이동훈 프로듀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굿 닥터> 파일럿 촬영을 위해 밴쿠버로 떠나기 전인 2017년 3월이었습니다.

* 자폐증 등 뇌 기능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의사소통, 언어, 지능적 측면에서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으며, 비장애인과는 다른 천재성을 동시에 갖는 현상이나 사람

 

그 대화를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당시, 의료실수로 임신을 하게 된 제인의 이야기를 그린 <제인 더 버진(Jane the Virgin)>이라는 작품을 편집하고 있었습니다. 편집실 근처로 찾아온 이동훈 프로듀서, 그리고 또 한 명의 총괄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김과 함께 점심을 먹고 햇볕이 잘 드는 노천카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문성환: 드디어 제작이 시작된다. 촬영본은 언제까지 방송사에 보내야 하나? 
 

이동훈: 4월 말까지다. 업프런트가 5월이니까 방송사도 그 전에 라인업을 마쳐야 한다.
 

문성환: 지금이 3월 초인데, 시간이 많지 않다. 촬영은 며칠이나 하나?
 

이동훈: 15일 정도? 후반 작업은 3주로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아 편집에 두 명이 붙기로 했다.
 

문성환: 4월까진 바쁘겠다. 편집 쪽에서도 파일럿은 피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일정이 빠듯해서 고생하니까. 파일럿이 잘 되어서 시리즈로 주문받으면 좋겠다.
 

이동훈: 다행히 이번에 의학 드라마가 <굿 닥터>뿐이라 감은 좋은데,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순 없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니까.

2017년 9월 첫 방송을 시작해 18부작으로 만들어진 <굿 닥터> ⓒABC

한국 드라마(이하 한드)를 리메이크한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가 시즌2 제작까지 이어진 건 <굿 닥터>가 처음이었는데요. 이 이야기는 챕터 5 '한드 에디터와 미드 프로듀서'에서 마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숫자로 보는 미드의 황금기 

미국 방송계는 지금 'TV 드라마 황금기(Peak TV Era)'를 맞았다고 말합니다. 질적양적으로 수준이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특히 이렇게 많은 쇼를 방송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작품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애드위크>에 따르면 2002년 TV 드라마 방영 편수는 182편이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인 2012년에는 100편 정도가 늘어나 288편이 됩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349편, 2014년에는 389편으로 증가했고, 2015년 422편이 되더니, 2017년에는 500편에 육박하는 487편이란 기록을 세웁니다.*

상승 곡선을 그리는 미국 내 TV 드라마 방영 편수 ⓒFX Networks Research (그래픽: 김영미)

그렇다면 정규 시리즈 편성을 위해 제작하는 파일럿의 수는 얼마나 될까요? 2017년 미국의 공중파 방송사가 받은 파일럿 대본은 450여 편입니다. 이중 방송사가 파일럿 제작을 주문한 작품은 드라마 41편, 코미디 33편으로 총 74편이었습니다. 2018년은 2017년과 비슷한 수인 총 76편이 파일럿 제작 주문을 받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작 중입니다.

 

방영 편수만큼이나 제작비도 증가했습니다. <버라이어티>의 조사에 따르면, 케이블과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방영하는 1시간짜리 케이블 드라마는 편당 약 30억~40억 원이 들었는데, 5년 새 약 50억~70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30분짜리 작품은 약 10억 원~10억 5,000만 원에서 현재 약 10억 5,000만 원~30억 원 수준으로 뛰었습니다.*

 

이런 제작비의 증가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듯합니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앞으로 편당 약 2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HBO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은 편당 약 150억 원이 들어갈 예정이며,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The Crown)>과 HBO의 <웨스트월드(Westworld)>는 편당 제작비가 약 100억 원이라고 하니 그의 말은 곧 현실이 될 것입니다.

