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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뉴칼라: 이승건(비바리퍼블리카)

한국의 뉴칼라: 이승건(비바리퍼블리카)

치과의사 출신, 8전 9기의 창업가

기획은 배움의 연속이다. 퍼블리와의 콜라보레이션을 결심한 것도 배움을 위해서였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첫 만남에서 '나에게 뭔가 배울 게 있을 거야'라는 기운을 강하게 풍겼다. 박 대표는 우리가 몇 달 동안 공들여 준비한 기획 <미래 직업 리포트>를 훑어보고선 말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의 일 말고,

그런 게 더 흥미 있지 않을까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말하는 미래의 일이요.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박 대표가 제안한 사례였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이승건 대표는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이런 청년이 있으니 조국의 미래는 밝다'는 느낌이 드는 청년이었다. 치과의사 출신의 창업가라는 독특한 이력, 8전 9기 끝에 일군 토스의 엄청난 성장. 그래, 미래와 일을 이야기하기에는 그가 적임자다.

 

이 대표는 인터뷰 컨셉을 듣자 바로 "할게요."라고 답했다.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언론 인터뷰는 되도록 사양하는 중이라고 들었던 터라 고마웠다. 인터뷰 전에도 혹시 너무 준비된 답변을 내놓을까 걱정돼서 질문지를 미리 주지 않았다. 모범 답안을 준비한 인터뷰이들은 가끔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 준비 없이 시작된 첫 인터뷰에서, 이승건 대표는 마치 이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리된 답변을 내놓았다. 아래 인터뷰는 순서를 바꾸거나 크게 문장을 다듬지 않은, 거의 그대로의 대화다. 그는 말을 잘 정돈하는 능력이 있고, 일에 대해선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해온 사람이다.

사명이 이끄는 회사를 만들기까지

임미진(이하 생략): 토스(Toss)*가 단기간에 일군 성과가 엄청나요. 그동안 많은 핀테크 서비스가 빛을 보지 못했는데, 어떤 점이 시장에 먹혔을까요?

이승건(이하 생략): 저희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하는 일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사회에 부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사회의 부를 전달받는 게 회사인 거죠.

* 비바리퍼블리카가 2015년 2월에 출시한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가 돈이 되는 가치를 사회에 공급했다는 건가요.

그것보다는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그래야만 훨씬 더 강력하고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고요. 그게 사회적 선에 기여하기 때문에, 팀원들은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야 더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단순히 주주와 회사의 돈을 불려주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나오는 거죠.

 

이게 다들 말하는 '사명이 이끄는 회사(Mission Driven Company)'예요. 성과가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푸는 문제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크고 심각한 문제였다는 반증인 것 같아요.

 

토스는 송금앱이었는데, 모바일 송금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요? '모바일 송금을 간편하게 만들자'라는 미션만으로 어떻게 팀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나요.

저희는 출발이 송금이었을 뿐이지, 사람들이 금융과 관련해 갖고 있던 전반적인 좌절감과 불만을 해결하는 게 가장 큰 미션이었어요. 금융을 간편하게 만들고 싶었죠. 그중 가장 먼저 해결하려던 게 송금이고요. 토스에는 이미 많은 금융 서비스가 들어와 있어요. 우리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거예요. '토스는 너를 금융 생활에서 앞으로 해방시켜줄 거야.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어줄게.' 이 메시지에 사람들이 반응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사명이 이끄는 회사를 목표로 삼게 된 이유는 뭔가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 창업을 했어요. 저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생긴 건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모이면 얼마나 강력한 회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돈이 안 되는 일을 할 수도 있잖아요.

영리 회사에서는 그러면 안 되죠. 그래서 사실 세 가지가 교집합이 되는 일을 해야 해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시장이 원하는 일. 그 교집합이 시장에 부를 창출하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끔 사회가 아닌 자신만의 잣대로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을 만난다. 판사를 그만두고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거나, 외교관을 그만두고 유기농업에 투신했다거나 하는 이들 말이다.

이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외롭지 않았을까.

지금은 정답이 하나라고 강요하는 사회이며 A라는 직업이 B라는 직업보다 낫고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식의 사고가 퍼져 있다. 나 역시 이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물었다.

"치과의사 왜 그만두셨어요?"

