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omment 

'미디어 리터러시, 누구니 넌?' 리포트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현재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 미디어 교육 석사 과정에서 미디어 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최원석 저자가 미디어 교육(media education)과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이야기합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2월 5일(화)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섬네일 이미지: 최원석 저자 제공

<뽀로로>는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오락거리이자 미디어 교재입니다. 노래만으로도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에, 다양한 춤과 장난을 겸비하고 아이들과 놀아주지요. 24시간 지치지도 않으니, 잠에서 깨어 있는 아이들에겐 말 그대로 '뽀통령'입니다. 개구쟁이 펭귄 뽀로로와 친구들 덕분에 한국 부모들은 예전보다 좀 더 자유시간을 얻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뽀로로에게 아이를 잠시 맡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뽀로로를 접한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또 노트북 등으로 뽀로로 영상을 보는 아이의 모습을 주변에서 보면, 대개 엄마나 아빠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많은 경우, 부모들은 영상을 틀어주고 난 뒤 다른 일을 하곤 하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전적으로 뽀로로의 '통제'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뽀로로와 친구들이 보여주는 여러 모습을 아이들은 굉장한 속도로 배웁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저도 뽀로로를 자주 보기 시작했습니다. <상어 가족>과 <뽀로로>의 주제가는 참 중독적이더라고요. 아이에게는 노래만 들려주고, 영상은 아직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뽀로로를 한참 보다가 크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순진무구한 표정을 한 뽀로로와 친구들의 행동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뽀로로 6기 5화 22분 23초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함께 볼까요?
 

(스키를 타던 뽀로로가 앞서가던 루피를 본다. 갑자기 표정이 도전적으로 변하는 뽀로로)
뽀로로: 어, 루피잖아? 좋아. 따라잡아주지!

(노래를 부르며 내려가던 루피 옆으로 다가간 뽀로로)

뽀로로: 느림보 아가씨 안녕~

루피: 뭐!

뽀로로: 먼저 갈게~

(루피에게 눈을 뿌리며 앞서가는 뽀로로, 뒤돌아보면서)

뽀로로: 느림보 아가씨, 날 잡아보시지~

뽀로로는 앞서가던 '루피'를 보자, 갑자기 경쟁심 넘치는 표정으로 "좋아. 따라잡아주지!"라고 말합니다. 여성적인 캐릭터인 루피가 앞서가는 건 뭔가 이상하고 불편한 걸까요? 뽀로로는 그렇게 루피 옆으로 간 뒤 "느림보 아가씨"라는 말로 루피를 놀립니다.

즐겁게 스키를 타던 루피는 뽀로로의 장난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고, 결국 눈을 뿌리면서 도망간 뽀로로를 따라잡으려다 눈사람과 '쾅' 부딪히고 맙니다. '느림보 아가씨'라는 뽀로로의 표현은 반복되고(23분 23초, 24분 9초), 줄거리는 뽀로로가 루피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마니또(비밀 친구)' 역할을 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루피는 '분홍색 치마'를 입은 캐릭터로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여자아이를 대표하는 주인공입니다. 이 에피소드 전반에 걸쳐 시종일관 삐지거나("흥! 너랑 안 놀 거야!"라는 루피의 대사), 뽀로로가 준 선물에 얼굴이 발그레해지고(화가 금방 풀리는 성격일까요), 뽀로로의 장난에서 쉽게 골탕 먹습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뽀로로는 여간해선 장난에 당하지 않죠.

 

뽀로로의 장난에는 '여자 아이'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스키를 빠르게 잘 타는 뽀로로와 달리 루피는 그렇지 못하고, 잘 삐지고, 변덕쟁이에다 뭔가 모자라도 괜찮다는 생각이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뽀로로와 루피의 모습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아이가 3~4살만 되어도 특정 행동을 '여성과 남성'의 것으로 구분하게 된다는 연구*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영향이죠. 방영 채널인 EBS는 "뽀로로 캐릭터는 특정 성별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향신문의 기사입니다. [기사 보기]
* 참고 문헌: 미국소아과학회(AAP) Rennels와 Langlois의 연구 / Rennels, J. L., & Langlois, J. H. (2014). 「Children’s Attractiveness, Gender, and Race Biases: A Comparison of Their Strength and Generality」 Child Development, 85(4), 1401–1418 [논문 보기]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처럼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받아들이는
많은 정보를 꼼꼼하게
읽는 요령입니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읽고, 보고, 듣다 보면 여러 미디어 콘텐츠에 담긴 의미도 자연스레 '판단'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를 수 있습니다. 부모가 그 의미를 파악하고 아이에게 미리 알려줄 수 있다면, 무조건 뽀통령의 단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막을 수 있겠죠. 사례를 함께 모아 보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안내서가 될 듯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미디어 리터러시, 누구니 넌?' 리포트에서 전하겠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누구니 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정보가 광고 데이터로 쓰이는 시대, 온갖 가짜 뉴스(fake news)가 일상을 유혹하는 시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묻고 답합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5분 순삭'을 경험하신 분을 위해 핀란드에서 보내는 안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