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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의 뉴칼라: 박희은(알토스벤처스)

한국의 뉴칼라: 박희은(알토스벤처스)

뉴칼라 박희은을 만나다

2010년 국내 최초의 소셜데이팅업체 '이음'을 창업하고 4년 만에 회원 110만 명, 월 매출 5억 원 규모로 키워내고, 2014년 알토스벤처스로 옮겨 VC로 일하고 있는 박희은 수석심사역. 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상을 뛰어넘는다. 스타트업계에 흔한 공대생이 아니라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문과생이다.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문과생 출신의 여성 창업자. 그가 창업 시장에서, 투자 시장에서 성공적이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아무리 큰 문제가 터져도 도망칠 수 없는 게 창업

'창업자=뉴칼라'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창업을 '대단한 무엇'으로 생각했던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창업도 라이프스타일이에요."

정선언(이하 생략): 창업도 라이프스타일이라니, 무슨 뜻인가요?

박희은(이하 생략):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니까요. '창업'이라는 방식이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또 아닌 사람도 있죠. 잘 맞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는 창업이 덜 힘들 테고, 아니라면 조금 더 힘들겠죠.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말입니다.

 

창업이라는 일의 방식,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건가요?

직원은 그만둘 수 있지만 창업자는 그럴 수 없어요. 그 차이는 정말 커요. 아무리 큰 문제가 터져도 반드시 풀어야만 하고, 어쨌건 끌고 가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정말 도처에 널려 있죠. 하지만 인생도 그렇잖아요. 도망갈 수 없는,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문제들이 가득한 걸로 따지면요.

 

심사역님은 왜 창업을 했나요?

엄청난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건 아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2009년 말에 엔씨소프트에 입사했어요. 벤처에서 출발한 회사라 규모에 비해 아주 자유로운 조직이지만, 그런데도 저는 버티기가 힘들었어요. 갑갑했다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엔씨소프트에는 게임 마니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게임을 잘 몰랐다 보니 출발선이 달랐죠. 저는 일로 게임을 배워야 하는데, 다른 분들은 원래 게임을 너무 좋아하니까 그게 힘들었어요.

알토스벤처스 박희은 수석심사역 ⓒ중앙일보회사가 싫어서 창업을 한 건가요?

저한테 회사를 나올 명분이 되어주었어요. 회사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 때 마침 이음의 공동대표였던 김도연 대표님이 친구를 통해서 연락을 해왔어요. 오프라인에서 매칭 테스트를 해봤더니 온라인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은 온라인을 잘 모르니 시간제 근무로 일하면서 도와달라고요. 그래서 그 일을 돕다가 아예 같이 일하게 됐죠. 그게 소셜데이팅 스타트업 이음의 탄생으로 이어졌어요.

 

아무리 회사가 싫다고 해도 선뜻 대기업을 박차고 나가기는 쉽지 않았겠죠.

졸업반이었던 2009년 초에 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조교를 했어요. 그때 SK텔레콤 임원 분이 그 과정을 들었는데, 저에게 아이폰을 주면서 한 달간 써보고 리뷰를 해달라고 하셨죠. 저는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들어오기 6개월 전에 먼저 아이폰을 써본 거예요. 그걸 보니 스마트폰이 정말 많은 걸 바꿀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회사에 들어갔는데, 직장인이 되니 외로웠어요. 학교를 다닐 때는 친구들도 만나고 소개팅도 많이 하잖아요. 한데 회사를 다니니 동료들 말고는 만날 시간도 없고 기회도 별로 없고요. 그 무렵에 김도연 대표님과 시간제 근무로 일하고 있었는데, 직장인이야말로 외로운 집단이면서 돈을 쓸 여력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타겟으로 한 유료 소셜데이팅 서비스, 이거 그림이 되지 않나요?

 

그림이 된다고 모두가 창업하진 않죠. 그러면 저는 10번도 더 했을 것 같아요.

원래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고 관심도 많았어요. 전공도 그래서 언론정보학으로 선택했고요.

 

보통 전공은 수능 점수에 맞춰가는데, 아니었군요?