창업에 뛰어든 2013년 이후, 그는 도대체 이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을까. 8번의 창업에서 실패를 거듭할 때, 이 질문으로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요. 치과의사를 하다 창업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인가요?

어려서부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집안이 너무 어려워져서 돈을 벌려고 치과대학을 갔어요. 다행히 대학을 간 뒤에 집안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의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마음이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그래서 장애인 치과에서도 일해봤어요. 보람되고 좋았지만 여전히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 ⓒ중앙일보

많은 사람들이 치과의사를 좋은 직업으로 여기는 이유는 안정성과 고수익 때문이죠. 그게 좋은 직업을 가르는 우리나라의 기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거기서 만족을 찾지 못했나요.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 때도 좋은 병원에서 수련받으려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막상 병원에 들어가 보니 '아, 내가 남의 인생을 살았구나. 사람들의 사회적인 기대에 맞추는, 그런 인생을 살았구나' 하고 느꼈어요.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제 생각엔 적지 않은 의사들이 이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달랐던 건 뛰쳐나왔다는 거죠.

 

많은 의사들이 그렇게 느끼나요.

고수익과 안정성, 삶의 안락함으로 가슴을 다 채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제가 느낀 건 그랬어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소명 의식이란 거죠. 치과의사가 천직이라 느끼며 일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죠. 다만 저는 치과에서 그걸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찾는 자기 발견의 시간을 위해 군 생활을 보건소에서 3년 동안 했어요. 거기서 책도 많이 읽고, 평소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도 가면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때 알게 된 건, 저는 기술로 이 세계를 더 낫게 만드는 일이 흥분되고 가슴 떨리고,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는 거였어요.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은 건가요?

3년이니까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였죠. 많은 사람의 삶을 한 번에 변화시키는, 큰 영향을 미치는 일에 가슴이 떨리더라고요. 마침 당시에 모바일 혁명이 일어났고, 이 흐름에 함께해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어요.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

누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 나는 그것을 스마트폰 탄생 10주년이 된 요즈음 자주 느낀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손바닥만한 물건이 세상을 이 정도로 바꾸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소통과 소비가 이 기기를 통해 이뤄질 거라고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의사였던 이 대표는 어떻게 '이 모바일 혁명에 함께하겠다'고 마음먹게 됐을까. 그가 소비자가 아니라 잠재적 생산자로서 스마트폰을 바라보게 된 데는 어려서 배운 코딩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를 알기 때문에, 적어도 이 판에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기술 혁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 어려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운 게 영향을 미쳤나요.

맞아요. 누가 컴퓨터를 배우라고 시키진 않았어요. 우연히 접하게 되었고 흥미를 크게 느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프로그래밍 공부를 열심히 했고, 경진대회도 많이 나갔어요.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요. 그때 디지털 기술, 컴퓨터 과학에 눈을 뜬 게 이쪽으로 용기 있게 넘어올 수 있었던 큰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ty, 이해력)가 있는 아이들은 꿈의 폭이 다르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죠. 그만큼 코딩 같은 디지털 교육이 중요하다고.

굉장히 공감해요. 저는 제2외국어보다도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는 게 더 먼저라고 생각해요.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이게 훨씬 중요해요.

 

요즘 그래서 강남 사교육 시장이 코딩으로 뜨거워요. 코딩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걱정될 정도죠.

그런데 요즘은 학원에 갈 필요도 없어요. 코드닷오알지(Code.org) 같은 무료 코드 학습 방식도 많아요. 공교육에서도 코딩 수업이 포함돼서 전 국민이 프로그램 언어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아쉬운 수준이에요. 지금 한국 사회는 영어 능력에 따라 커리어가 많이 나뉘는데, 다음 세대는 코딩이 그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일의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로 인한 산업의 변화는 일의 범위와 종류를 바꾸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궁극적으로 일의 목적, 나아가 일의 개념까지도 미친다.

