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25시
Editor's Comment
2015년 3월의 마지막 날,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일곱 시까지 인천 공항으로 가야 했다. 공항 가는 버스 안, 여행을 떠날 때는 설레서 잠이 안 왔는데 이번에는 긴장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한 뒤, 일정이 맞아 함께 출국하는 과장님과 인사를 나눴다. 3개월 지내는데 생각보다 짐이 적다며, 과장님은 농담을 건넸다.
각 장소 소개에 QR코드를 함께 넣어 두었습니다. 가오더디투(高德地图, Gaode Ditu) 앱이 설치된 휴대폰으로 본문에 나오는 QR코드를 스캔해보세요. QR코드 이미지를 꾹 누르면 바로 앱으로 연결되거나 새 탭에서 여실 수 있으며, 해당 장소를 즐겨찾기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오전 아홉 시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시간 뒤면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출장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한 서류를 뒤적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출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읽거나 쓰고 있었다.
오전 열한 시
푸둥(浦东, pǔ dōng)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상하이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유채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상하이 첫인상이 어때요? 3개월이나 지내려면 첫 느낌이 좋아야 할 텐데요" 하고 과장님이 걱정하신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러게요. 유채꽃도 피었네요"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 상하이에는 공항이 두 군데 있다. 비행기 편이 많지만 상하이 도심과 떨어져 있는 푸둥 공항은 인천 공항, 비행기 편은 적지만 상하이 도심에서 가까운 홍차오(虹桥, hóng qiáo) 공항은 김포 공항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상하이와 마주했다
푸둥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에 피어 있던 유채꽃 ⓒ김송은
열두 시, 점심시간
회사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상하이 법인에 장기 출장 중인 한국인 직원들이 함께 모였다. 회사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와 달리 사람들은 출장 기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상하이 25시
Editor's Comment
2015년 3월의 마지막 날,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일곱 시까지 인천 공항으로 가야 했다. 공항 가는 버스 안, 여행을 떠날 때는 설레서 잠이 안 왔는데 이번에는 긴장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한 뒤, 일정이 맞아 함께 출국하는 과장님과 인사를 나눴다. 3개월 지내는데 생각보다 짐이 적다며, 과장님은 농담을 건넸다.
각 장소 소개에 QR코드를 함께 넣어 두었습니다. 가오더디투(高德地图, Gaode Ditu) 앱이 설치된 휴대폰으로 본문에 나오는 QR코드를 스캔해보세요. QR코드 이미지를 꾹 누르면 바로 앱으로 연결되거나 새 탭에서 여실 수 있으며, 해당 장소를 즐겨찾기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오전 아홉 시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시간 뒤면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출장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한 서류를 뒤적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출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읽거나 쓰고 있었다.
오전 열한 시
푸둥(浦东, pǔ dōng)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상하이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유채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상하이 첫인상이 어때요? 3개월이나 지내려면 첫 느낌이 좋아야 할 텐데요" 하고 과장님이 걱정하신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러게요. 유채꽃도 피었네요"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 상하이에는 공항이 두 군데 있다. 비행기 편이 많지만 상하이 도심과 떨어져 있는 푸둥 공항은 인천 공항, 비행기 편은 적지만 상하이 도심에서 가까운 홍차오(虹桥, hóng qiáo) 공항은 김포 공항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상하이와 마주했다
푸둥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에 피어 있던 유채꽃 ⓒ김송은
열두 시, 점심시간
회사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상하이 법인에 장기 출장 중인 한국인 직원들이 함께 모였다. 회사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와 달리 사람들은 출장 기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2개월 예정으로 상하이에 왔어요. 벌써 온 지 한 달이 지났고요" 하는 식이었다. 나는 상하이에 이제 막 도착한, 3개월짜리 출장자였다. 한국에서 만났다면 "00부서, 00입니다" 하고 별 이야기 안 했을 텐데, 여기에서는 언젠가 서로 만난 적이 있을 거라며 온 힘을 다해 기억을 끄집어냈다.
