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쓰는 에필로그
Editor's Comment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등 신흥 글로벌 기업들의 오피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그 안에는 어떤 의도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오랫동안 기업의 오피스와 연수원, 문화공간을 만드는 일을 한 네이버 라인프렌즈 공간기획 리더 이은재 저자와 '남의 집 프로젝트'를 이끄는 김성용 저자가 직접 미국으로 찾아가 알아보고 왔습니다. '그 오피스, 일할 맛 나요? - Airbnb에서 Amazon까지' 리포트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1월 21일(화) 오후 6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트위터, 우버, 구글,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위워크, 나이키, 스타벅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이렇게 총 10개 기업의 오피스를 방문했습니다.
여행 가는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하루에 2, 3개 기업을 방문하다 보니 출장도 이런 '빡센' 출장이 없더군요. 여정을 계획하며 놓친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회사 간 거리를 광화문-강남 정도로 예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광화문-분당 거리였고요. 여기에 샌프란시스코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까지, 매일 허둥지둥하며 시간에 맞추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기업 오피스에 도착해서는 짧은 시간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초집중을 해야 했습니다.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저녁에는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싶었지만, 오피스 트립이 끝나면 파김치가 되어 숙소에 돌아와 뻗어 자는 데 급급했습니다. 시차, 영어, 이동.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러 요소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기업 오피스들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놀라움과 신기함 또한 매우 컸습니다. 재미있는 인테리어, 멋진 건축, 어마어마한 규모, 맛있는 밥,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모두 저희를 자극했습니다. 너무 자극적이라 한국에 돌아가 일을 잘할 수 있을지가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동시에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구나' 하는 안도도 했습니다. 하버드, 스탠포드 출신의 천재들만 가득한 회사라도 말이죠.
기업별 오피스 문화와 철학을 경험하면서 10개 회사에는 10개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기업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왜 그런 결과물을 만들게 되었는지,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등도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으로 알고 있던 기업의 정보들이 오피스를 방문하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행 전 도움 주신 분들, 현지에서 좋은 만남을 만들어 주신 분들, 그리고 사전 협의 없이 환대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반전의 한방이 있는 그곳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반전 있는 회사가 스타벅스였습니다. 방문 기업 중 나이키와 함께 가장 오래된 회사이기도 하고, 오프라인 비즈니스, 심지어 식품 음료 사업군에 있는 회사이다 보니, 재미있고 특별하기보다는 히스토리를 느낄 수 있는 정도겠거니 하고 갔죠. 하지만 처음의 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쉬는 공간 벽은 어김없이 회사의 철학이 쓰여 있다. ©이은재
스타벅스는 페이스북과 유사한 사업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사람들의 연결많은 테크 기업이 온라인에서의 연결을 꿈꾼다면, 스타벅스는 오프라인, 리얼 세계에서의 연결을 꿈꿉니다. 실제로 저희 오피스 투어를 도와준 분에게 "우리는 사람들을 연결해줌으로써 얻어지는 가치가 중요한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타벅스는 2017년 현재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에 이어 크고 작은 집단과 개인들을 만나고 연결해주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제3의 공간: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스타벅스의 공간적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제1 공간은 집, 제2 공간은 직장, 제3 공간은 집이나 직장 다음으로 편한 장소, 학업이나 직장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쉬어가며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분류한 바 있다.
'Community Conversation'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 커뮤니케이션 보드 ©이은재
스타벅스의 본사는 시애틀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근교에 위치하는데, 이 지역은 과거 공장과 창고가 많았던 공업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2000년 전후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다양한 기업과 예술가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본사가 위치한 건물 역시 1912년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는 카탈로그로 물건을 파는 유통 회사 시어스(Sears)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스타벅스 센터 입구 ©이은재
첫눈에 보기에도 세월이 느껴지는 붉은색 건물 입구에는 스타벅스 로고인 물의 여신 세이렌(Seiren, Siren)이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스타벅스는 이 건물에 '본사(Headquarter)' 대신, 본부라는 뜻으로 '스타벅스 센터(Starbucks Center)'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습니다.회사 역사뿐만 아니라, 건물의 역사도 기록한다. ©이은재
스타벅스 안에는 스타벅스가 있을까
스타벅스에 가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스타벅스 오피스 안에는 스타벅스 카페가 있을까?'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있다'입니다. 직원들에게는 30% 할인을 해준다고 합니다. 오피스 각 층에도 스타벅스의 커피 머신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지만, 직원들은 스타벅스-인(in)-스타벅스를 더 좋아한다고 하네요. 역시 누가 만들어 주는 게 맛있는가 봅니다.
스타벅스 안에 스타벅스가 있다! ©이은재