이승건 대표는 이 변화를 매우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을 자기 나름의 언어로 정리해왔다. 우리가 일의 미래에 대해 한 수 듣겠다며 인터뷰한 해외 석학들 못지않은 통찰력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래엔 직업 선택의 기준도 바뀔까요. 지금까지는 안정성과 고수익을 좇느라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연습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제 직위나 직함이 중요한 시대는 아니에요. 지금까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성과 수익이 보장됐기 때문에 다들 그걸 얻으려고 매달렸어요. 자격증, 토익 시험을 보고 학벌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했죠.
하지만 이미 변화가 시작됐고,
앞으로는 '스펙'보다
실제 일할 수 있는 역량이
훨씬 더 중요해질 거예요

변호사나 의사 같은 직업이 보장하던 수익과 안정성의 시대는 지났어요. 자격증이나 직함을 따기 위해 업무에 도움되지 않는 공부를 하는 건 무의미한 시대예요.

 

왜 이런 변화가 생겼다고 보세요?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요. 첫 번째는 경쟁이에요. 경쟁이 극도로 치달으면서 모든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해요. 한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도 미국보다 잘해야 살아남아요. 산업 간 구분도 없어요. 네이버가 전자상거래에 뛰어드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이런 무한 경쟁의 시대에는 누가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느냐가 뚜렷하게 드러나요.

 

또 하나는, 가치가 창출되는 구간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예전엔 유통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어디를 통해 공급하느냐가 중요했어요. 실제로 만드는 구간에서는 오히려 큰 차별성이 필요하지 않았죠. 특별히 창의성이 요구되지도 않고요.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모든 게 기술 기반으로 움직이니 기술 혁신과 창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죠.

 

그럼 어떤 사람이 진정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맥락으로, 미션과 비전이 있는 사람이요. 연구 결과로도 증명됐는데, 미션과 비전을 갖고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생산력 차이는 10배 정도에 달한다고 해요. 본인이 왜 일하는지, 이 일이 왜 중요한지 알고 일하는 경우와 일은 단지 생계 수단이며, 가족이나 취미 활동을 더 큰 가치로 여기는 경우는 그 정도 차이가 나타나죠.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일하고 있다고 여기나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요. 일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느껴요. 예전엔 IT나 게임 산업 같은, 창의성이나 기술 혁신이 중요한 산업이 따로 있었죠. 지금은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예요. 기존의 '아재'식 조직 문화로는 절대로 다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는 미래를 제대로 대비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자라나는 세대가 그렇다는 게 문제죠.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들은 너무 바빠요. 자기를 돌아보고 느낄 만한 시간이 없어요. 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가고 숙제하고 자느라고요. 그리고 학교나 학원에서는 자신을 생각할 필요가 없죠. 선생님들이 욕망을 주입해주잖아요. '좋은 대학에 가면 결혼도 잘할 수 있고, 좋은 집, 좋은 차로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식이죠.

 

라캉(Jacques Lacan)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기 욕망보다도 다른 사람이 좋다는 걸 좋아하게 된다는 거예요. '사'자 돌림의 직업, 좋은 집과 안락한 삶 등이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주입되는 욕망이죠. 자신의 진짜 욕망은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라캉이 그렇게 지적했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사람은 다 그렇다는 거 아닌가요.

정도의 차이가 있어요. 서양은 개인주의 사회이다 보니 '네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을 자주 던져요. 하지만 한국은 그런 질문 자체가 없어요. '사회는 원래 이래. 너도 이렇게 살아야 행복해' 그렇게 사고를 주입하는 느낌이에요.

 

그 기준에 따라 1류 인생과 2류, 3류 인생이 나뉘죠.

사회가 그렇게 학습시키죠. 의사가 돈을 잘 버는 건 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의사를 성공의 상징으로 보지 않아요. 엄청 힘들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는 직업이라고 여겨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사를 보면 '1등이었구나'라고 생각하죠. 욕망이 획일화된 사회이다 보니 모든 사람이 의사를 꿈꾸고, 그중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이 의사가 돼요.

 

한국이 절대적 빈곤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기보다 사상이 풍부하지 못한 것 같아요. 단 하나의 사상이 옳다고 생각하고 몰입하는 경향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조선 시대에도 오직 성리학에만 그렇게 매달렸던 걸 보면…. 사상이 다양한 나라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1등이 될 수 있어요. 이런 삶도 중요한 삶, 저런 삶도 중요한 삶이에요. 한국에서는 사회 전체가 인정하는 1등은 한 명뿐이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전문성

이승건 대표와의 대화 중에 몇 번 놀란 적이 있었는데, 다음 질문을 던질 때가 그랬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언급하자 그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그런 사람이 있나요? 뭐가 불안한 거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가요. 어떤 불안이죠?