오후 한 시 반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니 앳돼 보이는 중국인 직원이 컴퓨터 앞에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
"이제 같이 일할 샤오한(小韩)이라고 해. 잘 가르쳐줘. 이 친구도 오늘이 첫날이야."
나는 노트북을 꺼내다 말고 샤오한을 보며 "안녕하세요?" 하고 간단히 인사했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첫 화면은 구글이었는데 5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샤오한의 컴퓨터를 보니 인터넷 연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물어보니 중국에서는 구글이 안 된다고 했다.
구글 번역기에 의지해서 중국 자료를 찾았던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나마 붙들고 있던 정신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는 듯했다. 샤오한에게 가서 정리해야 할 자료를 알려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마음은 급한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했다.
저녁 일곱 시
머릿속이 잔뜩 혼란스러운 채로 환영회 자리에 갔다. 구베이(古北, gǔ běi)에 있는 한식당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주재원, 출장자 분들 사이에 밤늦도록 앉아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시끌벅적했고 음식도 한 상 가득이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무얼 먹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늦은 밤
호텔로 돌아가니 열 시가 훌쩍 넘었다.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훌쩍 넘도록 짐 정리를 하고 기진맥진해져서야 잠이 들었다.
어느 봄날, 회사 앞 풍경 ⓒ김송은
다음 날 아침, 샤오한은 내가 전날 일러둔 업무를 하느라 바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냥 앉아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중국의 구글이라는 바이두(百度, bǎi dù)를 띄워놓고 고등학교 때 배운 한자를 떠올리며 이것저것 클릭해보았다. 시간은 어찌나 빠른지, 별일도 안 했는데 어느덧 열한 시가 되었다. 샤오한에게 점심을 함께 먹자고 했다.
"어제가 첫 출근인데 차근차근 인사했으면 좋았을걸. 제가 너무 정신없었어요. 상하이는 처음이라 너무 당황했거든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저 열심히 할게요. 많이 가르쳐주세요."
배시시 웃는 샤오한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짠해졌다. 이 친구도 첫 출근이었는데 얼마나 당황하고 긴장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상하이에 도착한 첫날은 유난히 길었다. 서울보다 한 시간 늦은 탓에 어제 하루만 25시간을 보낸 셈인데 그 한 시간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고 무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막막했던 시간이었다.
칠흑 같은 공간에
불시착한 듯한 기분이었다
산시난루(陕西南路) 가는 길에 공사 중인 건물이 있어 간이 터널이 생겼다. 반대편에서 아저씨가 걸어와 터널 앞에 선 찰나에 찍은 사진이다. ⓒ김송은
그래도 다행이었다. 문득, 이곳이 꽉 막힌 공간이 아니라 터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만 걸어서 이 터널을 통과하면 된다. 게다가 그 터널을 함께 걸어줄 샤오한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샤오한과 미주알고주알 자기소개를 나눴다.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언니랑 일하게 되어서 좋아요."
"나도 샤오한이랑 일하게 되어서 좋아요."
서로 말을 주고받으니 제대로 인사를 나눈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고 웃기 시작했다. 상하이에 도착한 지 25시간 만이었다.
목적지까지 경로 검색 및 상세 정보 찾기, 즐겨찾기에 추가하기 출발지-도착지로 경로 검색하기 교통수단별 검색 결과(자동차, 자전거, 도보) 교통수단별 검색 결과(대중교통) 막막하지 않게 첫날을 맞이하려면
1. 구글 없이 검색하기
중국에서는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이 모두 접속 금지 대상이다. 이들 사이트에 접속하려면 다른 나라 IP로 인터넷에 우회 접속하는 VPN(Virtual Private Networks)을 이용해야 한다.
