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에게 취향이란?

Editor's Comment 

브랜드 마케터에게 '취향'이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 음식, 음악, 여행, 그리고 독서'의 세 번째 미리보기 글에서는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 이승희 저자와 트레바리 브랜드 마케터 이육헌 저자가 어떻게 취향을 만들어가고, 무엇을 애정하는지 소개합니다.  

전문이 실린 디지털 콘텐츠는 5월 24일(목)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마케터 네 명의 취향을 이야기하기 전에 마케터에게 '취향'이 왜 중요한지 먼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취향을 좀 더 쉬운 말로 풀어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케터는 늘 누가 우리 브랜드를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좋아하게 만들까 고민하는데요. 누군가가 자신이 마케팅하는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마케터도 무언가를 많이 좋아하는 경험, 다시 말해 취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마케터들을 만나 좋아하는 것 혹은 요즘 빠져있는 관심사만 이야기해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만큼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마케터에게 필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무언가를 많이 좋아해 본 경험이 있는, 그러니까 취향 있는 마케터는 소비자의 취향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취향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마케팅에서 사용자 혹은 소비자의 취향을 이해하는 과정은 이전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예전처럼 나이, 성별, 직업 등의 기준으로 소비자를 분류하는 데모그래픽 세그먼테이션(demographic segmentation)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이해하는 접근법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별, 나이, 직업을 불문하고 개별적인 취향에 따라서 어떤 경험을 할지, 또 어떤 물건을 살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책을 고르고 나면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른 책'을 추천하는 시스템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런 간단한 추천도 사실 취향에 기반을 둔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매일 소셜 채널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자신의 취향을 드러냅니다. 취향을 통한 접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만큼 취향 있는 마케터는 브랜드의 취향을 잘 설계할 수 있고, 브랜드와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잘 끌어들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파트에서 네 명의 브랜드 마케터들이 어떻게 취향을 만들어가고, 무엇을 애정하는지 소개합니다. 왜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생각하며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취향을 발견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미리보기에서는 브랜드 마케터 두 명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른 두 명의 이야기는 전체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배달의민족 이승희가 말하는 취향 찾기

이승희,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

취향은 자본을 이긴다
 취향은 자산이다

저와 친한 친구가 항상 하는 말입니다. 개인의 취향은 엄청난 자산이죠. 취향은 곧 개성이며, 자신을 표현합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열광하는지 들여다보는 일은 재밌습니다. 그 안에서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사람들과 취향을 주고받으며 그 안에서 내 취향을 뾰족하게 만드는 과정은 정말 즐거운 일이지요.  

 

예전에는 누군가 제게 "취향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대답할 때 곤란함을 느꼈습니다. 취향이 뾰족할수록 개성이 강한 경우가 많은데요. 반대로 저는 취향이 없고, 참 개성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취향과 개성을 만들기 위해 엄청 노력했어요.

취향은 사람들이 남과 달라지고 싶어 할 때 변화한다. 그런데 남과 같아지고 싶어 할 때도 변화한다.

 

- 톰 밴더빌트, <취향의 탄생> 

취향을 만들기 위한 시작은 무작정 경험하는 겁니다. 경험에 특별할 게 있나요. 저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전시회에 가고요. (평일 저녁과 주말에 아주 많이 움직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멋있어 보이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경험했어요.해보지 않으면
자신의 취향을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취향을 만드는 데도 노력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부지런히 많이 경험해보세요. 그래야만 본인의 취향을 짚어낼 수 있으니까요.

 

부지런히 경험하다 보니 저도 저만의 취향이 생겼습니다. 경험을 쌓을수록 범위를 좁혀 나갈 수 있었는데요. 취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나와 맞는 것과 불편한 것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취향은 크게 3가지 범주 안에 들어갑니다.