 

그런 불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다 빼앗아가는 건 아닌가', '나는 그렇다 치고 우리 애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 같은 거요. 요즘은 카카오뱅크 때문에 위협감을 느낀 은행원도 많을 거예요.

그렇게 불안해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뭘까요. 예를 들어서, 은행원이 실제로 카카오뱅크 때문에 실직을 했다고 가정해볼게요. 그럼 힘든 이유가, 전문성이 없는데 다른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싫어서일까요.

 

나이 든 은행원이 새롭게 직장을 잡기에 일자리 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인 것 아닐까요.

이런 불안은 한국의 기업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사람들의 성장을 완전히 거세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거죠. 어떤 분야에서 수십 년 일을 하면, 당연히 그 사람에게서 배울 게 있어야 하거든요. 의사 결정 능력이나 오랜 경험에서 오는 협업의 능력, 조직화 능력, 문제를 도출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얻어내는 역량 같은 거요. 그런 본질적인 역량은 시간이 갈수록 쌓이기 때문에 은행업이 어려워져도 다른 산업에서 수요가 있겠죠.

그런데
오랜 직장 경력에도
가치를 창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그건 기업 탓이에요
기업이 직원에게 가치 창출이 아니라 조직에 적응하기를 요구해온 거죠. 능동적으로 역량을 발휘하기보다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을 키운 거예요. 자기 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고, 그러다 보니 결국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게 바로 이런 맥락이죠.

 

조직엔 나서서 변화를 이끄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필요한 것 아닐까요.

예전엔 그랬죠. 기능적인 부속품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절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하는 일을 진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어떤 게 진짜 일인가요?

현재 산업의 문제가 뭔지 고민하고, 고객의 어려움을 생각해보고, 문제를 도출해서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을 겪어야 해요. 이런 역량이 있으면 어떤 산업에 가더라도 유용하잖아요. 모든 산업은 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가치가 창출되죠. 결국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운용만 하는 기능적인 사람인지가 불안감을 좌우하는 부분이겠네요.

 

지금껏 혁신을 배우지 못하고 기능만 익혀온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결책이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네요. 우선 재교육 시스템을 활성화해야겠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겠죠.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님과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치킨집이 너무 많은데, 치킨집들이 다 잘 살 수 있게 배달의 민족이 좀 도와달라는 말을 많이 들으신대요. 그런데 그건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치킨집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30%씩은 계속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거죠.

 

그런데 왜 이렇게 치킨집이 많을까요. 결국 같은 얘기로 다시 돌아가요. 기업에서 사람들을 성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죠. 전문성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경력을 살린 재취업이 불가능해요. 은행 지점장을 하다가 아파트 경비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요. 지점장을 할 때까지 쌓은 역량이 없었다는 얘기죠.

 

그동안은 그렇게까지 혁신을 밀어붙이지 않아도 잘 굴러온 사회가 왜 갑자기 혁신 없이는 낙오되는 사회가 된 거죠.

문제 해결을 통해서 창출할 수 있는 산업적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에요. 소프트웨어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까 그러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는 거죠. 기업 내에서도 이런 파괴적 혁신에 적합한 사람들만 살아남는 거고요.

 

이런 가치 창출의 과정은 앞으로 어떤 직무든 동일할 거예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이걸 전파하고, 거기서 가치를 창출해내죠. 토스가 한 일도 같아요.

사실 토스에는 스타트업계에서 잘 알려진 몇 가지 성공 요인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그럼 실질적인 역량을 갖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토스는 그런 지원자를 어떻게 가려내나요.

저희는 면접을 보기 전에 먼저 과제를 주고 실제로 수행하는 결과를 봐요. 일종의 기술 면접(Technical Interview)이죠. 개발자에게는 실제 프로그래밍 과제를 주고, 현장에서 몇 시간이고 개발을 하게끔 해서 결과를 지켜봐요. 예를 들어서 사업 개발 직종이라면 개발과 관련한 과제를 미리 줘서,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사업 계획을 짜 오는지를 평가하는 식이에요.