2. 이용할 수 있는 검색 엔진
- 중국 바깥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검색 엔진: Bing, Yahoo
- 중국 국내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검색 엔진: 百度
3. 말 못하는 나를 도와줄 중국어 번역 앱
- 네이버 중국어 사전: 간단한 단어(예: 화장실, 지하철 등)를 중국어 사전으로 검색해서 직접 보여주면 편리하다.
- 바이두 번역(百度翻译/Baidu Translate): 복사해서 붙여 넣은 문장 번역은 물론, 사진 속 문장 번역, 음성 번역까지 사용할 수 있어 굉장히 유용하다. 중-한으로 번역하면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 나올 때가 많은데, 중-영으로 번역하면 의미가 제법 깔끔하게 번역된다.
4. 꼭 필요한 앱 미리 다운로드하기
구글에 접속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구글 플레이도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하는 경우, 중국에서 필요한 앱을 미리 설치해야 한다. 앱스토어는 현지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 웨이신(微信, Wechat): 중국의 카카오톡+페이스북. 중국 현지인과 교류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이용할 일이 생긴다.
- 상하이 메트로(Shanghai Metro): 상하이에서 지하철을 탄다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최적의 경로 또는 최소 환승으로 가는 방법, 요금 등을 알 수 있다.
- 알리페이(支付宝, Alipay): 최근 중국에서는 현금, 카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현지 계좌가 있으면 가급적 알리페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 가오더디투(高德地图, Gaode Ditu)와 바이두디투(百度地图, Baidu Ditu): 중국 지도 앱이다. 구글 맵은 서비스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업데이트가 안 된 경우도 있어 중국 지도 앱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 이 글에서는 가오더디투의 QR코드를 이용한다.
5. 중국어를 몰라도 지도 앱, 가오더디투 사용해보기
중국어를 모른다 하더라도 지도 앱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목적지 입력은 복사+붙여넣기를 하거나 중국어 자판을 사용하면 된다. 직접 중국어 자판을 이용할 경우, 병음(중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을 쳐서 나오는 단어 중 본인이 찾는 것을 선택하여 사용하면 된다.
괜찮아요, 상하이 택시
상하이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같은 호텔에 묵는 출장자들이 함께 택시를 타고 퇴근하자고 했다. 나는 근처 좀 구경하다가 호텔로 돌아가겠다며 혼자 길을 나섰다.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
어떻게 혼자 돌아다니지?
안도와 두려움, 상반된 마음이 함께 덜컥 들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 가장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회사 근처 쇼핑몰을 둘러보기로 했다. 쇼핑몰에는 한국에서도 보던 명품 브랜드숍이 대부분 들어차 있었지만, 상하이에서 보니 처음 보듯 신이 났다.
하지만 신나는 것도 잠시, 막상 구경하려고 하니 사지도 않을 것을 뭐 하러 보나 싶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보는 둥 마는 둥 거대한 쇼핑몰을 걷다 보니 다리가 아팠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아홉 시였다. 낯선 도시에서 아홉 시란 무서움이 시작되는 시간이었기에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하철 역에서 내가 묵는 호텔까지 가려면 20분 정도 걸어야 했다.
호텔 앞 길은 원래 포장마차 같은 상점이 즐비했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거의 모든 가게가 철거되고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거리에는 생뚱맞게 자리 잡은 꽃 가게와 작은 음식점만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 밤에 가로등만 껌뻑이는 어두컴컴한 공사판 옆을 걸어갈 때면 괜히 무서워졌다.
택시를 타자
상하이 밤거리를 빛내는 차 행렬 ⓒ김송은
도로에 다니는 차는 많았지만 내가 탈 택시만 없는 것 같았다. 택시*를 잡아보겠다고 열심히 손을 흔들었지만 '빈 차(空车)' 불이 켜진 택시도 서운하게 내 앞을 빨리 지나쳤다. 길 건너편에 택시가 더 많은 것 같아 길을 건너가니 원래 내가 있던 자리에 갑자기 택시가 쏟아져서 속이 터졌다.