 

한편 넷플릭스는 2018년에 무려 700여 편의 오리지널 시리즈(original series)*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700개라니요. 일 년 내내 매일 두 개의 드라마를 제공하겠다는 말입니다. 그간 넷플릭스는 무분별하게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고, 시즌1의 반응이 좋지 않은데도 다음 시즌을 제작 주문하는 일이 잦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가 이런 비판을 딛고 양질의 시리즈로 그 양을 채울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직접 제작하고 방영하는 드라마

** 관련 기사: Netflix Eyeing Total of About 700 Original Series in 2018 (Variety, 2018.2.27)

팩트 체크: 미드는 모두 사전제작?

미드가 한창 인기를 끌 무렵, 미드는 모두 사전제작이고 그 시스템 덕분에 한드보다 완성도가 있다는 막연한 선입견이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제작에 대한 정보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런 선입견은 줄었지만, 여전히 '미드는 사전제작'이라는 생각이 시청자 사이에 퍼져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정말 미드는 모두 사전제작일까요?

 

미드는 보통 가을에 새 시즌을 선보입니다만, 봄 무렵에 시작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런 작품을 '미드 시즌 쇼(mid-season show)'라고 부릅니다. 이런 미드 시즌 쇼가 우리가 말하는 사전제작 드라마입니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전해 여름과 가을 무렵(7~8월)에 제작을 시작해 다음 해 2~3월에 모든 에피소드 납품을 마치는 드라마입니다.

 

The CW의 <오리지널스(The Originals)>가 이런 미드 시즌 쇼의 하나입니다. <오리지널스>는 뱀파이어 가족의 이야기인데요. 총 13회로 구성된 <오리지널스> 시즌5는 2017년 8월에 촬영을 시작해 2018년 2월에 마지막 회인 13회의 편집을 완료했고, 그 후 VFX*와 사운드 등 후반 작업을 거쳐서 3월 중순에 모든 회의 방송사 납품을 완료했습니다. 마지막 시즌인 시즌5의 첫 방송은 4월 20일이었습니다. 즉, 모든 에피소드가 방송 시작 전 완료되어 방송사로 넘어갔으니 확실한 '사전제작' 작품이지요.

* visual effects. 특수영상이나 시각효과

 

이런 사전제작 드라마는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그리고 유튜브에 걸친 스트리밍 플랫폼이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더 많아졌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공개했을 때, 13편을 몰아 보느라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었을 겁니다. 마치 10시간짜리 영화를 개봉하듯 모든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식입니다.

정치 스릴러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의 제작 환경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트랜스페어런트(Transparent)>와 <골리앗(Goliath)>을 제작한 어시스턴트 에디터 앰버 반삭(Amber Bansak)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아버지가 트랜스젠더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가족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 <트랜스페어런트>와 법정 스릴러물 <골리앗> 모두 아마존에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앰버 반삭, <트랜스페어런트> 어시스턴트 에디터

Amber Bansak, Assistant Editor at <Transparent>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향력이 공중파나 케이블 버금가게 커지고 있다. <트랜스페어런트>와 <골리앗>까지 아마존과 연이어 일하면서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꼈나?

작품마다 다르지만 제작 환경은 공중파 방송사보다는 케이블 채널과 더 비슷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마존은 공중파보다 '열려 있다'. 혹시나 작품의 컨셉을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기보다 좀 더 도전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편집본을 보고 아마존에서 보낸 노트(note)* 대부분은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는 작품을 만들기보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라는 내용이다.
* 방송사에서 보내오는 피드백

스트리밍 플랫폼은 기존 방송과 다르게 한 시즌의 에피소드를 한 번에 공개한다. 납품도 한꺼번에 하나?

그렇진 않다. 사실 납품에 대해서 아마존은 대단히 엄격하다. 해외 서비스 때문이다. 자막 작업 등이 필수이므로 정해진 납품일을 꼭 지켜야 한다. 말한 대로 스트리밍 플랫폼은 한 시즌의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하기도 한다. 제작자로서 재미있는 건 작품에 대한 반응을 한 회마다 듣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듣는다는 점이다. 1년 전에 작업한 에피소드를 시청자는 지금에서야 보고 반응을 주는 거다.