 

1. 이야기가 담긴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명분과 소신이 깃든 브랜드와 공간이 좋습니다. 마케팅을 하면서 브랜드가 자라나려면 오리지널리티와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어요. 무엇이든 세상에 그냥 생겨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명분과 소신, 본인만의 철학이 있는 브랜드나 공간은 그 안에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가치관이나 이야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면서 이유(why)를 자꾸 생각하게 되잖아요. 공간과 브랜드를 바라볼 때도 똑같습니다.

 나의 가치관과 맞는가 
내 눈에 멋져 보이는가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공간의 주인이나 브랜드를 통해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저는 어떤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면 "이건 왜 이렇게 만드신 거예요?"라고 물어봅니다. '예쁘다, 멋지다'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남을 따라 한 공간이나 브랜드가 아닌, 다른 사람 눈에 지저분하고 못생겼어도 자신만의 개성을 가득 담아서 운영하는 공간과 브랜드는 소신과 가치관이 보여서 좋습니다.

  •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 디앤디파트먼트는 롱 라이프 디자인(long life design)이라는 가치관 아래 지역에 초점을 두고 오랫동안 변치 않는 물건, 사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시간이 증명해주는 것 = 롱 라이프 디자인.

계속 유지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앤디파트먼트 설립자

저는 좋아 보이면 일단 사고 보는 맥시멀라이프(maximal-life)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디앤디파트먼트 매장을 방문해 나가오카 겐메이의 책을 읽고 나서 제가 쓰는 물건과 공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는 '지금 내가 사는 물건이 집에 있는 물건보다 나은가? 나에게 얼마만큼 가치를 주는가? 최신의 것만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갖게 해주는 브랜드입니다. 디앤디파트먼트는 일본에 9개, 서울에 1개 매장을 두었는데, 매장마다 해당 지역과 관련된 물건을 판매합니다. 지역다움을 느끼기 위해 저는 일본 여행을 가면 디앤디파트먼트 매장에 꼭 들릅니다. 어쩌면 디앤디파트먼트 매장에 가기 위해 일본 여행을 떠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 디앤디파트먼트 매장 원칙

• 매장에는 제조된 지 40년 이상 지난 물건을 전시한다.
• 매장 옆에는 반드시 카페를 만든다.
• 전시된 물건과 관련해 스터디를 실시한다.
• 도쿄점에는 옛날부터 도쿄에 있었던 물건을, 서울점에는 서울의 물건을 가져다 놓는다. 즉, 그 지역다운 물건들을 판매한다.

2. 오래된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개성 있고 자기다운 것을 좋아합니다. 오랫동안 변치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간판, 오래된 물건, 오래된 공간, 오래된 음악 오래된 것은 그만의 이야기와 매력이 있습니다. 빛바랜 색감,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를 품은 오래된 물건은 요즘 간판이나 물건과는 달라서 더 빛이 납니다. 지나온 시간이 많은 것을 증명해 주잖아요.

 

오래된 것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되면서, 단순히 나이만 먹지 않고 내 안에 가치를 쌓아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옛날 간판과 빈티지 컵

오래된 간판 &#9426;이승희

저는 동네 뒷골목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하는 옛날 간판을 좋아합니다. 전문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동네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디자인한 그런 간판이 좋습니다.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가게만의 고집스러움도 너무 좋고요.

하나씩 모아온 빈티지 컵들 &#9426;이승희

빈티지 컵은 좋아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어요. 제가 어떤 공간에 갔을 때, 주인의 취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지점이 화장실과 컵이더라고요. 화장실과 컵의 디테일까지 챙기는 주인을 만나면 늘 설렙니다. 진짜 빈티지 컵은 바랜 색감과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할머니 집에 가면 꼭 하나씩 있는 주스 컵 같은 빈티지 컵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벌써 300개가 넘어갑니다. 누군가가 쓰던 물건을 이어서 쓰는 재미도 쏠쏠해요.