* 상하이는 중국 대륙에서 택시비가 가장 비싼 곳이다. 상하이 택시 기본요금은 중형 승용차 택시 기준 14위안(한화 약 2,500원)이다.
겨우 한 대 잡았더니 기사가 뭐라 뭐라 하면서 내리라고 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한마디라도 알아들었다면 그렇게까지 서럽진 않았을 텐데, 나는 몇 번이고 내리기 싫다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길을 건너서 어렵게 잡아 탔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어가 문제였다. 당시 내가 할 줄 아는 중국어는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니하오(你好, nǐ hǎo)와 셰셰(谢谢, xiè xie) 두 마디밖에 없었다. 그저 호텔 이름만 외치다가 미리 적어두었던 호텔 주소를 보여주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출발했다.
드디어 가는구나, 한숨을 돌리는데 택시 기사는 계속 뭐라 뭐라 질문했고 나는 그때마다 호텔 이름만 외쳤다. 어떤 질문에도 호텔 이름으로만 대답하는 내 모습이 어이없었다. "기사님, 저도 답답해요" 하고 내뱉고는 혼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밤에 탄 택시 안에서 찍은 사진 ⓒ김송은
다음 날, 첫 번째 중국어 수업이 있었다. 그룹 수업은 시간이 맞지 않아 출근 전 아침에 일대일 과외를 하기로 했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성조와 발음을 연습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질문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잘됐다 싶어 내가 묵는 호텔의 주소를 어떻게 읽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주소는 왜 읽고 싶느냐고 묻기에 택시를 타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갑자기 펜을 들고 칠판 앞으로 가서 번호를 매겨 적으며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 말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면 출처: 가오더디투(高德地图, Gaode Ditu) 앱 화면 출처: 가오더디투(高德地图, Gaode Ditu) 앱 화면 출처: 가오더디투(高德地图, Gaode Ditu) 앱중국에서 택시 타고 길찾기
목적지 근처에 있는 랜드마크를 말하고 길을 찾아가는 한국과 달리 상하이에서는 길 이름을 중심으로 말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생각해보니 큰 도로부터 작은 골목까지 길 이름이 크게 적힌 표지판이 늘 있었다. 선생님은 순서에 맞게 내가 말해야 할 것을 발음과 함께 적어주었다. 호텔 방에 앉아 공책에 적은 내용을 입에 익숙해질 만큼 연습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해졌다.
- 1단계
기사가 "어디를 가냐?(你去哪里啊? nĭ qù nă lĭ a)"라고 물으면
① 목적지 지역의 이름(oo区, qū)
② 내가 가는 길 이름(oo路, lù)
③ 호텔 또는 상호명을 말한다.
- 2단계
① 목적지 주소의 길
② 목적지와 가장 가깝게 교차하는 길(주소에 "近oo路"라고 함께 쓰여 있는 경우도 있다)을 함께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거의 도착할 무렵 "몇 호냐?(oo路的几号? lù de jĭ hào)" 하고 물으면 그때 호수까지 적힌 주소 이름을 말하면 된다.
길 이름이 적힌 표지판 ⓒ김송은
퇴근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그렇게 연습을 해놓고도 혹시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되어서 호텔 주소가 적힌 종이를 꺼내 손에 쥐었다. 자리에 앉자 기사가 정말로 나를 보고 "你去哪儿?(nĭ qù năer)" 하고 물었다. 나는 배운 대로 1단계를 말했다. 차가 출발하자 나는 괜히 기사가 더 물어보기도 전에 2단계까지 큰 소리로 외쳤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제대로 말한 게 맞을까 걱정하며 앉아 있었다. 저 멀리 내가 묵는 호텔이 보였다. 마법 같았다. 기사는 다시 무언가를 물었다. 나는 호텔 주소와 이름을 외치고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기사가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그 말에 대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주었다
택시 창밖으로 바라본 상하이 풍경 ⓒ김송은
중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터라 실전 연습할 대상이 간절히 필요했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중국인 동료들에게는 정확히 말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영어나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을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중국어를 할 일이 없었다.