드라마의 품질은
사전제작이 아니라
합리적인 스케줄이 결정합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오리지널 시리즈나 공중파의 미드 시즌 쇼 외에 공중파 방송사의 일반적인 시리즈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전제작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초반 몇 회를 찍은 시점에서 방송을 시작하고, 남은 회 촬영과 편집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제인 더 버진>의 경우 2016년 8월 9일 첫 회를 촬영했습니다. 편집을 비롯한 모든 후반 작업까지 마친 후 10월 7일 방송사에 납품했고, 10월 17일 방송했습니다. 2회는 8월 19일에 촬영을 시작해 10월 18일 방송사 납품을 거쳐 10월 24일에 방송했습니다. 3회는 8월 30일에 촬영 시작, 10월 24일 방송사 납품, 10월 31일 방송인 스케줄이었습니다.

 

이렇듯 조금씩 조금씩 방송사 납품일과 방송일의 간격이 줄어들었습니다. 결국엔 방송일 한 달 전에 촬영을 마치고 2주 전에 편집 완료, 후반 작업을 거쳐 3일 전에 방송사에 납품하는 형태의 스케줄로 정착했습니다.

 

제작 기간 내내 작가실에서는 대본 작업이 계속됩니다. 에피소드 대본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첫 촬영을 시작합니다. 처음 몇 편의 대본만이 준비되어 있고 촬영을 진행하면서 작가는 대본을 씁니다.

미국 방송계에는 '겨울 휴식기'가 있습니다. 연말 연초에 방송을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 스태프 역시 2주 정도의 휴식기를 갖습니다. 이 기간 동안 작가는 최대한 많은 양의 후반부 대본을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인 더 버진>의 경우 겨울 휴식기 후의 편집 스케줄 역시 (한국에는 못 미칠지 모르겠지만) 야근과 주말 근무가 계속되는 나날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드=사전제작'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공중파 드라마나 미국의 공중파 드라마나 기본적인 형태는 같습니다. 다만 얼마나 여유 있고 합리적인 스케줄로 제작하느냐에서 차이가 납니다. 미국 TV 드라마의 제작 스케줄이 100%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한국 드라마 제작 스케줄과 비교한다면, 좀 더 합리적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런 합리적인 스케줄은 높은 질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칸

마이클 칸(Michael Kahn)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일 있으신가요? 영화에 아주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생소한 이름일 겁니다.

 

그럼 이 영화는 어떻나요? <미지와의 조우>, <레이더스: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칼라 퍼플>, <태양의 제국>,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후크>,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터미널>, <뮌헨>,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링컨>, <스파이 브릿지> 그리고 <더 포스트>까지.

 

아마 꽤 많은 작품이 귀에 익숙할 것입니다. 이들 작품 상당수를 극장에서, 혹은 집에서 보셨을 수도 있고요. 모두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영화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마이클 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미지와의 조우>를 시작으로 40여 년째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을 편집하는 에디터가 바로 마이클 칸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마이클 칸이 있다면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에겐 델마 슌메이커(Thelma Schoonmaker)가 있습니다. 델마 슌메이커는 1960년대 심야 방송을 위해 영화를 마구잡이로 가위질하는 편집실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뉴욕대에서 여름강좌로 6주간 영화를 공부할 학생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영화를 찍는 한 학생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 학생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 학생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입니다. 그렇게 슌메이커는 1968년에 제작된 스콜세지의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마틴 스콜세지의 모든 영화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칸, 마틴 스콜세지와 델마 슌메이커 외에도 감독과 짝을 이뤄 오랫동안 작업하는 에디터를 국내외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과 피에트로 스칼리아(Pietro Scalia),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과 케빈 텐트(Kevin Tent),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과 조 워커(Joe Walker) 등이 대표적입니다.

* 국내에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2004년에 개봉한 <사이드웨이>가 있으며, 2017년 개봉한 <다운사이징>의 제작과 감독을 맡았다.