대학에 입학하고 2년 동안 전공을 정하지 않고 그냥 놀았어요. 놀면서 보니까 제가 커뮤니케이션에 유독 민감하더라고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언론정보학을 선택했어요. 3학년 때 1, 2학년 전공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시간에 제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려서 민망했던 기억이 나요. 하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이음으로까지 이어진 거군요.

네, 시간제 근무로 김도연 대표님을 도와주면서 '이건 내가 진짜 하고 싶던 일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채널에 따라 달라지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아이폰을 처음 만져봤을 때도 그게 궁금했어요. 이 기계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거요. 스마트폰은 아주 사적인 기기잖아요. TV는 온 가족이 함께 보지만 스마트폰은 나만 보는 거니까요. 관계 중에 가장 사적인 관계가 뭐죠? 연인이잖아요. 스마트폰과 데이팅 서비스가 만나면 분명 일이 나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재미있었던 이음을 왜 그만두었나요?

김도연 대표님과 제 생각이 달랐어요. 김 대표님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고 싶어 하셨고, 저는 온라인에 더 집중하고 싶었죠. 스타트업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엄청난 에너지로 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공동대표 2명이 뜻이 다르면 안 되죠.

 

김 대표님이 아니라 심사역님이 떠나게 되었군요.

김 대표님은 그 사업이 마지막 사업이라고 하셨거든요. 저는 그 사업이 첫 사업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제가 나왔어요.

 

회사를 나와서 벤처캐피탈리스트(이하 VC)로 전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가장 손쉬운 선택은 창업이었어요. 한번 해봤으니 언제 어떤 순서인지에 대한 감, 즉 노하우가 있잖아요. 그리고 네트워크도 있고요. 언제든 창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창업을 바로 하기엔 좀 아쉬운 게, 창업을 시작하면 하나만 보고 가야 하잖아요. 특히 제가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일은 거의 못해요. 그래서 창업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당장은 아니고, 다른 분야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산업 전체를 보고 맥락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VC가 된 건가요?

'VC가 되어야지' 이렇게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어요. 그런데 이음을 떠나기 전에 투자자들을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투자자들은 창업자가 떠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니까 설득 아닌 설득을 하는 거죠. 그때 이음에 투자했던 알토스벤처스 김한준 대표님이 제안을 해주셨어요. 알토스벤쳐스에서 만드는 한국 투자 펀드를 도와달라고요.

 

받아들이신 거군요?

처음엔 시간제 근무로 제안하셔서 큰 고민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까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일은 야금야금 늘어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이러고 있네요, 하하.

박 심사역은 꾸며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을 말해도 대단한 것인 양 말하는 법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쉽게' 말하는 편이었다.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일을 온몸으로 통과했기 때문이니다.

박 심사역은 말하지 않았지만, 알토스벤처스의 유일한 '토종 한국인'인 그가 영어회화 스타트업 '링글'의 수강생 인터뷰에 나왔을 정도로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음을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처음에 베타서비스를 무료로 론칭했어요. 제대로 된 개발자도 없고, 돈은 떨어져 가니까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유료화를 결정했어요. 그때는 다들 만류했었어요. 당시 게임 유료 결제율도 3%가 채 안 됐으니까요.

 

그런데 유료화 첫 달 매출이 6천만 원이었어요. 정말 막막했는데 돌파구를 찾은 기분이었죠. 창업을 하면 이런 경우가 많아요. 우리 가설이 맞을까 늘 고민하고 그게 들어맞으면 엄청난 희열을 느끼죠.

 

그럼 가장 힘든 순간은요?

저는 사람이 가장 힘들었어요. 큰 회사를 만드는 데는 타인의 감정에 무딘 사람들이 탁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하면 자기도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저는 그 부분에 약했던 것 같아요.

 

직원이 50명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그게 더 힘들어졌어요. 그전에는 각 직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다 알고 있었고 소통도 수월했는데, 규모가 늘어나면서부터는 감당할 수가 없더라고요.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컸어요. 감지 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 같아요.

 

사람이 힘들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아요.

예를 들면, 일을 하고 있는데 직원에게 할 말이 있다고 메시지가 와요. 그 '할 말'이라는 건 퇴직에 대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70% 이상이에요. 그때부터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 '자리가 비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있을까?', '새로 사람을 뽑아야 하나?', '이 사람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은 없을까?' 이런 고민들이 정말 어려웠어요.