선생님에게 배운 중국어를 한 번이라도 더 말해보고 싶은 나에게, 말을 걸면 신나게 대답해주는 택시 기사는 가장 좋은 회화 상대였다. 사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한두 개였지만, 그때마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다.
표준어로 또박또박 말해주는 중국어 선생님의 발음과 택시 기사들의 발음은 많이 달랐지만 기를 쓰고 알아들으려 애쓰다 보니 듣기 실력도 쑥쑥 늘었다. 게다가 택시를 탈 때마다 물어보는 것이 매번 똑같아서 자연스럽게 반복하다 보니 택시를 타서 처음 2분 정도는 거뜬히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택시 기사: 어디 사람이에요?(你是哪里人?)
나: 한국인이요.(我是韩国人.)
택시 기사: 와, 한국 여자는 정말 예쁘고 피부도 좋아요.(哇, 韩国女人都非常漂亮, 皮肤也很好.)
나: 고맙습니다.(谢谢你.)
택시 기사: 중국에 왜 왔어요?(你为什么来中国?)
나: 일하러요.(我来上海出差.)
택시 기사: 중국어는 어디에서 배웠어요?(你在哪儿学的中文?)
나: 상하이요.(我在上海学汉语.)
택시 기사: 얼마나 배웠고요?(你学了多久?)
나: 2개월 정도요.(两个月.)
택시 기사: 와, 대단하다. 똑똑하네.(哇, 厉害, 你很聪明!)
나: 아이고, 아니에요. 아직 멀었죠.(哪儿有啊, 还差得远.)
뒷자리에서 바라본 어느 택시 기사 ⓒ김송은
한국에서는 예쁘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중국에서는 택시를 탈 때마다 "정말 예쁘다", "피부가 어쩜 그렇게 좋니?" 하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내가 예뻐서 그러는 줄 알고 "감사합니다! 거스름돈 가지세요!"를 외치곤 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하우 알 유?" 하면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가 자동으로 나오듯이 내가 "한국인입니다" 하면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자동으로 나오는 대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쁘다는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인사말이 되었다. 그 말을 들으면 뭘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웃다가 "저녁은 드셨나요?" 하며 기사님에게 진짜 안부를 묻곤 했다. 택시 안에는 늘 한 마디라도 더 알아듣고 싶은 나와, 그런 나를 붙잡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택시 기사가 있었다. 나에게 상하이 택시는 가장 훌륭한 중국어 회화 공부 장소였다.
택시 잡는 찰나 ⓒ김송은
아파트 앞, 쇼핑몰 앞에는 택시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택시 회사마다 색깔이 다르다. ⓒ김송은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할 때, 택시 타기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어로 적힌 목적지의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름만 말해도 아는 관광 명소여도 주의해야 한다. 중국의 관광 명소는 보통 중국식 이름과 영어 이름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고, 발음만으로 전혀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예를 들어 와이탄(外滩)의 영어 이름은 더 분드(The Bund)다. 더욱이 상하이에서 영어가 가능한 택시 기사를 만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에, 서투르더라도 중국어 발음으로 지명을 택시 기사에게 말해야 알아들을 확률이 높다.
홀린 듯이 징안쓰
출장 와서 혼자 보내는 첫 주말이었다.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조계지(租界, zū jiè)*를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다가 빌딩 사이에 있는 절을 발견했다.
* 아편 전쟁 패배 후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지역을 말한다. 상하이 곳곳에는 그때 흔적이 남은 영국식, 프랑스식 건물이 많다. 역사의 아픔 때문에 생겨난 곳이지만 지금 조계지는 라오상하이(老上海)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특히 프랑스 조계지에는 아기자기한 상점이 많고 큰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어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프랑스 조계지는 지하철 1호선 헝산루(衡山路), 창수루(常熟路), 산시난루(陕西南路), 지하철 10호선 상하이 도서관(上海图书馆) 역에 내리면 만날 수 있다.
