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스타인, 선댄스, 예술과 상업성

Editor's Comment 

이번 프로젝트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영화 산업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영화'를 비롯한 제반 영상 콘텐츠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실제 이 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지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왜 선댄스로 가는가 - 선댄스 영화제 2018' 첫 번째 미리보기를 통해 황수진 저자가 선댄스 영화제 관계자와 '포스트-하비 시대'에 관해 나눈 대화 일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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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은 선댄스 영화제를 할리우드 스타가 탄생하는 공간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1989년, 26세의 신인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의 데뷔작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가 선댄스에서 상영됐을 때 와인스타인은 이 영화를 놓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필름을 손에 넣은 뒤, 아카데미 상 후보와 칸 영화제 수상작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2,500만 달러(약 265억 6천만 원)라는 경이로운 극장 매출까지 달성한 것이다.

하비 와인스틴 &#9426;David Shankbone

이렇게 와인스타인의 영화사 미라맥스(Miramax)는 상업성을 겸비한 예술영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굿 윌 헌팅>, <셰익스피어 인 러브> 등 무수한 미라맥스 표 영화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성범죄 혐의를 받기 전까지,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非)스튜디오 제작자로 그리고 선댄스 영화제의 무소불위한 권력으로 군림했다.

폭군, 끌려내려 가다

이런 선댄스 영화제가, 올해는 와인스타인과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미투(#MeToo)와 타임즈업(Time's Up) 운동으로 그의 성범죄 혐의가 공론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제 측은 24시간 운영되는 성범죄 핫라인을 개설했고, 관련 행동규범을 발표했다. 창립자인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역시 개막 기자회견에서 와인스타인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제 선댄스 영화제는 포스트-하비 시대를 맞이했다.

&#9426;황수진

이 큰 손의 부재에 대한 업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파크 애비뉴 극장(Park Avenue Theatre)과 연결된 더블 트리 호텔의 라운지를 찾았다. 오후 4시, LA 영화비평가협회의 회장인 클라우디아 푸이그(Claudia Puig)가 막 상영관을 나와 간이 가판대에서 더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있었다. 다음 영화 상영까지 비어있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와인스타인 이전과 이후
선댄스 영화제의 비전
그리고 그 본질에 관해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

클라우디아 푸이그(이하 푸이그): 하비가 선댄스의 일인자였던 것은 사실이에요. 저돌적이고 무자비했죠. (그를 떠올린 듯, 고개를 저었다) 정신없는 입찰경쟁도 그가 만들어낸 전통이죠.

 

황수진(이하 황): 인간적으로 마주하긴 싫지만, 영화를 보는 안목은 있었다는 평가도 있지 않았나요?

 

푸이그: 글쎄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괜찮은 영화이긴 하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만한 영화일까요? <해피 텍사스>*도 가격에 걸맞은 엄청난 영화는 아니었죠. 그는 이기는 것을 좋아했어요. 다른 사람이 영화를 갖는 게 싫어서, 일단 엄청난 가격에 사들이곤 내팽개쳐버리는 경우도 많았죠.

* 1999년 미라맥스가 제작한 코미디 영화. 제작비 약 170만 달러. 같은 해 선댄스 영화제 그랜드 주리(Grand Jury) 상 드라마 부문 후보작.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좋은 영화도 많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아무도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죠. <샤인>이 나왔을 때니까, 1996년일 거예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다른 배급사 사람과 글자 그대로 몸으로 치고받는 싸움을 벌인 건 유명한 일화죠. 그는 싸움을 좋아해요. 그리고 대부분 그가 이겼죠.

 

황: 올해 선댄스는 어떤가요?

 

푸이그: 선댄스 영화제를 보면 올해의 흐름을 알 수 있어요. 하비가 소더버그나 타란티노 같은 젊은 독립영화인을 발굴한 공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두 젊은 백인 남성이잖아요? 올해 선댄스를 보세요. 초청된 작품의 37%를 여성 감독이 만들었어요.* 여성 감독이 어렸을 때 겪은 어두운 사건을 담은 <더 테일(The Tale)>**이 기립박수까지 받았잖아요? 이제 좋은 변화가 오겠죠.

* 관련 기사: Women Filmmakers at the 2018 Sundance Film Festival (Sundance Institute, 2017.12.19)

** 제니퍼 폭스 감독, 로라 던 주연의 영화.

진짜는, 언제나처럼 여기에 있다

커피를 다 마신 평론가 푸이그가 다음 영화를 보기 위해 자리를 뜬 뒤, 감기 탓에 훌쩍이는 오웬 쉬플렛(Owen Shiflett)이 라운지에 들어왔다. 쉬플렛은 AMC 네트워크* 산하의 독립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인 선댄스 나우(Sundance Now)와 공포영화 전문 레이블 셔더(Shudder)에서 기획/제작을 맡고 있다. 그는 어제 왜 AMC파티에 오지 않았는지 물으며 좋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 미국의 미디어 회사로,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제작이 주력분야. <브레이킹 배드>와 <워킹데드>를 만든 제작사 AMC 및 독립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인 선댄스 TV(Sundance TV) 등을 소유.

 

황: 마켓이 이번에는 조용한 것 같지 않아요?

 

오웬 쉬플렛(이하 쉬플렛): 그러고 보니 뜨거운 입찰 경쟁과 예측이 전혀 안 되는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차분하네요.

 

황: 2017년에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엄청나게 사들였죠.

 

쉬플렛: 정상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구매한 작품을 배급하는 데 신경 쓰지 않아서 업계에선 불만이 많았죠. 그래서 신중한 태도로 바뀐 것일 수도 있고요. 물론, 아직까지 크게 움직이지 않은 것뿐이죠. 진짜배기들은 이곳에 다 있어요.

 

황: 와인스타인이 없기 때문에 차분해진 것일까요?

 

쉬플렛: (웃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대형 제작사들이 영화제 출품작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거액에 사들인다는 선댄스 신화를 하비 스스로 만들어낸 측면이 있죠.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해요. 영화 관계자들은 나름대로 엄청나게 준비해왔고, 단지 신화의 주인공들이 거둔 성공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런 행운도 존재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주목을 받았다가도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황: 그래도 지난해처럼 떠들썩한 구매 소식이 있어야 선댄스에게도 좋은 것 아닌가요?

 

쉬플렛: 그런 소식은 넷플릭스와 아마존에게나 필요하겠죠. 선댄스는 선댄스 자체로 충분해요. 필요한 것은 이미 여기에 다 있어요.

 

다시 영화관으로 향하는 오웬의 모습은, 어쩌면 선댄스에는 처음부터 절대권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었다. 푸이그와 쉬플렛의 말처럼 이 곳은 여전히 올 한 해의 바로미터이자 창의성의 시험장이다.

영화제가 다양성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지금이야말로,
선댄스에 더욱 주목해야 할 때다
이 영화제에서 사람들은 진짜 영화와 만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왜 선댄스로 가는가 - 선댄스 영화제 2018]

 

할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영화 산업 현장을 2010년부터 누벼온 영화진흥위원회의 미국사무소장인 황수진 저자가 선댄스 영화제 2018 현장에 직접 다녀옵니다.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2018년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플랫폼을 만나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작은 독립 영화제가 산업을 이끄는 힘을 갖추게 되었는지 현장에서 느낀 힘을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