 

회사를 그만두실 때는 힘들지 않았어요?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저를 믿고 와준 직원들도 많고, 제 색깔로 팀을 꾸린 측면도 크니까요. 그 사람들에게 제가 그만둔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회사를 떠나는 건 사실 그만두기 6개월 전쯤에 결정이 났어요. 6개월 간은 김 대표님 체재로의 소프트랜딩을 돕기로 했는데, 그때 직원들한테는 제 사임 소식을 비밀로 했거든요. 조직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그때도 참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돌이켜보니 그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창업이 골프면 투자는 탁구, 쓰는 근육이 다르다

VC와 창업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써야 하는 근육이 달라요. 창업은 골프와 비슷해요. 한 타 한 타가 힘들진 않아요. 하지만 매 순간 집중해야 하죠.한 번의 스윙이 잘못 나갔어도,
한 홀의 경기가 꼬였어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가야 해요

VC는 탁구 같아요. 공이 계속 날아와요. 투자한 회사 창업자들로부터 이런저런 요청과 요구가 쏟아지고, 새로 투자할 회사들을 계속 만나고 검토하죠. 제 목표는 날아온 공을 네트 너머로 넘기는 거예요. 넘기기만 하면 돼요. 창업자가 요청한 걸 쳐내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걸 찾아서 도와요. 우리가 넘긴 공을 받는 건 그 회사, 창업자의 몫이고요.

 

저희가 투자한 회사 창업자들을 만나면 제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해요. 저는 말만 하면 되니까 편하다고요. 궁극적으로 그건 그 회사의 문제고, 그걸 푸는 건 창업자의 몫이죠.

 

창업자들은 뭘 도와달라고 하나요?

경영자는 세 가지만 잘 하면 돼요. 자금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게 첫 번째고, 좋은 사람이 회사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두 번째, 마지막으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게 세 번째예요.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우리가 도울 수 있지만 세 번째는 창업자 스스로 풀어야 해요.

 

VC는 호흡이 짧은 것 같아요.

네, 그런 면이 있어요. 그런데 창업자보다 훨씬 잔잔해요. 저도 창업자일 때는 감정 기복이 심했어요. 아침엔 우리 회사가 엄청난 유니콘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 오후에 일이라도 터지면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죠. 기쁠 때는 희열이 엄청 크고, 스트레스 레벨도 아주 높아요.

 

반대로 VC는 달라요. 잘될 때의 희열도, 힘들 때의 스트레스도 창업자만큼은 아니죠. 어떤 일이 더 맞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일에 우열은 없어요. 그저 더 맞고 덜 맞는 차이만 있을 뿐이죠.

 

무엇을 보고 투자하시나요?

세 가지를 봐요. 먼저 성장하는 시장인가. 그 회사가 목표로 하는 시장이 충분히 사이즈가 크고 성장하고 있는지. 두 번째는 성장하는 시장에서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방향성과 숫자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팀을 봐요. 이 팀이 이 비즈니스에 적합한지. 어떤 비즈니스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끈기 있게 버티면서 영업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고, 또 어떤 비즈니스는 정말 미친 듯이 똑똑한 사람만이 성과 낼 수 있어요.

 

알토스벤처스의 투자 중에 수제맥주업체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기억에 남아요.

성장하는 시장이라서 투자한 경우였어요. 수제맥주 시장은 전체 맥주시장의 1%도 안 돼요. 그래서 사실 그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는데, 저는 시장의 방향이 수제맥주로 가고 있다는 데 도박을 걸었어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 거죠.

 

VC로 일하면서 창업자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게 있다면 뭘까요?

제가 잘못했던 것, 아쉬웠던 것들이요. 먼저,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 창업하는 편이 좋아요.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수준이 다르니까요. 사람을 뽑아도, 투자를 받아도 다를 수 있어요. 그리고 경험의 폭도 다르죠. 경험이 있으면 질러서 밀고 나갔어야 하는 순간을 알아챌 수 있었을 거예요.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 줄도 알았을 것 같고요.