 

해외 기업에서 진행한다는 문제 해결 능력 테스트와 비슷한가 봐요. 스펙은 전혀 보지 않나요?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이뤄냈고 실제 달성한 성과가 어떤지, 왜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뭘 배웠고 얼마나 겸손해졌는지, 그런 것들을 봐요.토스 사무실 ©손현실질적 역량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뭘까요? 가령 둘을 가르는 기준이 있다면요? 

지적인 열정과 호기심이 중요해요. 제가 누나가 많아서 조카가 5명이에요. 누나들이 조카를 가르치는 걸 보면 굉장히 많은 양의 성숙한 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해요. 저는 어릴 때는, 적어도 중학생 때까지는, 지적 호기심을 키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관심을 갖게 하는 거죠.

 

'이건 왜 이런 모양일까', '사람들은 이걸 왜 이렇게 하게 됐을까' 그런 호기심을 발견하는 교육이요. 호기심을 자극시켜주기만 하면 돼요. '호기심을 키워주라'고들 하는데, 저는 호기심은 억지로 키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그런 호기심을 타고나는 걸까요.

피카소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인간은 모두 천재로 태어나는데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그 천재성이 거세될 뿐이다." 공감해요. 어린아이들은 자연적으로 만물에 호기심을 가지는데 사회적 관습이나 예의, 부모와의 관계 때문에 차차 거세되는 것 같아요.

이승건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집요하게 캐물은 건 이 질문이다.

"어렸을 때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나요."

어린 아들을 둔 엄마로서, 진심으로 내 아들도 이렇게 키우고 싶었다. 꼭 창업가로 자라길 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확신을 갖고, 하나씩 장애물을 치워나갈 수 있는 실행력을 가진 청년으로 컸으면 한다.

자신과 일에 대한 깊은 생각이나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용기가 평범하진 않아요. 어떻게 자랐길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굉장히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어요. 어머니는 가정 선생님이셨어요. 유아 교육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셔서 아이의 심리를 잘 아셨어요.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신 건 두 가지예요. 하나는 어머니와 함께한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요. 그 행복한 기억이 뼈에 새겨질 만큼이요. 엄청난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늑한 곳에서 엄마가 떠먹여 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일 같은 거요. 덕분에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나 낙관적인 태도가 생겼어요.

 

두 번째는, 제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다 지원해주셨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요. 예를 들어, 제가 라디오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청계천에 가서 부품을 살 수 있게 해주셨어요. 당시 제 방에 책상이 세 개였어요. 하나는 공부하는 책상이고, 두 개는 뭔가를 만드는 책상이었어요. 각각 다른 작업을 하는 용도였죠.

 

누나들도 책상이 여러 개였나요?

네, 저와 관심 분야는 달랐지만 누나들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아버지 사업으로 집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게 저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나는 다른 사람하고 다르니까 놀면 안 된다. 어머니 속 썩이지 말아야지. 열심히 공부해야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와 행복한 기억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 ⓒ중앙일보천성이 착한 것 같아요.

아니에요. 게으르고 못된 면도 있어요. 그때 배고픔을 겪은 경험이 인생을 많이 변화시켰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집안 사정이 나아졌는데도 계속 배고픔을 느껴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면서요.

 

결핍에서 오는 에너지인가요?

네, 그런 것 같아요.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한 말처럼, 그래야만 끊임없이 지혜를 탐구하고 사회적 부를 늘리려 노력할 수 있어요. 결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헬조선'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의 20대들은 스스로 '기회를 잃은 세대'라며 좌절하고, 기성세대는 '나약한 투정'이라고 꾸중하죠.

저는 양쪽에 다 수긍해요. 지금 젊은 세대들이 역사상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직장에 취직할 수도 있지만 직장을 만들 수도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두려움 없이,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허영심이 아니라 진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면 창업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나약하다는 건 상대적인 단어예요. 너무 큰 도전 과제가 주어지면, 나약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넘어설 수 없게 되니까요. 지금 젊은 세대들이 맞닥뜨린 어려움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고 극복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면 어떨까요. 이름이 알려진 회사를 다니겠다거나 일을 하며 안락한 삶을 찾겠다는 목표보다 어떤 문제만큼은 내가 해결해보겠다는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면 풀리는 문제도 많을 것 같아요.