** 대표작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 <컨택트(원제: Arrival)>,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등이 있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일하는 걸까
왜 그들은 계속해서 모든 작품을 함께 하는 걸까요? 영화를 만들 때 명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은 감독일 것입니다. TV 드라마라면 작가일 테고요. 감독과 작가는 자신의 비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구현해 줄 사람과 함께 일하길 원합니다. 그런 그들이 특정한 에디터와 수십 년을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만큼 편집의 중요성을 방증합니다.

 

편집은 일반인의 관심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편집을 보이지 않는 예술(invisible art)*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에 있어 편집의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 관련 기사: Film Editing Is the Invisible Art (NYT, 2014.3.3)

 

영화의 경우 촬영장에서 날아온 재료를 가지고 감독과 에디터가 작은 방에 함께 앉아 머리를 맞대고, 또 에디터 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하는 일이 바로 편집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낱알의 구슬을 잘 꿰어 마침내 보배로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는 수많은 테이크(take)*를 확인합니다. A가 선물을 꺼낼 때 긴장한 모습을 가장 잘 잡아낸 테이크는 어느 것인지, A의 선물을 받은 B의 리액션이 가장 좋은 테이크는 어느 것인지, 이를 몰래 바라보며 질투하는 C의 모습은 어느 테이크에서 가장 잘 잡혔는지 확인합니다.

* 영상에서 끊지 않고 촬영한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이 테이크를 어떻게 구성해야 이야기가 잘 이어질지, 어떻게 해야 감정선이 관객에게 잘 전달될지. 이런 고민은 편집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배우의 대사 속도를 조절하고, 다음 씬(scene*)은 어떤 쇼트(shot**)로 시작할지, 그리고 어떤 쇼트로 끝낼지….

* 여러 개의 쇼트를 연결한 장면. 같은 시간 동일한 장소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사나 액션의 집합을 뜻한다. 

** 촬영의 기본 단위. 한 번에 촬영한 장면을 말한다.

 

이 시간을 통해 감독이 마음에 그리는 바로 그 작품이 탄생합니다.

 

사람들은 TV나 영화를 보며 그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했을지 따지지 않습니다. 마치 매끼 밥상에 올라온 음식을 보면서 산지에서 식탁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화면 밖에서
화면 속 이야기를 만드는 저로서는
작품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할리우드에서는 더더욱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편집실의 문을 열면 복도에서 ABC의 파일럿 작품에 캐스팅되기 위해 오디션 차례를 기다리는 배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스타벅스에서 내 뒤에 줄 서 있는 사람 혹은 커피를 건네는 바리스타가 지금 내가 즐겨보는 TV 드라마의 단역 배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작품을 만든 이들에게도 관심이 모아집니다. 작품이 시작된 배경, 촬영장 모습 등에 관한 소식이 작품의 인기에 비례해 조명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조차 카메라 뒤 배우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일이 많습니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과 같은 스타 감독이 참여한 경우에는 그 관심이 좀 더 확장될 수 있겠으나, 그 경우도 '감독'에서 멈출 뿐 다른 스태프에게까진 미치지 않습니다.

포스트 프로덕션
그 중심에 있는 편집
영화든 드라마든 제작 과정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뉩니다. 제작 준비단계인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촬영단계인 프로덕션(production), 그리고 후반 작업인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입니다. 마지막 포스트 프로덕션에는 사운드 편집, 사운드 믹싱, VFX, 색 보정, 음악 등이 포함되지만, 결국 그 중심은 편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시작하면 먼저 시나리오를 읽습니다. 효과음이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사운드 부서에 이야기해 해당 효과음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주인공이 휴대폰으로 트위터를 한다면 VFX를 통해 합성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그래픽 부서와 트위터 이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VFX는 전문업체에서 최종 작업을 하더라도 에디터가 임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주인공이 파티를 한다면, 음악 감독에게 이 신에서 쓰기로 한 특정 음악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모든 부서가 편집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이런 작업 과정을 거칩니다. 편집이 완료되어야 모든 부서가 완성된 컷을 기반으로 최종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편집은 포스트 프로덕션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 리포트에서 바로 이 '편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특히 미드 제작에서 에디터가 어떻게 편집을 진행하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