 

카페 메뉴처럼 오래된 컵에 카페라떼를 담아 마시거나 요거트를 만들어 먹으며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재미도 있습니다. 오래된 컵에 요즘의 방식을 더해 저만의 취향을 드러냅니다. 저는 변치 않는 것과 새로운 것을 균형 있게 받아들이며 사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다움을 지키며 새로운 것을 조합하는 일에 큰 재미를 느낍니다.

해시태그 '숭컵'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사진들 &#169;이승희/Instagram

3. 귀여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냥 좋아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귀여운 것을 사랑합니다. 귀여운 그림과 물건은 모든 걸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줍니다. 저는 삶에서 '유머'는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귀여운 것들은 재미, 유머,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 줍니다. 그들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 노리타케(Noritake)와 이나피스퀘어(Inapsquare)

일러스트레이터 노리타케의 그림들 &#9426;이승희

다양한 드로잉과 굿즈를 만드는 브랜드, 이나피스퀘어 전시 &#9426;이승희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는 방법은 단 하나, 많이 삽니다. (내 돈) 결국 취향은 내가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찾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 또한 달라지고 그에 따라 저의 취향도 계속 변하겠죠. 그만큼 제 인생도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트레바리 이육헌이 말하는 깊은 고민 끝에서 나온 디자인

이육헌, 트레바리 브랜드 마케터 

마케터를 포함해 기획자, 개발자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 모두 넓은 의미에서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래픽 작업만으로 한정 짓고 싶지는 않거든요. 내가 마케팅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잠재 고객을 유인하는 마케팅 기획도 디자인일 테죠.

 

다양한 경쟁사의 제품·서비스와 함께 놓였을 때 어떻게 보일지, 또 어떻게 해야 더욱 잘 보일지 고민하는 리테일의 영역 또한 디자인이 중요한 부분일 테고요. 제품·서비스가 지닌 본질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개선해 나가는 일도 순수한 디자이너의 영역은 아닐지언정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우선 눈에 보이는 걸로 판단을 내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내가 맡은 역할이 마케팅과 브랜딩일지라도,스스로 역할을 한정하지 않고
총체적 경험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나 역시 디자이너'라는 생각을 갖고 내가 만드는 마케팅용 콘텐츠가 어떻게 보일지는 물론, 사용자·소비자의 관점에서 해당 제품과 서비스가 어떻게 쓰일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뿌리가 마케터든 개발자든 기획자든 디자이너든, 뭐든 간에요. 그래서 저는 깊은 고민을 통해 좋은 디자인을 구현한 제품과 스토어에 관심이 많고, 이들을 저의 취향이라 내어놓고 싶습니다.

  • 디터 람스(Dieter Rams)와 브라운(Braun)

저는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와 그가 디자인한 브라운 제품을 참 좋아합니다. 디터 람스는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 그리고 후카사와 나오토나 재스퍼 모리슨 같이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미 수많은 열성 팬을 보유한 디터 람스인지라 그들과 비교하면 한참 덕력이 부족하긴 합니다만, 저 역시도 시간이 나면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찾아보고 모으는 중입니다. 요즘은 간간이 해외 사이트를 둘러보며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빈티지 브라운 제품의 구매를 고민하고 있어요.

 

애플의 제품 디자인과 애플이 제작한 앱의 UI·UX까지도 디터 람스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브라운 제품에 관심을 가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입니다.

 

생활가전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회사에 몸담는 동안 다양한 가전제품 브랜드의 디자인과 마케팅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특히 그들 가운데 가장 군더더기 없이 본질적인 기능과 디자인만을 남긴 브라운 제품과, 브라운 디자인의 아버지 격인 디터 람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어떤 목적을 달성한 제품은 연장과 같다. 그것은 장식물도 아니고 예술작품도 아니다. 따라서 제품의 디자인은 사용자의 자기표현이 가능한 여백을 남겨두기 위해서 중립적이고 절제돼야 한다.
 