 

결국은 개인도 '미션 드리븐 셀프(mission driven self)'가 돼야 한다는 건가요?

맞아요. 이제 '철밥통' 직장은 없어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할수록 더 현실감이 생기고 삶은 차차 나아질 거예요.

 

공무원은 여전히 '영원히 안정된 직장' 아닌가요? 그래서 수십만 명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몇 년을 투자해서 겨우겨우 들어간 그 직장이 주는 행복은 어떠냐는 거죠.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미션 드리븐 셀프가 됐을 때 행복감의 총량이 훨씬 더 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하고 싶은 일이 잘 안 풀리면 빈곤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정책이 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선 실업 급여가 훨씬 확대돼야 해요. 결국 기본 소득과 비슷해요. 실업 급여 자체가 직장에서 받던 수준과 비슷하고 1년에서 1년 반 정도를 지원해준다면 사회는 여러 면에서 굉장히 바뀔 거예요.

 

첫 번째는 기업 문화를 꼽을 수 있어요. 이직에 대한 사회의 지원이 탄탄하다면 재직자 누구나 나쁜 기업 문화를 만났을 때 더 가벼운 마음으로 퇴직해버릴 수 있거든요. 모든 사람을 우대하는 문화가 되면 자연히 꼰대 문화는 없어질 거예요.

 

사람들이 퇴직을 하고 자기가 원했던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단기적으로는 재정 적자가 생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다양성과 행복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부작용도 심각할 것 같은데요.

단순히 경제적 지원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열정을 자극하는 사회적 운동도 뒷받침되어야겠죠.

 

이런 논의는 늘 '재원이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게 되는데, 결국 토스처럼 경기가 좋은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이 커지지 않을까요?

저는 그러고 싶어요.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기업이 더 큰 세금을 내서 기본소득 같은 사회적 실험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로봇의 등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산 수단이 공유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공산주의 같은 거죠. 그러니까 이를 통해 창출되는 사회적 부는 인류 모두가 나눠야 해요. 모든 사람이 꿈을 꾸고 원하는 일을 찾게 해 주고, 그걸 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거죠.

 

모든 사람이 그렇게 가슴 뛰게 하고 싶은 일을 갖고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 많은 어린이예요. 살면서 어느 순간에는 정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무언가가 있어요. 뭐가 됐든 그 사람이 흥미를 갖는 일을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게 될 테고 사회적 경쟁력도 올라갈 거예요.

이승건 대표는 우리 교육 시스템 안에서 누구보다 강했다. 서울대 치과대학에 합격했으니 아마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이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지식을 외웠던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교육 시스템도 많이 바뀌어야겠죠.

학문이 본질적으로 가르치려는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성적을 잘 받기 위한 암기 교육이 중심인 게 문제예요. 예를 들어 이런 차이예요.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려면 미적분 없이는 불가능해요. 예를 들어 나뭇잎은 왜 이런 속도로 떨어질까, 이런 원리에도 미적분이 필요해요.

 

이걸 공부하는 이유, 이 지식으로 어떤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게 먼저죠. 그런데 아직도 다들 '암기해. 외워. 중요한 거야' 하며 미적분 풀이를 반복하잖아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교육이죠.

결국 목표는 미션 드리븐 컴퍼니

사업을 하면서 이런 공부는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는 게 있나요.

인간관계요. 전 학교 교육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인간관계예요. 학교의 폭력적인 인간관계들이 걱정돼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관계에서 서로 따뜻하게 안아주고 도와주는 걸 배우지 못했어요. 단지 부모의 지위에 따라 편을 가르거나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하는, 못된 관습을 배우잖아요.

인간의 위대한 활동은
모두 협업에서 나와요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려면 여러 명이 동시에 한 발을 내디뎌야 해요. 그래서 협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와 애정이에요. 그런데 우리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학교 교육에서 그걸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어요.

 

리더십 교육을 받은 적이 없을 텐데, 그런 신뢰를 끌어내기 어렵지 않았나요?