징안쓰(静安寺, jìng ān sì)였다. 징안쓰를 보기 전까지는 황금빛이 그렇게 화려한 줄 몰랐다. 무채색 빌딩 사이에 있어서인지, 그날 날씨가 좋아 빛을 잘 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징안쓰는 유난히 번쩍거렸다.
쇼핑몰과 호텔이 가득한 상업 지구 속에 떡하니 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절은 속세에서 벗어나 있는 줄 알았는데 백화점 옆에서 화려함을 뽐내다니, 참 이상했다.
뭔가에 홀린 듯이
징안쓰를 향해 걸어갔다
백화점을 지나치는데, 비싼 땅을 허투루 쓸 수는 없었는지 각종 브랜드 숍에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화장이 진한 내레이터의 소리가 뒤엉켜 정신을 쏙 빼놓았다. 이 백화점에 기가 눌려 아무도 기도하러 오지 않을까 봐 기를 쓰고 황금빛 지붕으로 절을 만들었나 싶었다.
마침 청명절(清明节, qīng míng jié)*이어서 사람이 많았다. 들어서자마자 향을 피운 연기가 절을 가득 메워 손을 휘저으며 연기를 걷어내야 했다. 소방차가 와야 할 정도로 절 안에 연기가 그득했다. 중국 아니랄까 봐 사람들은 대륙 스타일로 향도 한 움큼씩 집어 피웠다.
* 동지 후 100일째 되는 날(양력 4월 5일 무렵)로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중국의 명절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화려한 바깥 모습과 달리 징안쓰 안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밖에서는 큰 소리로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모두가 편안히 미소를 띠며 합장하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향을 피우고 기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손은 모았으나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당황스러웠다. 예전에는 소원이 뭐냐고 하면 술술 잘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다니.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일과 건강, 사랑, 빌어야 할 소원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는데, 내일에 대한 기대 없이 손을 어색하게 모으고 있다가 포기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소원이 그리도 많아서 향을 저렇게 많이 한 움큼씩 피울까' 하는 생각이 드니 왠지 먹먹했다.
계단에 앉아 물끄러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향 피우는 곳도 지나고, 큰 불상이 있는 곳도 지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찬찬히 징안쓰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곳에서 똑같이 사진 찍고 옆에서 누가 동전을 던지면 괜히 따라서 던져보았다. 관광지여서일까, 절이어서일까, 아니면 휴일이어서일까, 해맑게 웃고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일기를
다시 쓰고 싶다
일주일이 이렇게 지났구나 싶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보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상하이에 도착한 뒤 전쟁같이 일주일을 보냈는데 나는 평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 채로 호텔로 돌아왔다. 이날 상하이에 와서 처음으로 일기를 썼다.
영문도 모르고 상하이에 도착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겁도 없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상하이와 사랑에 빠지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 중이다. 내가 보고 느끼는 상하이를 고스란히 남기기 위해, 그리고 이 또한 후에는 의미 있는 기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하루하루 꼼꼼히 남겨보려 한다. 어쨌든, 지금 나는 상하이에 있다.
이때 남긴 일기가 이 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날의 기억이 유독 선명한 것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얼떨떨하고 공허했던 내 마음을 징안쓰가 위로해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상하이에 갈 때마다 홀린 듯이 징안쓰를 향해 걸어갔다.