- 디터 람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미친듯이 심플> 등 미니멀리즘 관련 도서를 열심히 읽었기 때문일까요?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버리는 행위를 통해, 가장 원하는 본질적인 부분만 남기고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미니멀리즘 철학은 과잉으로 인한 소화불량에 걸리기 쉬운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트레바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제게도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습니다. 모집을 위해 마케팅용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물론, 홈페이지 UI·UX 개선에 의견을 내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도 있습니다.

트레바리 독서 모임 &#9426;트레바리

트레바리 멤버들의 독서모임 경험을 어떻게 더 충만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임을 마치고 돌아갈 때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고, 또 남기고 싶게 만들지와 같은 오프라인 경험을 고민합니다. 이렇게 업무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기능이나 요소를 추가해야 할 일이 생기면 동시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분을 덜어내려 노력합니다. 마치 디터 람스와 그가 디자인한 브라운 제품이 구현*하고자 했던 것처럼요.

* 관련 자료: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 (월간 디자인, 2011년 2월호)

  • 이태원 MMMG와 프라이탁(FREITAG)

프라이탁 가방을 든 내 모습 &#9426;이육헌

정확히 언제부터 프라이탁의 존재를 알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교 시절부터 프라이탁 가방을 참 좋아했습니다. 화물트럭을 감싸는 트럭 방수포인 타풀린(tarpaulin)과 자동차 안전벨트, 그리고 자전거 튜브라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했어요. 게다가 이를 조합해 만든 가방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디자인이라는 스토리까지 갖추자 프라이탁을 욕망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러나 이 가방을 사기 어려운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인 데다 당시만 해도 프라이탁이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되기 전이었던지라 공식 매장이 없었습니다. 그저 프라이탁의 홈페이지를 뒤적이며 그림의 떡을 바라보듯 프라이탁 가방을 바라만 봐야 했었죠. 전역을 앞둔 군인 신분이던 2011년 즈음에야 드디어 프라이탁이 MMMG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꾸역꾸역 모아뒀던 쌈짓돈을 들고, 가로수길 MMMG 스토어로 달려가 첫 번째 프라이탁을 손에 쥐었어요. 꿈에 그리던 프라이탁을 갖게 되면서 프라이탁을 한국에 들여온 장본인인 MMMG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지하 3층~지상 3층 규모의 큰 건물에 들어선 이태원 MMMG 개장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태원 MMMG 건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매장이 모여 있는 공간입니다.

이태원 MMMG 전경(가운데 건물) &#9426;이육헌

1980년대에 지어져 30년도 더 된 이 건물에는 위에서부터 카페 앤트러사이트(Anthracite)와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MMMG, 그리고 프라이탁과 독립서점인 포스트 포에틱스(POST POETICS)가 함께 들어서 있습니다. 몇 번의 리노베이션과 매장 위치 조정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각각 자리 잡게 되었어요.

 

카페와 서점, 디자인 문구점과 잡화점까지 한 건물에 있는 이곳은 언제 와도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석 같은 공간입니다. 특히나 이 건물에서 제가 사랑하는 3개의 공간을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 앤트러사이트 한남점(1~3F)

건물 1층에는 이태원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활짝 열린 앤트러사이트 한남점이 있습니다. 합정동 당인리 화력발전소 옆 오래된 신발공장을 개조해 화제가 되었던 앤트러사이트가 제주 한림점에 이어 세 번째로 내놓은 매장인데요. 오래된 건물 1층을 모두 유리창으로 만들어 활짝 열어버린 덕인지, 오가는 사람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인상을 줍니다. 더군다나 로스팅 머신 너머 뒤편으로도 커다란 창이 나 있어서,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보광동과 한남동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앤트러사이트 한남점 2층 내부 &#9426;이육헌

2층과 3층에도 좌석이 넉넉한 데다 잎이 넓은 식물들을 가운데에 심어 두어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전선을 꼬거나 열대우림의 넝쿨처럼 늘어뜨려 만든 조명 또한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요.