제가 치과의사를 하다 창업을 했을 때 가장 어려움을 겪은 게 바로 협업 역량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치과의사는 다 혼자 하거든요. 간호사들에겐 지시를 하죠. 의료계는 워낙 응급상황이 많아 상명하복 문화가 맞아요. 하지만 생산적인 결과를 위해선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선 안 되죠. 각자가 모두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해야 해요.

이승건 대표는 일중독으로 유명하다. '잠을 자지 않는 것 같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자는 시간이 적은 건 사실인 것 같다. 가끔 낮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이 새벽 3시쯤 도착하기도 했다.

새벽에 뭘 하느냐고 묻자 그는 '공부할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에 대해선 '조직 문화가 가장 큰 고민'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토스는 어느새 200명에 가까운 직원을 둔 회사로 자랐다. 이들을 어떻게 한 방향으로 이끌지가 그에겐 큰 숙제로 자리 잡았다.

결국 어떻게 방법을 찾아냈나요.

수많은 실패를 통해 배웠어요. 회사를 살리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창업 초기부터 많은 실험과 고민과 노력이 있었어요. 그 결과로 서로를 신뢰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협업을 추진하려고 했죠. 그래서 정보를 투명하게 개방하고 맥락을 공유하면서 이를 추진하는, 이럴 때 미션 드리븐 컴퍼니가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20대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토로하는 '아재'들이 많아요.

이제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론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밀레니얼 세대는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 제가 서른여섯 살인데, 제 아래 세대가 이해찬 세대예요. 생각하는 로직이 완전히 달라요. '이렇게 해'라고 지시하면 이행하지 않아요. 회사를 나가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기업이 어쩔 수 없이 바뀌고 있겠죠.

 

그럼에도 아직 바뀌지 않은 조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그렇죠. 젊은 친구들이 못 견디는 건, 상사가 무의미한 프로젝트를 지시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경우예요. 이런 일은 실제로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참여하는 사람들이 몰입감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리더가 아는 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리더의 잘못된 생각이 꺾일 수 있으면, 참여감과 몰입감을 느낄 수 없는 프로젝트는 아예 시작도 안 되겠죠.

 

본인은 꺾일 수 있는 리더라고 생각하나요.

창업 초기와 지금의 다른 점이 그 부분이에요. 겸손한 태도와 경청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 것. 이게 협업의 시작이에요. 모두가 각자의 관점에서, 경험의 양과 관계없이, 옳은 판단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는 거죠. 그리고 정돈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더라고요.

 

정돈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뭔가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랄까. 예를 들어 복잡한 내용을 돌려서 얘기할 수도 있지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또는 표정 하나로 표현할 수도 있거든요. 뭔가 지적하고 싶을 때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이게 우리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맞는 코스냐', '더 높은 목표로, 다른 방법으로 달성해야 하는 거 아니냐'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거죠.

 

밀레니얼 시대는 지적을 잘 못 받아들이는 편인가요? 맷집이 약한가요?

지적의 정당성, 합리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요.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세대보다 잠재력이 더 크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요즘 시간이 나면 조직에 대해 공부해요. 어떻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프로세스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뭔지 같은 주제요. 토스가 특이한 방식의 기업 문화를 고생하며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문화가 결국은 미래의 문화이기 때문이에요. 다가올 미래에, 한국의 인재들이 일하기에 가장 적절한 문화요.

 

어떻게 하면 그 세대의 몰입감을 이끌어낼 수 있나요.

지켜보니, 이 친구들이 일을 잘할 때는 자기가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을 때예요. 자유를 줘야 해요. 그런데 자유뿐만 아니라 책임도 줘야죠.

 

그럼 팀장이나 부장, 윗선이 쥐고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자율도 책임도 함께 줘버리니까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무서운 거예요. '잘못하면 너는 끝이야' 그런 메시지가 함께 가게 되니까요. 제가 늘 강조하는 '신뢰에 기반한 협업'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 업무의 영역을 존중하는 거예요. 내가 신뢰하는 영역이 있다는 거죠. 탑다운은 의사 결정 영역이 명확하니까 어느 수준까지만 일을 하면 되지만, 이는 신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아요.토스 사무실 ©손현그럼 토스의 문화는 얼마나 다른가요.