층마다 좋은 커피머신이 있어도, 직원들은 이곳에서 주문해 마신다고 한다. 직원 30% 할인! ©이은재

한국에는 없지만, 기계와 원두를 정기적으로 공급해 주는 스타벅스 오피스 프로그램이 있다. ©이은재
회의실 이름은 '술라웨시', '에티오피아 시다모' 같은 식으로 스타벅스에서 출시한 원두 이름들이 붙여 있습니다. 원두뿐 아니라 고객에게 제공한 서비스나 결과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오피스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회의실의 이름은 익숙한 원두 이름이다. ©이은재

'JAVA Gym'이라고 이름 붙인 직원 헬스장 ©이은재
스타벅스 로고의 변천사도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 1971년 최초 로고에 등장한 세이렌은 솔직히 좀 무서웠습니다. 대중성(Publicity)을 위해 세이렌은 몇 차례 변화를 거듭하는데, 지금 로고에서는 찰랑거리는 머릿결, 자애로운 표정, 세련된 왕관으로 달라졌습니다. 사업 확장성을 위해 Coffee라는 텍스트도 로고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입구에는 스타벅스의 최초 로고가 설치되어 있다. ©이은재

점점 심플해져 가는 스타벅스 로고의 변천사 ©이은재

스타벅스의 중요한 시점에 세계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은재
스타벅스 다움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오피스
커피 이후의 대체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기업이 스타벅스 아닐까요? 오피스 곳곳에서 스타벅스가 2012년 인수한 차(Tea) 브랜드 '티바나(TEAVANA)'를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난 7월, 스타벅스 CEO인 케빈 존슨이 실적이 좋지 않은 티바나 사업을 순차적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스타벅스에서 다양한 차 음료를 맛볼 수 있습니다.
* 관련 기사: 'Starbucks Is Closing All 379 of Its Teavana Stores' (The Fortune, 2017.7.27)
2016년 9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 스타필드 하남에 티바나 특화 매장을 선보였고, 2017년 8월, 스타필드 고양에 오픈한 '티바나 인스파이어드 매장(TEAVANA Inspired Store)'은 가장 스타벅스다운 티바나 매장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타벅스가 차 시장에 들어온 덕분에 한국처럼 차 소비량이 적은 시장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8층에 위치한 스타벅스의 차 브랜드 티바나 쇼룸 ©이은재
티바나를 담당하는 부서에는 컬러풀한 티바나의 차 박스가 가득하고 티 테이스팅 룸이 있습니다. 이렇게 오피스를 다니다 보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떤 부서인지 은근히 알 수 있는데요. 원두를 매입하는 부서에는 커피 테이스팅 룸이,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에는 일반 매장처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작은 바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법무팀은 작은 룸이 따로 제공된다고 합니다.회사 곳곳에는 커피 관련 기계들이 놓여 있다. ©이은재
원두 시음 랩. 다양한 원두를 끊임없이 시음하는 곳이다. ©이은재