 

전직 창업자이자 현직 VC로서 창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저는 창업자일 때 좋은 사람을 뽑으려고 노력했지만, 막상 사람을 만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도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일해야 할 시간에 이걸 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사람을 뽑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고, 어느 시점에는 CEO 업무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해요.

 

작은 조직이기 때문에 사람이 더욱 중요해요. 한 명 한 명이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니까요. 어떤 사람을 뽑느냐에 따라 조직의 색깔이 바뀌기도 하죠. 안 맞는 사람과는 빨리 헤어져야 해요. 그 사람이 조직 전체에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마구 정리할 순 없으니까, 서로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투자했던 기업 중에 기억에 남는 회사가 있나요?

입사 후 가장 먼저 투자했던 회사가 비트, 토스, 리모택시, 직방, 하이퍼커넥트, 이렇게 5곳이에요. 결과는 극단적으로 나뉘어요. 비트와 리모택시는 아쉽게 됐고, 나머지는 아주 잘 성사됐고요. 이게 벤처투자구나, 하고 느꼈죠.

 

뼈 아픈 투자 경험은 없나요?

많죠. 투자하고 싶었지만 못한 회사들도 있어요. 초반엔 사실 실리콘밸리 후광 효과가 있었어요. 실리콘밸리 VC니까 여기서 투자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요. 하지만 모든 회사가 글로벌 진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후광이 없어도 투자를 받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해요. 창업자들이 투자받고 싶은 VC가 되어야 정말 좋은 회사를 만날 수 있어요.알토스벤처스 박희은 수석심사역 ⓒ중앙일보창업자들이 투자받고 싶은 VC라, 신선하네요. VC는 투자자니까 '갑'이지 않나요?

2010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VC가 많아지기도 했고 정말 잘 하는 회사는 회사가 갑이에요. 창업자가 우리를 선택하죠.

 

알토스벤처스에 와서 한킴 대표에게 배운 점이 있어요. 회사라는 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 안 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봐야 한다고요. VC도 회사의 사정이 어려울 때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고요. 창업자들도 그걸 보셨으면 좋겠어요. 회사가 어려울 때 발을 빼는 게 아니라 그럴수록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투자사인가에 대해서요.

 

그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그 VC에 투자를 받은 다른 회사 창업자에게 물어보세요. 레퍼런스 체크를 하는 거죠.

문과생 그리고 여성, 어떤가요?

박희은 심사역은 언론정보학을 전공하셨죠? 그런데 서비스를 개발하셨어요.

네, 제가 직접 개발한 건 아니지만요. 문과생인 게 강점은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약점이죠. 엔지니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비개발자가 개발자와 일하는 법이나 노하우를 담은 콘텐츠가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개발 입문서를 많이 참고했어요. 개발자와 소통하는 법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보고 모르는 건 물어봤어요. 제가 잘 모른다는 걸 상대방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요.

 

코딩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네, 저는 배울 수 있으면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 위해서요. 원하는 게 있으면 간단하게 기본 모델을 만들어서 '이런 방식을 생각하는 거예요'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문과생은 기술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없을까요?

아뇨. 주눅들 필요는 없어요. 요즘 데이터, 데이터 하지만 지금도 데이터는 많아요. 데이터보다 더 구조화된 정보(information)도 많고요. 하지만 데이터와 정보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바꿀지 분석하는 게 더 중요해요. 이건 지식(knowledge)이죠. 이걸 문과생이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Nord Wood Themes/Unsplash그렇게 데이터와 정보를 지식으로 구조화하는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계속해서 질문하고 생각해야 해요.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TV를 볼 때도 능동적이어야 해요. 생각하면서 읽고, 생각하면서 만나고, 생각하면서 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계속해서 연습해야 해요. 이건 문과생들이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심사역님은 스스로 기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하세요?

디지털 기술 전체가 100이라면 30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모르면 찾아보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공부해요. 생각하고 질문하면서요.

 

정말 변화가 빠르잖아요. 인공지능(AI)이라는 말이 귀에 익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곳곳에서 쓰일 정도로요. 불안하진 않으세요?

그렇진 않아요. VC라는 일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새로운 걸 찾아서 공부해야 하니까 더 많이 공부하는 것 같긴 해요. 그래야 새로운 기술을 기반한 회사들을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모든 걸 다 알 순 없어요. 하지만 알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기회인 걸요.