저희는 매달 회사의 수입과 지출을 전 직원이 공유해요. 회사가 돈이 얼마 남았고, 어떤 속도로 쓰고 있고, 주로 어디에 쓰는지를요. 그래야 서로 믿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저희는 모두가 법인카드를 갖고 있고 사용 한도가 없어요.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사용한다는 원칙만 있어요.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들여다보지도 않아요.

 

그리고 매달 1인당 평균 카드 사용량을 모두에게 공개해요. 그러면 서로 신뢰 구조가 깨질까 조심하게 돼요. 신뢰가 깨지면 이 문화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죠. 다른 사람이 엉뚱한 데 법인카드를 쓰면 '너 왜 그런 데 법인카드를 쓰느냐'고 대놓고 말하기도 해요.

 

뒤통수를 맞는 일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 오해가 생길 수는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으로 빠르게 기댓값을 일치시킨 적은 있어요. 회사가 좀 바보 같은 규칙을 만들 때 훌륭한 인재들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더 과감하게 규칙을 없애서 신뢰 관계를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훌륭한 인재의 비율이 높아져요. 언젠가 사석에서 이승건 대표와 AI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따로 기록하지 않았음에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아기를 돌보는 일 같은 거요.
전 10년 안에 가능할 것 같은데요. 가장 먼저 보편화될 서비스 중에 하나일 것 같아요.

그 뒤로 취재를 위해 많은 국내외 전문가를 인터뷰했는데, 로봇이 아기를 보게 될 거라고 답한 이는 이 대표가 유일했다. 나는 거의 소리를 치다시피 했고, 이승건 대표는 침착했다.

아니, 로봇이 아기와 눈을 맞추고 자장가도 불러줄 수 있다고요?
사람의 표정을 미믹(mimic)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지금도 벌써 사람과 너무 비슷해 보이는 로봇이 있고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아기를 돌볼 수 있을까요.
인간 엄마만이 아기를 완벽하게 돌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오히려 오만한 생각이 아닐까요? 엄마들이 아기에게 최상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까요?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체력이 부족해서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들도 있잖아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한밤중에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면,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다리를 버둥대면, 짜증이 났다. 육아는 최고 난이도의 감정적, 육체적 노동이다. 당시의 대화를 회상하며 이 질문을 던졌다.

육아까지도 기계가 맡게 될 거라던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먼 미래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일이 존재는 할까요.

없을 것 같아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건 딱 하나, 인간의 의지라고 생각해요. 그건 근거도 없고 합리적이지 않거든요. 제가 치과 의사를 하다가 '기술 혁신을 통해서 이 세계를 바꾸겠다'면서 창업한 것 자체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죠. 이런 결정은 인간만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창업을 하고 난 뒤에 제품을 만들거나 프로그래밍, 마케팅 등 사업의 모든 전략에 대해선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결국 의지와 방향성을 가지는 것만이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부분이겠죠.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지, 큰 위협이 될지 아직 논란이 많아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인공지능을 지금부터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고요.

많은 위협이 있을 거예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가능해지거든요. 예를 들어 여론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죠. 전 국민에게 전화를 해서 그 사람의 프로파일에 맞는 방식으로 특정 정치적 성향을 유도하는 식으로요.
* 테슬라모터스 CEO

 

사회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도덕은 기술보다 발전이 늦을 수밖에 없어요. 인간 배아를 복제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도 생명 윤리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잖아요.

기획 취재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답을 찾다 보면 '이거다' 싶은 결정적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은 인터뷰를 하다, 자료를 찾다, 취재 현장에 멍하니 서 있다가도 찾아온다. '아,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그 답인가 봐' 하는 그런 순간이다.

나는 이승건 대표의 인터뷰 도중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 이건가 봐. 미래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이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 이야기를 젊은 세대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용기 있게 그걸 추진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힘들어도 몇 년만 지나면 훨씬 더 행복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5 한국의 뉴칼라: 이승건(비바리퍼블리카) 마침.

독자 리뷰

현재까지 886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존의 잣대와 다른 기준과 목표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포만감있게 소비했습니다.
    저자분들의 진심과 열정도 좋았습니다

  • 강**

    인공지능의 개발과 빠른 변화로 인해서 전문직에서 일하는 저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한 결 정리된 것 같습니다. 조금 위로도 받았고요.

한국의 뉴칼라: 김동호(한국신용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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