미션, 길 건너기
상하이에 도착한 뒤 며칠은 회사 안팎에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그래서인지 길을 걸어 다니면 늘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지하철을 탈 때면 전화를 큰 소리로 받는 사람들이 많아서 혹시나 저 사람이 술에 취한 건 아닐까 무서웠다.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시장 앞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데, 한 아주머니의 소리가 구관조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음으로 울부짖는 듯이 들렸다. 중국에 가면 시끄럽고 정신이 없다던데 역시나 그렇구나 하면서 혼자서 씩씩거릴 때가 많았다.가장 힘든 일
길 건너기 뚜벅이족인 나에게 길 건너기는 하루에 두세 번씩 겪어야 하는 난제였다. 차도 가까이 가면 전동 오토바이 떼가 스르륵 몰려와서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길 건너기는 둘째치고 차도 쪽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크나큰 '미션'이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고비가 많았다. 첫 번째 고비는 아파트 앞에 있는 작은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였는데, 보행자 신호와 상관없이 좌회전하는 차가 물밀 듯이 밀려오곤 했다. 정말 신기하게 빨간불일 때는 차가 없다가 파란불이 되면 차가 횡단보도로 진입했다.
이 길을 건너 한참 지나가다 보면 두 번째 고비가 나타났다. 상가를 옆에 낀 도로는 차가 하나도 없어 사람들이 신호등은 신경도 쓰지 않고 길을 건넜다.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들 따라서 길을 건너야 하나, 아니면 나라도 교통질서를 지켜야 하나' 하며 내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드디어 세 번째 고비, '나는 여기서 드디어 죽는가' 하는 지경의 고난도였다. 고가 아래 8차선이 넘는 대로를 건너야 했는데 물론 신호등이 있었지만 건너기가 어려웠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야 사람들이 길을 건너긴 했지만, 이곳 역시 파란불에도 차가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겁이 났다. 고가 아래 있는 대로다 보니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데다 경적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괜히 위축되었다.
신호등보다
사람들이 만든 질서
먼저
신호등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건너면 되겠다' 하는 나의 판단이었다. 처음에는 길을 혼자 건너는 게 무서워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옆으로 달려가 같이 건넜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 살아가기 위해서 신호등 말고 이곳 사람들의 규칙에 익숙해져야 했다.
회사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수줍게 웃는 순둥이 후배들이 길을 건널 때면 갑자기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박력과 카리스마를 보였다. 몰려오는 오토바이와 차를 앞에 두고 쩔쩔매는 나에게 길을 함께 건너 주는 후배들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수퍼 히어로' 같았다.
부끄러움이 많고 귀여운 샤오한도, 내 말에 수줍게 웃다가 길을 건너기 전에는 "자, 이제 건너요" 하고 갑자기 내 팔을 탁 잡았다. 그러고는 망설임도 주춤거림도 없이 나만 믿으라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길을 건넜다. '길 건너기 박력 매직'은 길을 건너고 나면 바로 풀어지곤 했다. "와! 샤오한, 길 엄청 잘 건넌다. 안 무서워요?" 하고 내가 몇 번이나 물어보면 "네. 안 무서워요" 하며 웃었다.
언제나 배려심이 넘치는 쉐롄(雪莲)과 업체 미팅하러 외근을 나간 날이었다. 전동 오토바이 떼가 무심하게 지나다니는 횡단보도를 건널 일이 있었다. 저 길을 어떻게 건너지 하고 머뭇거리는데, 그때 쉐롄이 갑자기 옆으로 바짝 다가와 팔짱을 탁 끼고 "언니, 저만 따라와요" 하며 한 번도 멈칫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길을 건넜다.
"쉐롄, 정말 멋있다! 어쩜 그렇게 길을 잘 건너요?"
"전 상하이 사람이니까요. 여기 25년이나 살았는걸요."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길 건너기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요령을 습득하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신호등을 보기 전에 길의 좌우를 살피며, 차가 오는지 살피며 건너갈 타이밍을 스스로 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른 어느 날 또래 한국인 회사 동료인 딩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다가 길을 건널 일이 있었다. 차가 드문드문 지나갔고 종종 오토바이가 몰려왔다. 한차례 오토바이 떼가 지나가고 차도가 비었다. 나는 딩의 팔을 덥석 잡고 말했다.
"자, 우리도 건너자. 중국에는 신호등 말고도 공공질서라는 게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