전 세계의 크루들이 이곳에 모여 교육받고 토론한다. ©이은재
오피스 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룰이나 시스템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적재적소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브랜드와 디자인, 서비스가 런칭되면 오피스 어딘가에 적용해보고, 그런 결과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혁신적인 느낌은 덜하지만 조화롭고, 멋지기보다는 친근한 감각이 모든 오피스 공간에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배어있었습니다.회사 곳곳에서 커피(원두)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볼 수 있다. ©이은재
심지어 화분까지 ©이은재
개인의 취향과 이야기가 느껴지는 근무 공간
근무 공간은 한국의 일반적인 오피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미터 80센티미터 내외의 데스크를 기역자(ㄱ), 일자(ㅡ) 등 다양하게 쓰고 있습니다. 일부 매니저들에게는 밀폐된 형태의 개인 룸이 제공되기도 합니다. 특이한 점은 자기 자리를 꾸미는 기술들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데스크에는 일, 취미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다양한 제품과 소품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건 이동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오피스 공간 자체가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이은재

매니저에게 방을 주는 것이 대부분의 테크 기업과는 다르다. ©이은재
사업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는 기업들의 공통된 특징이 '잦은 이동'입니다. 오피스가 금방 비좁아지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공간을 이동하고, 데스크 옆에는 풀지 않은 박스가 한두 개씩 놓여 있기 일쑤입니다. 스타벅스가 이 건물을 오피스로 쓴 지는 거의 20년이 넘었고, 2001년 지진을 겪은 후에도 지진 보강 후 계속 건물을 사용한 만큼 한 오피스에서 생활한 기간이 깁니다. 그래서인지 직원 개인의 자리에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습니다. 오래 키워온 화분, 좋아하는 그림 등 각자의 취향도 선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다들 자기 자리를 열심히 꾸민다. 이사를 자주 가지 않는다는 뜻. ©이은재
근무 공간 곳곳에는 회의를 위한 오픈 스페이스가 만들어져 있는데, 가구 타입이 다 다릅니다. 인테리어 가구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서 이런 공간에 새로운 모델들을 개발하고, 적용해본다고 합니다. 카페용으로 만든 가구들이 오피스 공간에 널려 있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스타벅스 카페에서 자주 보던 옹이가 박힌 두꺼운 나무 테이블을 발견할 때는 은근히 반갑기도 했습니다.
업무공간 곳곳에 놓인 테이블은 스타벅스에서 보던 그것이다. ©이은재

회사 컴퓨터를 고쳐주는 곳 ©이은재
우리 사이에 영웅이 있다. (There are heroes among us.)
복도에는 스타벅스가 일 외에 일 만큼이나 신경 쓰는 몇 가지 이야기를 써놨는데, 그중 하나가 군인 채용에 관한 것입니다. 고용된 군인들의 이름을 배지에 하나하나 새겨 복도 전체를 채워 놨습니다. 미국인들이 상이군인들을 존경하는 것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지만, 복도를 수놓은 배지들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타벅스의 군인 고용 프로그램 ©이은재

고용된 군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놓았다. ©이은재
스타벅스가 가장 많이 협업하는 외부 전문가는 '아티스트'입니다. 스타벅스 카페 벽에는 사진도 많고 그림들도 많은데요. 주로 신진 아티스트나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여 작업한다고 합니다. 오피스 여기저기에도 다양한 그림들이 가득한데, 이름이 떠오를만한 유명 작가는 없어 보였습니다.신진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오피스에서 먼저 시도해 본다. ©이은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진출한 스타벅스 ©이은재
스타벅스 오피스를 방문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던 이유는 뭐든 무리해서 보여주려는 것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모든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쉽게 이해되었습니다전 세계에 매장을 가진 회사인 만큼 인종도 다양한데, 우리가 갔을 때는 일본에서 온 직원들이 오피스를 투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도 이 오피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스타벅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스러움과 조화'. 사람과 사람 간에 가장 필요한 것, 서로의 연결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그것 말입니다.
ㅡ
[그 오피스, 일할 맛 나요? - Airbnb에서 Amazon까지]
세계 최고의 가구를 만드는 허먼밀러는 오피스를 방문한 손님들께 직접 양봉한 벌꿀을 선물합니다. 왜 가구 회사에서 벌꿀을 양봉할까요? 에어비앤비 오피스는 집을 빌려주는 호스트의 집을 재현한 재미있는 오피스로 유명합니다. 집 같은 오피스에 담긴 에어비앤비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이 기업들 오피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