 

여성이라는 점도 늘 따라다녔을 것 같아요. 창업 시장에도 투자 시장에도 여성이 적으니까요.

네, 사실 저는 '여성'으로 주목받는 부분이 좀 걱정스러웠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창업자 시절부터 VC인 지금까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력도 없는데 주목을 받는다는 시선이 있었거든요.

 

창업 초기엔 저를 인터뷰하는 기자들마저도 저를 '어린 여자애' 취급하기도 했어요. 어떤 분들은 본인의 기억이 부정확한 걸 인정하면서도 제가 말하는 내용은 틀릴 거라고 우기는가 하면, 제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 말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VC는 투자를 하는 사람인데도 그런 상황에 놓이는군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 누군가를 비아냥거리는 글을 썼어요. 대상을 밝히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지인을 통해 그 글을 알게 됐고, 전화로 문제 제기를 했더니 회의 중이라면서 전화를 끊고는 그 뒤로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정말 어른이라면 사과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 아마 제가 남자였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나요?

실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아니라는 걸 증명해낼 수 있게끔요. 그리고 그래야 다른 사람이 저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어요. 그래서 제 실력을 증명하려고 더 많이 노력했어요.

 

상황이 달라졌나요?

실력이 자랐어도 그런 상황이 아예 사라지진 않아요. 그럼 외부에 전달해야 해요. 사실 처음엔, 특히 회사를 운영할 때는 그러지 못했어요. 내가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회사에 해를 입히게 될까 봐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가 저한테 그런 무례나 결례를 범하면 그건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는 걸 알려요. 대부분은 받아들이고 조심하시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그런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아요.

 

일을 하다 만난 사람이면 아예 보지 않기가 어렵잖아요.

놀라운 건 그런 사람들은 금세 도태된다는 거예요. 자신을 믿는다면 그런 말이나 시선에 상처받지 않고, 당당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박희은, 그만의 일하는 노하우

효과적으로 일하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저에게 업무 효율의 핵심 도구는 카카오톡이에요. 제 일은 100% 미팅이고, 게다가 동시에 여러 곳에서 문의가 와요. 전화는 일대일로만 소통이 가능하지만 메신저로는 동시에 들어오는 다양한 요구를 적절히 조율할 수가 있죠. 메신저 위에 여러 개의 탁구대가 펼쳐지는 거예요.

 

아웃룩 캘린더도 요긴하게 써요. 각 VC들이 자기 일정을 올려놓고 서로 공유하니까 제 일정도 다시 한번 확인해요. '내일 이 일이 있었지', '어떤 미팅과 어떤 미팅 사이에 시간이 이만큼 남으니까 그때 이걸 해야겠다' 이런 식으로요.

 

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얻으시나요?

책을 많이 읽어요. 흐르듯 읽지 않고, 필요한 건 밑줄을 치고 따로 정리해뒀다가 심심할 때 꺼내 읽어요.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복잡했던 것들이 정리되기도 해요. 그리고 동영상도 많이 봐요. 특히 다큐멘터리요. 비트코인이나 사모펀드에 관련된 내용을 많이 봤어요. 새로 나온 서비스를 써보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검색은 어디서 하나요?

구글과 네이버를 절반씩 사용하고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도 많이 찾아봐요.

 

취미가 있나요?

저는 라이프스타일을 일에 맞춰서 구성해요. 취미도 일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하는 편이에요. 창업자였을 때는 책을 읽어도 경영에 관련된 책만 읽었어요. 지금은 거들떠도 안 봐요. 오히려 그때 관심이 없었던 경제나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죠. 넷플릭스에서 영상을 볼 때도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들을 주로 보고요.

#8 한국의 뉴칼라: 박희은(알토스벤처스) 마침.

독자 리뷰

현재까지 624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강**

    인공지능의 개발과 빠른 변화로 인해서 전문직에서 일하는 저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한 결 정리된 것 같습니다. 조금 위로도 받았고요.

  • 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뭘 해야 하나 싶었는데 고민에 많은 힌트를 주었다

한국의 뉴칼라: 이치훈(삼성SDS 인공지능개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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