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정의하는 최소의 조건

Editor's Comment 

'명품의 조건 - 그들은 왜 명품이라 불리나' 세 번째 미리보기입니다. 마트에 파는 떡갈비와 학원 전단지에도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시대. 그러나 높은 취향과 감식안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은 이런 홍보 문구를 가볍게 웃어넘길 뿐입니다. 브랜드가 표방하는 위상과 소비자의 인식이 '명품'이라는 지점에 딱 맞춰지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이 글을 통해 명품이 성립되는 조건에 대한 각자의 기준을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리포트는 2018년 1월 11일(목)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상단 이미지 ⓒSamuel Zeller

책에 수록된 (명품) 물건들은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객관적인 판정 기준이란 어차피 없기 때문이다.
 

- 윤광준,「윤광준의 신 생활명품」

(중략) 명품을 이루는 조건, 혹은 본질은 무엇일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명품을 정의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리포트는 다수가 동의할 만한 가장 최소한의 조건을 전제에 두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명품을 만드는 브랜드와 명품 산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표로 삼겠다. 이에 대한 동의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다음 목차에서 각 조건에 대해 살펴보자.

1. 제품의 만듦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제품을 잘 만들어내는 것은 명품을 파는 브랜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기본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가장 어렵다.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몇 차례 바뀌어도, 심지어 도구로서의 실용성을 잃는다 해도 '잘 만들어낸다'라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다. 진정한 명품은 셀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재료와 기술, 제조 과정에 대해 타협 불가한 자신만의 기준을 확립한다.

품질은 가격이 잊힌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억된다(Quality is remembered long after the price is forgotten).
 

- 알도 구찌(구찌 창업자의 큰아들), 헨리 로이스(롤스로이스 창업자)

독일의 캐리어 브랜드 리모와(Rimowa)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최근 셀레브리티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로 알려지며 대유행이 일어난 까닭에, 어떤 사람들은 과시성으로 리모와를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모와는 실용성과 효율성을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승화한 기능주의의 산물이다. 독일 융커스(Junkers) 전투기의 DNA를 이어받아 아직까지도 고강력 금속인 두랄루민으로 만들어진다. 장인들이 손수 리벳(각 구조물을 연결하는 못)을 망치로 내려쳐 조립하는 방식도 고수하고 있다. 리모와의 완벽한 만듦새는 소비자가 새로운 여행의 역사를 써나 갈 수 있도록 돕는다.

리모와의 견고한 캐리어는 고객이 여행의 역사를 기록하는 그릇이 된다. ⓒEQRoy

2. 브랜드가 전하는 철학과 가치

과거의 명품은 도구로서의 실용성과 견고함, 즉 만듦새만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명품을 성립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가 소비자에게 얼마나 전달되는가'다.

 

창립부터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창업가의 철학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유산이자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가 된다.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파타고니아(Patagonia), 성공의 이정표로서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롤렉스(Rolex), 기록을 즐긴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를 오마주 하는 몰스킨(Moleskine)이 바로 그러한 브랜드다.

 

브랜드의 가치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거친 과정과 높은 수준의 결과물, 그리고 이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가 공명할 때 비로소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성립한다.

파타고니아의 옷을 입음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생각하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Patagonia

본질적 기능에 대한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시계의 순수함은 '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명품이라면 이 하나의 본질만큼은 제대로 구현하고 지켜가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시장의 요구에 얼마큼 타협할 것인가'에 대한 브랜드 철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성장하면
다양한 소비층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에 맞추다 보면
브랜드 철학과 자산이
희석되기 쉽다

잉크로 된 펜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은 다음, 얼마 안 가 지워지는 잉크와 지우개 달린 펜을 출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워지는 잉크를 만드는 것은 잉크의 순수한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시장 논리로는 한가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본질의 순수한 구현은 명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브랜드의 갖은 노력과 분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스토리가 되어 명품을 소비하는 감성적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3.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면, 명품이라 부를 수 없다. 수많은 브랜드가 마케팅을 목적으로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남용하는 덕에, 진짜 명품들은 희소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일부 명품 브랜드는 재고 분을 남몰래 소각하거나, 아웃렛의 판매 비중과 규모를 줄이는 등 가격 결정권(price power)*을 갖기 위해 애쓴다.

* 상품의 판매 가격을 좌우하거나 자유로이 판매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힘

에르메스 버킨백은 원래 효율적인 수납을 위해 만들어진 백이었다. ⓒDKSStyle

가격 결정권은 제품의 희소가치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제품의 가격은 곧 시장에서의 가치를 의미하며, 브랜드 스스로 명품임을 선언하는 명백한 잣대가 된다. 롤렉스의 서브마리너(Submariner)도, 에르메스의 버킨백도 처음엔 그저 순수한 기능만을 수행하는 제품이었다. 어느 순간 이런 제품들은 가격이 곱절로 증가하며 시장에서 명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롤렉스의 서브마리너는 1953년 일상에서도 찰 수 있는 '활동적이면서도 우아하고 방수 기능이 있는 손목시계'를 표방해 론칭한 모델이다. 현존하는 다이버 시계의 대부분은 이 모델을 원형으로 한다. ©andersphoto

명품의 티핑 포인트

지인과 대화 도중 재밌는 논제를 얻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출시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가격 상승률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거래 가격이 크게 증가하는 어느 지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데이터로 브랜드가 명품으로 거듭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개연성 있게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이다.

*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 순간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번지는 순간을 가리킨다.

 

본 리포트에서 다루는 브랜드들의 대표 상품들의 가격 자료를 수집해 그려보면 참 재밌는 인사이트가 나올 것 같다. 현재 지표가 될만한 제품의 가격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고, 충분히 모이면 2018년 1월에 발행될 '명품의 조건' 리포트에 추가할 계획이다. (후략)

 

[명품의 조건 - 그들은 왜 명품이라 불리나]

 

미국에서 다양한 기업의 혁신을 목도하고 있는 IBM의 젊은 컨설턴트가 명품 브랜드와 럭셔리 산업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영화 제목이 될 정도로 잘 나가던 브랜드의 추락, 도태된 디자인을 리뉴얼해 힙스터의 아이콘이 된 브랜드의 변신. 그들의 역사와 변화를 통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명품의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