1층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9426;이육헌

제가 앤트러사이트 한남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1층 야외 테라스입니다. 오랫동안 앉아 있긴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날씨 좋은 날엔 햇볕을 쬐며 호사로운 기분을 누릴 수 있고, 이태원로를 거니는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주말 대낮이라면 산책 나온 동네 주민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거나 장난치는 반려견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재미도 있고요. (참, 아무리 귀엽더라도 보호자의 허락 없이 만지거나 먹이를 주지는 마세요!)

 

저는 보통 1층 테라스에 앉아 볕을 쬐며 하우스 블렌드 커피를 홀짝이다가 지하에 있는 다른 매장을 둘러보러 내려갑니다.

  • MMMG(B2F)

지하 1층의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매장을 거쳐 그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이 건물의 터줏대감 격인 MMMG가 있습니다. MMMG의 오리지널 상품과 서커스보이밴드의 엽서를 비롯한 다양한 디자인 소품, 라미(LAMY)*의 펜과 가리모쿠60**의 가구, 아리타***의 접시, 그리고 MMMG의 눈썰미로 선별한 도서들까지 한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디앤디파트먼트 서울과는 또 다른 발견의 재미가 있는 공간이라 오랜 시간 둘러봅니다.

* 독일의 만년필 및 필기도구 브랜드

** 일본 가구 브랜드 

*** 도자기 본래의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일본 도자기 브랜드

이태원 MMMG 매장 내부 &#9426;이육헌

MMMG에서 천천히 머물며 이것저것 들어보고 만져보고 나면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결국 빈손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적어도 스티커나 엽서쯤은 꼬박꼬박 사게 되는, 그런 사랑스러운 공간이죠. 독서모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트레바리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이후로는 MMMG가 직접 고른 도서 리스트를 보는 데도 재미를 붙이게 되었네요.

  • 프라이탁 스토어 by MMMG(B3F)

프라이탁 플래그십 스토어(Freitag Flagship Store)와 동일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조명과 가구들, 그리고 취리히에서 공수한 프라이탁 전용 집기를 설치해 지어졌다는 이태원 프라이탁 스토어는 제게 이 건물의 마지막 종착지입니다. 1층 앤트러사이트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지하 1층 디앤디파트먼트 서울과 지하 2층 MMMG를 거쳐, 마지막으로 지하 3층 프라이탁 스토어로 내려옵니다.

 

이미 여러 개의 프라이탁 가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늘 제 소유욕을 자극하는 가방들이 스토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매장에서는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프라이탁의 레퍼런스(REFERENCE) 라인(단색 가방)이나 의류 라인 F-ABRIC 제품도 구경할 수 있죠. 동행한 친구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가방을 샀을 곳, 이태원 프라이탁 스토어입니다.

 

예전에 다닌 삼성전자에서는 리테일 마케팅 업무를 하며, 쇼퍼(shopper)의 매장 방문 경험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인 트레바리는 오프라인 독서모임 공간에서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비즈니스를 전개합니다.

 

다행히도 이런저런 매장을 둘러보며 애정 어린 눈으로 구경하고, 때론 마구 질러보며 호불호를 갖게 된 덕분에 제품·서비스를 통해 가치를 제안하고 이를 구매로까지 연결하는 마케터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동안 해온 일 덕분에 취향도 취미도, 조금 더 깊어질 수 있었네요.

 

일에 맞는 취향이 남는 건지, 일이 취향을 따라오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또는 조금 억지스럽더라도 이 둘이 연결되는 순간, 일이 재밌어집니다. (취향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은 최종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 음식, 음악, 여행, 그리고 독서]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일들을 꾸려나가는지 궁금하시다면, 두루뭉술한 이론 대신 손에 잡히는 실무 이야기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이 글을 주목해주세요. 네 명의 마케터들이 마케팅과 브랜딩, 그리고 '마케터의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